철학의 신전
황광우 지음 / 생각정원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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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이라는 거대한 산


내가 처음 플라톤의 [국가]라는 책을 접한 것은 고등학교 방학 때였다.

어린 나이에 만난 [국가]라는 거대한 산이었다.

그곳에 인생과 철학이 있었다.

그 후 내가 읽는 철학서와 사상서를 보는 기준은 플라톤의 [국가]가 되었다.

책을 읽을 때마다 이 책은 어떻게 플라톤의 사상과 다른지, 이 책은 어떤 부분이 플라톤의 국가와 비슷한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캄파넬라의 [태양의 나라]라는 책을 읽을 때는 반가웠고,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책을 읽을 때는 불편했다.

나이가 들면서 플라톤의 이상주의가 점점 현실과는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아직까지는 플라톤은 산이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플라톤이라는 거대한 산이 무너지는 것을 보게 되었다.

플라톤 역시 한 명의 인간이었고, 플라톤의 사상은 시대와 플라톤이라는 인간성이 만든 하나의 사상이었다는 것을......



플라톤도 인간이었다.


먼저 이 책은 플라톤의 사상 배경과 그 배경으로 탄생된 [국가]라는 책에 대해서 설명한다.

저자는 플라톤은 당시의 아테네의 정치에 대해 회의를 가지고 있었다고 말한다.

아테네는 페리클레스라는 이상적인 지도자를 통해 민주정치의 전성기를 누렸지만, 그가 죽은 후 정치가들은 백성들의 욕구를 채워주기 위한 선동가에 불가했다.

플라톤은 이런 시대에 철학적인 지식을 가지고 시대와 국가를 이끌 철학적인 정치인의 필요성을 이야기 한다.


플라톤은 소피스트를 사육사에 비유했다. 사육사는 거대하고 힘센 짐승을 다루는 사람이다. 사육사가 짐승을 잘 다룰 수 있는 것은 짐승의 기질과 욕구를 잘 파악하고 잇기 때문이다. 짐승이 어떤 대 난폭하게 되고 어떤 때 유순하게 되는지 그 성질을 아는 사육사는 사나운 짐승을 자신의 뜻대로 잘 부린다는 것이다. 아테네의 청년들에게 연설을 가르치는 소피스트의 지혜는 고작해야 대중의 의견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낟. 또 플라토은 아테네의 정치가를 사육사에 비유하면서 정치인이 대중에 대한 아첨꾼으로 전락하고 말았다고 비판했다. (P56)

결국 플라톤은 자신의 철인 정치의 근거를 세우기 위해 [국가]라는 책을 쓰게 된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영혼에는 이성과 기개와 욕구가 있듯이, 국가 안에서 이성적인 철학자와, 기개가 있는 전사와 욕구를 충족시키는 장인이나 농민이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성이 몸을 통치하듯, 철학자가 국가를 통치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 철학자의 이성은 이데아, 곧 신의 세계로 부터 나오는 것이다.


이런 플라톤의 사상을 가장 잘 나타내 주는 것이 [국가]에 나오는 '동굴의 비유'이다.

저자는 이 동굴의 비유를 감금된 단계, 풀러남의 단계, 동굴에서 지상으로 올라가는 단계, 내려가는 단계의 4단계로 나누어 쉽게 설명한다.

철학적 지식을 깨달은 철학자는 이제 다시금 동굴로 내려가 동굴에 묶여 있는 일반 사람들을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마 이것이 플라톤 자신이 가졌던 사명감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명감에 가장 걸림돌이 되는 대상이 '호메로스'였다.



인간적인 신을 이야기한 호메로스


저자는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에 나오는 신은 인간의 내면의 또 다른 목소리라고 말한다.


호메로스의 신은 인간 위에 군림하는 절대적 지배자가 아니었다. "당신이나 파리스의 잠 시중을 들어라. 나는 그렇게 못 하겠다." 호메로스의 신은 인간의 내면에서 울려나오는 자신의 의지에 반대되는 또 다른 음성이 아닐까? (P126)

저자는 그리스인들은 신을 통해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의 심리와 자연현상, 역사 등을 이해했다고 말한다.


신은 인간의 동반자이다. 신은 인간을 통해 인간사에 개입한다. 인간은 신의 뜻을 통해 인간의 의지로 해결되지 않는 삶의 오묘를 이해한다. 고대인들은 신을 통해 인간 심리의 복잡성을 풀이했으며, 역사의 뒤틀림을 이해했다. (P139)

그러기에 호메로스의 신은 인간적이다.

올림푸스의 신들은 변덕스럽고, 이기적이고, 정욕적이다.

그들은 편을 나누어 사람을 도와 주준다.

자신에게 많은 재물을 바치는 사람을 도와 주고, 자신에게 재물을 바치지 않는 사람을 저주한다.

[일리아드]는 신들이 편을 나누어 인간을 도우며 벌인 전쟁이야기 이고, ]오딧세이]는 신에게 재물을 바치지 않아 20년 동안 방황한 오딧세이의 이야기이다.



플라톤이 호메로스를 싫어했던 이유


절대적인 정의를 추구하고, 그 정의가 신의 존재와 그의 세계로부터 유례했다고 믿는 플라톤에게 변덕스러운 신의 존재를 이야기하는 호메로스의 사상은 어떤 느낌이었을까?

그러기에 플라톤은 그의 저서 [국가]에서 '시인추방론'을 이야기 한다.


저자는 더 나아가 플라톤이 호메로스를 싫어한 이유가 죽음을 보는 차이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호메로스에게 있어서 인간은 필멸의 존재이다.

비록 신화를 통해 죽음을 하데스의 지배를 받는 것처럼 묘사하고 있지만, 호메로스는 죽음을 이생과 분리되는 어둠으로 표현하고 있다.

반면 플라톤에게 있어서 죽음은 신에게도 돌아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 돌아가는 과정이 올바르기 위해서는 이생의 삶도 올바라야 한다.

결국 플라톤에게 있어서 죽음과 신의 존재는 이 땅에서의 도덕적인 삶을 유지하는 근거이다.

그러기에 그 근거를 허무는 호메로스의 이야기와 그리스 신화에 분노하고 배척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저자는 이런 관점이 놀랍다.

이 책을 읽고 인터넷을 통하여 서평들과 평가에 관한 글들을 찾아보았다.

저자의 관점을 동의하는 글과 동의하지 않고 비판하는 글들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의 관점이 맞고, 틀리고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한국인이 자신의 관점으로 서양철학의 뿌리인 플라톤과 그리스 사상을 논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내가 읽은 한국 철학자들의 책은 보통 서양철학자들의 책이나 사상을 번역하거나 주석하는 정도였다.

그것도 대부분 비슷한 시각으로......

서양 사상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주장하는 것을 넘지 않아야 할 선으로 여기고, 그것을 넘지 않기 위해 조심하는 모습들이 보였다.

당연히 학자의 무거움일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는 그 무거움을 넘어 자유롭게 그 사상을 논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저자의 글은 자유롭다.

때로는 인문학 글에서 볼 수 없는 호방함과 자유로움이 느껴진다.

어떤 대목에서는 라톤이 호메로스를 인간적으로 시기해 그를 비판했다고 자유롭게 말을 한다.

아마 플라톤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들으면 무척 불편했을 글이었을 것이다.

또한 호메로스의 이야기의 주인공들의 심리를 마음껏 해석하고 비판한다.

플라톤을 인간으로 보고, 호메로스도 인간으로 본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모두 인간이다.

인간이기에 틀릴 수도 있고, 맞을 수도 있다.

그렇게 보고, 그렇게 해석하는 것이 자유로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유로운 사상을 만날 수 있음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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