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질 무렵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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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정신없이 보내다가 어느덧 창밖을 보면 해가 지고 있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벌써 하루가 갔나?'하는 생각이 든다.

'오늘은 뭐하고 지냈는데 이렇게 빨리 하루가 갔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생사가 걸린 일도 아닌데 왜 그리 집착하며 일했는지 후회스러운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일만 바라보다가 말이나 행동으로 상처 주었던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든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는 저녁무렵에는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한다.

 

아직 중년의 나이기에 인생의 황혼에는 어떤 생각이 드는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하루를 보내고 해가 지고 있을 때의 감정과 조금은 비슷하지 않을까?

인생 역시 하루의 해가 지는 듯한 느낌으로 저무는 것은 아닐까?

 

모두들 거장이라고 부르는 황석영 작가의 신작 [해질 무렵]은 바로 인생의 황혼에 살아 온 세월을 돌이켜 보는 소설이다.

오직 성공이라는 한 목표만을 향해 달려 온 남자가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스스로에게 '나는 왜 여기 서 있나?'라고 묻는 소설이다.

 

 

이 소설은 노년에 접어든 박민아라는 건축가와 스물아홉인 정우희라는 여성의 시각에서 교차하며 이야기를 진행시키고 있다.

 

박민아는 성공한 사업가이자 건축가이다.

그는 경상도 영산이라는 시골 출신이었다.

아버지는 시골 면서기였으나 민원인에게 작은 해택을 받은 대가로 쫓기듯 고향을 떠나 서울의 달동네인 달골에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그곳에서 생선자판부터 시작해 어묵 가게로 생계를 이어간다.

박민아는 그 곳에서 재명이 형이라는 사람을 알게 되고, 그와 그의 동생들과 형제처럼 지낸다.

또 국수집 딸이 차순아를 좋아한다.

그러나 박민아에게 달골이란 어떻게든 벗어나야 할 곳이다.

그는 우리나라 최고대학교로 진학한 후 달골과 점점 멀어진다.

자연스럽게 재명이 형이나 차순아 역시 그의 인생에서 점점 사라져간다.

그리고 그는 주류사회에 편입해 오직 성공을 위해 달려간다.

이 소설에서 박민아가 이야기하는 시점에서 그는 성공한 사업가이며 건축가로서 과거를 회상한다.

 

반면 정우희는 흔희 이야기하는 삼포세대의 전형적인 여성이다.

극단에서 일하며 시나리오를 쓰고 있지만, 그것으로는 전혀 돈이 되지 않는다.

그녀는 반지하에서 살면서 밤새 아르바이트를 하고 낮에는 극단에서 일을 한다.

여러 번 비정규직과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온갖 설움을 경험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김민아라는 남자를 알게 된다.

그는 그런 그녀를 여러 가지로 보살펴 주었다.

그 역시 정우희와 비슷한 처지이면서....

그러던 그가 어느 날 자살을 한다.

 

소설은 사는 방식이나 연령이 전혀 상관이 없을 두 명의 삶이 결국은 연장선에 있음을 이야기 한다.

박민아의 과거의 삶이 정우희의 현재의 삶과 맞닿아 있음을 이야기 한다.

어쩌면 소설은 결국 정우희와 같은 젊은 세대를 벼랑 끝으로 몰고 있는 것이 박민아의 세대임을 이야기 한다.

그렇다고 박민아의 삶이 편했다는 것은 아니다.

그 역시 치열한 삶을 살아왔다.

 

작가는 박민아의 인생을 돌이켜 보며 과연 그가 무엇을 잃었는지를 이야기 한다.

그렇게 정신없이 달려 왔는데 그가 잃은 것은 과연 무엇일까?

 

책을 읽은 후에도 한참을 책에서 손을 땔 수가 없었다.

거장이 주는 그 쓸쓸하고도 황량한 적막감.......

비교적 젊은 세대에 속하는 나조차도 박민아라는 인물을 욕할 수 없었다.

어쩌면 그 역시 자신의 인생을 선택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는 그렇게 밖에 살 수 없었을 것이다.

무언가가 자신을 몰아쳤을 것이다.

그럼에도 선택은 개인의 몫이었기에 그는 그 짐을 스스로 짊어진다.

 

가끔 윗자리에 계신 나이 드신 분들과 대화를 할 때가 있다.

경험을 통해 그 분들과 대화를 할 때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

그 분들의 과거를 업적을 훼손하는 것이다.

그 분들은 자신들이 멋진 삶을 살았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부정하거나 훼손하려는 것을 마치 생명의 위협처럼 느낀다.

나이가 들수록 자신의 삶이 인정받고 싶은 것이 본성인가 보다.

그럼에도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반성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그는 생각하는 사람일 것이다.

이것이 내가 인생의 황혼무렵에 회환과 아쉬움으로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는 작가와 박민아라는 인물에게 존경을 표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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