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님이 리뷰에 달아 놓으신 글을 봤습니다. 브리핑에 대한 압박은 내려 놓으세요. 괜찮아요. 그나저나 할 말이 많아서 페이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저는 님이 말씀하신 그 "평범하고 가난한 소시민들" 땜에 잠을 설칠 뻔 했습니다. "평범하고 가난한"이란 말 속에 님이 말씀하신 연민이 내재하고 있는 것 아닌가 싶은데...어제(12시 넘어서 하니까 오늘인가요?) 시사 투나잇을 불끄고 눈감고 잠들다가 들어서 마을 이름은 정확히 못 들었지만 내용은 시각장애인들이 한 집을 임대해 그 마을에 들어오려 하자 마을 사람들이 큰 돌과 나무로 길에 장애물을 만들어 놓고 마을로 못 들어오게 하는 겁니다. 그들이 무슨 강남 주민도 아니고, 권력기관도 아니고 제가 길가다 잠시 머물렀다면 순박하고 선한 사람들로 여겼을 바로 그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좀 그럴싸한 이유를 대주기를 바랬습니다. 시각장애인들이 오면 조용한 마을이 어지러워진다, 안마사를 해서 마을을 흐려놓을 것이다(실제로 안마사 경력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라는 이유들이었습니다. 차라리 땅값이 내린다든지 하는 이유라도 있었으면 싶지만 이 시골마을에 무슨 땅값 운운 하겠습니까? 마을 사람들은 그 사람들이 병신이라서 싫다고 대놓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물론 그 시각장애인들이 더 많은 돈이나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내쫓겨서 그 마을에 간 것이나 다름없다고 본다면 그 마을은 돈 없고 힘 없는 우리는 장애인들하고 살아야 하나 싶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권력이 별 겁니까? 비장애인이 장애인에 갖는 이런 태도...마을 주민 중 한 분은 나라에서 제대로 하는 게 없다고 하시지만, 또 그 말이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들이 뭐가 다릅니까? 힘없는 사람을 멸시하고, 집에 기르는 개보다 못하게 대접하는 게 말입니다.

그 장애우들은 전세를 이미 낸 상태라 가진 돈도 없는데, 정당하게 임대계약을 마친 상탠데 그 집, 아니 그 마을로 못 들어가고 있습니다. 눈 먼 사람들이니 길에 장애물만 갖도 두어도 그들은 못 들어올텐데 마을 사람들은 밤에 보초까지 선다고 합니다. 누가 눈 먼 사람들인가요? 비장애인이 장애인에게, 일반인이 이반인들에게 가하는 이 폭력적인 태도에 몸서리를 치게 됩니다.

중학교 3학년 때 간질 걸린 친구가 학교에 안 나오자 선생님이 우리 반 성적이 올라가겠다고 하신 말씀을 듣고 나는 저런 어른이 되지 말아야지, 저 이야기를 잊지 말아야지 했던 생각이 납니다. 아픈 그 아이가 안 보이고 성적이 보이듯이 어른이 되면 눈이 그렇게 되어 버릴까봐 무서웠습니다. 마치 그때처럼 내 안에 그런 폭력성이 있을까봐, 혹은 제가 그 마을 안에 살까봐 두려워지기까지 합니다.

장애인들에게 뭐 잘해 주려고 애쓰는 것도 그렇고 그저 우리하고 똑같은 사람이라는 생각만이라도 해 줬으면 싶습니다. 지금이라도 길가다 사고가 나면 우리도 장애인이 되는 것 아닙니까? 가족 중에 한 사람이라도 아프거나 장애가 있는 사람이 있다면 마음이 달라지겠지요. 왜 그전에는 안 될까요? 

생각해보면, 이런 일은 대한민국 어디에서나 일어나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일이고, 그 마을분들이 유별하게 행동하시는 것도 아닌데 기분이 이상해요.  마치 믿었던 이웃이 등을 돌린 그런 기분입니다. 평범하고 가난한 저 소시민들이 권력을 잡았을 때 지금의 권력자보다 더할 수도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친구 어머니가 일부러 그러신 것은 아니었겠지만 가난하다고 저를 무시하셨던 일, 목소리가 굵어서 놀림 당했던 일, 직장에서 내가 담당자라고 해도 남자 직원을 바꾸라고 하는 전화를 받던 일...이런 사소한 일들이 떠오릅니다. 이러한 사소한 놀림과 무시도 아직 잊어버리지 못하고 있는 저를 생각해 봅니다. 들어오지 말라는 고함 소리 속에, 가로막은 돌덩이 앞에 그들과 함께 서 있는 그런 기분이 됩니다. 알고보면 우리도 간혹 길가에 서 있는 시각장애인이 될 때가 있는데 쉽게 잊어 버리나 봅니다.  

아침에 알라딘에 잠깐 들어왔다 님이 말을 건네셨기에 저도 모르게 그 프로를 볼 때의 착찹한 심정이 되살아 나서 나오는 대로 중얼거렸습니다. 이야기를 어떻게 매듭지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말 하다가 갑자기 오늘 하루 잘 보내시라고 이야기하는 것도 어색하고...그저 이야기가 하고 싶어서...점점 뻘쭘해지네요....그럼 인사나 하고 갈께요.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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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14 09: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누아 2005-10-14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숨어계신 님, 정말 그렇죠? 생각이 많아지네요. 그러나 생각들 대신 이런 상황을 타개할 단순한 행위가 우리 안에서 용솟음치기를!!

비로그인 2005-10-14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또 그런 일들이..아니, 또가 아니라 계속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 우리의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평범하고 가난한 우리들이 또 하나의 평범하고 가난한 우리들을 억압하다니요. 그 인식이 무섭고, 그 편견이 끔찍합니다.

어렸을 적, 저희집도 가난했는데 부잣집 옆집 동생이 저와 놀기를 좋아했습니다. 언젠가 그 아이와 토끼에게 풀을 주고 있는데, 그 집 엄마가 쫓아와서 그 아이를 꾸지람하는 걸 봤습니다. 공부도 못하고 집도 가난한 얘랑은 놀지 말라구요..그리구 질질 손을 잡고 갔는데..그런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서도 얼굴만 다를 뿐 어디서나 마주치게 되더군요.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방죽을 흐린다고 수업료를 자주 못내던 제 친구를 담임 선생님은 모욕했습니다. 그 선생님은 끝까지 그 친구의 이름을 헷갈려 하더라구요. 이렇게 말하는 저 자신도 누군가에게 스스로조차 알지 못하는 새, 끔찍한 권력을 휘둘렀을 겁니다. 반성하고, 또 반성합니다..

이누아 2005-10-14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바로 그게 두렵습니다. 스스로도 알지 못한 채 그런 폭력을 휘둘렀을까봐, 휘두르고 있을까봐, 앞으로 그럴까봐... 저도 모르는 사이에 그 마을 안에 살고 있을까봐 두려워집니다. 반성하고 반성합니다.

2005-10-14 10: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5-10-14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이 이누아님이나 복돌이님이 아침부터 반성하고 계신 모습 보니
거시기하네요.
물론 자신도 모르게 지은 죄나 혹시 있을지도 모를 잠재된 성향에까지
미리 눈을 부라리시는 건 알겠는데요.ㅎㅎㅎ
소시민들이라고 뭐 모두 소박하고 다정하고 그러겠어요?
없는 사람이 자기보다 없는 사람에게 가하는 그런 모욕과 멸시는
또 고스란히 누군가에게서 받게 돼 있잖아요.
아무튼 아침부터 뭔가 생각해 보게 하는 글입니다.
두 분 글 잘 읽었습니다.^^

비로그인 2005-10-14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워왔나니..그래두 회개합니다..

이누아 2005-10-14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저는 고등학교 때 1년 반 동안 매주 2회 정도 청각장애우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생각한 것이 바로 사람은 같다는 것입니다. 그들 안에도 사기꾼도 있고, 선한 이도 있고...아, 나는 이 사람들을 사람으로 대해야 겠구나, 장애우라는 이름도 거추장스럽구나 싶은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러니 소시민이라고 다 소박하고 다정한 것이 아니지요. 그런데도 비슷한 아픔을 가졌을 가능성이 많은 사람이라고 무의식중에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복돌님, 저두요!

비로그인 2005-10-14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 이누아님도 혹시 수화를 할 줄 아세요? 거참, 비슷한 시기에 이누아님도 청각장애우들을 만나셨군요. 저도 고딩 2학년 때 청각장애우들을 만나러 다녔었거든요. 근데 제시하신 것처럼 참 우습습니다. 장애우는 뭐고 비장애우는 뭐랍니까. 이 단어 정말 맘에 안 듭니다!! 이 어휘 또한 왠지 사람을 또 다른 뭔가로 분류시켜 놓는 듯 해서 기분이 좋지 않아요.

2005-10-15 0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누아 2005-10-15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수화할 줄 알아요. 근데 시간이 지나서 많이 잊어버렸어요. 길가다 보면 청각장애자라고 쓴 함을 들고 모금을 하는 아주머니가 계시잖아요(대구에만 있나요?) 한번 얘길 해 봤는데 반도 이해 못하겠더라구요. 어쩌면 멀리서 복돌님이 보이면 손짓으로 인사 나눌 수도 있겠네요.^^

비로그인 2005-10-15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하하하..아니, 이런 귀한 인연이 있나요? 그랬었군요. 전 사실 사회복지사나 수화통역사가 되려고 했었어요. 아, 저두 물론 마찬가집니다. 자음과 모음을 조합하는 건 대충 기억이 나는데, 예전에 만났던 그 분들을 만나면 너무 손짓이 빨라 뭐가 뭔지 모르겠더라구요. 그래, '다시'라는 메시지만 되풀이하다 그냥 되돌아서고 맙니다. 흐흐..멀리서 보이면 손짓으로! 그러게요. 핫. 금방 보셨어요? 저, 금방 이누아님께 감사합니다, 손짓을 했답니다.^^

2005-10-15 22: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10-16 09: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누아 2005-10-16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 고맙습니다. 지질께요!!^^

2005-10-17 20: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누아 2005-10-17 2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 님이 바남풍 해도 제가 바람풍이라고 알아 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