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죽어가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에는, 언제나 그가 성취했으며 잘한 것들을 상기하게 하자.

자신의 삶이 건설적이었고 행복했다고 느끼도록 돕자.

그의 좋은 품성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며 그가 잘못한 것에 집중해서는 안 된다.

죽어가는 사람은 흔히 죄책감, 유감, 의기소침 등으로 상처받기 쉽다.

이런 감정을 그가 자유롭게 드러내도록 하고 그에게 귀기울여 그가 하는 말을 받아들이도록 하자.

그와 동시에 적당한 시기에 그에게 자신의 불성을 반드시 상기시키고, 명상 수행을 통해 마음의 본성에서 쉬도록 고취하자.

특히 괴로움과 고통은 그가 본래 지닌 것이 아님을 그에게 분명히 밝혀둔다.

그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희망을 발견하게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이고 민감한 방식을 발견해야 한다.

그가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머물지 않아야 한층 평온한 마음으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    

                                                                                             -[티베트의 지혜], pp.349-350

=============

아래에서 둘째 줄에 있는 희망은 삶에 대한, 혹은 생존에 대한 희망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죽어가는 사람을 간호하는 사람은 "힘내세요", "몸이 좋아질거예요" 같은 말을 하지 못하도록 교육을 받는다. 그들이 죽음을 부정하고, 그것에 분노하는 긴 과정을 거쳐서 겨우 그것을 수용하게 되었는데, 그런 부질없는 희망을 다시 주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의 희망은 아마도 죽음과 죽음 이후의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일 것이다. 죽음이 고통스러운 것만은 아닐 것이라거나 그의 잘못이 모두 용서받을 수 있을 것이라거나  죽음의 순간 신이나 조상이나 성인들이 그를 보호해 주실 거라는 그런 희망일 듯하다.  

죽어가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라...사실, 우리도 모두 죽어가는 사람들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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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10-11 2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권총자살한 친구와 즐겁게 이별하기 위해 흥겹게 악기를 연주하던 친구들이 생각나네요.
전 개인적으로 죽음을 맞이할 때, 가까이 지내는 누군가가 손을 좀 잡아주었으면 좋겠어요.

이누아 2005-10-11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죽은 시인의 사회, 자살...이런 단어를 보자마자 오늘 뉴스가 떠오르네요. 자살한 아이와 교실에서 맞아 죽은 아이 생각...마음이 무거워요...

혹시라도 이웃에 살게 되면(세상일은 모르는 거니까요!), 혹시라도 친하게 지내게 되면, 혹시라도 제가 좀더 살아 있을 만하면...손 잡아 드릴께요. 멀리 있어도 손 잡아 드리러 갈께요. 저 말고도 복교 신도들이 많겠지만...지금 제 맘이 그래요.
 

어느 연로한 남자가 병원 침대에 누워서 벽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는 항상 혼자였다.

그를 방문하는 가족이나 친구도 없었다.

그는 항상 얘기할 사람을 필사적으로 갈망했다.

그녀가 그를 진찰했다.

그의 눈은 눈물로 가득 찼고,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가 듣게 되리라고 기대했던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신이 내 죄를 용서하리라 생각합니까?"

내 친구는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몰랐다..........

그녀는 할말이 없었다.

의사라는 자신의 직업을 그녀는 감추고 싶었다............

고통과 당혹감에 빠진 그녀가 내게 물었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나는 그녀에게 이렇게 답했다.

그의 곁에 앉아 그의 손을 잡고 이야기를 나누겠다. 

만일 우리가 충분한 관심과 자비를 보이면서 그와 더불어 이야기를 나눈다면, 심지어 죽어가는 사람이 아무런 영적인 믿음이 없을지라도 깜짝 놀라울 정도의 영적인 깊이를 보여주는 것에 대해 나는 몇 번이나 깜짝 놀라곤 했다.

누구나 삶의 지혜를 지니고 있다.

그와 함께 이야기를 나눌 때 그 삶의 지혜가 나타나게 된다.

그가 자신의 진리, 즉 그가 이전에 결코 알아차리지 못했던 진리의 풍요로움, 부드러움, 심원함을 발견하도록 도움으로써, 우리가 죽어가는 사람이 자기 자신을 돕게 할 수 있다는 것에 나는 크게 감동을 받곤 했다.

치유와 자각의 근원은 우리 각자 내부 깊은 곳에 있다.

우리가 할 일은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의 믿음을 그에게 강요하지 않는 것이고 그가 자기 자신 안에서 스스로 그것을 발견하도록 돕는 것이다.  

                                                                                                  [티베트의 지혜], pp.346-347

==============

누가 죽어가는 사람인가? 의사가 가망 없다고 하는 사람들...호스피스 병동이라면 침대에 누운 그의 손을 잡고 다정히 얘기해 주고, 그의 분노를 가엾게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확실히 그가 죽을 병이라면 아마도 억지로라도 시간을 내어서 살아 있는 그를 보러 갈 것이다. 그러나 나를 비난하는 저 사람은 숨을 쉬고 있고, 언제 죽을지 모르지만 확실히 살아 있다. 그래서 그의 분노에 함께 분노했는데 다음날 그가 사라졌다면? 그의 손을 잡을 시간도 없었고, 그를 돕는다는 생각도 할 수 없었다면? 죽기 전에 자신을 돌아볼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은 그나마 행운아인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을 용서할 시간과 용서 받을 시간이 주어진다. 왜 죽기 전이어야 할까? 왜 이렇게 건강하고 살아 있을 때는 잘 안 될까?

 

이 책에서 말하듯 "우리가 베풀 수 있는 사랑 가운데, 죽음을 잘 맞이하도록 돕는 것보다 더 거룩한 재능은 없을"지도 모른다. 그때는 우리도 관대해지고, 죽음을 맞이하는 이도 내면을 바라보려고 하기에 각자의 내부를 자각하기에 더할 수 없이 좋은 때이기에. 

 

하지만 회사 다닐 때 내가 좋아했던 주임님은 안락사를 주장했었다. 그분의 아버지가  죽을 병에 걸렸고, 그래서 곧 돌아가실 줄 알았는데 6년을 사셨다. 건강하게가 아니고 곧 죽을 것처럼 아프면서 6년을 사셨다. 그 6년 동안 결혼 적령기였던 그분의 언니와 오빠들은 아무도 결혼을 하지 못했고, 집에는 빚만 남았다고. 그리고 그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끔찍한 기억이었던가 보다. 고통 속에 있는 아버지와 다른 방식으로 그 고통을 나누는 가족들...너무 힘들어서 자신은 그런 병에 걸리면 안락사를 시켜 달라고 자신의 남편에게 이야기 해 두었다고 한다. 긴 병에 효자가 없다고 했던가...간혹 텔레비전에 나오는 효자와 효녀가 있지만...

 

그저 언제 죽을지 모르는 나와 이웃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이다. 결국 죽을 운명에 처해 있으면서도 아직 시간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이, 어느새 한 사람이 사라져 있다. 내가 손을 잡고 위로할 시간도 없이 그렇게 사라졌다. 그날 그렇게 사라질지는 몰랐기 때문이다. 더 살아 있을 거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렇게 사라질 줄 알았는데도 내가 언니에게 화를 낼 수 있었을까? 언니에게 충분한 관심과 자비를 가지지 못한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사라지기 전에 그런 것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살아 있을 때, 언니가 좀더 살아갈 수 있을 때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 가슴이 아프다. 살아 있는 것은 얼마나 중하냐? 그런데도 죽을 때가 되어서야, 심지어 죽어서야 관심과 자비를 가지는가? 만약 언니가 살아있고, 주임님의 아버지처럼 죽을 것 같은 고통 속에서, 곧 죽을 것처럼 6년을 더 살았다면 언니는, 나는 어땠을까? 이런 가정을 하기 전에 조금이라도 덜 아플 때 관심과 사랑을 표현하지 못한 것이 가슴이 아프다. 난 늘 생각하고 있었는데...언니는 몰랐을 것이다. 내가 언니를 위해 기도하고, 언니를 위해 울었던 시간에 대해 언니에게 한 번도 말하지 못했는데...손을 잡고 얘기해 줄 걸 그랬다.

 

아무래도 이 책을 읽으니 언니 생각이 많이 난다. 글을 쓰기 전까진 괜찮았는데 이제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되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시작할 때 할말이 따로 있었는데.. 이게 아니었는데...휴...다른 말을 하려고 해도 나는 이 말을 하고 싶었나 보다. 그러니 가만히 두자. 이렇게 말하고 싶은 나를...

 

아침과 저녁에, 또 밥을 먹기 전마다 언니를 위해 기도한다. 불보살들께서 지혜와 자비로 올바른 곳으로 이끌어주시고, 보살펴 달라고.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해서도 기도한다. 그리고 약간의 수행의 공덕이라도 있다면 불보살님들과 같은 단계를 증득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그래서 나도 그들처럼 지혜와 자비로 나 자신과 이웃을 이끌고 보살필 수 있도록 말이다. 항상 혼자 벽을 응시하는 저 남자처럼 우리는 가끔 그렇게 누워 있다. 나는 저 의사처럼 아무 말도 않고 지나치고 있다.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 이제는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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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09-24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언니분은 다 아실꺼예요... 말 안해도 언니들은 다 안답니다. 그러니 언니를 위해 더 행복한 모습 보여주세요...

big_tree73 2005-09-24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썼다가 지우고 썼다가 지웠는데 그래도 무언가를 쓰고 싶어서, 그냥 지나치고 싶지 않아서 지금 쓴 건 지우지 않을란다.
손을 잡을 수 있다면 말을 하지 않아도 좋을텐데...

비로그인 2005-09-25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앞으로 더 잘 할게요..ㅠ,,ㅠ

혜덕화 2005-09-26 0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동생이 아프고 난뒤 더 동생을 생각하는 것, 그 아이의 아픔을 진정으로 아파하기보다는, 나 같으면 이런 정신력으로 이겨낼텐데 했던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나이드신 부모님께도, 건강하실때 자주 사랑을 표현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고맙습니다.

2005-09-26 18: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누아 2005-09-26 1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 예, 우리 모두 행복해야죠.

나무야, 내 손은 아직 안 잡아도 돼. 길을 걷다 울고, 이야기를 하다 목이 메이는 걸 난 당연하게 생각해. 특별한 일이 아니야. 너라도 마찬가지일거야. 몇 년이 흐르면 울지 않고 언니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될거야. 우리 아버지 이야기처럼.

복돌님, 혜덕화님, 손을 잡아야 한다면, 잡고 싶으시다면, 잡아야 할 것 같은 사람이 있다면 지금 잡으시길 바래요. 곁에 앉아서 나지막하게 이야기 하시길...이제 저도 두 어머님께 그렇게 해야 겠지요.

속삭이신 님, 정식으로 문화나 시에 대해 공부한 적이 없어서 포스트모더니즘 같은 이런 단어는 제게서 좀 멀어요. 어쨌든 꿈보다 해몽이라고 해석이 멋집니다. 그리고 님이 보내신 글, 기대됩니다.
 

일단 정견을 얻으면, 마음을 윤회로 이끄는 온갖 미혹이 떠오를지라도 당신은 하늘처럼 요지부동할 것이다.

하늘은 무지개가 나타난다고 특별히 우쭐거리지도 않으며, 구름이 나타난다고 특별히 실망하지도 않는다.

깊은 충족감으로 가득할 뿐이다.

윤회와 열반의 허울을 보게 될지라도 당신은 그저 속으로 빙그레 웃을 뿐이다.

정견이 정립되면 당신은 항상 흥겹고 내면의 작은 미소가 끊이지 않게 된다.

                                                                                                                     [티베트의 지혜], p.278

==============

사람이 이럴 수 있을까? 정말 정견이라는 걸 얻으면 미소가 끊이지 않을까? 외부의 고통과 고통받는 이에 대한 연민 속에서도 충족감으로 가득할 수 있을까? 아마 양립할 수 있는 어떤 단계가 있긴 있겠지? 이런 말을 하는 걸 보니 오늘은 가르침과 좀 멀어져 있나 보다.

언젠가 서당 선생님께서 한의사들과 이야기를 하셨다고.  그때 그 한의사 제자들이 모두들 몇 억 짜리 빌딩 이야기를 하더라고. 그래서 선생님께선 실현가능성도 없는 그런 얘기를 왜 하고 있냐고 이상하게 생각하셨다고. 그래서 내가 대답했다. 선생님, 아니에요. 선생님이 매일 도,도, 도통 이런 이야기를 하시면 아마 그분들이 선생님처럼 생각했을 거예요. 선생님은 실현 가능성도 없는 얘기를 하신다고. 그 사람들은 몇 억 짜리 빌딩이 당장은 아니라도 실현 가능성이 있어서 하는 말이에요. 선생님은 상상이 안 되시죠? 몇 억짜리 빌딩 말이에요. 그분들도 상상이 안 되는 거예요. 도나 깨달음 같은 상태가요. 그랬더니 선생님이 정말이가? 하셨다.

나는 특별히 우쭐거리는 건 모르겠지만 특별히 실망을 한다. 안 하려고 하는데도 저절로 그렇게 된다. 집착하지 않고, 기대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왜 그런 걸까? 나의 견해가 집착에 흠집만 나지 않는다면 정견을 갖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하고, 어려운 일이겠는가? 그런데도 왜 이렇게 간단한 일이 내게는 쉽게, 당장 일어나지 않고 태풍이 오고, 나무가 쓰러지고, 심하면 지붕까지 날아가는가 말이다. 다시 소갈 린포체의 말을 떠올린다.

"명상의 고요한 즐거움과 드넓은 초연함을 어떻게 해야 일상 생활에 스며들게 할 수 있을까? 규칙적인 수행 이외에 어떤 대안도 없다."

 "영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린다"

그래, 몇 억 짜리 빌딩에 목숨 거는 것보다 흥겹고 작은 미소에 목숨을 걸자, 내게는 그게 더 빠르고 실현 가능성이 있다. 왜냐하면 그게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거니까! 아자 아자 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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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발~* 2005-09-19 1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목숨까지야... 하지만 이누아님은 늘 미소를 머금고계실듯.^^ 추석 잘 보내셨나요?

이누아 2005-09-19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괴로운 추석 덕에 저런 이야기들을 하게 되었어요. 그래도 정말 감사한 건 부정적이고 괴로운 마음이 하루를 넘기지 않고 오늘 또 멀쩡하다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은 미소를 머금고 있어요. 그리고 전 살아 있는 자체가 목숨을 건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길을 걷다가도, 숨을 쉬다가도 사람들은 사라져요. 목숨을 걸었다고 생각하든 말든 이미 목숨을 걸어놓고 살고 있는 것이지요. 어차피 그렇다면 능동적으로 목숨 걸고 원하는 걸 해야죠. 목숨 걸고 평온을 찾는다는 표현이 우스꽝스럽지만 늪에 빠져 있는 사람은 일단 나와야 하거든요. 비발님의 방명록을 보니 비발님도 엄청 일하셨던 것 같던데, 괜찮으세요?

비로그인 2005-09-19 1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건 자신 있어요. 하늘 보고 미소짓기! 대신에 사람 보고 찌푸리기! 흐흐..이누아님께서 그리 말씀하시면 이제 걸음마를 떼는 저는 어떡하라구요..히잉~

비로그인 2005-09-19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튕겨났다!!

이누아 2005-09-19 1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튕겨나는 게 뭐죠? 그나저나 추석 잘 보내셨어요? 아, 지금 컴퓨터 앞에 계시군요. 오랜만에 보는 듯 아주 반갑네요.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말도 있으니 이제부터 사람보고 찌푸릴 일 있으면 음~저 사람도 하늘이지 하면서 웃으세요. 복돌님의 포스터를 보세요. 맨날 웃고 있잖아요. 저도 하늘로 변신중입니다. 미소를 보내 주세요.

비로그인 2005-09-19 1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ㅡㅡㅡㅡㅡㅡㅡㅡ^ 어떻습니꽈, 이누아님! 저두 반가워요! 움훼훼훼*^^*

이누아 2005-09-19 1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청 길고 큰 미소 고맙습니다, 복돌님. 늘 복 많이 받으세요. 설날은 아니지만 설날에만 복 받으라는 법이 있나요? 자요, 복! 복! 복! 한가위 복이에요.

big_tree73 2005-09-20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고했구나. 한 줄 쓰고 눈을 막 비볐더니 콘택트 렌즈가 빠져 버렸다. 지금 한 쪽 눈을 감고 있어. ㅎㅎ
.
.
플라스틱 빼내고 다시 왔다.
갔다왔더니 뭐라고 쓸랬는지 까먹었다. 그래도 내가 무슨 말이 하고 싶은지 너는 알겠지. ^^
하늘 보고 벙긋, 너를 보고 벙긋...
목숨 걸고 벙긋~ ^^

이누아 2005-09-20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혜덕화 2005-09-20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똑같이 사람 몸 받았다고 다 같은 사람이 아님을 느낍니다. 차원이라고 할 수도 있고 쓰고 있는 마음의 안경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누군가에게 실현 가능한 일이 누군가에게는 구름 잡는 소리처럼 들리는 것도 그래서이겠지요. 이 책에 그런 말이 자주 나오죠. 내 종교와 믿음을 강요하지 말라고. 그래서 저도, 말이 안통하는 사람을 보면 그저, 저 사람과 나는 사는 차원이 다르구나-높고 낮음이 아닌 그저 다른- 하고 생각하고 맙니다.
 

 

설령 내 견해가 하늘처럼 드넓을지라도

내가 행동할 때에 아주 공들여 인과를 존중하노라.

                                                                                            [티베트의 지혜], p.276

 

===========

파드마삼바바의 말씀이다. 주역 건괘 3효의 효사가 생각난다. 군자종일근근이라...이미 군자요, 대인인 존재가 종일토록 힘쓰고 힘쓰기를 저녁까지 해도 여전히 위태로우나 허물은 없다. 겨우 허물 없는 정도라고? 이미 군자인 이가, 이미 견해가 하늘처럼 드넓은 이가 이렇게 행위하는데, 초심자의 태도가 어떠해야 할지 너무도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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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09-17 0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대방에게 말 한마디 잘못한 듯한 생각이 들어 왼종일 전전긍긍하고 있었는데, 아니나다를까, 이누아님의 한마디 말씀이 가슴을 칩니다. 이궁..발을 찧고 싶을 뿐.

이누아 2005-09-19 1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시 좀 편한 상대면 가능하면 빨리 사과하세요. 작은 메모나 편지도 괜찮구요. 빠르면 빠를수록 좋죠. 그럴만한 성격의 것이 아니라면 마음으로 세 번만 그 사람의 평안을 빌어주세요. 나 편하자고 하는 일일지라도 그 사람에게 좋은 기운과 유익함이 전해진다는 걸 믿으세요.

전 이번 추석엔 좀 안 좋았어요. 명절에 이런 적이 한번도 없었는데 마음이 불편하고, 우울했어요. 사람이나 상황과의 관계를 조화롭게 하지 못할 때는 제 속좁고, 어리석음에 대해 더 절실히 알게 되고, 벗어나고 싶어져요. 그래도 달은 정말 컸어요. 보셨어요? 달!
 

자기 자신의 온갖 의심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너무 서둘러서는 안 된다.

스승들이 말하듯 "천천히 서두르자".

나는 언제나 제자들에게 가당치 않은 기대를 하지 말라고 말한다.

영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일본어를 유창하게 하거나 의사가 되려면 몇 년은 걸리는 법이다.

단 몇 주 수행을 닦았다고 해서 깨닫기는 커녕 대답조차 제대로 할 수 있겠는가?

영적인 여행은 지속적인 배움과 정화의 과정이다.

당신이 이를 알게 된다면 좀더 겸손해지리라.

"이해를 깨달음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깨달음을 해탈이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티베트의 유명한 속담이 있다.

또 밀라레파는 이렇게 말했다.

 "깨달음에 대한 기대를 마음에 품지 말고 일생 동안 수행에 정진하라."

내가 티베트의 전통에서 높이 평가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철두철미하고 진지한 수행의 정진과 위대한 깨달음에는 가장 끈질긴 인내심과 장구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날카로운 분별력이다.

                                                                                                       [티베트의 지혜], pp.216-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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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ika 2005-09-15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늘 조급해하며 사는 제게 좋은 말이네요..

이누아 2005-09-15 1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외국어를 공부하는 것처럼 마음을 맑히는 데도 시간과 노력, 투자가 필요하다는 말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big_tree73 2005-09-16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티베트엔 "이해를 깨달음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깨달음을 해탈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라는 속담이 있다고? 햐~ 어떤 나라에 깨달음에 관한 속.담.이 있었나 싶어 감동. 티베트사람들, 되게 세련이다~ ^^

이누아 2005-09-16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큰나무. 오랜만의 통화였는데...수다 더 떨고 싶었는데 아쉽다. 한국인이 곁에 없다니 좀 안타깝다. 정서의 문제인지 결국 한국인과 진솔한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더라구. 여기, 저, 한국인 하느님 계십니까? 하고 한인교회를 방문해 보는 것도 어떤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그러고보니 너는 크리스찬이잖아? ^^ 잘 지내라. 한국에 있는 한국인인 내가 우선 자주 연락하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