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요리법
마티유 리카르 지음, 백선희 옮김 / 현대문학 / 2004년 8월

 

본능적으로 우리는 긁음으로써 가려움증을 가라앉히려고 든다. 그러면 물론 당장은 기분 좋지만 가려움은 금세 다시 찾아오고, 전보다 한층 더 참기 힘들어 결국엔 피가 날 때까지 긁게 된다. 완화와 치유를 혼동한 것이다. 우리가 집요하고도 강렬한 욕구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긁지 않기로 마음먹는 것은 긁는 것이 '나쁘기' 때문이 아니다. 긁어서 결국 생살이 드러나는 것이 고통스러운 일이요, 가려움증의 불이 절로 가라앉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그 고통을 멈추게 하는 길임을 경험을 통해 아는 까닭이다. 따라서 필요한 건 불건전한 억압도, 도덕이나 관습도 아니다. 고통을 일시적으로 완화시키려 하다가 고통이 계속 이어지는 것보다는 지속적인 행복이 낫다고 판단하는 지혜로운 행동이 관건이다. 분석과 양식에 토대를 둔 실용적 행동이 관건인 것이다. 2세기 인도의 불교철학자 나가르주나는 이 과정을 이렇게 요약한다.

"가려울 때 긁는 건 참으로 기분좋은 일이다. 하지만 더 이상 가렵지 않게 된다면 얼마나 행복한가. 우리의 욕망들을 만족시키는 건 참으로 기분 좋은 일이다. 하지만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면 얼마나 행복한가." 이런 자유를 얻는 데 주된 장애물은 노력이 요구되는 어떤 형태의 내적 변화도 거부하려는 마음이다.                 -p.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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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禪]  순류스즈끼 저 / 불일출판사 / 1995-10-21

 

초심자를 위한 선수행에 관한 책이다. 서양인 수행자를 염두에 둔 책이기도 하다. 바르게 이해하고, 바르게 정진할 것을 권한다. 모든 내용에 다 공감하지는 않지만 이런 책들은 언제나 나태한 나를 꾸짖는다. 어쨌든 책은 이렇게 읽혀졌다.

(바른 자세와 같은) "이들 형식들을 올바른 마음 상태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지 말라. 이같은 자세를 취하는 것, 그 자체가 마음의 올바른 상태를 이미 가진 것이다. 어떤 특별한 마음의 상태를 얻으려고 할 필요가 없음을 알아두라".

처음 마음을 발하는 그 마음이 바로 바른 깨달음이라는 말이 있다. 이 책의 시작은 바르게 앉는 것, 선수행을 하려고 앉아 있는 그 자체가 이미 다다른 자리라고 말한다. 이런 말은 내게 힘이 된다. 우선 앉으라고?!

"마음 속에 잡초가 있더라도 차라리 고맙게 여기라. 마침내 그것들은 수행을 풍요롭게 해 줄 것이므로" 

앉았더니 마음 속에 파문이 인다. 이런 생각 저런 생각, 그만두고 싶은 생각...잡초들이 일어난다. 그랬더니 잡초가 있어도 괜찮단다. 마음 속의 잡초가 변하여 정신적인 거름으로 바뀌는 것과 같은 경험을 할 수 있으리라. 그때 수행은 놀라운 진전을 갖게 된다. 그러니 염려말고 앉자.

"이 단순한 수행을 매일같이 해나가면 어떤 굉장한 힘을 얻게 된다. 그것을 얻기 전엔 굉장한 무엇 같지만 일단 얻고 보면 별것이 아니다."

앉기는 앉되 매일같이 일편단심으로, 반복해서 앉으라고 말한다. 그러나 굉장한 무엇은 쉽사리 얻어지지가 않는다. 실망스럽다.

"공부에 진전이 없어 실망하는 것은 수행에 욕심을 부린 탓이다. 그러므로 수행에 약점을 보여주는 징조나 경고신호가 올 때에는 고맙게 느껴야 한다."

그러면 일단 앉자. 망상이 일어도, 진전이 없어 보여도 실망하지 말고 반복해서 앉자. 그렇게 앉으면 되는 것이 아닌가?

"그대가 깨달음을 얻고자 노력한다면 업을 짓고 업에 끌려가는 결과만 만드는 셈이다. 그리고 좌복(방석) 위에서 시간만 낭비하고 있는 셈이다."

아, 어딘가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앉는 것은 시간낭비라는 말이다.  제일 처음 말한 그 내용이다. 좌선은 수단이 아니라 좌선이라는 수행 속에 이미 깨달음이 내재하고 있다. 그래서 스쯔기는 깨달음보다 우리의 원래 성품에 대한 강한 확신과 수행에 대해 가지는 성실성을 강조하고 있다. 부처와 같이 수행하기!

"불교가 정말 무엇인지를 모른 채, 철학으로써 혹은 교훈으로써 얼마나 완벽한가 만을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신성모독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끝끝내 이 책은 수행하라고, 매일 하라고 말한다. 이 책을 읽어서 이해만 하지 말고, 교훈만 얻지 말고 경험하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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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발~* 2005-01-29 0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누아님, 오랜만입니다. 가장 실행하기 어려운 이야기로군요.^^

2005-01-29 16: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누아 2005-02-02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발님, 요즘 일이 있어 컴퓨터 앞에 잘 앉지 못합니다. 저도 실행하기 어려워서(주로 시간을 핑계로) 눈 뜨고, 감을 때만이라도 실천하려고 애씁니다. 너무 짧고 사소한 수행이지만.
로드무비님, 님 덕에 오타를 발견했습니다. 왜 제 눈에는 안 띄었을까요? 감사합니다.
 

우리는 오늘부터 남의 선한 일을 보면

성취하거나 성취하지 못하거나 오래하거나 오래하지 못하거나를 막론하고 기뻐할지니라.

가령 일념이나, 잠깐이나, 일시나, 일각이나, 일월이나, 반년이나, 일년만 하더라도

벌써 선을 짓지 않는 이보다는 휼륭하느니라.

그러므로 법화경에 말하기를

"만일 어떤 사람이 탑 속에 들어가서 산란한 마음으로라도 한번 '나무불'하고 외우기만 해도

모두 불도를 이루리라"하였거늘

하물며 어떤 이가 이러한 큰 마음을 세우고 복과 선을 부지런히 닦는 것을 보고

따라 기뻐하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그러면 성현들이 슬프게 생각하시느니라.

 

저희들이 생각컨대 무시이래로 나고 죽으면서 오늘에 이르도록

이미 한량없는 나쁜 마음으로 남의 선한 일을 방해하였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만일 그런 일이 없었으면 어찌하여 오늘날까지 모든 선한 일을 망서리기만 하고,

선정을 익히지 아니하고 지혜를 닦지 아니하며,

잠깐동안 예배하고는 큰 고생을 하였다 하고,

잠깐동안 경을 읽고는 문득 게으른 생각을 내며,

종일토록 분주히 악업을 일으켜 이 몸으로 하여금 해탈을 얻지 못하게 하리요.

마치 누에가 고치를 짓듯이 자승자박하고,

나비가 불에 들어가듯이 밤새도록 타게 되나니,

이런 업장이 무량무변하여 보리심을 장애하고, 보리의 원을 장애하고, 보리행을 장애하는 것이

모두 악한 마음으로 남의 선한 행을 비방한 탓입니다.

이제서야 비로소 깨닫고 부끄러운 마음을 내어 머리를 조아리고 어여삐 여기심을 원하여

이런 죄를 참회하나니...

                                                                                     -자비도량참법 제1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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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정 스님이 편역하신 [산사에서 부치는 편지]를 읽었다. 전-에 읽은 글인데 다시 읽었다.

편지란 것이 개인과 개인이 주고받은 것이라 무슨 일기를 훔쳐보는 양 설레는 것이기도 하지만 같은 이유로 마음과 마음이 이어지는 무엇을 알아채지 못한다면 답답하기만 한 글이 된다.

처음 이 글을 읽었을 때가 그랬다. 스님들의 화두가 편지에 오르내리는데 도무지 무슨 소리인지 가슴만 답답했었다.

오늘 읽으니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머리로 화두를 이해하려고 하니 가슴이 답답했던 게다. 화두는 두고라도 서로의 안부를 묻는 절절함이 오히려 부럽다. 그러나 고봉과 퇴계의 편지를 묶은 책을 읽을 때와는 사뭇 다르다. 그들의 문장이 길고, 자세한 데 반해 스님들의 글은 차라리 시에 가깝다. 그렇게 편지를 쓰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겠으나 솔직해지려고만 한다면야 글의 모양이 무슨 소용이랴.

요즘 들어 손으로 편지를 쓰고 싶다. 삐딱한 글자를 그려가며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전화나 인터넷 같은 편리한 도구와 나의 게으름이 계합되어 글은 내려가지 않는다. 사실 그리 할 말도 없지만 너무 쉽게 내뱉는 말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까? 먼 길 달려가 뒤늦게 읽혀질 편지가 부럽다. 굳이 산사에서 보내지 않더라도, 이 스님들처럼 붓으로 초서로 쓰지 않더라도 짧은 글, 사랑을 담아 쓰고 싶어진다.

선사들의 이야기는 선사들의 이야기! 큰스님들의 화두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힘쓰신 명정 스님의 노력 또한 스님의 노력! 나는 내 화두도 아득하여 스님들의 화두가 들리지도 않는다. 모든 화두가 내가 잡은 화두로 보인다. 내가 좀더 겸손하고, 쉬임없이 정진하여 스님들과 같은 도반을 두고 의문에 대한 질문과 깨달음의 웃음소리 서로 전하고 싶다.

===================

금강산 빛은 예와 다름없이 푸르니 맑은 바람 언제나 불어오네, 악!

대개 수행자들이 생각해야 할 것은

욕심을 가지지 말고 깨닫기를 기다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만을 헤아려서 판단하지 마십시오.

더욱이 공사(公私)간에 시비를 간섭하지 말고

앉으나 서나 끊임없이 또렷한 일념으로 삶의 화두를 생각하십시오.

한 번 끊어지면 영원히 이을 수 없는 길이 또한 마음의 길이니.

                                                            -경봉 스님이 월곡 스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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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9-29 20: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임은 저, 문재곤 역, 예문서원, 1999

 

하루종일 이 책을 읽었다.

신랑의 대규모 치과치료는 아직 끝나지 않아서 오늘은 일도 쉬고, 치과에 자리를 잡았다. 사실 신랑 혼자 와도 되지만 처음 수술할 때 문제가 생겨 고생한 후로는 이렇게 하루 날을 잡으라는 날은 집에 있어도 걱정이 되어서 치과에 오는 것이 편하다. 치과에서 할 일도 없겠다 싶어 오래 전에 사두고 읽지 않은 책을 가져 왔다.

이 책의 원제는 [유가문화와 중의학]이다. 제목에서 보이듯 너무 범위가 넓어서 오히려 지리하다. 하루만에 이 책을 다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유학에 대한 관심과 치과에서 신랑을 기다리는 지리한 시간 덕분이었다. 어쩌면 한의학 전공자는 좀 재미있을지도 모르겠다. 특히 명문이나 상화, 군화의 개념에 대한 논쟁이 있었고, 그런 개념이 "확실한" 결론에 이르지도 못했다는 점과 그런 개념들이 중국철학과 긴밀한 관계를 갖는다는 점 등은 흥미롭다. 한의학의 용어에 대해서라도 좀 익숙했다면 훨씬 나았으리라.

그래도 요며칠 피곤이 오래여서 그런지 "지혜로운 사람과 어진 사람이 장수하는 공통점을 몸을 움직임에 절도가 있고 행위는 명분을 따라 하며, 즐거워하고 노여워함이 때에 맞아 그 성품을 해치지 않기 때문"이라는 공자의 말이 눈에 띈다. 대인은 병이 없다고 하지 않는가...

이렇게 유학자들의 말이 눈에 들어오는 것은 이 책이 개설적인 책이어서 한의학 내용이 기억에 남기는 어렵고, 그래도 언젠가 뒤적거려 보았던 중국유학이 더 친근하게 다가오는 까닭일 것이다.

나는 늘 "피로"에 직면해 있는 터라 이런 이론적인 내용과 유의(유학자이면서 의사)열전을 읽으면서 그들처럼 나도 내가 겪는 곤란을 어떻게든 스스로 해소해 보고픈 열망이 잠시 일기도 했다. 이 점이 이 책에서 얻은 가장 큰 성과일 수도 있다. 적어도 건강해져야 겠다고 결심하게 만든다. 주희도 다소 약한 몸이었지만 마음을 다스리고 생활을 잘 조절해서 건강하게 지냈다고 한다. 그리고 어려서부터 병약했던 사람들이 자라서 건강하게 되기도 한다. 나도 그런 사람 중에 하나가  되야지!   

신랑의 치료는 오전에 9시 반에 시작해서 오후 1시 반 경에 끝났고, 다시 7시부터 시작되었다. 지금은 치과다. 그리고 이제 막 이 책을 다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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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ika 2004-08-27 0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과 치료를 4시간동안 받으시다니, 책이 없었다면 기다리기 정말 힘드셨겠네요...치과치료는 받는것도 힘들지만, 들어가는돈도 만만치 않아서 정말 무서워요...저도 사랑니 뽑아야할게 하나 남아있어서 걱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