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연로한 남자가 병원 침대에 누워서 벽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는 항상 혼자였다.

그를 방문하는 가족이나 친구도 없었다.

그는 항상 얘기할 사람을 필사적으로 갈망했다.

그녀가 그를 진찰했다.

그의 눈은 눈물로 가득 찼고,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가 듣게 되리라고 기대했던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신이 내 죄를 용서하리라 생각합니까?"

내 친구는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몰랐다..........

그녀는 할말이 없었다.

의사라는 자신의 직업을 그녀는 감추고 싶었다............

고통과 당혹감에 빠진 그녀가 내게 물었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나는 그녀에게 이렇게 답했다.

그의 곁에 앉아 그의 손을 잡고 이야기를 나누겠다. 

만일 우리가 충분한 관심과 자비를 보이면서 그와 더불어 이야기를 나눈다면, 심지어 죽어가는 사람이 아무런 영적인 믿음이 없을지라도 깜짝 놀라울 정도의 영적인 깊이를 보여주는 것에 대해 나는 몇 번이나 깜짝 놀라곤 했다.

누구나 삶의 지혜를 지니고 있다.

그와 함께 이야기를 나눌 때 그 삶의 지혜가 나타나게 된다.

그가 자신의 진리, 즉 그가 이전에 결코 알아차리지 못했던 진리의 풍요로움, 부드러움, 심원함을 발견하도록 도움으로써, 우리가 죽어가는 사람이 자기 자신을 돕게 할 수 있다는 것에 나는 크게 감동을 받곤 했다.

치유와 자각의 근원은 우리 각자 내부 깊은 곳에 있다.

우리가 할 일은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의 믿음을 그에게 강요하지 않는 것이고 그가 자기 자신 안에서 스스로 그것을 발견하도록 돕는 것이다.  

                                                                                                  [티베트의 지혜], pp.346-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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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죽어가는 사람인가? 의사가 가망 없다고 하는 사람들...호스피스 병동이라면 침대에 누운 그의 손을 잡고 다정히 얘기해 주고, 그의 분노를 가엾게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확실히 그가 죽을 병이라면 아마도 억지로라도 시간을 내어서 살아 있는 그를 보러 갈 것이다. 그러나 나를 비난하는 저 사람은 숨을 쉬고 있고, 언제 죽을지 모르지만 확실히 살아 있다. 그래서 그의 분노에 함께 분노했는데 다음날 그가 사라졌다면? 그의 손을 잡을 시간도 없었고, 그를 돕는다는 생각도 할 수 없었다면? 죽기 전에 자신을 돌아볼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은 그나마 행운아인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을 용서할 시간과 용서 받을 시간이 주어진다. 왜 죽기 전이어야 할까? 왜 이렇게 건강하고 살아 있을 때는 잘 안 될까?

 

이 책에서 말하듯 "우리가 베풀 수 있는 사랑 가운데, 죽음을 잘 맞이하도록 돕는 것보다 더 거룩한 재능은 없을"지도 모른다. 그때는 우리도 관대해지고, 죽음을 맞이하는 이도 내면을 바라보려고 하기에 각자의 내부를 자각하기에 더할 수 없이 좋은 때이기에. 

 

하지만 회사 다닐 때 내가 좋아했던 주임님은 안락사를 주장했었다. 그분의 아버지가  죽을 병에 걸렸고, 그래서 곧 돌아가실 줄 알았는데 6년을 사셨다. 건강하게가 아니고 곧 죽을 것처럼 아프면서 6년을 사셨다. 그 6년 동안 결혼 적령기였던 그분의 언니와 오빠들은 아무도 결혼을 하지 못했고, 집에는 빚만 남았다고. 그리고 그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끔찍한 기억이었던가 보다. 고통 속에 있는 아버지와 다른 방식으로 그 고통을 나누는 가족들...너무 힘들어서 자신은 그런 병에 걸리면 안락사를 시켜 달라고 자신의 남편에게 이야기 해 두었다고 한다. 긴 병에 효자가 없다고 했던가...간혹 텔레비전에 나오는 효자와 효녀가 있지만...

 

그저 언제 죽을지 모르는 나와 이웃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이다. 결국 죽을 운명에 처해 있으면서도 아직 시간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이, 어느새 한 사람이 사라져 있다. 내가 손을 잡고 위로할 시간도 없이 그렇게 사라졌다. 그날 그렇게 사라질지는 몰랐기 때문이다. 더 살아 있을 거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렇게 사라질 줄 알았는데도 내가 언니에게 화를 낼 수 있었을까? 언니에게 충분한 관심과 자비를 가지지 못한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사라지기 전에 그런 것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살아 있을 때, 언니가 좀더 살아갈 수 있을 때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 가슴이 아프다. 살아 있는 것은 얼마나 중하냐? 그런데도 죽을 때가 되어서야, 심지어 죽어서야 관심과 자비를 가지는가? 만약 언니가 살아있고, 주임님의 아버지처럼 죽을 것 같은 고통 속에서, 곧 죽을 것처럼 6년을 더 살았다면 언니는, 나는 어땠을까? 이런 가정을 하기 전에 조금이라도 덜 아플 때 관심과 사랑을 표현하지 못한 것이 가슴이 아프다. 난 늘 생각하고 있었는데...언니는 몰랐을 것이다. 내가 언니를 위해 기도하고, 언니를 위해 울었던 시간에 대해 언니에게 한 번도 말하지 못했는데...손을 잡고 얘기해 줄 걸 그랬다.

 

아무래도 이 책을 읽으니 언니 생각이 많이 난다. 글을 쓰기 전까진 괜찮았는데 이제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되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시작할 때 할말이 따로 있었는데.. 이게 아니었는데...휴...다른 말을 하려고 해도 나는 이 말을 하고 싶었나 보다. 그러니 가만히 두자. 이렇게 말하고 싶은 나를...

 

아침과 저녁에, 또 밥을 먹기 전마다 언니를 위해 기도한다. 불보살들께서 지혜와 자비로 올바른 곳으로 이끌어주시고, 보살펴 달라고.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해서도 기도한다. 그리고 약간의 수행의 공덕이라도 있다면 불보살님들과 같은 단계를 증득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그래서 나도 그들처럼 지혜와 자비로 나 자신과 이웃을 이끌고 보살필 수 있도록 말이다. 항상 혼자 벽을 응시하는 저 남자처럼 우리는 가끔 그렇게 누워 있다. 나는 저 의사처럼 아무 말도 않고 지나치고 있다.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 이제는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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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09-24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언니분은 다 아실꺼예요... 말 안해도 언니들은 다 안답니다. 그러니 언니를 위해 더 행복한 모습 보여주세요...

big_tree73 2005-09-24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썼다가 지우고 썼다가 지웠는데 그래도 무언가를 쓰고 싶어서, 그냥 지나치고 싶지 않아서 지금 쓴 건 지우지 않을란다.
손을 잡을 수 있다면 말을 하지 않아도 좋을텐데...

비로그인 2005-09-25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앞으로 더 잘 할게요..ㅠ,,ㅠ

혜덕화 2005-09-26 0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동생이 아프고 난뒤 더 동생을 생각하는 것, 그 아이의 아픔을 진정으로 아파하기보다는, 나 같으면 이런 정신력으로 이겨낼텐데 했던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나이드신 부모님께도, 건강하실때 자주 사랑을 표현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고맙습니다.

2005-09-26 18: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누아 2005-09-26 1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 예, 우리 모두 행복해야죠.

나무야, 내 손은 아직 안 잡아도 돼. 길을 걷다 울고, 이야기를 하다 목이 메이는 걸 난 당연하게 생각해. 특별한 일이 아니야. 너라도 마찬가지일거야. 몇 년이 흐르면 울지 않고 언니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될거야. 우리 아버지 이야기처럼.

복돌님, 혜덕화님, 손을 잡아야 한다면, 잡고 싶으시다면, 잡아야 할 것 같은 사람이 있다면 지금 잡으시길 바래요. 곁에 앉아서 나지막하게 이야기 하시길...이제 저도 두 어머님께 그렇게 해야 겠지요.

속삭이신 님, 정식으로 문화나 시에 대해 공부한 적이 없어서 포스트모더니즘 같은 이런 단어는 제게서 좀 멀어요. 어쨌든 꿈보다 해몽이라고 해석이 멋집니다. 그리고 님이 보내신 글,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