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생, 우리들의 하느님, 녹색평론사, 1996.

이와 같이 기독교가 있기 때문에 하느님이 있고, 교회에 가서 울부짖는다고 하느님이 역사하시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기독교가 있든 없든, 교회가 있든 없든, 하느님은 헤일 수 없는 아득한 세월 동안 우주를 다스려왔다. 선교사가 하느님을 전파하면 하느님이 거기 따라다니며 머물고 같이 사는 게 아니라, 기독교가 전파되기 전부터 하느님은 어디서나 온세계 만물을 보살펴오셨다. 하느님은 지식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레 느낌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인간들의 마음이다. ..p.19

교회는 새삼스레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온 세계와 온 우주가 바로 하느님의 교회이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나는 떳떳하게 모든 자연과 더불어 사람이나 동물이나 서로 섬기며 살고 싶을 뿐이다. 하느님은 그것을 원하셨기에 이 땅에 예수님을 보내주셨다. 서로 섬기는 삶이야말로 예수님이 가르쳐준 사랑이며 그것을 위해 피흘려 희생하신 것이다. 이 땅위의 진짜 우상과 마귀는 제국주의와 전쟁과 핵무기와 분단과 독재와 폭력이다.-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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왈로야, 이제야 니가 보내준 책을 손에 들었다. 기독교에서 걸어나와 기독교건 뭐건 우리 안에 내재한, 우리들의 하느님 이야기구나. 우리들의 하느님, 하느님, 하느님...그러다 어쩌다 하느님이다, 부처님이다 하는 말이 생겨나 이리저리 세상을 훑고 다니나 싶어진다. 

재생지에 씌어진 글이라 그런지 책을 드는 마음도 가벼워진다. 그러고보니 녹색평론사가 가까운 곳에 있구나. 어쨌든 재미있게 읽을 것 같아. 고맙다, 왈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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왈로 2006-07-24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응, 그래서 '하나님' 하지 않고 '하느님'으로 하신 것 같아.
이사는 어쩌고 책 을 손에 들고 있는지...

이누아 2006-07-25 2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사할 일이 아득한데도 남해로 휴가를 다녀왔다. 신랑이 휴가는 절대 포기할 수 없다고 해서.^^ 휴가 동안 틈틈이 다 읽었다. 덕분에. 짧은 리뷰라도 쓰려고 했더니 알라딘이 좀 이상하네. 그리고 내 생일선물로 되어 있네, 이 책. 내 생일은 여름이 아니고, 겨울이다. 호적에 다르게 올라가 있다. 그래서 정말 이른 생일선물이 되었다.^^ 어떻게 지내는지? 연락하마.
 

                   고통의 크기([삶이 보이는 창]제46호)                                 

                                                                                      -이설야


 

내 동생 부부는 신용불량자이다. 2002년 미국에 가서 성공하여 돌아오겠다고 호언장담하고 떠났던 동생 부부는 1년 반 만에 비행기 값만 겨우 마련하여 한국으로 돌아왔다.
꿈을 안고 떠나 미국 땅을 밟았던 동생은 한 달 만에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다고 매번 전화선 너머로 울음소리를 들려주었다. 제부는 미국에 오면 나중에 호텔 지배인으로 앉혀 주겠다는 선배의 말만 듣고 사전 지식이나 충분한 고민 없이 도망치듯 떠났다. 미국 가면 처음에는 무지 고생하지만 나중에 성공하면 큰 부자가 된다고 했었다. 나는 제발 미국이고 뭐고 동생 고생이나 그만 시켰으면 했다.

그런데 미국이라는 나라는 그리 호락호락하게 이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제부는 호텔이 아니라 세탁소 공장에서 하루 12시간에서 16시간 가량을 일했다. 동생의 표현을 빌자면, 작업복에서 소금이 한 됫박씩 나올 정도로 노동 강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미국으로 자신들을 불러들였던 선배는 자신들이 외롭고 일할 사람도 구하기 힘들고 돈도 필요해서 동생 부부를 속여 머나먼 미국땅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지금도 그 선배를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고 한다.

여행비자로 들어갔기 때문에 불법 체류자 신세에다가 돈도 거의 떨어지자 이러다간 미국에서 굶어 죽겠다 싶어서 부랴부랴 한국으로 돌아온 것이다. 한국에 들어와서는 시댁에 얹혀살더니 한두 달 있다가는 집을 얻어 달라고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돈이 될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그러던 어느 날은 술에 취해서 전화를 했다. 지금 지하철인데 뛰어내릴지도 모른다고, 그리고는 전화를 끊었다.

솔직히 난 동생의 무능력과 무지를 늘 한심하게 생각했다. 왜 노력을 안 할까? 집안 형편이 어려우면 나 같으면 당장 나가서 일할 텐데, 뭐가 그렇게 힘들다고 할까, 별 일 아닌데, 나 같으면 그렇게 살지는 않을 텐데, 나 같으면 이렇게 했을 텐데…. 이렇게 ‘나 같으면 어떻게 할 텐데 왜 그럴까, 그렇게까지 고통스러운 일일까’ 등등 내 중심적인 생각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는 너무나 나중에 깨달았다.

나는 늘 나에게 받으려고만 하는 동생이 짐스러울 때가 많았다. 내 몸 하나도 힘겨울 때는 더욱 그랬다. 그렇지만 언제부턴가 ‘고통의 크기’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에게는 10% 밖에 안 되는 고통이 동생에게는 90% 이상의 고통일 수도 있겠다고 말이다. 내 기준으로만 동생의 고통의 크기를 재단하고 지나쳐 버린 것이다. 얼마나 어리석고 작은 생각인가?

우리는 종종 자기라는 아상(我相)에 사로잡힌 나머지 다른 것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 늘 그런 잘못을 범하고도 뒤늦게 깨우친다. 그러나 문제는 수많은 갈등 과정 속에서 잘못을 깨닫고 실천하기까지는 불필요한 감정소모와 시간을 허비한다는 것에 있다. 최악의 경우 소중한 사람을 잃게 된다. 그래서 나는 가끔 평상심을 찾으려고 산사나 명상수련장, 여행지로 떠돌지만, 현실로 되돌아왔을 때는 한 달도 못 가서 본색(?)을 드러낸다. 그러니 방법을 찾아보는 수밖에 없다. 내 나름의 결론은 나를 인정하고 타인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나의 거울이기도 한 타인을 있는 그대로 볼 때, 이해하는 마음은 절로 생기는 것이다. 이해하는 마음이 서로 앞선다면, 고통 또한 작아지기 때문이다.

지금 내 동생은 두 칸짜리 사글셋방에서도 귀여운 조카들이랑 잘산다. 제부는 미국에서 돌아와서는 딴 사람이 되었다. 멋쟁이 양복도 다 버리고, 중요하게 생각하던 체면이나 겉치레도 다 버리고 고물상을 한다. 비록 지인의 도움으로 컨테이너 박스에서 일을 하지만, 힘들어도 요행이나 행운을 바라지 않고 남이야 어떻게 보든지 의식하지 않고 묵묵히 힘든 길을 간다. 난 요즘처럼 제부가 예뻐 보인 적이 없다.




글쓴이 『창』 편집위원

삶이 보이는 창: http://www.samchang.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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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덕화 2006-05-21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들이 하게 되는 가장 큰 착각 중의 하나가 "나라면 저러지 않을텐데......"하는 터무니 없는 자신감이 아닐까 합니다. 그것조차 아상인 줄 알면서도 쉽게 그런 생각을 하고 사는 나를 보게 됩니다. 저를 돌아보게 하는 글이네요. _()_

2006-05-21 13: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달팽이 2006-05-21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회광반조, _()_

이누아 2006-05-23 2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님들과 같은 마음으로 저 글을 읽고 이곳에 옮겨 놓았습니다. _()_

2006-05-24 22: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니르바나 2006-05-27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 참 감동적이네요. 이누아님
사람은 변화의 가능성 때문에 기대가 되는 존재입니다.
_()_

2006-05-27 18: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5-30 12: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정태춘, 박은옥 - 저 들에 불을 놓아

저 들에 불을 놓아 그 연기 들판 가득히
낮은 논둑길 따라 번져가누나

노을도 없이 해는 서편 먼산 너머로 기울고
흩어진 지푸라기 작은 불꽃들이
매운 연기 속에 가물가물

눈물 자꾸 흘러 내리는 저 늙은 농부의 얼굴에
떨며 흔들리는 불꽃들이 춤을 추누나

초겨울 가랑비에 젖은 볏짚 낫으로 그러모아
마른 짚단에 성냥 그어 여기 저기 불 붙인다

연기만큼이나 안개가 들판 가득히 피어오르고
그 중 낮은 논배미 불꽃 당긴 짚더미
낫으로 이리저리 헤집으며

뜨거운 짚단 불로 마지막 담배 붙여 물고
젖은 논바닥 깊이 그 뜨거운 낫을 꽂는다

어두워가는 안개 들판 너머
자욱한 연기 깔리는 그 너머

열나흘 둥근 달이 불끈 떠오르고
그 달빛이 고향 마을 비출 때

집으로 돌아가는 늙은 농부의 소작 논배미엔
짚 더미마다 훨 훨 불꽃 높이 솟아오른다
희뿌연 달빛 들판에 불기둥이 되어 춤을 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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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6-05-11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노래 들을때마다 울컥울컥해요.

hnine 2006-05-11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듣고 추천하고 갑니다.

잉크냄새 2006-05-11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래가 가슴 깊이 울림이 있네요.

이누아 2006-05-11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돌바람님 서재에서 만난 노랜데, 이상하게 제 컴퓨터에서 그 노래를 들을 수가 없어서 찾아 듣습니다.

2006-05-13 1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누아 2006-05-13 1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 그렇군요. 전 정반대였어요. 그분들이 학교에 오셨는데 노래보다 말이 훨씬 길었어요. 전 노래를 들으러 갔거든요. 그래서 그분을 싫어했어요. 노래는 안 하고, 말 많은 분이라고. 지금보니 정말 할 말이 많아서 어쩔수가 없었군요. 말해야 해서 말했군요.
 

머레이 버도 지음, 홍윤숙 옮김, [프란치스꼬의 여행과 꿈], 성바오로출판사, 1981

 


"도대체 이 사람들의 일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 것인가? 미치광이라고밖에는 생각할 수 없지만, 얼마나 매력있는 미치광이인가! 할 수만 있다면 나 역시 그렇게 되고 싶다. 아씨시에서 왔다는 그 비렁뱅이들이 가지고 있는 자유는 용기만 있으면 나도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식으로 자문자답을 시작만 한다면 일은 된 것이라고 프란치스꼬는 생각했다. 그리고 낮이나 밤이나

"남의 눈치를 보며 살지 않고 자신의 마음에 충실하게 사는 용기를 모든 사람에게 주십시오"

라고 기도하는 것이었다.            -p.69

 

그는 기도 없이는 사랑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또 일상의 체험을 통해서

사랑이 없는 기도는 자기 중심의 불모지를 만들 뿐이라는 것을 배웠다.  -p.79

 

결국 상징적인 일이라는 것은 대단히 구체적인 형태로 시작되는 것이다.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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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바람 2006-05-08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의 눈치를 보며 살지 않고 자신의 마음에 충실하게 사는 용기를 모든 사람에게 주십시오"

이누아 2006-05-09 0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_()_

2006-05-09 09: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누아 2006-05-09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님, 프란치스꼬를 보세요. 일상의 체험을 통해! 가장 구체적인 방법으로! 미치광이가 되고, 비렁뱅이가 되고, 자신의 마음에 충실하게 사는군요. 일상의 체험..구체적인 방법..근데 맘이 편할까요? 아무 것도 두렵지 않아, 라고 말하기 전까지 우리 맘이 그렇게 편할 수 있을까요?

2006-05-10 23: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누아 2006-05-10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 다음 달엔 일 하시는 거 맞죠? 자, 자 일어나세요. 정신차리세요!! 안 일어나시면 물 붓습니다.^^ 근데 이러고 있으니 동수랑 놀고 있는 것 같아요(웃찾산가 하는 프로에 나오는 보이지 않는 친구가 동수 맞죠?).
 

사람이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되는 것은

일어난 일 때문이라기보다는

일어난 일에 대한 생각 때문이다

                                                      ---몽테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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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6-04-26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사람의 얼굴을 보고 미운 생각이 든다면...
그 사람을 보는 내 마음 어딘가에 그런 생각이 있음을 살필일이다..
좋은 사람의 얼굴도 마찬가지다.

이누아 2006-04-27 1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 또 확신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무엇이든지 그 자체로 부정한 것은 없고, 다만 부정하다고 여기는그 사람에게는 부정한 것입니다-로마서 14장 14절

몽테뉴의 말이나 로마서의 바울의 말 모두 [예수, 선을 말하다]에 인용된 걸 다시 적은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