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무상함에 함축된 진리를 정말 이해해서 알아차렸습니까?

그것을 당신의 모든 생각, 호흡, 움직임과 합치시켜 당신의 삶이 바뀌었습니까?

당신 자신에게 두 가지 질문을 던져 보시오.

자신과 모든 사람과 모든 것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순간순간마다 기억하고 있으며 그래서 모든 존재를 언제든지 자비심으로 대하고 있습니까?

죽음과 무상함을 통렬하고도 절박하게 이해해서 매 순간마다 깨달음을 추구하고 있습니까?

두 질문에 대해 당신이 '그렇다!'라고 답할 수 있다면 덧없음을 제대로 이해한 거요.

                                              -소걀 린포체 저, 오진탁 역, [티베트의 지혜], 민음사,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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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있다. 나는 한꺼번에 여러 책을 읽는다. 자기 전에 읽는 책, 일어나서 읽는 책, 다니면서 읽는 책, 집중해서 읽는 책이 모두 다르다. 잠들기 전에 [달라이라마, 죽음을 이야기하다]를 반복해서 읽다가 이 책으로 바꾸었다. 그러나 잠들기 전에 읽는 책으로 하기엔 너무 흡인력이 있다. 읽을 때마다 눈이 번쩍 열린다. 잠들기 힘들게 하는 책이다. 결국 오늘 낮에도 읽는다.

이 책에는 혼자 읽기 아까운 구절들이 가득 차 있다. 책을 읽으면서 간혹 그 구절들을 공유하려 한다. 그 첫 번째 구절이다. 이 구절은 생이 무상하다는 말을 함부로 할 수 없게 한다. 그리고 그 말은 애초에 함부로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소걀 린포체의 이 두 가지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뒤에야 무상함을 말할 수 있겠구나...무상함이 체득되었다고 할 수 있겠구나...불교의 진리가 나와 함께 있다고 할 수 있겠구나...그제야 나는 불자라고 할 수 있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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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덕화 2005-09-06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글을 읽으니 다시 이 책을 읽고 싶습니다. 읽는 내내 감동과 공감의 한숨을 내뱉게 하던 책입니다. 요즘은 자꾸 새책 보다는 읽었던 책에 더 손길이 갑니다. 죽음을 경험한 적은 없지만, 행복한 일상 속에서도 무상함의 슬픔을 느끼던 제 자신에게 아주 맞는 책이었어요.읽으면 읽을수록 좋은 책입니다.

이누아 2005-09-06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모르셨군요. 님의 리뷰를 읽고 이 책의 대강의 내용을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관심도 갖게 되었고. [티벳사자의 서]와 이 책 중에 무슨 책을 먼저 읽을까 하다가 이 책이 더 편한 것 같아 이 책을 먼저 샀어요. 동네 서점에서 충동구매한 거지만요. 님 덕에 읽게 된 책인데 인사가 늦었네요. 고맙습니다. ()()()

비로그인 2005-09-06 1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자는 아니다, 후자도 아니다..입니다. 전자는 그런대로 인정하려 노력하고 있지만, 후자는 아무래도 내공을 쌓아야겠죠. 죽음에 관해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 후련해지고 다시 버거워지곤 개운해집니다. 평온함은 제 일상과는 먼 이야기일까요..슬퍼요, 많이..

이누아 2005-09-06 1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슨 일이 있나요? 어머님이 많이 편찮으신가요? 아니면 그저 마음이 힘든가요? 슬프시다니 염려가 되네요. 요즘 아침 기도 때 복돌님을 위해 기도해요.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기도밖에 없으니...그저 님의 평온을 기원하고, 함께 슬퍼합니다.

로드무비 2005-09-07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을 책이 또 한 권 느는군요.

이누아 2005-09-07 1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전 아직 다 읽지도 않았는데...님께 추천해드린 셈이 되었네요. 읽으시면 리뷰 남겨 주세요.
 

자유, 무한함, 기쁨, 명료함, 풍요로움, 용서, 동시성,

현존감, 평화, 유머, 유연함, 은총, 고요함, 두려움 없음, 

열려 있음, 침묵, 심성함, 내맡김, 존재함, 열성, 자연스러움,

쾌활함, 지혜, 관심, 연민, 애쓰지 않음, 아름다움,

신뢰, 영감, 치유, 생명력, 즐거움, 웃음, 순수함, 명랑함,

열광, 성취감, 행운, 하나 됨, 겸손, 이해, 수용, 환희,

존경, 힘, 용기, 광대함, 생동감, 약동, 열정, 균형감, 영원함,

온화함, 호기심, 천진난만함, 활력,

부드러움, 온전함, 완벽함, 평온함, 진실

                                                                                 브랜든 베이스의 치유, 아름다운 모험, p.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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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08-26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누아 2005-08-26 2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 언어에는 힘이 있는 것 같죠? 단어의 나열을 봤을 뿐인데도 감탄하게 되지 않나요? 저도 그랬어요.

2005-08-27 16: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08-28 20: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누군가 지금 당장 죽는다 하더라도, 그 사람의 주변을 둘러싼 채, 손을 잡고 울며불며 슬퍼하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행동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죽어가는 사람에게 갈애의 집착을 일으킬 뿐이며, 덕스러운 행위를 쌓을 좋은 기회를 빼앗아버리는 것이다.

 

주변사람들은 그에게 종교적인 가르침과 수행을 상기할 수 있도록 마지막 숨이 멈출 때까지 조용하고 부드럽게 속삭여줌으로써, 그로 하여금 공덕을 쌓을 수 있도록 올바른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 죽어가는 사람이 창조주를 믿었다면, 창조주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이 그 사람을 좀더 편안하고 평화롭게 만들어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집착과 두려움, 그리고 후회의 감정을 덜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만일 그 사람이 환생을 믿고 있다면, 의미있는 내생에 대해서 생각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불교도는 붓다를 마음 깊이 새기고, 이번 삶에서 행한 선행을 더 좋은 새로운 삶을 향해 바칠 수 있을 것이다. 무신론자라 해도 죽음은 삶의 한 부분이며, 이제 걱정해도 소용없는 일이 자신에게 일어났다고 생각해야 한다.

 

중요한 점은 죽음의 과정 동안에 정신이 산란해지지 않도록 마음의 평온을 얻는 것이다.

 

---달라이라마 저, 제프리 홉킨스 편저, 이종복 옮김, [달라이라마, 죽음을 이야기하다], 북로드, 2004, p.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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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스님이 젊은 사람들이 알고 있어야 하신다면서 말씀하셨다. 죽어가는 사람이 마지막까지 갖고 있는 감각은 청각이라서 울거나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거나, 텔레비전을 틀어놓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아미타경]이 있다면 그것을 읽어주고, 여의치 않으면 죽어가는 이의 귀에 작은 소리로 "나무 아미타불"정근을 해 주면 좋다고. 달라이라마는 죽음의 순간에 우리가 죽는 순간에도 이렇게 마음의 평온을 잃지 않도록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며, 그래서 가까운 이에게 미리 부탁해 두는 것이 좋다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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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결정을 내리기 전에 스스로에게 이렇게 묻는 것이다.

 '이것이 나에게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인가?'

이 단순한 질문이 우리가 삶을 살면서 여러 상황을 마주칠 때마다 지혜롭게 행동하도록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 그 방법은 사물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심어준다. 우리가 날마다 어떤 결정이나 선택을 할 때 앞의 질문을 마음 속으로 던진다면, 우리 행동의 중심은 무엇인가를 부정하는 것에서 어떤 것을 추구하는 쪽으로, 곧 삶의 궁극적인 행복을 추구하는 쪽으로 옮겨갈 것이다.

                                                   달라이라마. 하워드 커틀러,  [달라이라마의 행복론], 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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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성전
홍신문화사 편집부 엮음 / 홍신문화사 / 2003년 4월

 

제자들이여, 나는 승의와 밥과 좌구와 약재를 얻고 있기 때문에 입이나 행동이 부드러운 제자를 참된 온유한 제자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제자는 승의와 밥과 좌구와 약재를 얻지 못하면 입도 행동도 온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법을 높이 공경하고 입도 행도 온화하다면 나는 그 제자를 온유한 제자라고 부른다...너희들은 어떤 말로 얘기되더라도 '결코 내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 나쁜 말은 내 입에서 새지 않는다. 동정과 애련을 가지고 자비의 마음에 주(住)하며, 내심에도 노여움을 품지 않으리라. 그 사람들을 자비를 수반한 마음을 갖고 감싸주면서 살아가야 한다...'고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 -p.213

또한 어떤 때는 아버지가 자식 때문에 울고, 자식은 어버이 때문에 울고, 형제와 부부도 서로 슬퍼한다. 무상이 그 원인임을 아무도 깨닫지 못한다. 사물은 모두 지나가는 것이며, 머무르는 것은 없다. 가르쳐 이끌더라도 믿는 자가 적으므로 생사의 흐름은 그칠 때가 없다. 이와 같은 중생은 어리석고 성품이 사나워서 가르침을 믿는 일이 없고, 깊은 사려가 없으므로 단지 눈앞의 낙에 빠지고, 애욕에 마음이 흐려져 도에 이르지 못하고, 노여움에 빠져들어 이리와 같이 재물이나 색을 탐한다. 이 때문에 악도의 괴로움에 빠져 망집의 길이 그치는 일이 없으니, 참으로 가엾은 일이다.  -p.489

세존은 톱의 비유로 설하여, 비록 도둑이 쌍날 톱으로써 그대의 몸을 자르더라도 어두운 마음이 되는 자는 내 가르침을 지키지 않는 자이다라고 가르치셨다. 나는 흔들리지 않고 노력하여 정념을 깨지 않고, 신체는 느긋하니 마음을 한곳에 모으고 있자! -p.541-542

수바드라여, 업이 다하면 고가 다할 것을 생각하고 있다. 그렇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번뇌가 다하여 업고(業苦)가 다하는 것이다. 수바드라여, 만약 업의 인연을 끊고 해탈을 얻을 수 있다면 일체의 성자도 해탈을 얻지 못하리라. 그것은 과거의 본업에는 시작도 끝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도는 능히 시작과 끝이 없는 무서운 업까지도 막을 수 있는 것이다. 만약 고행을 닦아서 도가 얻어지는 것이라면 일체의 축생도 또한 모두 도를 얻게 되리라. 그러면 먼저 그 마음을 조복함이 좋다. 몸을 조복해서는 안 된다. 여기에 참된 해탈의 인이 있다는 것을 알지 않으면 안 된다.  -p.702

제자들이여, 욕심이 많은 사람은 바라는 일이 많으므로 고뇌 또한 많다. 욕심이 적은 사람은 구하는 것이 없으므로 금심도 없다. 욕심이 적은 사람은 아첨하는 마음으로 남의 뜻에 영합하는 일도 없다. 또 눈과 귀의 욕망 때문에 끌리지 않는다. 마음은 평탄하고 근심이 없으며, 일에 손을 대더라도 여유가 있어 항상 불만스러운 일이 없다. 곧 여기에 열반이 있다. -p.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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