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고 평온하다.

바람 한점 없는 어느 날, 호수가 잔잔하다.

도랑에 고인 물마저 잔잔하다.

우리도 이와 같다.

전에는 결코 느끼지 못했던 강렬한 맑음과 고요가 이따금 우리에게 다가온다.

세계가 우리 곁을 지나간다.

저 깊은 물 속을 들여다보면 세계가 보인다.

아주 맑은 거울!

오직 순수한 고요! 

정신을 차리고 나는 음악소리까지 듣고 있다.

창조주가 나를 축복하고 있다.

아! 기쁨, 절묘한 이 기쁨!

      -헨리 데이빗 소로우 글, 최민철 엮음, 나를 다스리는 것은 묵직한 침묵, p.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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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림 2006-10-29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런 고요한 기쁨을 느끼는 날이 언제 올까요?
이누아님, 편안한 휴일 되세요.^^

이누아 2006-10-29 1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길을 지나다 가로수를 봐요. 가만히 봐요. 그 나무의 가지들을 봐요. 잎들을 봐요. 잎을 봐요. 하나 하나...그러다 보면 그 고요함...절묘한 기쁨! 이 솟는(이럴 땐 느낀다기보다 솟아나는 것 같아요) 순간이 있어요. 기다리지 않아도 돼요. 바로 오늘, 기쁨 솟는 날 되시길.

파란여우 2006-10-30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능, 작은 배를 띄웁시다.
님은 소로우 할아버지가 만들어준 감자구이를 종이에 담아,
저는 뒷산에서 주워 온 야생사과를 손수건에 감싸들고
너무 투명해서 모든 것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가을 강위에 낙엽처럼
그저 흘러 가 봅시다. 노 젓는 일은 필요없습니다.
미풍이 알아서, 물결이 알아서 해 줄겁니다.
 

저편으로 건너가는 것도 위험하고 건너가는 과정, 뒤돌아보는 것, 벌벌 떨고 있는 것도 위험하며 멈춰 서 있는 것도 위험하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정동호 옮김, 책세상), p.21

==========

위험은 천직.

위험이 곧 두려움은 아니다.

위험이 곧 불안은 아니다.

안전은 착각, 어디에도 없다. 

자각된 위험이 있을 뿐.

위험을 자각하다...그것이 안전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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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26 09: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누아 2006-10-28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 대답은 겸손이에요. 나는 건너가고 있으니 안전하지만 넌 뒤에서 벌벌 떨고 있군, 해봐야 같은 줄 위에 서 있는 겁니다. 뒤돌아 가려고 발버둥 칠 것도 없지요. 그러나 건너가는 사람은 건너가고, 떨어지는 사람은 떨어지고, 매달릴 사람은 매달리겠지요. 모두가 같을 수는 없겠지만 모두 줄 위를 걸어가요. 삶이라는 줄. 누군가가 심하게 흔들리면 함께 흔들리고 말겠죠. 줄타기를 잘하는 사람도, 못하는 사람도 모두 줄 위에 있다는 위험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지요. 우산을 들고 있다고 안전하다고 여기겠지만 태풍이 불면 부러져 버리지요. 안전을 찾아, 안전안전 하지만 줄 위에서의 안전이란 그 자체로 불안전이지요. 네 개의 가시로 자신을 지킬 수 있다고 믿는 어린왕자 별의 장미처럼 허영에 부풀어 있어요. 문득 풍선에 바람이 빠진 듯 발 아래 줄이 자각이 돼요. 그런데도 두렵지도 불안하지도 않네요.

전 잘 지내요. 님은 여전히 바쁘게 지내시나요? 날이 좀 서늘해졌어요. 집 보일러는 어떻게 되었는지? 따뜻하게 지내고 계신가요?
 

남과비교하지않으면
자신을보지못하는그대,
자신의기준에맞지않으면
남을소외시키는그대,
그대는과연누구인가    -김재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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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하 2006-10-18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봤습니다. 제 눈을 밝히는 단상들이네요. 세상을 살면서 비교하는 능력이 성장한 만큼, 비교하지 않는 눈도 키워야 할 거 같아요.

이누아 2006-10-18 1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재욱이란 분이 메일서명에 저 글을 달아놓으셨더군요. 저한테 하는 말인 줄 알고 좀 놀랐는데(저렇게 직접적으로 지적할 만큼 친한 사이가 아니라서) 자신이 보기 위해 서명으로 만들어 두신 듯했어요. 님을 처음 뵌 건 아니지만 제 서재에선 처음이군요. 환영!
 

그대의 욕망을 개입시키지 말고 미래가 오게 놔두라. 미래는 저절로 올 것이다. 미래는 그대의 욕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냥 오게 놔두라. 미래에 관해 아무 것도 요구하지 말라. 이것이 무욕의 의미다. 무욕은 세상에서 도피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을 버리고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저 지켜본다는 자세로 기다려라. 이렇게 아무 욕망 없이 기다릴 수 있다면 모든 일이 가능하다. 이 일은 우주 전체, 신 자체로부터 오는 것이다. 그러나 바라고 욕구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건 모두 그대를 통해 일어난 일이 될 것이다. 이때 그대는 자기 자신 안에 갇혀 버린다. 존재계가 그대 안으로 들어올 수 없다. 그대가 그것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쇼, 서양의 붓다, p.326.

==================

준비하고 계획하는 삶. 죽을 때까지 그렇게 살아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 삶이 어때서?라고 할지 모르나 난 그 헤아림이 싫었다. 이곳을 벗어나면 그런 삶에서도 벗어날 수 있을까...여러 이유 중의 하나였다. 그해 봄, 산에 갔다. 산에서는 준비하고 계획하는 삶이 없으리라. 그러나 내가 닿기도 전에 그 삶은 이미 산 한가운데 자리를 잡고 있었다. 아, 삶이란 본래 이런 거구나, 이런 게 삶이었구나....이런 생각을 했었는지도 모르겠다. 기억나지 않는다. 삶이 문제라고 여겼던 모양이다. 그토록 어리석을 수 있었을까. 장소를 떠나면 삶을 떠날 수 있다고 여겼던 것일까. 장소는 그저 이 방과 저 방 같은 것이었다. 안방에는 침대가 있고, 이 방에는 책상이 있다. 그런다고 삶이 바뀌진 않는다. 준비하고 계획하는 삶이 지긋지긋하다고 여겼던 그해 봄...

옛 어른이 마음이 맑은 사람은 과거를 후회하지 않으며, 현재를 깊이 근심하지 않으며, 미래를 헤아리지 않는다고 하였다. 마음이 흐렸던 게다. 삶이 준비와 계획이 필요했던 것이 아니라 미래를 헤아리는 마음이, 욕망이 그것을 필요로 했던 게다. 준비하고 계획하는 삶은, 순간을 무시한 삶은 나를 통해 일어난 일이다. 그리하여 갇혔구나, 그리하여 그토록 답답했구나.

습관은 얼마나 놀라운 것이냐. 이렇게 드러난 진실 앞에서도 허용하지 않는다. 이누아, 계절을 혹은 자연을 따르게. 무엇이나 제철이 있지 않은가. 혹여 아직도 그해 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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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림 2006-10-14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옛 어른이 마음이 맑은 사람은 과거를 후회하지 않으며, 현재를 깊이 근심하지 않으며, 미래를 헤아리지 않는다고 하였다."
"무엇이나 제철이 있지 않은가. 혹여 아직도 그해 봄인가..."
님의 고민의 정체를 다는 알 수 없지만 님의 지향점은 느끼게 됩니다.
쓸쓸하면서도 청아한 님의 목소리가 제 가슴에도 울려 퍼집니다.
나이가 들수록 때가 끼어가는 정신, 때가 끼는 욕망... 청명한 가을 하늘 한 자락 마음에 담고 싶은 비자림 올림

이누아 2006-10-14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민이라뇨? 오랜만에 자정을 넘긴 시간에 깨어 손에 닿는대로 집어든 책을 보다 떠오른 거예요. 밖을 보니 정말 청명한 가을 하늘이에요. 가을 따라 놀아요.

혜덕화 2006-10-16 1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이 계획대로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나이들어 갈수록 체험하게 됩니다. 오늘 아침 밥상머리에서 아들과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냥 이렇게 건강하게 함께 밥 먹고 사는 것이 너무 감사하다고. 너희들이 건강한 것고 감사하고, 엄마 아빠 건강한 것도 감사한 일이니 공부때문에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말라고.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잘 자라는 것만으로 너무 고맙게 생각한다구요.
가을 햇살이 참 좋습니다. 생을 즐겁게 받아들이는 것, 하루에 한번이라도 환하게 웃는 것, 걱정으로 한치의 키도 자라게 할 수 없으니 그저 현재현재 내 마음 자리 그대로 살아가는 것, 이것이 행복이고 인생이 아닌가 싶네요. _()_

이누아 2006-10-18 1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건강하게 밥 먹고 살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란 걸, 그저 그냥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라는 걸 매일 느낍니다. 그 느낌은 감사도 아니고, 그저 익숙하지 않은 그런 것입니다. 조금 피로한 저녁입니다. 님의 이야기, 가만히 읽고 또 읽다 물 한 잔 마십니다. 늘 고맙습니다.
 

공경으로써 효도하기는 쉬워도

사랑으로써 효도하기는 어렵다.

어버이를 잊는 것은 쉬워도

어버이로 하여금 나를 잊게 하는 것은 어렵다.

어버이로 하여금 나를 잊게 하는 것은 쉬워도

천하를 두루 잊는 것은 어렵다.

천하를 두루 잊는 것은 쉬워도

천하로 하여금 두루 나를 잊게 하는 것은 어려운 것이다.

                                                                                -장자, 천운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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