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로운 안내자에게 좀더 자주 귀기울일수록 당신은 쉽게 자신의 부정적 기분을 변화시킬 수 있고, 그것들을 꿰뚫어 볼 수 있다. 심지어 그것들이 얼마나 부조리한 드라마이고 우스꽝스러운 환상인지 비웃게 될 수도 있으리라. ......

티베트의 신비주의자 테르퇸 소걀은 말했다. "나는 마루를 천장으로, 불을 물로 바꿀 수 있는 사람에게 한번도 감동한 적이 없다. 진정한 기적이란 바로 부정적 감정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기억 상실이 치유되기 시작할 때, 당신은 자기자신에 집착하는 것이 모든 고통의 뿌리라는 것을 알게 된다. 당신은 마침내 자아가 당신과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해를 끼쳐왔는지 이해하게 되고, 당신이 할 수 있는 가장 고상하고 가장 지혜로운 일이 바로 당신보다 다른 사람을 소중히하는 것임을 알게 된다. 이렇게 함으로써 당신의 가슴과 마음도 치유되고 당신의 영혼도 치유될 것이다.

무아란 처음에 자아가 있었고, 불자들이 나중에 자아를 없앴음을 뜻하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그와 반대로 무아라 함은 애초부터 자아가 존재한 적이 없음을 뜻한다. 그것을 깨닫는 것이 바로 "무아"이다.

                                                                 -[티베트의 지혜], pp.208-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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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5-09-13 1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정한 안내자란 우리들 스스로의 내면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사람이다...라는 생각이 드네요...

이누아 2005-09-13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팽이님, 이 책에 스승과의 관계에 대한 부분을 읽으면 몸이 다 떨립니다. 쉬임없이 나를 내면으로 돌아가게 하는 사람, 그 길 위에서 다정히 이야기 나누는 사람, 우리가 순간 순간 그런 존재가 되고, 그런 존재를 만나기를 발원합니다.


니르바나 2005-09-14 0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無我라.

이누아 2005-09-14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무아라.

혜덕화 2005-09-14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주 현각 스님의 금강경에도 기적에 대한 말씀이 나왔죠. 밥먹고 힘내서 일하는게 기적이라고 하신 숭산 스님의 이야기.
저도 이책을 다시 읽으면서 우연히 각주에 눈이 갔어요.(p143)
예전에 사람을 위협하던 사나운 야생 동물은 사라졌지만 오늘날 다른 위협으로 대체되었다. 우리의 거칠고 제어되지 않는 감정.
뉴스를 들어보면 사나운 야생 동물의 위협은 아무것도 아니란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이누아 2005-09-14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 주엔 아직 강의를 듣지 못했습니다. 아무래도 인터넷으로 들어야 할 듯합니다. 이렇게 함께 공유하는 것이 있어 좋습니다.
 

삶을 정직하게 응시한다면 누구나 우리가 허공에 붕 뜬 상태로 애매모호하게 삶을 영위하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마음은 쉴새없이 혼란함과 명료함 사이를 오락가락한다.

만약 우리가 언제나 혼란에 빠져 있다면, 아주 약간의 명료함만 지니게 될 것이다.

늘 혼란에 빠져 있는데도 우리가 가끔은 지혜로울 수도 있다니 삶이란 정말 불가사의하지 않는가!

이를 통해서 우리는 바르도*가 무엇인지 시사받을 수 있다.

즉 우리는 바르도 상태에서 명료함과 혼란, 미혹과 통찰, 확실함과 불확실함, 온전한 마음과 온전하지 못한 마음 사이를 끊임없이 무기력하게 오락가락하는 것이다.

바로 지금도 우리 마음에는 지혜와 미혹이 동시에 생겨나고 있다, 또는 "함께 나타난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양자 사이에서 끊임없이 선택해야 할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그것은 모든 것이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음을 뜻한다.

                                                                                                                    [티베트의 지혜], p.183

*바르도: 한 상황의 완성과 다른 상황의 시작 사이에 걸쳐 있는 과도기 또는 틈을 의미하는 티베트어. 흔히 죽음과 다시 태어남 사이의 중간 상태를 가리키는 말.

==============

죽은 후를 염려할 필요가 없다. 지금과 죽은 후가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 혼돈과 불확실함에 있어서.

지혜와 미혹 사이에서 지금 바로 선택해야 한다.

어제 저녁부터 아침까지 나는 무언가 원했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나는 그것을 내가 원하지 않기를 원한다. 왜 내 맘대로 되지 않는 갈망이 존재하는가? 내가 원치 않는 것을 원하게 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미워하고 싶지 않고, 분노하고 싶지 않지만 미워하고 분노하는 어떤 상태가 존재한다. 무엇인가? 이놈을 잡아야 겠다. 이놈이 "내"가 아닌데 나인 듯하고 앉아 있다. 이놈을 잡아야 겠다.

원하지도 않으며, 지속되기를 바라지도 않는 부정적 감정과 망상들을, 그런 미혹을 선택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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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2005-09-12 1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누아님도 이 책을 읽고 계시군요.
저도 이쯤에다 책갈피를 껴놓고 있었는데 다시 이어읽기 해 보렵니다.
제 생각에 새로운 갈래를 만들어 주었던 기억이 새삼스럽습니다.

호랑녀 2005-09-12 1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오늘따라 남편이 즐겨읽는 법구경을 찾고싶어지네요.
읽고싶은 책은 많고, 멍청하게 앉아서 흘리는 시간도 많고... 요즘의 내 모습이 싫어요. 이놈이 "내"가 아닌데, "내"가 아니어야 하는데...

달팽이 2005-09-12 1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전 읽었던 티베트의 지혜의 내용을 이누아님 덕에 다시 떠올리네요...지금 기억으로는 죽음을 3년 앞둔 젊은이가 수행을 하며 깨우친 내용 중 "진정한 수행은 자리에서 일어남과 동시에 시작된다."라고 하는 말인데...맞나? 좌선명상의 힘이 생활속으로 들어올 때 비로소 참된 수행이 된다는 말이었는데...사실 책읽는 마음과 생활하는 마음의 간격이 틀리잖아요... 책을 들고 있을 때의 촘촘한 마음이 생활에서도 틈을 벌이지 않고 지속시키는 힘을 내면에서 만들어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어요...

이누아 2005-09-13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니르바나님, 달팽이님 모두 이 책을 읽으셨군요. 그렇지 않아도 책이 나온지 꽤 되었더라구요. 그런데도 눈이 어두워 보지 못하다가 혜덕화님의 리뷰를 보고 읽어야지 하고 생각해서 이제야 읽습니다. 책을 사려고 살펴보다 달팽이님이 리뷰를 쓰신 것도 읽었구요(사실 제가 읽어볼까 하고 검색하면 달팽이님의 리뷰가 없는 곳이 없더이다). 구절구절 메모하고 싶지 않은 부분이 별로 없어서 이렇게 적는 것도 무의미할 정도입니다만 그저 제 마음에 새기려고, 제 삶에 붙여 보려고 적습니다. 저도 요즘 "체화"나 "체득"에 마음을 둡니다. 생각만 말고, 내 몸과 마음이 다 움직이도록 하려고 말입니다.

호랑녀님, 글 쓰시느라 힘드셨을텐데 멍청하게 시간을 흘리는 게 아니라 쉬시는 거 아닌가요? 그만하면 좀 쉬셔도 되는 것 아닌가요? 제가 삶의 기준이 너무 낮나요? 저도 좀 열정적으로 살아야지 싶은 생각이 드는군요.
 

그러나 명상을 일상 생활과 일치시키는 것이야말로 명상의 근거, 핵심, 목적 전부이다. 현대적인 삶에 폭력, 스트레스, 적대감, 산만함이 만연되어 있으니까 행동과 명상을 일치시키는 것은 가장 긴급한 일이다.

어떤 사람들은 내게 불평을 늘어놓는다. "저는 12년 동안이나 명상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저는 변하지 않았고 여전히 예전과 다름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의 영적수행과 일상 생활 사이에 깊은 심연이 놓여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두 개의 분리된 세계에서 살아가는 듯하고, 두 세계는 상호 영향을 주지 못하는 듯 싶다.....

그렇다면 명상의 고요한 즐거움과 드넓은 초연함을 어떻게 해야 일상 생활에 스며들게 할 수 있을까? 규칙적인 수행 이외에 어떤 대안도 없다. 지속적인 올바른 수행을 통해야만 우리 마음의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평온함을 온전하게 맛볼 수 있고, 일상 생활에서도 명상 체험을 지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티베트의 지혜], p.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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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덕화 2005-09-10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옆반 선생님도 108기도 시작했는데, 절할때마다 그렇게 많은 생각이 든다고 하더군요. 저도 처음에 그렇다가 차츰 수많은 생각들이 조용해지는 것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어제 이책의 명상부분을 저도 읽었어요.명상 할때 생각이 많이 떠오르는 것은, 그 만큼 시끄러웠던 마음이 고요해지니, 내 속의 시끄러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이라고 그냥 일어나는 과정이라고 써 있더군요. 옆반 선생님께 말해줘야지 생각했었습니다. 명상이 일상 생활과 분리되지 않도록 하는 것, 어렵지만 꾸준히 해나가야겠죠.

이누아 2005-09-10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그걸 항상 청소에 비유합니다. 청소 안 하고 있으면 먼지도 안 나는 것 같고 한데 청소한다고 뭘 털고 닦고 하면 먼지가 느껴지죠. 괜히 청소 시작했나 싶지만 청소가 끝나면 그렇게 개운할 수가 없잖아요. 매일 청소하지 않으면 집이 어떻게 되는지 님이 더 잘 아시죠? 매일 청소하지 않으면 청소할 때마다 대청소가 되어서 먼지 구덩이죠. 그래서 대청소만 하는 사람은 청소 하면 피곤과 먼지 덩어리가 생각이 나고 말죠. 님은 정말 꾸준히 수행하시는 분 같아 언제나 존경심을 갖게 합니다. 저도 지속적으로, 꾸준히 하겠습니다.
 

과거의 모든 붓다들은 이렇게 기도했다.

이러한 수행의 힘과 진리에 의해,

모든 중생이 행복해지고, 행복의 씨앗이 심어지게 하옵소서.

모든 중생이 슬픔으로부터 벗어나고 슬픔의 씨앗이 심어지지 않게 하옵소서.

모든 중생이 슬픔 없는 신성한 행복으로부터 분리되지 않게 하옵소서.

모든 중생이 지나치게 집착함이 없이 지나치게 혐오함도 없이 평온하게 살게 하옵소서.

모든 중생이 살아 있는 모든 것의 평등함을 믿게 하옵소서.

 

                                                                                                         [티베트의 지혜], p.111

================

과거의 모든 붓다들이 기도해 왔는데...모든 중생들은 그들의 기원대로 되었는가? 데레사 수녀님은 거리에서 한 사람을 붙잡았다고 했다. 그 한 사람이 그렇게 많은 사람이 될지 몰랐다고 한다. 단, 한 사람...어떨 땐 나 자신조차 벗어날 수 없는 슬픔과 집착과 오해들...그런데도 나도 따라 기원한다. 모든 중생이 행복해지이다. 모든 중생이 살아 있는 모든 것의 평등함을 믿게 하여지이다. 과거의 붓다들은 누구에게 기원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그들에게, 그들은 나에게 기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누가 평온을 주겠는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붓다들이 기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바로 내가 슬픔으로부터 벗어나고, 또 이웃을 벗어나게 하고, 평등함을 믿고, 또 믿게 하라고 하시는 건 아닐까...수행과 진리의 힘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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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덕화 2005-09-09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글을 보면서 요즘 자기 전에 한 이십분이라도 이 책을 다시 읽고 있습니다. 읽을수록 좋은 책이라고 느낍니다.

이누아 2005-09-09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님 덕분에 이 책을 알게 되었고, 님은 제 글을 보고 다시 이 책을 읽으신다니 참 좋네요. 이래서 책을 읽거나, 수행을 하거나 도반이 있으면 즐거운가 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로부터 가르침을 받고 함께 수행을 닦을 때 나는 놀라운 체험을 했다. 그의 가르침을 통해 들었던 모든 것이 내게 일어나고 있는 듯했다. 내 주위의 모든 물질들이 분해되었다. 나는 크게 흥분해서 말을 더듬거렸다.

"린포체...., 린포체......, 그게 일어났습니다!"

그가 나를 향해 몸을 기울여 안심시켰을 때, 그의 얼굴에 가득한 자비 넘치는 표정을 결코 잊을 수 없다.

"괜찮아...., 괜찮아. 너무 흥분하지 말게나. 결국, 그것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을 걸세"

놀라움과 축복으로 나는 넋을 잃었다. 좋은 체험이 명상 수행과정의 유용한 이정표가 될 수 있기는 해도, 거기에 만일 집착이 끼여 든다면 덫이 될 수도 있음을 뒤좀 린포체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체험 너머 훨씬 깊고 한층 안정된 땅으로 접어들어야 한다. 그의 현명한 가르침이 나를 곧바로 그곳으로 인도했다.

                                                                                                         [티베트의 지혜], pp.88-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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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9-09 12: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09-09 17: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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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9-11 23: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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