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에코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1 RHK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 1
마이클 코넬리 지음, 김승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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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 <유골의 도시>나 <시인의 계곡> 등으로 해리 보슈를 만나봐서일까. 해리 보슈 시리즈의 첫번째 권인 <블랙 에코>를 읽으면서도 내내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해리 보슈 시리즈의 첫 권이기도 하지만, 작가 마이클 코넬리의 첫 작품이니만큼 기대가 컸는데 기대에 약간 못 미치기는 했지만, '역시 코넬리는 싹수가 있었다'라는 결론을 내리게 했던 작품. 

  LA 경찰국에서 일하던 중 겪은 인형사 사건으로 부와 명성을 얻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경찰 윗선의 눈엣가시가 되어 할리우드 경찰서로 좌천된 해리 보슈. 어느 날 굴 안에 시체가 있다는 익명의 시민의 신고를 받고 현장으로 출동한다. 마약중독사로 보아도 크게 문제가 없는 사건이었지만 해리 보슈는 몇몇 이상한 점 때문에 찝찝해 하던 중 죽은 이가 자신과 함께 베트남에서 땅굴쥐로 있었던 메도우스임을 알아본다. 검시 결과 자연사가 아닌 타살임이 밝혀지고, 해리 보슈는 사건을 쫓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메도우스의 죽음이 은행강도 사건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해리 보슈는 은행강도 사건을 수사중인 FBI를 찾아간다. 협력은커녕 오히려 외압으로 사건에서 손을 뗄 위기에 처한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FBI 요원인 위시와 함께 수사를 진행하며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음모를 파헤쳐간다.

  기존의 마이클 코넬리의 책을 읽어본 독자라면 누구나 느끼겠지만, 코넬리의 장점은 무엇보다 빠른 전개에 있다. 500페이지가 넘는 두께도 부담스럽지 않게 읽어가게 만드는 힘. 그것이 코넬리 작품에는 있다. 소재 면에서는 딱히 여느 스릴러와 다를 게 없지만, 페이지를 넘기다보면 코넬리 작품 특유의 매력에 빠져들게 된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해리 보슈 시리즈의 첫 권을 만났다는 즐거움이 남달랐지만, 그 부분을 논외로 하더라도 이 작품은 나름대로 데뷔작임에도 꽤 안정적인 면모를 보인다. 아무리 좋아하는 작가라도 데뷔작을 읽을 때면 조금은 어색하다거나, 아직은 무르익지 않은 풋풋함이 느껴지곤 했는데, <블랙 에코>를 읽으면서는 오히려 데뷔작이라는 것을 잠시 잊을 정도로 꽤 안정적으로 느껴졌다.

  해리 보슈 시리즈의 단골 메뉴인 등장인물과의 로맨스가 어김없이 등장해 애초에 해리 보슈란 남자 이렇게 쉬운 남자(?)였나라는 생각도 들어서 아쉽기도 했지만,(이건 무슨 판타지 같잖아!) 베트남 전쟁을 이렇게도 바라볼 수 있구나, 전쟁의 폐해에 대해 이렇게 담담하게(혹은 냉소적으로) 풀어낼 수도 있는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이야기와 해리 보슈를 이해하는 주요 키워드인 '땅굴쥐'에 대한 부분도 흥미로웠다. 딱히 확 하고 독자를 끌어당기는 책은 아니었지만, 어쩐지 흑백 하드보일드 영화를 한 편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출간된 지 좀 지난 책이라 그런지 조금은 촌스러운 느낌도 들어서 아쉬웠지만 역시 코넬리라는 생각이 들었던 작품! 해리 보슈의 다음 이야기는 언제쯤 만나볼 수 있을 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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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10-05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 그 해리보슈이군요...
저번에 시인 시리즈 주욱 읽었던 기억을 더듬고 있는 중입니다.
여기서도,, 로맨스가 있었군요. 저런저런. ^^

이매지 2010-10-05 13:53   좋아요 0 | URL
시인 시리즈에서도 그랬지만,
해리 보슈는 시리즈 첫 권부터 여자 등장인물과의 로맨스가 ㅋㅋㅋ
아무래도 해리보슈 시리즈가 다 그런 것 같아요 ㅎㅎ
마이클 코넬리의 로망이려나 ~
 
블랙 에코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1 RHK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 1
마이클 코넬리 지음, 김승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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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이 하늘을 분홍색과 오렌지색으로 달궜다. 서핑을 하는 사람들의 수영복과 똑같이 밝은색이었다. 보슈는 할리우드 프리웨이에서 집을 향해 북쪽으로 차를 몰면서 아름다운 속임수라는 생각을 했다. 석양의 색깔이 그토록 눈부신 건 스모그 때문이라는 걸 석양이 잊게 만들어버리는 것. 아름다운 그림 뒤에 추악한 사연이 숨어 있을 가능성은 항상 존재했다. -85쪽

어떤 수사에서든 정보는 항상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는 것 같았다. 모래시계 속의 모래가 잘록한 허리 부분을 느리지만 꾸준히 통과하는 것처럼.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모래시계 바닥에 쌓인 모래가 위쪽의 모래보다 더 많아지듯이 정보도 쌓이게 된다. 그리고 그때부터는 위쪽의 모래가 더 빠른 속도로 떨어지는 것처럼 보이다가, 나중에는 아예 폭포처럼 쏟아지기 시작한다. 지금 메도우스 사건, 은행 사건이 바로 그 지점에 와 있었다. 이번 일이 모두, 흩어져 있던 조각들이 차츰 제자리를 찾아 들어가고 있었다. -35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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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 -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
한창훈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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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일보에 연재하던 한창훈의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를 읽을 때마다 한창훈만큼 바다에 잘 어울리는 작가가 또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거문도에서 태어나 평생을 바다와 함께 살아온 그의 글에서는 어쩐지 조금은 비릿하지만 생기 넘기는 바다 냄새와 바다 사나이의 힘이 느껴졌다. 선 굵은 수묵화처럼, 펄떡펄떡 살아 있는 생선처럼 살아 숨쉬는 그의 글을 읽으며 몇 번이나 침을 삼키곤 했었다. 그렇게 매주 나의 침샘을 자극했던 연재글이 책으로 묶여 나왔다. 

   다양한 분야에 관해 셀 수 없이 많은 저서를 남긴 다산 정약용과 달리 형인 손암 정약전은 바다에 천착했다. 흑산도에서 유배생활을 하면서 남긴 <자산어보>(<현산어보>로 읽자는 주장도 있지만 일단 여기서는 <자산어보>라 하자)에서 그는 155종에 이르는 수산동식물을 직접 관찰해 각각의 명칭과 형태, 생태 등을 기록한다. 물론 인어 같이 뜬금없는 부분도 있지만, 역작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의 노고가 담긴 글이 바로 <자산어보>다. 정약전의 바다 기운을 이어 받은 한창훈은 낚싯대 하나 둘러메고 <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를 통해 한창훈 식의 <자산어보>를 만들어간다.

  멸치 넣은 된장찌개도 비리다고 입에 대지 않는 아부지 덕분에 평소 생선이라곤 가끔 상에 올라오는 고등어, 삼치, 오징어 따위에 만족했던 내게 이 책은 진수성찬이자 신세계나 다름없었다. 특히나 거북손 같은 낯선 생선을 만날 때면 직접 보듯 생생한 사진에 절로 손이 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한번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에 침이 꼴깍 넘어갔다. 정약전처럼 단순히 물고기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가기보다는 그 속에 담긴 우리의 인생을 버무려 지루하지 않게 구성되어 있어 생선을 만나고 맛보는 것이 아닌 누군가의 인생을, 누군가의 희노애락을 곁들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자신에게 '생계형 낚시꾼'이라고 명명한 한창훈. 어쩌면 그가 낚는 것은 생선 뿐만이 아닐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나 또한 파닥파닥 그의 매력에 낚인 것 같으니 말이다. 한약 때문에 회 한 접시에 쐬주(!) 한 잔 못 하는 게 영 아쉽지만, 생선구이로라도 바다의 여운을, 살아 있는 생명력을 느껴봐야겠다. 한창훈이 들고 올 싱싱한 다음 이야기가 또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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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0-09-23 1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며칠전이었나, 경향신문에서 신간 소식으로 한창훈의 이 책이 나왔더라구요. 기자가 단편중에 어떤것의 내용을 적어놓았는데 완전 재미있겠는 거에요. 그때부터 읽고 싶어서 지금 좀 쑤시고 있어요.

이매지님은 그의 다음 작품을 또 기다리시지만, 저는 이 작품을 기다리고 있어요, 지금!! >.<

이매지 2010-09-23 18:48   좋아요 0 | URL
저의 불찰로 다락방님을 오래 기다리게 하고 있군요 ㅎㅎㅎ
경향이었나 한겨레였나 기사 보니까 완전 기사를 맛깔스럽게 잘 썼더라구요. 기자들도 낚시꾼들!
 
삼총사 3
알렉상드르 뒤마 지음, 이규현 옮김 / 민음사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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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시절 만화로 잠깐 본 적은 있지만 기억이 가물가물해 그저 삼총사와 다르타냥의 이야기, 못된 추기경에 맞서 싸우는 이야기 정도만 생각나던 차에 긴 연휴를 맞이해 <삼총사>를 읽기 시작했다. 오랫만에 만난 삼총사와 다르타냥. 이들의 흥미진진한 모험담을 읽으며 기대했던 것보다 더 큰 재미를 얻을 수 있었다. 

  뒤마 탄생 200주년을 맞이해 완역된 이 작품을 읽으며 나는 다르타냥과 아라미스, 아토스, 포르토스 같은 삼총사에 이끌리기보다는 마성의 여자 밀레디의 매력에 푹 빠졌다. 물론 시골에서 갓 상경한 야심찬 남자 다르타냥, 늘 마음 한 켠으로는 언젠가 성직자의 길을 꿈꾸는 아라미스, 타고난 귀족다움을 보여주는 아토스, 어쩐지 허세부리기를 좋아하지만 허당인 포르토스. 이 네 사람의 매력도 무시 못할 정도였지만, 추기경의 뒤에서 그를 위해, 그리고 자신을 위해 온갖 술수를 서슴지 않는 밀레디야말로 다르타냥 일당의 진정한 적수가 아니었나 싶었다. 과거는 꽁꽁 베일에 감춰둔 채 자신의 빼어난 미모와 목소리, 그리고 상대를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 거부할 수 없는 매력까지! 이야기의 마지막에 밀레디의 역할이 두드러져서였는지 몰라도 책을 다 읽고 나니 오히려 다르타냥과 삼총사보다는 밀레디가 강렬하게 남았다.

  사실 책을 읽기 전에 <삼총사>에 품었던 이미지는 그저 '다르타냥의 모험'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익살스럽고, 어떻게 보면 유머러스한 네 명의 총사. 그들과 함께 하는 신나는 모험담이라고 생각하며 읽었는데 정작 뚜껑을 열고 보니 네 명의 총사는 검술 실력은 빼어나다 해도, 놀기 좋아하고 여자를 등처먹기 바쁜, 돈이 생기면 모아두기보다는 먹고 마시고 내기를 해 날려버리는 약간은 망나니과의 인물들이었다. 물론, 사랑에 아파하고 사랑 때문에 마음 졸이는 인간다운(?) 모습도 보이지만 적어도 내가 그동안 생각해왔던 이미지와는 다른 '나쁜 남자' 스타일의 인물들이었다. 이들을 보좌하는 네 명의 하인들 또한 그들의 주인처럼 개성이 넘쳐 감초 같은 조연의 몫을 톡톡히 해줬다.

  단순히 모험담이라고 치부하기엔 정치적인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었다. 자칭 '공정왕'이라 하는 루이 13세. 그리고 그의 아름다운 부인 안느. 그녀를 사랑하는 영국인 버킹엄 공작. 이들의 삼각관계를 둘러싼 프랑스와 영국의 대립, 그리고 그 뒤에서 벌어지는 온갖 정치적인 술수는 읽는 내내 혹여 들키면 어쩌나 조마조마하게 했다(특히나 다이아몬드 장식끈을 둘러싼 모험에서는 부르르 떠는 리슐리외를 보며 통쾌하기까지 했다). 역사상의 실제 사건과 허구의 내용을 버무린 역사 소설이기 때문에 이왕이면 역사적 배경지식(예를 들면 루이 13세와 리슐리외 추기경의 관계 같은 것)이 있었다면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겠지만, 오히려 책을 읽고 나서 그 당시의 사정에 대해 궁금함이 생겨서 좋았다.  

  어린 시절 만화로 봤던 것처럼 마냥 순수한 모험담은 아니었지만, 모든 독자를 아우를 수 있는 매력이 있는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청소년들에게 딱딱한 고전을 억지로 읽히는 것보다 오히려 <삼총사> 같은 매력 넘치는 작품으로 고전의 벽을 낮추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3권으로 제법 두꺼운 분량이었지만, 1권에서는 다르타냥과 삼총사가 우애를 쌓아가는 것을 지켜보는 재미로, 2권에서는 각 총사들의 비밀을 엿보는 재미로, 3권에서는 미모와 영악함을 갖춘 팜므파탈 밀레디를 지켜보는 재미로 지루할 새 없이 읽어나갈 수 있었다. 영화로, 드라마로, 애니메이션으로 끊임없이 변주되어 등장하는 다르타냥과 삼총사의 매력적인 모험담을 통해 나 또한 한 순간 이들과 함께 작당하는 또 한 명의 총사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일상을 벗어나게 해줄 모험이 필요할 때 이제 뒤마를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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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 2 밀리언셀러 클럽 65
기리노 나쓰오 지음, 김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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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임 소리 마마>, <그로테스크>. 단 두 권의 작품만으로 기리노 나쓰오를 평하기엔 어쩐지 갸웃하는 면이 없지 않았다. 최근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일본 여성 작가중의 한 명이지만 첫 만남이 썩 즐겁지 않아서였을까? 두번째 작품을 접할 때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고, 어영부영하다보니 이제서야 <아웃>으로 세번째 만남을 이어갔다. 두 권이나 되는 제법 두꺼운 분량 때문에 다른 작품을 먼저 읽어볼까도 고민했지만, 무엇보다 기리노 나쓰오의 최고작으로 평가받는 <아웃>을 통해 그녀를 더 잘 알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 <아웃>부터 읽게 되었다. 

  기리노 나쓰오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이라면 여성 캐릭터를 꼽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딱 잘라 두 작가를 비교하기는 그렇지만, 히가시노 게이고 같은 경우에는 소재면에서 독자를 사로잡지만 그에 비해 여성 캐릭터는 대체로 평면적으로 전개되어서 아쉽다면, 기리노 나쓰오는 일단 여성 작가라 그런지 여성 캐릭터를 구사해내는 능력이 빼어나고, 소재 자체도 다소 잔혹한 면은 있지만 그녀만의 개성이 있는 것 같다. 이번 작품인 <아웃> 역시 네 명의 여성 캐릭터가 생생히 살아 움직이는 듯한 매력이 있었다. 

  도시락 공장에서 야간 근무를 하며 근근이 생활하고 있는 네 여자. 취향도, 생김새도, 가난에 찌들어 있다는 것 외에는 생활상도 제각각이라 가난과 공장이라는 공통 분모가 없으면 인연이 닿지 않았을 이들. 어느 날, 남편의 폭력에 더이상 참지 못한 야오이가 우발적인 살인을 저지르며 이 네 여자의 인생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생활에 많이 찌들긴 했지만 평범했던 네 명의 여자가 야오이를 도와 사체를 처리하면서 점점 어둠의 세계로 들어가는 모습,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어둠 속에서 오히려 빛을 찾는 모습이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그려진다. 

  제법 두꺼운 분량의 이야기였지만, 지루하지 않게 끝까지 몰입하면서 볼 수 있었던 것은 극한에 몰린 네 여자의 감정의 변화가 너무나 잘 묘사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용금고에서 오랫동안 일해왔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승진에서 배제되었던 마사코. 그녀는 충분히 가족과 같은 생활 리듬을 유지할 수 있는 직업을 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에도 스스로 야간 근무를 택함으로서 가족과의 단절을 택한다. 야오이의 남편의 시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무엇보다 냉정함을 유지하지만, 사실은 그저 삶에 지쳐 있었을 뿐인 약한 여자. 마사코 뿐 아니라 뚱뚱한 외모에 콤플렉스가 있지만, 명품과 외제차로 자신의 콤플렉스를 감추려 하지만 오히려 사채업자의 독촉에 시달리며 찌들어가는 구니코. 공장에서는 스승님이라고 불리지만 병든 시어머니의 수발에 지쳐 있는 요시에. 사회적 윤리와 관계 없이 자신의 자유를 찾아줄, 자신의 생활을 안정시켜줄 '돈'을 얻기 위해 아등바등 살아가는 모습은 어쩐지 안쓰럽기까지 했다. 

  평범한 가정 주부들이 시체를 토막낸다는 충격적인 소재. 하지만 그 속에 담겨 있는 것은 연민도, 동정도 아닌 그저 '비정함'이었다. 아수라장 같은 삶. 하지만 누가 삶을 마냥 행복한 것이라고, 아픔도 고통도 슬픔도 없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기에 기리노 나쓰오의 건조하지만 진심이 담긴 이야기가 와닿았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분명 가볍게만은 읽을 수 없는 작품이지만 한 번쯤은 꼭 읽어봐야 할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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