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 -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
한창훈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중앙일보에 연재하던 한창훈의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를 읽을 때마다 한창훈만큼 바다에 잘 어울리는 작가가 또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거문도에서 태어나 평생을 바다와 함께 살아온 그의 글에서는 어쩐지 조금은 비릿하지만 생기 넘기는 바다 냄새와 바다 사나이의 힘이 느껴졌다. 선 굵은 수묵화처럼, 펄떡펄떡 살아 있는 생선처럼 살아 숨쉬는 그의 글을 읽으며 몇 번이나 침을 삼키곤 했었다. 그렇게 매주 나의 침샘을 자극했던 연재글이 책으로 묶여 나왔다. 

   다양한 분야에 관해 셀 수 없이 많은 저서를 남긴 다산 정약용과 달리 형인 손암 정약전은 바다에 천착했다. 흑산도에서 유배생활을 하면서 남긴 <자산어보>(<현산어보>로 읽자는 주장도 있지만 일단 여기서는 <자산어보>라 하자)에서 그는 155종에 이르는 수산동식물을 직접 관찰해 각각의 명칭과 형태, 생태 등을 기록한다. 물론 인어 같이 뜬금없는 부분도 있지만, 역작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의 노고가 담긴 글이 바로 <자산어보>다. 정약전의 바다 기운을 이어 받은 한창훈은 낚싯대 하나 둘러메고 <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를 통해 한창훈 식의 <자산어보>를 만들어간다.

  멸치 넣은 된장찌개도 비리다고 입에 대지 않는 아부지 덕분에 평소 생선이라곤 가끔 상에 올라오는 고등어, 삼치, 오징어 따위에 만족했던 내게 이 책은 진수성찬이자 신세계나 다름없었다. 특히나 거북손 같은 낯선 생선을 만날 때면 직접 보듯 생생한 사진에 절로 손이 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한번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에 침이 꼴깍 넘어갔다. 정약전처럼 단순히 물고기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가기보다는 그 속에 담긴 우리의 인생을 버무려 지루하지 않게 구성되어 있어 생선을 만나고 맛보는 것이 아닌 누군가의 인생을, 누군가의 희노애락을 곁들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자신에게 '생계형 낚시꾼'이라고 명명한 한창훈. 어쩌면 그가 낚는 것은 생선 뿐만이 아닐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나 또한 파닥파닥 그의 매력에 낚인 것 같으니 말이다. 한약 때문에 회 한 접시에 쐬주(!) 한 잔 못 하는 게 영 아쉽지만, 생선구이로라도 바다의 여운을, 살아 있는 생명력을 느껴봐야겠다. 한창훈이 들고 올 싱싱한 다음 이야기가 또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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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0-09-23 1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며칠전이었나, 경향신문에서 신간 소식으로 한창훈의 이 책이 나왔더라구요. 기자가 단편중에 어떤것의 내용을 적어놓았는데 완전 재미있겠는 거에요. 그때부터 읽고 싶어서 지금 좀 쑤시고 있어요.

이매지님은 그의 다음 작품을 또 기다리시지만, 저는 이 작품을 기다리고 있어요, 지금!! >.<

이매지 2010-09-23 18:48   좋아요 0 | URL
저의 불찰로 다락방님을 오래 기다리게 하고 있군요 ㅎㅎㅎ
경향이었나 한겨레였나 기사 보니까 완전 기사를 맛깔스럽게 잘 썼더라구요. 기자들도 낚시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