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박 5일 동안의 제주도 자전거+도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날, 밤 비행기라 시간은 넉넉하게 남았는데 우산도 없는데 비가 부슬부슬 내려서
'어디 갈 데 없을까' 하고 폭풍 검색을 해보니 '제주시 기적의 도서관'이 근처에 있는 걸 발견했다. 오래전 MBC <느낌표>에서
'기적의 도서관' 프로젝트를 진행했다는 건 알았지만, 텔레비전에서만 봤을 뿐 실제로 가본 적은 없어서 마침 잘 됐다 싶었다. <말하는
건축가>를 보고 고 정기용 건축가의 건축물을 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터라 겸사겸사 찾았다.
지도를 보고 가만가만 따라가보니 제주시청 주변인데도 번화가라는 느낌보다는 평범한 주택가 같았다.
서울에서 흔히 '도서관' 하면 떠오르는 높은 건물이 눈에 띄지 않아 '이쪽이 아닌가' 하며 두리번두리번 걷다 보니 '제주시 기적의 도서관'
현판이 보였다. 고만고만한 단층집과 연립주택이 이어진 곳에 그리 튀지 않게 조성된 제주 기적의 도서관은, 도서관보다는 작은 공원 같은
느낌이었다. 작고 아담해서 주변 경관을 해치지 않고, 밝은 색 페인트가 아이들의 마음을 부르는 공간. 조금씩 비가 흩날리는 날씨였지만 도서관
앞에서 아이들이 익숙한 듯 삼삼오오 뛰놀고 있었다.
도서관에 들어서면 맨 먼저 신발 벗는 곳이 보인다. 그 옆에 "기적의
도서관은 이런 곳입니다" 하는 소개가 붙어 있었다. 어린이 책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어릴 때부터 책 읽는 습관을 기르는 일은 중요하다. 책을
학교에서 과제 때문에 억지로 읽어야 하는 것, 공부 때문에 억지로 읽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재미있는 놀이로 대해야 자라나서도
책을 놀이 대상으로, 지식을 쌓는 도구로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상대적으로 도시에서 자란 아이들은 책에 대해 쉽게 접근할 수 있지만,
지방에 사는 아이들은 서점에서 책을 읽기도, 도서관을 이용하기도 쉽지 않다. 몇몇 지방 도시에 세워진 '기적의 도서관'은 그 접근을 어느
정도나마 가능케 했기에 '작은 기적'이 된 것이 아니었을까.
잠시 여담이지만 제주도 자전거
여행을 하면서 장갑을 벗고 3시간 남짓 자전거를 탔더니 손등이 빨갛게 달아올라서 따가워서 견딜 수 없었는데, 도무지 약국이 보이지 않았다. 이틀
뒤에야 겨우 열상화상연고를 살 수 있었다. 인구 분포를
생각하면 약국이나 병원, 도서관 같은 시설이 부족한 것이 어쩔 수 없지만, 그렇게 손을 놓기에는 안타까웠다.
들어서면 보이는 열람실. 비 오늘 주말이었지만 그리
붐비지 않을 정도로 적당한 수의 아이들이 책을 읽고 있었다. 오른쪽에 보이는 계단으로 올라가면 2층에는 사무실이 위치해 있다. 책의 보존, 관리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도서관은 어둡고 형광등 불빛이 강하다는 인상이었는데, 제주 기적의 도서관은 시원스레 뚫린 통창으로 자연광이 쏟아졌다. 흐린
날이었는데도 바깥의 초록 풍경과 빛이 어우러져 그리 어둡지 않게 느껴졌다.
도서관 입구 오른편에 위치한 사서데스크. 이 공간은 여느
도서관과 다르지 않은 듯했다. 자동반납대 같은 전자화 설비도 갖춰져 있었다.
화장실 옆쪽으로는 자그마하게 북까페가 마련되어 있었다.
어린이 도서관이지만 아이들만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데려 온 부모님, 동네 어르신 등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책을 읽거나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었다. 정기간행물이나 신문 역시 이곳에 구비되어 있어 차를 마시며 읽을 수 있는 공간. 이곳 역시 탁 트인 창이 바깥 풍경과
이어졌다. 내려가는 계단은 아이들에게 맞춰져 적당한 높이로 되어 있었는데, 이곳에서 어린이를 대상으로 구연동화 같은 행사도 가능할 듯했다.
서가에 꽂힌 책들. 신간도서는 따로 서가가 마련되어
있었고, 다른 책들은 그림책, 읽기책이 여느 도서관처럼 십진분류로 정리되어 있었다. 꽂힌 책을 보니 손때가 탄 책이 많아 생각보다 많은 아이들이
이용하구나 싶었다.
어린이 책과 별도로 청소년과 성인을 위한 서가도 있었다.
이쪽도 전체적으로 책이 낡은 느낌. 어린이 도서관이다보니 청소년, 성인용 도서가 많은 편은 아니었다. 어린이책 서가는 아이들의 키높이에 맞췄다면
이쪽은 책장도 조금 더 높아 이용자의 성향에 맞춰 서가 배치도 구분되어 있는 듯했다. 베스트셀러, 세계문학전집, 청소년 소설, 실용서 등이
적당히 구색을 갖춰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