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딸은 딸이다 ㅣ 애거사 크리스티 스페셜 컬렉션 2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1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애거서 크리스티가 메리 웨스트매콧이란 필명으로 발표한 작품을 묶은 '애거사 크리스티 스페셜 컬렉션'의 두번째 책이 출간되었다. <봄에 나는 없었다>가 자기 자신이라는 보이지 않는, 아니 애써 보려 하지 않는 실체와의 대결이라면 <딸은 딸이다>는 엄마와 딸이라는 관계의 미묘한 갈등을 그려낸다. 현실에서도 모녀관계는 미묘하다. '엄마처럼 살기 싫다'는 식의 레퍼토리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꾸준히 나오지만, 정작 그러면서도 자기도 모르게 엄마처럼 사는 딸도 부지기수다. 앙숙처럼 만날 때마다 싸우는 모녀가 있는가 하면, 친구처럼 지내는 모녀도 있다. 부자, 부녀, 모자 관계와 달리 같은 여자이기에 생기는 공감(또는 연대)이 둘 사이에는 존재한다. "아들은 아내를 얻을 때까지만 아들이지만, 딸은 영원히 딸이다"라는 본문 속의 말처럼 말이다.
남편을 사별하고 딸 세라와 함께 조용히 살아가는 프렌티스. 당찬 딸을 자랑스러워하면서도 딸이 성장함에 따라 혼자 남겨질 자신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는 평범한 사십대다. 그렇게 평온한 일상이 이어지던 중, 세라가 3주간 여행을 떠나고 프렌티스는 그 사이 만난 지 얼마 안 되는 리처드와 사랑에 빠져 재혼을 결심한다. 하지만 의외로 세라는 리처드와 앙숙처럼 다투고, 프렌티스는 애인과 딸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결국 하나뿐인 딸을 선택한다. 자신의 사랑을 희생시킨 프렌티스는 그 일을 계기로 전과 달리 향락적인 삶을 살게 되고, 딸 세라에 대해서도 방임에 가까운 태도로 변한다. 돌이킬 수 없이 변해버린 모녀 관계. 이들의 삶은 어떻게 흘러가게 되는 것일까.
<딸은 딸이다>는 서로를 위한다고 한 행동이 어떻게 모녀 관계를 뒤흔드는가를 보여준다. 엄마의 행복을 위한다면 저 사람은 안 된다고 재혼을 반대하는 딸, 딸과 애인 사이에서 결국 자신을 희생해 재혼을 포기하는 엄마. 어디선가 본 듯한 패턴의 이야기지만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전개된다. 어떻게 보면 두 사람이 이런 과오를 저지른 것은 자신을 "진짜 자신보다 더 좋고 멋진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혈연관계라 할지라도 우리는 다른 누군가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다. 어떻게 포장하느냐에 따라, 혹은 정도의 차는 있겠지만 우리는 결국 자신에게 유리한 판단을 내린다.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다고, 다른 누군가를 위해 적절한 조언을 해줬다고 '믿으며' 살아갈 수는 있겠지만 우리는 모두 이기적이다. 여러 선택지 중에 자신이 고른 선택지를 '희생'이라고 포장하며 자위할 수 있겠지만, 자신의 행동이 어떤 영향을 불러일으켰는지 알아채기란 쉽지 않다. 이들 모녀 또한 그렇다. 엄마의 재혼을 계기로 서로의 마음에 앙금이 생기지만, 이를 화려한 사교생활을 누리는 것으로 가린 채 서로를 존중한다는 미명 하에 방임에 가까운 태도를 취할 뿐이다.
어떻게 보면 <딸은 딸이다> 또한 <봄에 나는 없었다>처럼 한 개인의 내적 자각과 맥이 닿는다. 화려한 장막이 거둬진 뒤 드러나는 서로를 향한 진심은 <봄에 나는 없었다>의 그녀가 대면한 자신의 민낯처럼 자신의 가슴을 찌른다. <봄에 나는 없었다>가 주인공 스스로 자신의 내면을 파고들어갔다면, <딸은 딸이다>에는 현실을 객관적으로 보게끔 이끌어주는 조언자가 있다. 프렌티스와 세라 모녀를 잘 아는 하녀 이디스, 그리고 세라의 대모이자 유명 심리상담사인 로라가 그런 역할을 한다. 물론 이들이 하는 말을 모녀가 받아들이느냐는 별개의 문제였지만, 조금은 냉소적인 태도를 가진 이들의 대화를 읽으며 모녀 간의 관계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인간의 본질에 대한 애거사 크리스티의 날카로운 시선은 여전했지만, 심리학 이론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 등 기존 작품에서는 만날 수 없었던 요소가 배치된 점이 흥미로웠다. 미스 마플이 냉소적으로 변하면 저렇게 될까 싶을 정도로 날카로운 통찰력을 가진 로라라는 캐릭터도 마음에 들었다. 모녀 간의 감정이라는 미묘한 심리를 풀어가는 전개에 큰 사건은 없었지만, 읽는 내내 긴장하게 됐고, 마지막 장을 읽으며 괜시리 엄마로서의 삶, 딸로서의 삶, 여자로서의 삶 등 다양한 위치로 존재하는 '나'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때로는 잔잔하게, 때로는 휘몰아치는 이야기는 결국 깊은 파장만을 남긴 채 잦아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