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을 베다
모옌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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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년 이래 내게 진정으로 해를 끼친 것은 역시 인간이었으며 진정으로 내게 공포감을 느끼게 한 것도 역시 인간이었다. -10쪽

애당초 나는 어머니가 말씀하신대로 "이 세상에 들짐승이나 귀신, 요괴보다 더 무서운 것은 사람"이라고 단순히 알아들었으나, 지금에 와서야 나는 분명히 알 수 있게 되었다. 이 세상에 제아무리 사나운 맹수나 귀신, 요괴라 하더라도 이성과 지혜를 상실하고 양심을 저버린 인간보다는 더 무섭지 않으리라고. 이 세상에는 호랑이, 늑대, 이리 같은 맹수에게 다치거나 목숨을 잃는 사람이 분명 있고, 또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귀신이나 요괴에 대한 전설도 분명 있기는 있다. 그러나 수천수만의 인간을 비명에 죽게 만드는 것도 인간이며, 수천수만의 인간을 학대받게 만드는 것도 역시 인간이다. 그리고 이런 잔혹한 행위를 합법화시키는 것이 암흑 정치요, 이런 잔혹한 행위를 포상하고 권장하는 것이야말로 병든 사회다. -11~2쪽

우리는 눈짓을 교환했다. 도무지 구제할 약이 없는 이 위대한 시인에게 감탄해마지 않을 따름이었다. 그렇지 않은가? 위대한 예술가는 모두들 이렇게 치정에 얽매여 있는 것이다. 그렇다, 치정에 얽매일 줄 모른다면, 위대한 예술가라고 할 수도 없으니까. -86쪽

자전거 살 돈이 없는 터라, 우선 대대본부에서 차용했다. 국가에서 경영하는 공급판매합작사에서 면포를 살 수 있는 배급표 두 장을 나눠주었을 때, 아버지는 내 어머니에게 한 장을 남겨주어 모슬린 천 바지 한 벌을 지어 입혔다. 돈이 없으니까 또 우선 대대본부에서 빌려 썼다. 내 어머니는 그래도 이 점이 걱정스러워 내 아버지한테 말했다. "이러다가는 인민 군중들이 반발하지 않을까요?" 그러자 내 아버지가 말했다. "혁명이란 누가 뭐래도 좋은 점이 있어야지. 좋은 점이 없다면 누가 혁명 따위를 하겠어? 마오 주석께서도 전에 이런 말씀을 하셨지. 절대평등주의에 반대하려면 장교가 말을 탈 때 사병도 말을 타야 하는데, 타고 다닐 마필이 어디 그렇게나 많겠는가? 누구나 평등하게 말 한 필을 탄다 하더라도 역시 장교가 타는 게 좋을 것이다……"-144~5쪽

"너희들 바깥에 나가서 해야 할 말은 하고 웃고 싶으면 마음대로 웃어도 좋아. 하지만 가슴속에 묻어둔 일일랑 남한테 드러내 보이면 안 되는 거야. 사람이란, 아무 일도 엇었을 때에는 담보가 커선 안 되지만, 일단 무슨 일이 눈앞에 닥쳤을 때에는 겁쟁이가 되어서도 안 돼. 남들이 아직 널더러 뭐라고 하지 않는데 자기부터 지레짐작으로 먼저 오그라들고 맥이 빠져서야 되겠니. 너희들, 모두 허리 쭉 펴고 떳떳이 다녀야 해. 속담에 '적이 쳐들어오면 장수를 내보내 막고, 홍수가 나면 흙더미로 막아야 한다'고 했어. 이런 세상에서는 넘어가지 못할 산도 있고 건너지 못할 강물도 있지만, 하루하루 살아가지 못할 세월은 없는 법이야!" -195쪽

이 세상에서 남자의 인성을 검증할 가장 좋은 사례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미색, 두번째가 바로 미식입니다. 미색에는 그래도 저항할 사람이 있겠지만 미식에만큼은 저항하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사람은 몇 해 동안 여인을 건드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이를 사흘 남짓 굶긴 다음, 그 눈앞에 맛있는 과자를 두어 개쯤, 그리고 고깃국 한 대접을 놓고, 그더러 개 짖는 소리를 한 번 흉내 내야만 먹을 수 있다. 개 소리를 내지 않겠다면 못 먹는다고 조건을 달았을 때, 내가 보기에 배겨날 사람은 하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233~4쪽

하긴 세상만사 어느 것이든 곰곰이 따져보면 이상야릇하지 않은 것이 없으리라. 철두철미하게 따져보지 않으려거든 차라리 생각하지 않느니만 못하다. -245~6쪽

우리 같은 세대에 살아온 사람들은 눈물을 너무나 많이 봐왔어! 눈물 짜낸 얼굴 뒤편에 거짓과 위선이 있고 진정과 성실도 있긴 하지만, 역시 더 많은 것이 위선과 거짓이야! 모스크바는 애당초 눈물 따위 믿지 않으니까, 솔직히 네가 저지른 죄를 인정하고 용서를 빌어라! -4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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