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마흔한 살이 되자 한 사람의 미래가 통째로 걸린 일이란 거의 없다는 걸 알게 됐다. 인생은 사람들이 막연히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탄력적이고 유연했다. 전쟁중에 구급요원으로 봉사하면서 앤은 처음으로 인생의 사소한 것들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가벼운 시샘과 질투, 소소한 기쁨, 목에 쓸리는 옷깃, 꽉 끼는 구두를 신은 동상 걸린 발, 이 모든 것이 언제라도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엄청난 사실보다 훨씬 즉각적으로 중요했다. 사람들은 엄숙하고 저항하기 힘든 사실에는 아주 빨리 익숙해졌고, 사소한 것들에 연연했다. -16쪽
그녀는 인간의 본성이 지닌 독특한 모순에 대해서도 얼마쯤 알게 됐다. 과거에는 젊은 사람다운 독단에 빠져 사람을 흔히 '착하다' 또는 '나쁘다'로만 평가했지만 사람을 평가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배우게 됐다. -16쪽
진실을 부정하지 마. 요람에서 무덤까지 같이 갈 동반자는 세상에 딱 하나, 나 자신뿐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지. 그 동반자와 사이좋게 지내야 해. 자신과 사는 법을 배워. 그게 답이야. 언제나 쉬운 일은 아니지만. -21쪽
"다 큰 딸에게 결혼한다는 말을 할 때는 누구나 바보 같다고 느껴요." "사실 난 그 이유를 모르겠어." "젊은 사람들은 우리가 이제 그런 일과는 무관하다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이죠. 그들에게 우린 늙은이예요. 그들은 사랑을-사랑에 빠지는 것을-청춘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해요. 중년이 사랑에 빠져 결혼한다는 건 그들에게 우스꽝스러운 일일 뿐이에요." "우스꽝스러울 거 하나 없어." 리처드가 날카롭게 받아쳤다. "우리에게야 그렇죠, 우린 중년이니까."-90쪽
케이크를 직접 만드는 것보다 남에게 어떻게 만들라고 말하기가 언제나 더 쉬운 법이죠. 그 편이 한결 재밌기도 하고. 하지만 인성에는 해로워요. 내가 매일 점점 더 혐오스러운 인간이 되어간다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어요.-134쪽
일이란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게서 도망칠 때 쓰는 유용한 방법 중의 하나라고 로라는 말하곤 했다. 또 거짓 없이 겸손과 만족 속에서 자존심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만이 인생의 진정한 조화를 얻는 길이라고 말했다. -172쪽
"희생이 어려운 건 일단 시작되면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거야! 그건 계속해서……" 앤은 놀라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무슨 뜻이죠, 로라?" "아무것도. 잘 있어, 앤. 그리고 이 말 한마디만 명심해, 심리학자로서 하는 말이니까. 생각할 시간이 없을 쩡도로 살지는 마."-211쪽
"그래요, 솔직히 말해서 제가 늙어가고 있기 때문일 거예요. 이제 중년이고 미모도 사그라지고, 앞으로 기대할 게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이런, 이 친구야! 기대할 게 아무것도 없다고? 앤에겐 튼튼한 몸과 괜찮은 머리가 있어. 중년이 될 때까지는 신경쓸 시간조차 없는 일이 정말 많아. 전에도 내가 말했을 거야. 책을 읽고, 꽃을 가꾸고, 음악을 듣고, 그림을 보고, 사람을 만나고, 햇볕을 쬐는 일…… 이 모든 것이 패턴으로 복잡하게 얽힌 걸 우린 인생이라고 하지."-250쪽
"희생이라니! 얼어 죽을 희생! 희생의 의미가 뭔지 잠깐이라도 생각해봐. 그건 따뜻하고 관대하고 기꺼이 자신을 불사르겠다는 기분을 느끼는 영웅적인 한순간이 아니야. 가슴을 칼 앞에 내미는 희생은 쉬워. 왜냐하면 그런 건 거기서, 자기의 본모습보다 훌륭해지는 그 순간에 끝나니까. 하지만 대부분의 희생은 나중까지-온종일 그리고 매일매일-끌어안고 살아야 하는 거고, 그렇기 때문에 쉽지가 않아. 희생을 하려면 품이 아주 넉넉해야 하지."-252쪽
"우리 인생 고민거리의 절반은 자신을 진짜 자신보다 더 좋고 멋진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데서 생기지."-252쪽
아들은 아내를 얻을 때까지만 아들이지만, 딸은 영원히 딸이다. -280쪽
"내가 봐줄 수 없는 일이 두 가지 있어. 하나는 자기가 얼마나 고결한 인간인지 자기가 한 일에 무슨 도덕적인 이유가 있는지 떠들어대는 일, 또 하나는 자기가 얼마나 나쁜 짓을 저질렀는지 꼐속해서 후회하는 일이야. 양쪽 말 다 사실이겠지, 자기 행동의 진실을 깨닫는 거라는 점에서는. 그래야 하는 거고. 하지만 그랬으면 넘어가야지. 시간은 되돌릴 수 없고, 이미 일어난 일을 없었던 일로 할 수도 없어. 계속 살아가야지." -3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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