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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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종류의 일은 금세 소문이 된다. 그리고 소문은 자칫하면 진실보다도 더 그럴싸하게 들리고, 거무죽죽하게 흐려지는 법이다. -41쪽

저는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을 알 수 없게 되고 말았습니다. 사람이라는 존재가 너무나 무서워지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그제야 입을 다문다. -44쪽

"나와 바둑을 두는 적수들의 경우에는 이곳에서 그야말로 승부의 흑백을 다투었지만 네 경우는, 그렇지,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흑과 백을 견주어 본다는 뜻이 되려나. 반드시 백은 백, 흑은 흑이 아니라 관점을 바꾸면 색깔도 바뀌어 그 틈새기의 색깔도 존재한다는-음, 그래." -9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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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넷 2012-03-18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써 읽기 시작하셨네요. ㅋㅋ

이매지 2012-03-18 23:07   좋아요 0 | URL
벌써 다 읽었어요. ㅎㅎ
 
짐승의 길 - 상 세이초 월드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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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쓰모토 세이초와의 첫 만남은 <모래그릇>이었다. 그 당시(2007년)만 해도 마쓰모토 세이초의 작품 가운데 <너를 노린다> <점과 선> <모래그릇> 정도만 쉽게 구할 수 있었는데, 세 작품 중 뭘 먼저 읽을까 고민하다가 셋 중 가장 평점이 낮았던 <모래그릇>을 골랐던 기억이 난다. 큰 기대 없었기 때문일까. 다소간의 아쉬움은 있었지만, 나름대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내친 김에 드라마 <모래그릇>을 찾아봤고 점점 마쓰모토 세이초의 작품 세계에 빠져들었다. 국내에 번역, 출간된 작품은 그리 많지 않았지만 일본에서는 그의 수많은 작품을 영상화했기에 마음만 먹으면 그의 작품은 쉽게 만날 수 있었다. 부지런한 일본어 능력자분(이분들에게 축복이 가득하길!) 덕분에 <검은 가죽 수첩> <의혹> <나쁜 녀석들> <역로> 같은 작품을 원작보다 먼저 접했다. 이렇게 마쓰모토 세이초의 몇몇 작품을 드라마로 만나긴 했지만 아무리 잘 만든 드라마라도 원작의 변형이고 대리만족일 뿐 그의 소설을 '텍스트로' 읽고 싶다는 욕심이 자꾸 커져갔다. 약 100편의 장편, 350편의 중단편, 여기에 에세이까지 더하면 1천여 편에 달하는 작품을 남겼던 마쓰모토 세이초. 일본미스터리가 붐처럼 인기를 끌었지만 주구장창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이나 소개될 뿐 마쓰모토 세이초의 작품을 만나는 길은 요원하게만 느껴졌다. 그러던 중, 역사비평사와 북스피어가 손을 잡고 '세이초 월드'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규모가 작은 두 출판사가 힘을 모아 함께 만든다는 것도 신선했지만, 무엇보다 '마쓰모토 세이초'가 아니던가. 기대는 점점 커졌고, 드디어 세이초 월드가 시작됐다.

  

  "짐승길: 산양이나 멧돼지 등이 지나다녀서 산중에 생긴 좁은 길을 말한다. 산을 걷는 사람이 길로 착각할 때가 있다"라는 정의로 시작하는 <짐승의 길>은 가지 말아야 할 길을 간, 한 여자의 이야기다. 뇌연화증으로 누워 있는 간지. 그런 간지를 부양하기 위해 고급 온천 여관에서 일하는 다미코. 집에 돌아올 때마다 간지는 다미코가 다른 남자를 만나지는 않을까 질투하고, 짐승처럼 그녀의 몸을 탐한다. 이런 생활에 조금씩 지쳐가는 다미코. 무능하고 병든 남편. 끝날 것 같지 않은 고통의 무게가 다미코를 점점 억누른다. 그러던 중, 여관에 손님으로 온 고급 호텔의 지배인 고다키가 다미코에게 잠시 '도구'가 되어보지 않겠냐고 "세상에는 이용당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이용하고 있는 사람들이 꽤 많이 있"다며 "당신도 그래 볼 마음이 없"냐고 묘한 제안을 한다. 설사 도구가 된다 하더라도 보통 사람의 행복을, 여자로서의 행복을 되찾고 싶었던 다미코는 집에 불을 내 남편을 죽이고 정재계를 쥐고 흔드는 기토 고타의 애인 겸 하녀로서의 새 삶을 시작한다. "자네도 기회만 있으면 얼마든지 이렇게 될 수 있어. 다만 중요한 것은 그것을 맞이했을 때의 마음가짐이네. 그만한 기회에 올라탈 수 있는지 어떤지는, 본인의 평소 준비에 달려 있거든"이라는 말처럼 다미코는 자신에게 찾아온 기회를 움켜쥔다. 하지만 그 댓가로 그녀는 인간의 길을 뒤로한다. 욕망의 길, 다시 말해 짐승의 길을 걷기 시작하는 다미코. 과연 그 길의 끝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짐승의 길>에서 다미코의 길을 대로(大路)라고 볼 때 그녀와 이어지는 몇 개의 간로(間路)가 있다. 모두가 간지의 죽음을 사고사라고 볼 때 다미코에게 의심을 품은 형사 히사쓰네. 그는 다미코를 법의 이름으로 심판하기 위해 쫓는 것이 아니라 그녀를 한번 품고자 하는 일념으로 그녀를 추격한다. 히사쓰네 외에도 뒤에서 정재계를 막론하고 세상이라는 무대를 조종하는 기토 고타, 그런 그를 은밀히 돕는 고다키 등의 인물의 행적이 뒤섞여 크고 작은 길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그 길은 도덕적인 삶과는 거리가 멀다. 그들이 지향하는 바가 부이건, 사회적 성공이건 행복이건 간에 그들은 어떤 의미에서 모두 비뚤어져 있다. 이들은 모두 자신이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잡힐 듯 잡히지 않고,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도 짐작하지 못한다. 그저 "행선지를 알 수 없는 탈것"에 올라탄 이들처럼 운명에 몸을 맡긴 채 파국을 향해 질주할 뿐이다. 하지만 이들이 다른 삶을 살 수 있었을까? 그때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짐승의 길에 들어서지 않았다면 그들이 과연 인간답게 살 수 있었을까. 그들은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선택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 그들의 삶은 시대로부터 주어진 것이었다고, 그들이 다른 선택을 했더라도 이 시대의 이 상황 속에서 어쩔 수 없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짐승의 길>은 더 서글프다. 뒷표지의 기리노 나쓰오의 말처럼 “인생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아등바등 살아도 어찌할 수 없는 것이 인생이라니.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배신을 일삼아 누구 한 사람 의지할 곳 없이 ‘혼자’ 살아가야 하는 인생이라니. <짐승의 길>을 읽으며 오히려 ‘인간의 길’이라고 생각해온 것이 얼마나 같잖은 것인가 싶어져 씁쓸했다.

 

  드라마화된 <짐승의 길>의 주연도 요네쿠라 료코이긴 했지만 책을 읽으면서 자꾸만 다미코와 요네쿠라 료코의 이미지가 겹쳐졌다. (하긴 2000년대에 드라마화된 마쓰모토 세이초 작품의 주연은 거의 요네쿠라 료코의 몫이었던 것 같다.) 내가 본 마쓰모토 세이초 드라마에는 팜므파탈이 등장하는 경우가 많아서 내심 다미코도 그런 캐릭터가 아닐까 싶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그녀가 측은해졌다. 그 누구도 그녀를(혹은 나를) 온전히 이해해줄 수 없지만, 그저 그 이야기에 잠시 귀를 기울였다는 것으로, 그녀에게 잠시 마음을 열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운 책이었다. 바닥까지 내려가 인간의 어두운 면을 드러내는 것이 때로는 불편했고, 요즘 TV에서 하는 막장드라마 같은 느낌도 있었지만, 단순한 치정극이라고 치부하기엔 사회비판적인 내용과 인간에 대한 이해가 곁들여져 깊이 있는 독서를 할 수 있었다. 분량은 제법 되지만 페이지는 술술 넘어가 오랜만에 독서의 즐거움을 되찾아준 책. 앞으로, 길게. 그리고 즐겁게. 세이초 월드를 계속 즐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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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우맨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7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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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의 끝자락에 서점에서 우연히 만난 <스노우맨>. 검정색과 하늘색이 이렇게 세련되게 어울릴 수 있구나 싶기도 하고 '스노우맨'인데 식상하지 않게 눈사람을 앞세우지 않은 점도 좋았다. 그냥 넘어갈까 하다가 마틴 스콜세지가 영화화한다는 띠지문안에 혹해 들춰봤는데, 별 거 아닌 것 같은 첫 문장이 묘하게 매력적이었다. "눈이 내리던 날이었다." <스노우맨>이라는 제목의 소설 첫 문장이 이거라니. 어떻게 보면 식상해보였지만, 전체적인 전개는 그렇지 않을 거라는 이상한 확신이 들었다. 북유럽문학이라는 새로운 장르(?)에 대해서는 다소 심드렁했지만(굳이 이렇게 규정지어야 하나 싶다), 요 네스뵈라는 새로운 작가를 만날 겸, 해리 홀레라는 새로운 캐릭터를 만날 겸 겸사겸사 이 두꺼운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점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었다.

 

  1980년 눈이 내리던 어느 날, 엄마는 아들을 데리고 내연남을 마지막으로 만나러 간다. 마지막 정사를 치른 방 창문 밖에서 그들의 모습을 눈사람이 지켜보고 있다. 그리고 돌아가는 길, 아들은 겁에 질린 채 눈사람을 봤다며 "우린 이제 죽을 거예요"라고 말한다. 그리고 2004년 첫눈이 내리는 날, 어느 집 앞에 커다란 눈사람이 집을 보는 듯 만들어져 있다. 그리고 얼마 후, 엄마는 목도리를 두른 눈사람만 남긴 채 사라진다. 첫눈이 내리고 눈사람이 나타나면, 남편이 있고 아이가 있는 한 여성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대체 그들은 왜 사라진 것일까? 눈사람은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요 네스뵈의 <스노우맨>은 6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지만 잠시도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스노우맨의 정체를 두고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이야기가 전개되어서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보다 등장 인물들이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일단 이 시리즈를 책임지고 있는 고독한 히어로 해리 홀레. 시리즈의 첫 권이 아니라 그의 자세한 과거사는 알 수 없지만, 해리 홀레에겐 뭔가 사연이 있다. (아, 사연 있는 남자는 잘 생기지 않아도 얼마나 매력적인가.) 끊임없이 그를 유혹하는 알코올과 한때는 뜨거웠던 전 여자친구 라켈과 그의 아들 올레그, 주변 동료들의 시기와 견제 등 해리는 많은 문제를 끌어안고 묵묵히, 하지만 치열하게 살아간다. 만약 해리 홀레가 슈퍼맨 타입이었다면 멋있었을지언정 몰입이나 공감은 힘들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워커홀릭이긴 하지만 일에만 매달리는 타입은 아니고, 고독하긴 하지만 고립되지는 않는다. 게다가 차도남 같은 해리는 자신의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달려든다. 해리 홀레 반장이라는 인물이 전무후무한 캐릭터라고 할 수는 없지만 사건사고 없이 마냥 평온할 것 같은 노르웨이라는 배경과 만나면서 시너지 효과가 일어나 더 멋있게 느껴진다.

 

  <스노우맨>에서 해리 홀레 이외에 매력적인 캐릭터는 카트리네다. 상대가 어떤 사람이든(젊은이든 노인이든) 10분도 채 되지 않아 침대로 함께 갈 수 있을 것 같은 강한 성적 매력의 소유자인 카트리네는 해리네 부서로 전근 오자마자 당신 소속이라고 하면서 실종사건에 바로 투입되어 그와 손발을 맞춰간다. 끊임없이 도발을 하고 저돌적인 자세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수사를 강행하는 카트리네. 그런 카트리네의 모습에 해리는 왠지 모르게 카트리네가 자신과 비슷한 부류임을 받아들이게 되고, 점차 그녀를 동료로서 인정하기 시작한다. 불같은 해리와 카트리네 사이에 이들의 뜨거움을 중화시켜주는 인물도 있다. 전 남친인 해리와 곧 결혼할 남친 마티아스 사이에서 왔다갔다 하는 라켈과 그의 아들 올레그는 스노우맨의 정체를 쫓는 긴장감 넘치는 추격 속에서 잠시 숨 쉴 여유를 만들어준다. 

 

  "우리 사회는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일부일처제가 아닙니다. 최근 스웨덴의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세상에 태어나는 아이들의 15퍼센트에서 20퍼센트 정도가 자신이 아버지라고 믿거나 짐작하는 사람이 친부가 아니라고 합니다. 무려 20퍼센트나요! 다섯 명 중 한 명 꼴이죠! 거짓된 삶을 사는 겁니다." 어쩌면 <스노우맨>은 차갑게 내리는(혹은 쌓인) 눈 때문이 아니라 이 문장 때문에 쓰여졌는지도 모른다. 자신이 거짓된 삶을 살아간다고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들. 그들은 마치 해리의 집에 생긴 곰팡이처럼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 그 자리에 자리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곰팡이가 집 전체를 망쳐버리듯이 거짓된 삶을 사는 이는 사회를 망쳐버린다. 하지만 요 네스뵈가 주목한 점은 거짓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 혹은 그렇게 살아가게 만든 부모에 대한 비판이 아니다. 사회가 애써 만들어놓은 울타리. 그 울타리의 경계가 과연 올바른 것인가라는 의문을 품게 하고, 겉으로 보기엔 멀쩡해보이는 세상이 사실은 얼마나 썩어 있는지를 일깨워준다. 해리 홀레 반장은 기존의 하드보일드 작품에서 만날 수 있는 캐릭터였고, 북유럽의 날씨만큼이나 서늘한 이야기였지만 여전히 난 북유럽 미스터리가 뭔지도 모르겠고, 굳이 나눠서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해리 홀레는 해리 홀레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니 말이다. 이어질 혹은 과거의 해리 홀레 이야기. 무척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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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지 컵케이크 살인사건 한나 스웬슨 시리즈 5
조앤 플루크 지음, 박영인 옮김 / 해문출판사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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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단 몇몇 소소한 불만은 뒤로하고 열 권 이상 꾸준히 출간되고 있다는 점에서 코지 미스터리 시리즈 하면 맨 먼저 떠오르는 한나 스웬슨 시리즈. 갓 출간됐을 때는 재미있게 읽었지만 '미스터리'보다는 '로맨스'에 초점이 맞춰지는 것이 어쩐지 아쉬워 꽤 오랫동안 손을 놓고 있었다. 그러다가 최근에 <파이 바닥의 달콤함>을 읽으면서 새삼 '그 언니(한나 스웬슨)는 잘살고 있으려나'라는 생각에 왠지 모르게 그리워졌다. 비슷비슷한 제목(그러니까 레몬 머랭이니 블루베리 머핀이니 설탕 쿠키니 어쨌든 디저트라는 점에서 시간이 지나면 다 고만고만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때문에 당췌 어디까지 읽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리뷰를 뒤지는 수고까지 극복(!)하고 마침내 시작한 <퍼지 컵케이크 살인사건>. 4~5년 만에 다시 만난 한나의 연애는 여전히 진행형이었다. 

  레이크 에덴에서 '쿠키단지'라는 베이커리 카페를 운영하는 한나. 핼러윈 데이는 다가오고, 경찰서장 선거에 출마한 제부 빌을 돕고, 경찰인 마이크와 치과의사 노먼 사이에서 간 보면서 데이트도 하고 레이크 에덴 사람들의 요리법을 모아 책을 쓰느라 바쁜 나날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한나는 요리교실에서 우연히 현재 경찰서장이자 빌의 경쟁자인 그랜트 서장과 만난다. 몹시 허기져하는 그에게 한나는 마침 만든 퍼지 컵케이크를 하나 건넨다. 그리고 얼마 후, 요리 교실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한나가 마주한 것은 옷에 퍼지 컵케이크 얼룩을 묻힌 채 덤프스터 안에 쳐박혀 있는 그랜트 서장. 또 시체를 발견한 것도 기가 막힌데, 경찰서장 자리를 놓고 경쟁한 제부 빌이 주요 용의자로 몰린다. 게다가 제부를 수사하는 것은 데이트중인 마이크. 한나는 제부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서 또 한 번 수사에 뛰어든다.

 

  앞선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한나는 이번에도 '시체 찾기의 달인'다운 면모를 보인다. 레이크 에덴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사람이 죽었다 하면 한나가 있다니, 이거 무슨 한나가 김전일도 아니고 싶기도 하지만, 이런 걸 걸고 넘어지면 끝이 없으니 논외로 하기로 하자. 어쨌거나 한나는 또 한 번 시체를 발견하고, 수사에 나선다. <퍼지 컵케이크 살인사건>을 보면서 문득 생각난 미국드라마가 있다. <위기의 주부들>이다. 남들이 보기엔 평화롭고 행복해보이는 가정. 하지만 알고 보면 그들 가정은 균열로 가득 차 있다. 그랜트 서장 부부도 그렇다. 아들이 자동차 사고로 먼저 세상을 떠나긴 했지만, 남들이 보기에는 크게 문제가 없어 보였던 그랜트 서장 부부. 하지만 이들 부부는 이혼하지 않은 것이 신기할 정도로 금이 가 있었다. 남편이 죽은 다음에야 비로소 오랫동안 입고 싶어한 청바지를 꺼내 입는 아내라니. 어쨌거나 한나와 그의 동생 안드레아는 수사를 하면서 그랜트 서장이 숨겨왔던 비밀을 하나씩 알게 되고 실마리를 따라 사건의 본질에 조금씩 다가간다.

 

  살인사건에 대해서야 중반 이후에 범인의 정체가 쉽게 노출되어 맥이 빠질 지경이었지만(그래서 마지막에 범인과 대치하는 부분에서는 고생한 한나에게는 미안하지만 식상했었던), 한나가 마이크, 노먼 두 남자와 밀당을 하는 과정은 재미있었다. 만나면 편안한 노먼이 학회 때문에 마을을 떠난 사이 한나는 열정적인 마이크와 데이트를 한다. 하지만 그마저도 마이크가 그랜트 서장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빌을 올리면서 한나와 마이크의 사이는 소원해진다. 그리고 그 와중에 마이크는 새롭게 등장한 금발머리 비서와 함께 다니며 한나의 질투를 불러일으킨다. 두 사람 중에서 어느 한쪽도 선뜻 선택하지 못하면서 두근두근한 나날을 이어가는 한나. 그녀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의미가 있었다. 이런 데서 대리만족을 하다니, 싶어지지만 그 또한 한나 스웬슨 시리즈가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여전히 먹음직한 레시피(라고 해봐야 그림의 떡)와 밀당 연애담, 그리고 시체가 등장하는 한나 스웬슨 시리즈.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니 대체 다음 번에는 어쩌나 싶어 최대한 빨리 <설탕 쿠키 살인사건>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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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넷 2012-03-12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만 좀 밀당했으면...ㅋㅋ 두권읽고 말았던가 그랬네요. 코지 미스터리 나름의 맛이 있긴 하지만서도 영 지루해서요.

이매지 2012-03-12 10:06   좋아요 0 | URL
이게 남자분들이 보기에는 좀 오글거릴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저도 대리만족이지 말입니다. ㅎㅎㅎㅎ

BRINY 2012-03-12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밀당도 밀당이지만, 작은 마을에서 살인 사건이 참 많이 일어나더라구요!

이매지 2012-03-12 10:31   좋아요 0 | URL
살기 고달픈 동네 레이크 에덴. ㅎㅎㅎ
사람도 너무 많이 죽고, 맨날 한나가 발견하고. ㅎㅎ
 
조선의 탐식가들
김정호 지음 / 따비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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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란 백성들의 밥을 해결하는 것이다. 혁명이란 정치권력만 바꾸는 것이 아니고 밥을 해결하는 것이다. -13쪽

식시오관
·음식을 보면 그 속에 담겨 있는 노고를 헤아리고, 그것이 어디서 나왔는지 생각해 보라.
·자신의 덕행(德行)이 완성되었는지 결여되었는지를 헤아려서 공양(供養)을 받아야 한다.
·마음을 절제하여 지나친 탐욕을 없애는 것으로 근본을 삼아야 한다. 특히 맛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까탈을 부리지 말아야 한다.
·음식을 몸에 좋은 약으로 알고 몸이 파리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먹어야 한다.
·군자는 도업을 먼저 행하고 그 다음에 음식 먹을 생각을 해야 한다. -16~7쪽

소는 유교식 제례에서 천자의 제상에 올리는 희생이기 때문에 육류 중에서 가장 지위가 높다. 조선 사대부들이 소고기를 귀히 여긴 까닭이 바로 거기에 있다. 그리고 소고기는 조선 사대부들에게 기분 좋은 음식이었다. 그들이 문화적 본국으로 여겼던 중국 이야기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우심적에 담긴 왕희지 이야기, 설야멱(雪夜覓)에 담긴 송 태조와 보(普) 사이의 군신 관계를 뛰어넘은 우정 이야기는 참 멋스럽게 느껴졌다. 그런 이야기에 조선 사대부들은 한껏 기분이 고양되어 소고기를 찾았다. 화롯불에 우심을 구우며 왕희지인 양 폼을 잡아 보고, 설야멱을 먹으며 송 태조와 보의 허물없는 우정을 떠올렸다. 조선 사대부들에게 소고기는 고귀한 신분과 지위의 상징이었고, 문화인이라는 자부심을 느끼게 해 주는 음식이었다. -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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