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노우맨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7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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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의 끝자락에 서점에서 우연히 만난 <스노우맨>. 검정색과 하늘색이 이렇게 세련되게 어울릴 수 있구나 싶기도 하고 '스노우맨'인데 식상하지 않게 눈사람을 앞세우지 않은 점도 좋았다. 그냥 넘어갈까 하다가 마틴 스콜세지가 영화화한다는 띠지문안에 혹해 들춰봤는데, 별 거 아닌 것 같은 첫 문장이 묘하게 매력적이었다. "눈이 내리던 날이었다." <스노우맨>이라는 제목의 소설 첫 문장이 이거라니. 어떻게 보면 식상해보였지만, 전체적인 전개는 그렇지 않을 거라는 이상한 확신이 들었다. 북유럽문학이라는 새로운 장르(?)에 대해서는 다소 심드렁했지만(굳이 이렇게 규정지어야 하나 싶다), 요 네스뵈라는 새로운 작가를 만날 겸, 해리 홀레라는 새로운 캐릭터를 만날 겸 겸사겸사 이 두꺼운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점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었다.

 

  1980년 눈이 내리던 어느 날, 엄마는 아들을 데리고 내연남을 마지막으로 만나러 간다. 마지막 정사를 치른 방 창문 밖에서 그들의 모습을 눈사람이 지켜보고 있다. 그리고 돌아가는 길, 아들은 겁에 질린 채 눈사람을 봤다며 "우린 이제 죽을 거예요"라고 말한다. 그리고 2004년 첫눈이 내리는 날, 어느 집 앞에 커다란 눈사람이 집을 보는 듯 만들어져 있다. 그리고 얼마 후, 엄마는 목도리를 두른 눈사람만 남긴 채 사라진다. 첫눈이 내리고 눈사람이 나타나면, 남편이 있고 아이가 있는 한 여성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대체 그들은 왜 사라진 것일까? 눈사람은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요 네스뵈의 <스노우맨>은 6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지만 잠시도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스노우맨의 정체를 두고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이야기가 전개되어서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보다 등장 인물들이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일단 이 시리즈를 책임지고 있는 고독한 히어로 해리 홀레. 시리즈의 첫 권이 아니라 그의 자세한 과거사는 알 수 없지만, 해리 홀레에겐 뭔가 사연이 있다. (아, 사연 있는 남자는 잘 생기지 않아도 얼마나 매력적인가.) 끊임없이 그를 유혹하는 알코올과 한때는 뜨거웠던 전 여자친구 라켈과 그의 아들 올레그, 주변 동료들의 시기와 견제 등 해리는 많은 문제를 끌어안고 묵묵히, 하지만 치열하게 살아간다. 만약 해리 홀레가 슈퍼맨 타입이었다면 멋있었을지언정 몰입이나 공감은 힘들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워커홀릭이긴 하지만 일에만 매달리는 타입은 아니고, 고독하긴 하지만 고립되지는 않는다. 게다가 차도남 같은 해리는 자신의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달려든다. 해리 홀레 반장이라는 인물이 전무후무한 캐릭터라고 할 수는 없지만 사건사고 없이 마냥 평온할 것 같은 노르웨이라는 배경과 만나면서 시너지 효과가 일어나 더 멋있게 느껴진다.

 

  <스노우맨>에서 해리 홀레 이외에 매력적인 캐릭터는 카트리네다. 상대가 어떤 사람이든(젊은이든 노인이든) 10분도 채 되지 않아 침대로 함께 갈 수 있을 것 같은 강한 성적 매력의 소유자인 카트리네는 해리네 부서로 전근 오자마자 당신 소속이라고 하면서 실종사건에 바로 투입되어 그와 손발을 맞춰간다. 끊임없이 도발을 하고 저돌적인 자세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수사를 강행하는 카트리네. 그런 카트리네의 모습에 해리는 왠지 모르게 카트리네가 자신과 비슷한 부류임을 받아들이게 되고, 점차 그녀를 동료로서 인정하기 시작한다. 불같은 해리와 카트리네 사이에 이들의 뜨거움을 중화시켜주는 인물도 있다. 전 남친인 해리와 곧 결혼할 남친 마티아스 사이에서 왔다갔다 하는 라켈과 그의 아들 올레그는 스노우맨의 정체를 쫓는 긴장감 넘치는 추격 속에서 잠시 숨 쉴 여유를 만들어준다. 

 

  "우리 사회는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일부일처제가 아닙니다. 최근 스웨덴의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세상에 태어나는 아이들의 15퍼센트에서 20퍼센트 정도가 자신이 아버지라고 믿거나 짐작하는 사람이 친부가 아니라고 합니다. 무려 20퍼센트나요! 다섯 명 중 한 명 꼴이죠! 거짓된 삶을 사는 겁니다." 어쩌면 <스노우맨>은 차갑게 내리는(혹은 쌓인) 눈 때문이 아니라 이 문장 때문에 쓰여졌는지도 모른다. 자신이 거짓된 삶을 살아간다고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들. 그들은 마치 해리의 집에 생긴 곰팡이처럼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 그 자리에 자리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곰팡이가 집 전체를 망쳐버리듯이 거짓된 삶을 사는 이는 사회를 망쳐버린다. 하지만 요 네스뵈가 주목한 점은 거짓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 혹은 그렇게 살아가게 만든 부모에 대한 비판이 아니다. 사회가 애써 만들어놓은 울타리. 그 울타리의 경계가 과연 올바른 것인가라는 의문을 품게 하고, 겉으로 보기엔 멀쩡해보이는 세상이 사실은 얼마나 썩어 있는지를 일깨워준다. 해리 홀레 반장은 기존의 하드보일드 작품에서 만날 수 있는 캐릭터였고, 북유럽의 날씨만큼이나 서늘한 이야기였지만 여전히 난 북유럽 미스터리가 뭔지도 모르겠고, 굳이 나눠서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해리 홀레는 해리 홀레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니 말이다. 이어질 혹은 과거의 해리 홀레 이야기. 무척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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