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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달리아 1 ㅣ 밀리언셀러 클럽 53
제임스 엘로이 지음, 이종인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12월
평점 :
이 책은 현재까지 미제로 남은 사건 중 하나인 블랙 달리아 사건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실제로는 범인의 정체를 밝혀낼 수 없었지만 제임스 엘로이는 자신만의 결론을 내며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책을 읽기 시작할 때만 해도 LA 컨피덴셜의 원작자이긴 하지만 책으로는 어떨까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는데, 그만큼, 아니 그 보다 더 재미있는 책이었다.
LA의 헐리우드 시내 빈터(39번 노턴 로)에서 한 여자의 시체가 발견된다. 몸은 반토막이 나고 내장은 모두 사라지고, 입은 웃는 듯이 기괴하게 찢어진 채로 발견된 시체. 신원을 파악해보니 배우를 지망하는 엘리자베스 쇼트라는 여자로, 그녀에 대해 파헤치면 파헤칠수록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고 이 남자 저 남자를 만나며 창녀처럼 살았던 인물이 드러날 뿐이다.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지만 이런 저런 이해관계때문에 수사는 큰 규모로 시작되고, 언론에서는 엘리자베스 쇼트를 블랙 달리아(검은 옷을 입고 남자에 미친 타락녀)라고 지칭하며 이 사건은 블랙 달리아 사건이 된다.
이 블랙 달리아 사건을 쫓는 사람은 한 때는 권투선수였지만 일본인 친구들을 팔고 경찰이 된 버키 블라이처트. 순찰이나 도는 말단의 일을 하던 그가 어느 날 또 다른 권투선수 출신의 경찰 리 블랜처드와 함께 경찰 예산을 통과시키기 위해 권투시합을 하게 되고, 그 결과 순찰에서 벗어나 영장국으로 자리를 옮긴다. 리와 그의 여자 케이, 그리고 블라이처트는 가족과 같이 오손도손 지내지만 블랙 달리아 사건으로 이들의 관계는 걷잡을 수 없이 끝을 향해 달려가게 된다.
영화 LA 컨피덴셜에서도 그랬지만 이 책에서도 당시 사회의 모습이 잘 반영되어 있다. 그리고 부패한 경찰과 겉으로 보기엔 좋은 사람이지만 그 뒤의 어둠은 끝이 없는 사람도 존재한다. 높은 위치의 관직자나 부자들의 비리에서부터 더이상 내려갈 곳이 없을 정도인 블랙 달리아의 생활까지 계층의 상하에 관계없이 썩어버린 사회의 모습을 보며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어린 시절 자신의 동생에 대한 기억 때문에 블랙 달리아 사건에 집착하는 리 블랜처드와 어느샌가 블랙 달리아의 환영에 사로잡혀 그녀와 비슷한 여자에 집착하는 블라이처트의 모습에는 연민이 느껴지기도 했다.
영화를 보듯이 잔인한 묘사가 서슴없이 나오기때문에 이런 류의 추리소설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본다면 섬뜩함을 느낄 수도 있을 듯 싶었다. 성적으로도 꽤 문란한 상황과 대사들이 나오기 때문에 밖에서 읽으면서도 괜히 주위를 신경쓰게 되기도. 쭉 잘 읽히는 감이 있지만 특히나 마지막 100여 페이지에서는 책에서 손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마력이 있었다. 이 작품 역시 LA 컨피덴셜처럼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책에 비해 영화에 대한 평들은 썩 좋지 않은 듯. 그렇지만 과연 영화에서는 주인공의 복잡한 심리와 갖가지 장면들을 어떻게 만들어놓았을지 궁금해서 실망할 때 하더라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내가 좋아하는 스칼렛 요한슨이 케이역으로 나오니!)
블랙 달리아가 입은 검은색 옷처럼 검은 빛으로 물들어 있는 이야기지만 그 어둠과 추악함이 사실적으로 그려져있어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