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 11일.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많은 사람들의 삶이 바뀌었습니다. 누군가는 조금 더 큰 목소리로 탈원전을 외치기 시작했고, 누군가는 대체에너지 사용에 좀더 관심을 쏟았으며, 누군가는 현대사회의 삶의 방식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경제성장을 미덕으로 여겨 끊임없이 '할 일'을 만들어내고, '더 빨리, 더 많이, 더 효율적으로'를 외치며 살아온 시대. 우리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경제적 풍요'가 아닌 우리 아이들과 자손들이 그들의 삶을 영위해나가기 위해 먹고 마실 공기와 깨끗한 물, 그리고 안전한 음식임을, 그리고 이 지구가 서로 나누고 도우며 살아가는 사회임을 깨닫는 이가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비약일 수도 있겠지만, 지난 4월 총선 때 녹색당을 지지한 1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어찌보면 하나의 증거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행복한 삶이란 무엇일까요?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 것일까요?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진 '슬로라이프'의 제창자이자 『슬로라이프』 『행복의 경제학』 등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쓰지 신이치 선생님은 '돈과 경제 성장'에만 초점을 맞춘 사람들의 '할 일' 리스트가 가족 문제를 비롯해 자살, 교통사고, 전쟁, 빈부격차 등 오늘날 우리가 안고 있는 수많은 문제의 근원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인간의 욕망에만 근거한 모든 '할 일'. 쓰지 신이치는 이런 욕망의 강박에서 벗어나지 않고서는, 우리를 자꾸만 쫓기게 하는 시간과 화해하지 않고서는 한발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그 대안으로 '하지 않을 일 리스트'를 제안합니다. 하지만 '하지 않을 일 리스트'는 소위 일을 효율적으로 수행한다는 의미의 '시간 관리술'이 아닙니다.
- "절대로 ~하지 않겠다"는 식의 단정적인 표현 쓰지 않기.
- 나무젓가락 쓰지 않기.
- 버스나 전철에 급히 올라타지 않기.
- 잠자는 시간 아까워하지 않기.
- 내일 할 수 있는 일은 오늘 하지 않기.
- 자동판매기 이용하지 않기.
- 식사시간에 일을 들고 오지 않기.
- 화장실에서의 시간을 소중히 하기.
이처럼 우리가 조금만 신경 쓴다면 어렵지 않게 실천할 수 있는 '하지 않을 일'을 제시합니다.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이런 작은 시작을 통해 '지금 이 순간'을 즐기게 되고, '잘못된 부분'을 줄임으로써 삶의 행복을 채울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전체 시스템을 한순간에 바꾸는 것은 어렵지만, 과잉과 할 일로 가득 찬 세상에서 기꺼이 '즐거운 불편'을 즐길 수 있는 여유를 찾는다면 효율과 경쟁에 치이는 삶에서 빠져나올 수 있고,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느끼게 되어 진정한 행복을 맛볼 수 있다는 어찌 보면 조금은 싱거워 보이는 주장이지만 읽고 나면 어느샌가 삶의 태도가 조금씩 바뀌게 되는 걸 느끼게 됩니다. 결국 행복은 마음의 여유에서 오는 것이로구나 싶었던 『슬로라이프를 위한 슬로플랜』. 한 박자 쉬어가고 싶은, 마음의 여유를 잃은 분들께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