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는 안녕, - 제1회 문학동네 대학소설상 수상작
이종산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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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는 안녕, 하고 말했다. 안녕, 하고 따라 해보았다. 안녕, 홀라, 헬로, 알로하, 오하이오, 니하오, 차오 안, 샬롬, 나마스테, 부에노스 디아스, 즈드라스트부이체, 도드리 덴, 사와디 크랍, 하바리 가니, 셀라마트 파기, 본 조르노, 세르부스. 열이곱 개의 안녕이었다. 텔레비전을 보면서 안녕 안녕, 하고 코끼리의 목소리를 따라 하다보니 목이 말라서 포도를 먹었다. -7쪽

_초음파로 말할 수 있다면 좋겠군.
그렇게 말하는 드라큘라의 목소리가 감미로워서 그건 안 될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깝게스리. -20쪽

_어떤 소원 생각했어요?
_하루 종일 같이 있어줘.
손목이 화끈거렸다. 드라큘라의 손이 매웠다.
_네 소원은?
_같은 거.
우리는 비긴 김에 서로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했다. -37쪽

_왜 말하지 않았지.
드라큘라가 말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다. 나를 만나러 온 게 아니었다. 나와 있고 싶어서 머무른 게 아니었다.. 그저 지나가던 중이었다고 왜 미리 말해주지 않았을까. 두번째였다. 동물원에서도 그랬다. 그가 하지 않았던 말 한마디가 우리가 나눴던 모든 말들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지나간 시간은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나는 너에게 무엇이었나.
민구를 내내 원망했다. 내가 했던 말들은 그냥 말이었다. 순간순간 나오는 대로 흘려보냈던 무의미한 소리들이었다. 그때에 우리는 서로가 필요했다. 나는 민구 곁에 있고 싶었다. 민구도 그랬다. 말보다 더 분명한 것들이 있었다. 마주 보며 웃는 순간들은 진짜였다. 그런 순간들을 내가 내뱉은 허황된 말들을 이유로 깨뜨리려는 민구를 이해할 수 없었다. 말들을 무시하지 못하는 민구를 경멸했다. 그러나 이제는 알 것 같았다. -98쪽

자유, 자유, 말로만 떠드는 놈들도 많았어. 밖에서는 숨죽이고 있다가 도서관 안에서만 독재니 부패한 언론이니 하며 욕을 했어. 하지만 놈들은 부끄러워할 줄은 알았어. 정치며 언론에 대해 욕을 하다가도 곧 부끄러워했어. 부끄러워서 술을 마셨어. 홍콩 할매나 빨간 마스크의 자질이 있는 친구들은 아니었어. 그런데 정부에서는 그런 친구들을 거리에서 내몰고 거리가 깨끗하고 평화로워졌다고 말하고 있었어.
거짓말이 옳은 시간이었어. 거짓말을 믿거나 묵인하거나 차라리 외면해야 했어. -111쪽

사람들은 진실보다, 그럴듯하게 꾸며진 말을 믿는다. 나는 검사가 뭐 그런 대사를 하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영화처럼 되지는 않았다. 사람들은 가장 그럴듯해 보이는 것을 믿고 그 믿음을 현실이라 부르는 것은 아닐까. -117쪽

_사랑을 하고 있어?
_모르겠어요.
_누가 있구나. 뭘 모르겠는데?
_내가 그 사람을 사랑하는지.
_그걸 왜 몰라. 어떤데?
_하루 종일 그 사람이 보여요.
_그럼 사랑하는 거지.
_모르겠어요. 내 감정을 믿을 수 없어요. 그 사람 없이도 살 수는 있을 것 같은데 겨우 이 정도가 사랑일까요?
_좋아하는 걸 대봐. 무엇이든지.
레몬, 구름, 사람, 달리기, 빛, 아이스크림, 관. 끝없이 생각이 났다. 하지만 그 정도로 좋아하는 건 천 가지도 댈 수 있었다. 결국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13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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