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 식스티나인의 감독인 이상일 감독의 작품이라는 점과 2007년 일본아카데미 영화상에서 11개 부문에서 수상을 했다는 점(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여우조연상, 화제상 등) 때문에 관심이 갔지만 뭔가 파팍 꽂히는 느낌이 없어서 계속 미뤄왔는데, 잠이 오지 않아 보기 시작했다가 되려 가슴이 두근거려 잠을 이룰 수 없게 만든 영화였다. 



  일본의 한 탄광마을. 한 때는 석탄이 검은 다이아몬드로 불리며 캐는 족족 돈이 됐지만 이제는 몰락의 길을 걷고 있을 뿐이다. 회사를 위해 탄광촌에 하와이언 센터를 세워 관광도시로 만들려는 계획이 생겼지만 어쩔 수 없이 많은 수의 광부들을 해고할 수밖에 없었다. 몇 십 년을 몸바쳐 일했지만 돌아오는 대가는 해고 통지서 한 장 뿐. 마을 사람들은 새로 생기는 하와이언 센터에 대해 비딱한 눈길로 쳐다본다. 한편, 하와이언 센터에서 훌라 춤을 출 댄서를 모집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사나에. 그녀는 탄광촌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이 뿐이라고 생각하고 친한 친구 기미코를 설득해 춤을 배우기로 한다. 하지만 도쿄에서 내려온 선생님인 마도카는 의욕도 없을 뿐더러 광부의 딸들이 프로댄서를 하는 건 무리라고 섣불리 생각한다. 하지만 우연히 그들의 열정을 보게 되고 본격적으로 춤을 가르치면서 상황을 달라지기 시작하는데...



  영화를 보기 전에는 몰랐지만 이 영화는 실화에 기반을 두고 있다. 실제로 1965년 혼슈 지방의 최대 탄광촌인 토키와 탄광에서 탄광촌 소녀들이 훌라춤을 배우기 시작했고, 현재 70세가 넘은 마도카 선생은 아직도 그 곳에서 춤을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탄광이 폐광이 되었고, 그것을 살리기 위한 방책으로 카지노가 생기기도 했다. 요컨대, 광산은 더이상 시대와 맞지 않는 산물이 되어버린 셈이다. 시대의 흐름 때문에 평생 자신이 몸담은 직업을 타의에 의해 그만둘 수 밖에 없는 상황은 안타깝다. 하지만 그 마을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감동을 안겨줬다. 남의 손가락질을 받으면서도, 자신의 꿈을 위해, 희망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춤을 추는 소녀들. 화려하지만 한 편으로는 애잔한 그들의 춤은 그래서 더 가슴에 와닿았다. 



  영화의 주연을 맡고 있는 아오이 유우는 사실 처음 영화로 만났는데, 영화를 보기 전에는 사실 크게 예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영화를 보고 나니 이 영화를 위해 그녀가 얼마나 노력을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아직 젊지만 프로근성이 있는 배우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예뻐보였다. (특히 씨익 웃는 모습이 귀엽게 느껴졌다)



  영화 자체는 사실 스토리만 봤을 때는 크게 매력적이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보면서 자꾸 뭉클뭉클했다. 자신은 광부로 살아가지만 하나 뿐인 동생의 꿈은 지켜주고 싶어하는 오빠의 모습, 처음에는 딸이 댄서가 되는 것을 반대했지만 결국엔 마음을 열어 딸의 꿈을 인정해주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결국엔 가족이 내 편이라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됐다. 처음에는 남이 자신에게 잘해주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고 밀어내고,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한 마도카 선생도 그곳에서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고, 나아가 사람다운 정을 나누고 사는 모습을 보며 짠한 느낌도 들었다. 회색빛의 탄광촌. 그 곳에서 빨갛고 노란 원색으로 치장한 훌라걸스의 모습은 어둠 속에서 빛나는 별처럼 반짝반짝 빛이 나고 있었다. 

   다소 빤한 스토리지만 그럼에도 큰 감동과 재미를 선사해준 영화였다. 아오이 유우의 팬이라면 당연히 봐야할 영화이고, <스윙걸즈>나 <워터보이즈> 류의 성장영화를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역시 추천. 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 불만을 가진 사람이 본다면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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씩씩하니 2007-06-27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너무 내용이 끌려요..따스한 내용이라...
영화관에 가야 볼 수 있는거에요,님??
아,,디비디나 모 그런거 있음 딱인데...

이매지 2007-06-27 17:35   좋아요 0 | URL
dvd가 곧 나오는 걸로 알고 있어요.
전 어둠의 자식인지라 어둠의 경로로 ^^;;

비로그인 2007-06-27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우양이 극우 영화에 출연했다느니 말이 많은데 청순하고 매력있는건 부인못해요.
전 극장에서 봤는데 재밌었어요. 일본 사투리도 웃기고 ^^

이매지 2007-06-27 22:19   좋아요 0 | URL
일본사투리 정말 웃기더군요.
어딘가 강원도 사투리 같은 느낌도 들고^^
 
정신분석에로의 초대
이무석 지음 / 이유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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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는 자기분석과 환자들의 분석을 통해서 이런 욕구와 갈등이 인간의 내면세계에 공통적으로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성의 부모를 사랑하고 동성의 부모를 라이벌로 느껴 질투하고 증오하는 가족 내의 삼각관계이다. 사내아이의 경우, 어머니를 독점하고 싶어하지만, 아버지라는 강하고 두려운 남성 때문에 좌절당한다. 어머니에 대한 자신의 욕망을 미워하는 아버지가 보복과 처벌을 할 것이라는 두려움에 빠지는데, 이 불안을 거세불안이라 한다. 사랑스러운 어머니에게 접근하고 싶지만, 아이는 두려움으로 접근할 수 없는 갈등상황에 빠진다.
프로이트는 이런 갈등을 '에디푸스 콤플렉스'라고 불렀고, 모든 신경증의 중심에 이 갈등이 있다고 했다. 이 갈등은 성숙한 부모를 닮아가면서 풀리는데, 이 동일화의 과정이 잘못되면 성도착이나 미숙한 성격장애가 남는다. 프로이트의 이론은 철저하게 경험을 기반으로 세워진 것이었다. 프로이트는 에디푸스 콤플렉스가 모든 신경증의 원인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것은 모든 인간이 경험할 수 밖에 없는 운명적인 것이라고 했다. -44쪽

전치란, 본능 에너지가 하나의 정신내용에서 다른 곳(생각, 기억, 이미지 등)으로 옮겨가는 것을 말한다. 전부에서 부분으로 대치될 수도 있고 그 반대도 가능하다. 그래서 일부분이 비슷해도 전체가 같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98쪽

'이드'는 본능적인 욕망과 욕구들을 말한다. 먹고 싶은 욕구, 성적 욕구, 사람을 때려 주고 싶은 공격욕구, 의지하고 싶은 욕구들이 모두 '이드'에 속한다. '이드'는 참을성이 없고 욕구를 연기할 줄 모르고 즉각적인 만족을 요구한다. 그리고 싫은 일이나 의무는 회피해 버리고 만족을 주는 일만 하려고 한다. 이런 원칙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쾌락원칙에 따른다고 말한다. (중략) 사람의 행동도 쾌락원칙에 따르는 '이드'가 지배하고 있는 사람은 이기적이고 참을성이 없고, 천박하며, 본능적인 행동을 함부로 하게 된다. -113쪽

성격의 또 다른 구조인 '초자아(superego)'는 4~5세 경부터 발달하기 시작한다. 초자아는 자신을 평가하고 비판하며, 도덕적 행동을 하게 한다. 양심이 여기에 속하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인격의 부분이기도 하다. "나는 예수님을 본받아 그분처럼 살겠다."는 '자아이상(ego ideal)'도 '초자아'의 기능에 속한다. 인간이 죄를 범한 뒤에 잘못을 깨닫고 죄책감을 느끼는 것은 이 '초자아'의 기능때문이다. '초자아'의 형성 과정은 거세불안을 느끼는 아이가 부모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서, 부모의 훈계와 교육 태도를 배우고 따르므로 형성된다. 마음 속에 부모가 내재화되어 형성되는 것이다. -1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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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다메 칸타빌레 14
토모코 니노미야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6년 3월
평점 :
절판


  마를레 오케스트라의 첫 지휘를 맞게 된 치아키. 그리고 그에 첼레스타 연주를 맡게 된 노다메. 하지만 사무직원의 오해가 점점 커져 노다메 대신 Rui가 첼레스타 연주를 맡게 된다. 라벨의 '볼레로', '마법사의 제자', 슈만의 '봄'을 연주하기로 한 오케스트라. 하지만 오케스트라의 매력을 전하기 용이하지만 실력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곡인 '볼레로'에서는 되려 상임 연주자들보다 엑스트라의 연주가 나았고, '마법사의 제자'는 중간까지는 그런대로 괜찮았지만 곡의 내용처럼 마법으로 물 긷는 일을 시켰던 빗자루가 폭주하여 멈추지 못하고 붕괴하는 것처럼 변해버렸고, 슈만의 '봄'은 '봄'이 아니라 '한겨울'로 변해버린다. 얻어맞고 또 맞아도 다시 일어서는 권투선수와 같이 연주는 무사히 마친다. 하지만 조금 자신감을 얻은 치아키는 다시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배워가기 시작한다.

  한편 노다메는 럭키 트리오와 함께 첫 공연에 나선다. 마치 만담을 하는 것 같은 폴과 프랑크를 두고 노다메는 그 사이에서 묘하게 균형을 잡으며 자신의 자리를 지켜간다. 또, 피아노 시험도 치르게 되는데... 투박하고 강한 개성만은 그대로인 노다메. 수많은 재능을 보아온 콩세르바투아의 교사들은 그녀의 연주를 듣고 좋은 말로 하면 개성적이지만 지나친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시험이 아니라 무슨 리사이틀을 들은 기분이라는 의견을 내놓는다. 과연 프랑스에서 노다메의 연주는 어떻게 다듬어질런지. 

  이번 권은 다른 이야기에 비해서 다소 무던히 묻어가는 느낌이 들어서 다소 아쉬웠다. 폭소를 터트릴만한 부분도 있었지만(스스로 선택한 것은 변태뿐이라는 치아키의 대사에서 뒤집어졌다) 대체로 다음 권의 도약을 위한 숨고르기의 느낌이 강했다. 첫 리사이틀을 갖게 된 노다메는 과연 어떤 연주와 관객의 반응을 얻어낼지, 치아키는 바닥까지 내려간 마를레 오케스트라의 명성을 다시 끌어올릴 수 있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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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TO READ 라캉 How To Read 시리즈
슬라보예 지젝 지음, 박정수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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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라캉에 관한 입문서로 몇 권 읽어봤지만 솔직히 이 책만큼 쉽고 재미있게 쓰여진 책은 보지 못했다. 이전에 지젝의 <삐딱하게 보기>도 도서관에서 빌려서 조금 읽어서 지젝과도 초면은 아니었지만, <삐딱하게 보기>는 미처 다 읽지 못하고 반납을 해서 제대로 만난 것은 아니었으니 어쩌면 이번이 지젝과의 제대로 된 첫 만남이라고 할 수 있을 듯. 어쨌거나, 자칭 '라캉 전도사'라고 하는 지젝은 소설과 영화 등의 접목을 통해 라캉에 대해 조금은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줬다. 지젝이 들어준 세부적인 예에 대해서는 이해를 했다고 해도 라캉의 이론에 대해서는 100% 이해는 못했을 뿐더러 이걸 작품에 적용하는 건 역시 힘에 부치긴 하지만. 

  1~3장은 대중문화와 결합을 해서 읽고 있기 때문에 비교적 수월하게 읽어갈 수 있었고, 4~6장은 다소 빡빡하긴 하지만 다른 입문서들보다는 가볍게 읽어갈 수 있었다. 진짜와 가짜, 환상에 대해서 좀 더 이해를 할 수 있었다는 점만으로 많은 도움을 받았다. 나아가 라캉에 대해 다른 책들을 좀 더 읽어볼까라는 욕심도 생겼고. 책의 마지막에는 라캉의 생애와 함께 보면 좋은 자료를 담아놨는데, 함께 보면 좋은 자료에서 언급한 <에크리>와 <세미나>가 아직 우리나라에는 출간되지 않은 것이 아쉬웠다. (하기사 나온다고 해도 과연 해석없이 읽어갈 수 있을 지도 의문이지만)

  워낙 재미있게 읽어서(라캉 이론의 어려움은 잠시 미뤄두고) how to read 의 다른 편들에도 관심이 생겼다. 곧 how to read 프로이트도 읽어볼 참인데 그 책은 어떨런지 조심스럽게 기대를 해본다. 라캉을 처음 접하는 독자라면 입문서로 읽기에는 이만한 책이 없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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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 2007-06-26 0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젝을 읽으시는군요. 관심있으시다면 브루스 핑크의 <라캉과 정신의학>도 권해드리고 싶네요~ 간결하고 난삽하지 않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매지 2007-06-26 01:31   좋아요 0 | URL
라캉의 임상과 관련된 책인가요?
일단은 비평론 레포트를 써야해서 읽고 있는 중인데
읽다보니 더 관심이 생기더군요^^
추천해주신 책 리스트에 올려놔야겠군요^^
추천 감사합니다 :)

마늘빵 2007-06-26 2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 이 시리즈 리뷰 올리셨군요. 좋았다니 끌리는데요. 근데 쌓아둔 책이 많아서 잠시 뒤로 미룹니다.

이매지 2007-06-26 21:14   좋아요 0 | URL
쉽게 읽혔는데 리뷰쓰기는 쉽지 않더군요 ㅎㅎ
아프님도 한 번 읽어보셔요^^

비로그인 2007-10-14 17: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지님 땡스투^^

이매지 2007-10-14 17:33   좋아요 0 | URL
이런 허접한 리뷰에 땡스투라니;;
부끄럽사옵니다 -
그러고보니 이 책 다시 한 번 읽고 싶어지는군요 ㅎ
 
스파르타쿠스의 죽음 막스 갈로의 로마 인물 소설 1
막스 갈로 지음, 이재형 옮김 / 예담 / 2007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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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스 갈로의 로마 인물 소설의 첫 권인 스파르타쿠스를 접하기 전에는 사실 스파르타쿠스에 대해서 잊고 있었다. 이전에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읽으며 얼핏 이름을 들어본 기억은 있었지만 워낙 오래되었던지라. 미리 예습 차원에서 <로마인 이야기 3- 승자의 혼미>를 읽고 <스파르타쿠스의 죽음>을 읽기 시작했다. 

  스파르타쿠스는 기원전 1세기 경의 트리키아 출신(소설에서는 트리키아의 왕자로 나온다)의 인물로 로마군과의 전투에서 패해 검투사가 된다. (책 속에서는 로마군에 입단했으나 적응하지 못하고 탈영한 뒤 다시 잡혀 검투사된다고 나온다) 검투사가 된 스파르타쿠스는 검투사 양성소에서 동료들과 탈주를 해 베수비오 화산으로 도망을 쳐 농성을 벌이기 시작한다. 노예제도에 억압되어 있었던 많은 노예들이 이들의 세력에 가세하게 되고, 스파르타쿠스의 세력은 점점 커져간다. 로마를 전복시킨다기보다는 그저 자유민으로서의 삶을 꿈꿨던 스파르타쿠스. 그는 과연 그가 얻고자 한 것을 얻을 수 있었을까?  

  당시 로마의 노예수는 200만 내지 300만명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로마 시민권을 소유한 성인 남자는 90만명, 로마 국가가 된 이탈리아 반도에 사는 60세 이상의 노인과 여자를 포함한 자유민의 수는 600만 내지 700만명으로 추산한다. 이는 속주민과 노예가 많았던 시칠리아 인구는 포함되지 않은 수이다.) 이들 노예는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는다. 아니 이 책 속에서도 보여지지만 이들은 '쥐새끼'같은 놈들이고, '짐승'같은 놈들이다. 스파르타쿠스의 아량(?)으로 살아남은 자의 입을 통해서 반란군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도 그들은 그들을 하나의 인간으로 대하기보다는 '미쳐 날뛰는 짐승'이라고 생각한다. 로마의 오만함. 그리고 자유민의 오만함. 

  이 책은 한 사람의 입을 통해서 전해지지 않는다. 때로는 이 사람의 입으로, 때로는 저 사람의 입으로. 이렇게 여러 사람의 입으로 '스파르타쿠스'라는 한 인물을 둘러싼 이야기를 진행한다. (정작 스파르타쿠스의 목소리는 찾을 수 없다만) 하지만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야하는 입장에서는 '이게 대체 누가 하는 얘기인지'라는 생각이 더 먼저 들었다. 차라리 각 챕터에 '00의 회고'라는 부분을 달아놓았더라면 더 이해하기 쉽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야기 속에는 매력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인물이 많이 등장한다. 왕자에서 검투사로, 그리고 노예들의 왕으로 살아가는 스파르타쿠스는 물론이고, 그의 곁에서 그를 돌보는 유대인 자이르와 디오니소스의 사제인 아폴로니아, 그리스인 포시디오노스 등의 인물들은 제각각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매력은 이 책 속에서 딱히 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핏빛이 난무한 이야기 속에서 그들은 그 핏빛에 묻혀 형상조차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기억되는 사람은 죽지 않는다."는 모토에 따라 스파르타쿠스는 다시 역사에서 걸어나왔다. 하지만 그의 모습은 뚜렷함을 남기지 못하고 다시 사라져버린다. 손에 잡힐 것 같은, 마치 내 곁에서 살아 숨쉬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인물이 아닌, 그저 활자 속에만 머물고 있을 뿐이다. 기껏 좋은 캐릭터를 고르고도 이것을 살리지 못한 느낌이 들었다. 

  뿐만 아니라 책을 읽으며 역자의 능력에 의구심을 품었다. 사실 책을 읽으면서 크게 번역에 딴지를 거는 편은 아니지만(나보고 하라고 하면 못하니까) 적어도 번역을 통해 생계를 유지해간다면, 그 언어는 물론이고 한국어 구사에도 능통해야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사 하나만 바꿔도 더 이해하기 쉬운 문장을 잘못된 어휘를 선택함으로써 더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었고, 이 점은 안그래도 밋밋한 캐릭터들때문에 집중하기 힘든 독서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되었다. 

  더이상 바닥만 내려다보며 살지 않고 당당하게 앞을 보고 걷고 싶었던 노예들. 하지만 그들은 애초에 진정한 자유를 가져본 기억이 없기 때문에 노략질을 일삼는 반란군에 머물러 버린다. 남의 물건을 강탈하고, 남의 여자를 강간하는 그들의 모습에서는 이 책의 띠지에 적혀 있는 것 같은 '정당한 전쟁'의 명분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것은 그저 억눌린 사람들의 분노의 폭발일 뿐 자유에 대한 갈망은 스파르타쿠스. 그의 갈망이었을 뿐이었다. 몸은 자유가 되었다 하여도 생각은 이미 노예의 것으로 굳어져버린 사람들. 그들에게 진정한 자유는 찾아오지 않는다. 내 몸의 자유보다는 정신의 자유. 그것이 더 소중한 것이고, 그것은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자유임을 느끼게 해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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