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한 사냥꾼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북스피어 / 2008년 2월
장바구니담기


나이 든 사람이 나서면 무슨 일이건 대충 수습한다. 그런 방식은 역시 안 좋은 게 아닐까? 감기에 걸리자마자 해열제를 먹어 눌러 놓았다가 오래도록 완쾌되지 않아 고생하는 일이 있다. 그런 경우와 마찬가지다. 어차피 오른 열은 열이 나게 두는 편이 낫다. 세상사란 모두 일정한 수위를 넘어선 뒤가 아니면 수습할 수 없는 법이니까. -262쪽

"미노루 씨는 나이보다 훨씬 어른스러워요."
도시미가 중얼거렸다.
이와 씨가 바로 말을 받았다. "하지만 애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어요. 아가씨도 내 나기아 되면 아마 싫어도 이해하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만, 사람이란 어쨌든 진짜 자기 나이보다 애가 되거나 어른이 되거나 할 수는 없게 되어 있어요. 나이를 먹으면 그만큼 늙는 겁니다. 어리면 아무리 까치발을 세워 키를 크게 보이려 해도 어린 상태인 거죠."
-263~4쪽

'우리는 모두 쓸쓸한 사냥꾼이다. 돌아갈 집도 없이, 거친 들판에 내던져진 외톨이다. 이따금 휘파람을 불어도 대답하는 것은 바람소리뿐이다.'
그 젊은이가 저지른, 변명할 길이 없는 끔찍한 살인 뒤에서마저도 고독한 휘파람 소리와 그 소리에 대답하는 공허한 바람소리가 들려오는 걸까?
그리고 그 부분은 이런 문장으로 마무리된다. 잠이 든 미노루 곁에서 이와 씨는 살며시 그 구절을 암송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사람을 사랑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늘 사람의 따스한 온기를 그리워한다.'
-280~1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쓸쓸한 사냥꾼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북스피어 / 2008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미야베 미유키의 단편들은 기본적으로 재미는 있지만 다 읽고나면 뭔가 아쉬운 느낌이 들어서 단편보다는 장편을 선호하는 편이었다. 그랬기에 이 작품도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봤는데 흥미롭게 읽어갔다.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이 겪는 일들이라 더 친근하면서도 현실적인 느낌이 들었다랄까. 물론 기존에 평범한 탐정이라고 내세웠던 <이름 없는 독>과 <누군가>의 스기무라 사부로가 있지만, 그는 아무래도 대기업 회장 사위였기 때문인지 역시 조금은 별나라 사람으로 보였기에 이 책 속에 등장하는 헌책방 주인인 할아버지와 그의 손자의 이야기가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 특히 <이와 손톱>을 읽어가며 본 <유월은 이름뿐인 달>의 경우에는 예전에 <판타스틱>에 소개된 바 있는데 그 때 못 읽었기에 더 반가웠다.

  책과는 인연이 없었지만 친구의 죽음으로 엉겁결에 친구의 헌책방을 이어가게 된 주인공 이와. 하나 뿐인 배은망덕한 손자 미노루의 도움을 받으며 그럭저럭 헌책방 운영에도 적응하고 있던 그의 앞에 이런저런 사건들이 등장한다. 똑같은 책을 잔뜩 남겨놓고 갑작스럽게 죽은 아버지의 생활에 대해 추리하는 남자를 만나기도 하고, 언니의 실종사건과 자신의 스토커를 연관짓는 인물을 만나기도 하고, 아동 학대 사건을 만나기도 하는 등의 다른 사람과 관련된 일들도 있지만 손자인 미노루의 연애와 관련된 이야기도 등장한다. 주인공도 등장인물도 모두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사람들이라서 그런지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왠지 이웃이나 친구의 이야기를 듣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또한, 이와 씨가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이 명석한 머리보다는 세월의 관록에서 나오는 것이라 그런지 더 흐뭇한 느낌이 들었다. 동네에서 자주 뵙는 인자한 할아버지의 이미지가 절로 떠오르는 느낌.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너무 무던한 전개로 인해서 어떤 긴장이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 정도. 할아버지와 손자가 티격태격하는 모습은 미소를 머금게했지만, 사건 자체만 본다면 너무 밍밍한 느낌. 다른 단편집에 비해서는 따뜻함이 감돌아 좋았지만 역시 미미여사의 단편은 뭔가 아쉬운 느낌. 아쉬운대로 이와 씨를 혹여 장편에서 만날 수 있게 될 날이 오지 않을까 조심스레 바랄 뿐. 이 책 덕분에 <이와 손톱>을 읽게 된 게 오히려 더 큰 성과가 아닐까 싶었던 책이었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넛공주 2008-04-06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좀 오래된 작품이라고 해서 사지 않았는데,이매지님 글 보니 역시 읽어야하나...하는 생각이.

이매지 2008-04-06 13:20   좋아요 0 | URL
기대보다는 아쉬웠지만 다른 단편집에 비해서는 괜찮았어요 :)

다락방 2008-04-08 1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읽어야겠어요. 마구 읽고싶어졌어요. 흣.

이매지 2008-04-08 22:44   좋아요 0 | URL
추리소설을 기대하고 보시면 실망하실 듯 싶지만
조손 간의 정을 느끼기엔 좋을 듯 ^^
 


기존에 범우사에서 출판된 바 있긴 하지만, <맨스필드파크>를 보고 다시는 범우사에서 번역된 책들을 보지 않는 관계로 미뤘던. 2학년 때인가 전공 교수님이 추천해주셨던 책이라 쭉 보고 싶기는 보고 싶었는데. 작년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예정작 리스트에 있을 때부터 손꼽아 기다렸던. 뭐 당장은 못 읽을테지만, 이제는 제대로 읽을 수 있겠구나라고 괜히 설렌다.





꾸준히 나오고 있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 다행히(?)도 작년에 출간된 책들도 아직 덜 본 관계로 이 책들의 순서가 올 때까지는 제법 시간이 걸릴 듯. 서점에서 얼핏 봤는데 두께가 제법 되는 듯. 뭐 재미만 있다면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은 금방 읽을 수 있지만.





<외딴 집>도 아직 못 봤는데 또 다른 미미여사의 시대작이 출간됐다. <외딴집>을 읽으신 분들이 미미여사의 시대작도 좋다는 평들을 많이 하셔서 기대되는 작품. <외딴 집>조차 언제 읽을 지 모르는 상황이 그저 안타까울 뿐. 흑.






<경제학 콘서트>도 재미있게 봐서, 2권에 관심이 간다. 경제라고 하면 막연히 어려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겁먹게 되는데 이런 책들로 인해 경제에 조금이나마 관심을 갖게 되는 듯.





평소에 즐겨보는 싸이월드 페이퍼인 '판타스틱 코스메틱'이 단행본으로 나왔다. 단순히 화장을 하는 방법에 대해서 소개하는 것이라면 사진으로 된 책들이 더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만, 화장에 생기초인 분들이 보시기엔 이 책이 거부감도 적게 들고 재미있을 듯. (대학 새내기들이 보면 딱 좋을 것 같은데.) 특히 화장과 관련된 에피소드들이 꽤 공감가는 게 많았던 ㅎㅎ 페이퍼에서 볼 수 없었던 내용들도 담겨있다고 하니 기대된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웽스북스 2008-04-02 0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 이매지님 생일선물은 요녀석들 중 하나로 해주면 되나요? ㅎㅎ
생일축하해요 이매지님!!!!

이매지 2008-04-02 19:39   좋아요 0 | URL
하핫. 아무것도 필요없어요 ㅎㅎㅎ
선물로 주신다고 해도 언제 읽을 지 기약할 수 없는 ㅎㅎ
마음만은 감사히받겠사와요-
 
이와 손톱
빌 밸린저 지음, 최내현 옮김 / 북스피어 / 2008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미야베 미유키의 <쓸쓸한 사냥꾼>의 출간을 손꼽아기다렸던 내게 어느 날 날벼락같이 들려온 소식은 <쓸쓸한 사냥꾼>에서 <이와 손톱>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 있어서 두 작품을 같이 낸다는 소식. 오랫동안 기다려온 입장에서는 다소 아쉬운 느낌이 있었지만 대체 <이와 손톱>이라는 작품이 어떤 작품이길래 그럴까하는 호기심이 들었던 것도 사실. 예정보다는 약간 미뤄졌지만 함께 출판된 두 권의 책을 잡아들고, 일단 <이와 손톱>을 읽어나가기 시작한 나. 슬렁슬렁 읽어나가려고 했는데, 어느새 봉인까지 풀어버리고 끝까지 달려나갔다. (출간 당시에는 결말이 봉인되어 있어서 봉인을 풀지 않고 가지고 오면 환불해준다는 마케팅을 했다고 하는데, 과연 이 책의 봉인을 풀지 않고 환불한 사람이 몇이나 됐을까 싶을 정도)

  서로 관계가 없어보이는 두 가지의 이야기가 교차되면서 등장하는 구성으로, 하나는 마술사인 한 남자가 우연히 한 여자를 만나며 겪게 되는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시체는 없지만 누군가 살해당했다는 증거만은 잔뜩 있는 사건에 대한 재판이야기이다. 사실 이렇게 보면 너무 단순한 스토리이지만, 이 책에는 그런 단순함을 뛰어넘는 이야기가 존재하고 있다. (줄거리를 말하는 것조차 스포일러로 여겨질 정도니 원.) 

  치밀하게 복수의 칼을 가는 주인공, 자신의 결백을 주장할 수도 없이 그저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 그리고 당하는 자는 결국 '누구지, 누구지, 누구지'라고 자신이 만든 끝없는 감옥에 갇혀버리는 과정 등이 긴장감넘치게 진행되고 있다. 증거물들에 대한 과학적인 분석도 힘든 시대 속에서(혈액형은 그저 A,B,AB,O형만 구분할 수 있을 뿐 DNA같은 건 알아낼 수 없다.) 벌어지는 범죄라서 그런지 오늘 날에는 다소 허풍같은 트릭이지만, 이 책이 쓰여졌던 시기를 고려한다면 충분히 충격적인 결말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간 추리소설 좀 읽었다는 독자라면 트릭에 대해서도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이 들어 시큰둥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단순히 빼어난 트릭의 유무를 떠나서 이 책이 주는 분위기에 더 빠져들지 않을까 싶다. 오랜만에 깔끔한 구성의 고전 서스펜스 작품을 본 것 같다. 군더더기라고는 하나도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는 작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정재승의 도전 무한지식 1 정재승의 도전 무한지식
정재승.전희주 지음 / 달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수학에 젬병이라 인문계로 방향을 틀었지만, 과학은 그런대로 좋아해서 지금도 가끔 과학과 관련된 책들을 읽곤 한다. 하지만 관심과 배경 지식과 비례한다는 법은 없기 때문인지, 자칫하다가는 너무 딱딱하고 어렵게 느껴져서 거부감이 드는 것이 과학분야의 책이었다.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면서도, 과학적 호기심을 해결해줄 수 있는 책을 꼽자면, 역시 <물리학자는 영화에서 과학을 본다>, <과학 콘서트>를 지은 정재승 박사의 책이 아닐까 싶다. 그런 그의 신작이 나왔다는 소식에 냉큼 읽게 된 책. 하지만 기대가 컸던 탓인지 다소 실망스럽기도 했다. 

  최근에 뒤늦게 일본의 아이돌그룹인 아라시에 대한 관심이 생겨 찾아보기 시작한 <D노 아라시>(우리 나라로 치면 <호기심 천국>이나 <스펀지>쯤의 레벨?)에서는 엉뚱하고 바보같은 갖가지 실험들이 등장한다. '대체 왜 저런 게 궁금한건가?'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어느새 그 실험에 빠져들어 같이 놀라고 같이 즐거워하곤했다. 이 책도 어떤 면에서는 그 프로그램과 비슷하다. 책을 읽을 때는 '오호~ 그렇군~'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정작 책을 다 읽고 나면 뭔가 얄팍한 지식만 쌓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고작 2페이지에 모든 것을 설명해놓고 있기 때문에 어떤 깊이있는 지식의 습득보다는 화장실에서, 아니면 심심할 때 재미삼아 과학이야기를 읽고 싶다면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존의 책들을 떠올리며 잔뜩 기대를 하고 봤는데, 과학에 대한 '책'이라는 느낌보다는 신문이나 잡지에 짤막하게 생긴 '토막 과학 지식'을 만난 느낌이 들었다. 책 사이즈도 핸디하고, 내용 구성도 아기자기한 느낌이 들어서 가독성은 좋았지만, 내용도 그렇고, 깊이도 그렇고 이래저래 아쉬움이 많이 남았던 책. 과학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나 중,고등학생들이 보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던 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