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많이 소개되지 않아서 아쉬운 작가 중에 한 명인 마츠모토 세이초. 일본 추리 문학을 언급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작가 중 한 명으로 <점과 선>, <모래그릇>과 같이 우리나라에 출간된 작품 뿐만 아니라 퍽하면 드라마화될 정도로 일본 내에서는 아직까지도 꽤 먹히는 작가가 아닐까 싶다. 이번에 마츠모토 세이쵸 100주년 기념으로 방영된 <의혹>도 국내에 출간되지는 않아서 처음 접하는 내용이었는데 한 번 보기 시작하니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재미있게 봤다. 



  억수같이 많은 비오는 날 이시카와현 카나자와리 카나자와 제 3부두에서 차 한 대가 바다에 빠졌다. 가까스로 헤엄쳐서 나온 아내(쿠마코)는 자신의 남편이 아직 차 안에 있다고 구해달라는 신고를 하지만, 남편은 싸늘한 시체로 발견된다. 긴자에서 마담을 했었던 점, 전과 4범이었던 점, 남편이 죽기 전에 든 팔억엔의 보험금, 남편은 전혀 수영을 못했다는 점 등의 그녀가 범인이라는 정황 증거는 수두룩했지만 실질적인 물적 증거는 없는 상황. 하지만 언론과 경찰은 그녀를 판결이 나기도 전에 범인으로 단정한다. 언론과 경찰을 대하는 그녀의 태도 또한 의심스럽기 그지 없는 상황. 이런 상황 속에서 그녀의 변호사는 자신의 지병으로 변호를 못하게 되자 믿을만한 변호사에게 변호를 넘긴다. 국선 변호사치고는 꽤 근성있는 변호사 사하라. 그는 과연 쿠마코의 무죄를 밝혀낼 수 있을까?



  자신의 본 모습을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고 항상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쿠마코. 13년 전 자신이 변호했던 범죄자에게 아내가 살해당한 아픈 경험이 있는 사하라. 쿠마코에 대한 여론몰이로 기자로서 성공길에 오르는 아키타니 등 다양한 인물들이 맞물려 부두에서 일어난 사건의 진실이 하나씩 밝혀지는데 마츠모토 세이초의 작품을 원작으로 하고 있어서 그런지 분명 어느 정도 손을 봤을텐데도 전형적인 마츠모토 세이초의 작품이라는 느낌이 들어서 만족스러웠다. (마츠모토 세이초의 작품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팜므파탈이 쿠마코랄까.)



  이 드라마에서 중심을 잡고 있는 사하라 변호사 역을 맡고 있는 타무라 마사카즈는 이전에 <후루하타 닌자부로>에서 본 적이 있었던지라 왠지 모르게 후루하타의 억양이라던지 행동이 떠올라 처음에는 입가에 웃음이 감돌기도 했는데,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점점 후루하타 경부보가 아니라 사하라 변호사로 보일 정도로 몰입하며 볼 수 있었다. 타무라 마사카즈 외에도 사와구치 야스코, 무로이 시게루, 마야 미키 등 꽤 괜찮은 배우들이 출연하고 있어서 스토리도, 연기도 한 편의 잘 만들어진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정말 이렇게 일본에서 스페셜 드라마로 마츠모토 세이쵸의 작품이 방영될 때마다 느끼는거지만 우리나라에도 모쪼록 마츠모토 세이초의 작품들이 더 많이 번역되어 나왔으면 하는 바람. 나처럼 마츠모토 세이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미스터리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볼만한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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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09-02-12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매지님 마쓰모토 세이쵸의 작품은 알게 모르게 국내에서 많이 번역되었을 겁니다.사실 70~80년대까지만 해도 국내에 알려진 일본 추리작가는 에도가와 란포,마쓰모토 세이쵸,모리무라 세이치 정도였으니까요.
에도가와 란포는 그 유명세때문에 잘 알려진거고 책은 2권(음수와 고도의 마인및 단편 몇개)뿐이었지만 나머지 두 작가는 의외로 많이 번역되었읍니다.대부분 오래되서 절판된데다가 두 작가 모두 사회파 추리작가여선지 기업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 많아 의외로 기업 소설로 둔갑된것이 많아서(책 표지나 제목이 야리꾸리한것으로 바뀐것이 꽤 돼죠) 잘 모르는 분들이 많으신것 같습니다.
마쓰모토 세이쵸의 작품은 이분이 워낙 다 작가여서 출판사의 경우 좋은 작품 선정의 애로성과 더불어 신 본격을 선호하는 요즘 추세에서 사회파는 한물 간 것으로 취급되기 때문에 좀 힘들지 않을까 하네요.
참고로 일본내 일부 추리 독자들중에도 마쓰모토 세이쵸가 본격 추리소설을 죽인 원흉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는데 실제 마쓰모토는 본격 소설의 부활이 필요하다고 주창했던 인물이라고 하는군요.

이매지 2009-02-12 14:18   좋아요 0 | URL
지금 그냥 헌책말고 구할 수 있는 건 3권 남짓 되더라구요.
본격 추리소설을 죽인 원흉이라니;;
안타까운 평이로군요 ㅠ_ㅠ

사실 일본 추리소설은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를 빼고는 현대작가 위주라
새삼 마츠모토 세이초를 들춰서 출간할 이유는 없을 것 같기도 해요.
그래도 이왕이면 다양한 작품을 맛보고 싶은 마음. 흑.

다소 2009-02-14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타무라 마사카즈... 왠지 마츠모토 세이초 드라마에 엄청 어울리는 마스크네요. 내용 상관 없이 보자마자 '우와!'했다는... 제가 생각하는 마츠모토 세이초의 어떤 이미지랑 굉장히 잘 부합해요. ^^;
그나저나 저도 마츠모토 세이초의 책이 활발하게 출간되지 않는 게 좀 의아했어요. 전 요코미조 세이시 소설들이 줄줄이(?) 나올 때 마츠모토 책도 재판이든 뭐든 많이 나올거라 생각했거든요. 아리스가와 아리스 책들이랑... 뭔가 시기적으로 옛날 분들이란 생각이 들지만서도 일본 추리계에서 한 획을 그었다면 그은 분들이라 그런 걸 홍보삼아 나올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참 조용해서 놀랐어요. 특히 마츠모토 세이쵸의 '검은 가죽 수첩'은 드라마로도 방영되어 인기를 끌었던 만큼 국내에도 출시되지 않을까 했는데 영 깜깜무소식;;; 책은 또다른 재미가 있는데..흠.

전 사회파 소설을 좋아해서인지 그런 분들 책들 많이 보고 싶은데...ㅜㅜ 그나저나 본격 추리소설을 죽인 원흉이라는 평가는 가혹하네요. 헉;

이매지 2009-02-14 22:03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요코미조 세이시는 김전일 할아버지라고 팔아먹을 수 있어서 나오는 게 아닐까 싶기도 ㅎㅎ 전후 일본 추리소설들이 나름 괜찮은 작품들이 많은데 국내에는 너무 최신작 위주로 소개되는 게 아쉬워요. 쩝.

검은 가죽 수첩을 비롯해서 나쁜 녀석들이나 손가락 등 마츠모토 세이초 스페셜 드라마는 꽤 자주 방영하는 것 같아요. 실제로 시청률을 봐도 꽤 높은 수치가 나오더군요. <의혹>도 20프로 넘었나 그정도 나왔더라구요.

저도 사회파 추리소설이 좋아요 ㅠ_ㅠ

카스피 2009-02-21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쓰모도 세이쵸의 책이 요런것도 출간되었네요.
필사의 게임 (풍림)
나비성 (성정)
파도의 탑 1, 2 (성정)
땅의 손가락 (성정)
특종을 노리는 사회부기자 (성정)
땅의 손가락 (성정)
바다에 남긴 유언 (예음)

이매지 2009-03-02 17:35   좋아요 0 | URL
그냥 조만간에 북스피어에서 나올 마츠모토 세이쵸 단편집을 기다릴래요. 흑
헌책방의 순례는 너무 힘들어요 ㅠ_ㅠ
 









실제로 마네의 연인이었으며 올랭피아, 풀밭 위의 점심 식사 등의 모델이었던 빅토린 뫼랑을 모델로 한 작품. 얼핏 느껴지는 분위기는 <진주 귀고리 소녀>랑 비슷하지 않을까 싶은데 실제로는 어떻게 흘러갈런지 궁금.





사실 이름만 보고서 그동안 젊은 작가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나이든(이제 불혹이라고.) 김별아의 세번째 산문집. 내 이익과 상관없는 일에는 침묵하고 내게 필요할 때만 행여 손해볼까 새된 목소리를 드높이는 사회가 되었다고 한국사회를 비판하며 외모지상주의, 물질만능주의, 영어지상주의, 몰개성주의 등 한국사회 전반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세상이 나를 모욕해올때 어떻게 하면 좋을지, 나처럼 소심한 사람들은 대리만족이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해본다.  

 

 

 

그러고보면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는 의외로 국내에 많이 소개되고 있는 듯. 이번에 원서의 제목을 대문짝만하게 쓴 2008년 1위작인 <경관의 피>가 출간됐다. 지난주였던가 드라마로 방영했었는데 시이나 킷페이나 에구치 요스케 등 나름 괜찮은 배우들이 출연하고 있어서 한 번 보고 싶었는데 언제 원작과 비교하면서 봐야겠다.


그외 관심가는 책들. (내용은 일단 나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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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tty 2009-02-12 0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나 관심서적 잘 보고 있어요 ^^
질문이 하나 있는데요, 제가 요즘 제프리 디버 소설을 읽기 시작했거든요.
매지님이 이것저것 많이 읽으신 것 같아서요.
시리즈 중 특히 재미있는 것 좀 추천해주세용~

이매지 2009-02-12 09:08   좋아요 0 | URL
제프리디버 시리즈는 국내에 링컨 라임 시리즈랑 <소녀의 무덤> 정도
출간되어 있어서 뭐라 추천해드리기가^^;;
그래도 개중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 작품을 꼽으라면,
첫 작품인 <본 콜렉터>랑 <사라진 마술사> 정도일 것 같네요 :)
사실 제프리 디버는 뭘 읽어도 재미있는 거 같아요 ㅎㅎ

카스피 2009-02-12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경관의 피가 재미있을것 같은데 두권의 압박이.....

이매지 2009-02-12 14:19   좋아요 0 | URL
드라마는 1권 2시간, 2권 2시간이라는 시간의 압박도 ㅎㅎ
사실 책 두께도 만만치 않죠^^;
뭐 재미만 있다면 금방 읽겠지만요

정의 2009-02-16 1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매지 님 덕분에 <마네의 연인>이 급땡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나저나 이번엔 빌 브라이슨 정상적인 페이지 수를 가지고
만나는군요. 아프리카는 너무 얇아서 실망스러웠는데. ^^;;

이매지 2009-02-16 20:24   좋아요 0 | URL
빌브라이슨 아프리카는 심하게 얇았죠;;
정말 30분이면 다 볼 정도였으니. 쩝.
<마네의 연인>은 표지가 일단 먹고 들어가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명화라고 하지만 들고다니긴 살짝 부담스러운 ㅎ
 
숨은 요새의 세 악인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일본 영화계에 있어서 거장이라 할 수 있는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작품을 리메이크한 작품. 이라서 본 건 아니고 순전히 마츠준때문에 앞뒤 가리지 않고 본 영화. 정작 뚜껑을 열어보니 시이나 킷페이나 나가사와 마사미, 아베 히로시 등 나름 좋아하는 배우들이 잔뜩 나와서 나름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때는 전국시대. 서로 국경을 접하고 있는 세 나라가 있었으니 대국 하야카와에는 힘이 있으며, 하야카와와 동맹을 맺은 아즈즈키에는 부가 있고, 빈곤에 허덕이는 야마나는 야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 세 나라의 지배를 꾀하는 야마나의 군대는 아즈즈키로 침략해 들어가고, 격전 끝에 아키즈키성을 함락시킨다. 그러나 아키즈키 가문의 후계자인 유키 공주와 막대한 군자금은 사라지고, 야마나 군대는 이른 찾기 시작한다. 한편, 야마나 군에 의해 강제 노역을 당하던 광부 타케조는 자신의 가지고 있던 새가 이상한 반응을 보이는 걸 보고 곧 폭발이 있음을 인식하고 때에 맞춰 노역장에서 도망친다. 이 때 함께 도망친 신파치. 둘은 정처없이 산을 떠돌다가 우연히 계곡에서 나무가지 사이에 숨겨진 금을 발견한다. 하지만 그들이 금을 발견한 것을 알아낸 이들에게 잡힌다. 어떻게든 도망칠 궁리를 하다가 그들에게 금을 가지고 무사히 하야카와로 갈 방법이 있다는 말로 설득해 간신히 살아난 타케조. 그들은 나무 안에 숨겨진 금을 가지고 야마나를 거쳐 하야카와로 가는 모험을 시작하는데...



  뭐 이런 저런 소리를 많이 늘어놨지만, 이 영화는 아키즈키의 공주인 유키와 그녀를 지키는 로쿠로타, 그리고 평범한 백성인 타케조와 신파치가 온갖 위기를 모면하며 아키즈키의 재건을 도모한다는 것. 지극히 단순한 스토리지만, 원숭이처럼 변장(?)하고 있어도 반짝반짝 빛나는 마츠준의 모습을 보는 거나 나름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웃음을 불어넣는 신파치가 있어서 그렇게 지루하지는 않았다. 더불어 유키 공주가 험한 세상 속에서 백성들의 삶을 이해하는 모습이나 자신이 올바른 군주가 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모습 등도 영화의 재미를 더한 것 같다. (솔직히 마사미의 연기는 살짝 아쉬웠지만.) 아. 그리고 또 하나 타케조와 유키 공주의 은근슬쩍 로맨스도 굳.



  원작을 보지 않아서 딱히 비교는 못하겠지만, 나처럼 평소 마츠준을 좋아했던 이들에게는 색다른 영화가 되지 않을까 싶다. (마츠준도 이제 슬슬 도묘지 이미지를 벗어야 할텐데;;) 쿠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숨은 요새의 세 악인>은 조지 루카스가 <스타워즈>를 만드는 데 중요한 영감을 받았다고 언급했던 작품이니만큼 <스타워즈>를 좋아하는 이들도 보면 좋을 것 같다. (따지고보면 스타워즈나 숨은 요새의 세 악인이나 기본 골격은 비슷한 듯. 게다가 일본 사무라이의 복장은 보는 순간 '앗! 다스베이더다!'라고 했을 정도니;;) 큰 기대를 하고 보면 실망할 영화지만 별 기대없이 보면 의외로 재미있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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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rnleft 2009-02-07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키라 감독의 원작을 봤는데, 원작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스타워즈>랑 비교해보면 "영감" 정도가 아니라 거의 캐릭터와 플롯 자체를 SF의 옷을 입힌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영화 처음부터 나오는 두 콤비(타케조와 신바치)는 C3PO와 R2D2의 원형이겠죠.

리메이크에서는 타케조를 남자주인공 격으로 재해석했나 보군요. 원작에서는 그냥 개그 콤비인데 -_-; 중심 인물은 로쿠로타와 유키 공주.

이매지 2009-02-07 10:39   좋아요 0 | URL
원작에서는 개그 콤비라니 리메이크하면서 타케조 용 됐군요. ㅎㅎ
리메이크에서는 초반에는 타케조에 무게가 있고,
후반가서야 유키 공주한테 초점이 맞춰지는 것 같아요.
로쿠로타는 뭐 이 한 몸 유키공주를 위해서! 쭉 이 이미지로 나오구요.

사실 영화를 다 본 다음에야 스타워즈 관련 이야기는 알게됐는데,
애초에 알고 봤더라면 눈에 쏙쏙 들어왔을지 모르겠어요.
 
작전명 발키리 - Valkyrie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세계 2차 대전에 대해서는 별다른 지식이 없었기에 발키리 작전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없었다. 때문에 <작전명 발키리>가 개봉했을 때나 톰 크루즈가 영화 홍보를 위해 방한했을때도 별로 관심이 없었다. 몇 번이나 관심없었다고 말하기 입 아플정도로 관심이 없었지만 뭐 자의반 타의반으로 보게 된 <작전명 발키리>.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와서는 이 영화를 안 봤으면 후회했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 영화를 보고 싶어한 남친님에게 살짝 고마웠다. 

  히틀러의 독재 하에서 일말의 인간다움을 찾으려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자신들의 목숨을 걸고 히틀러 암살을 시도한다. 하지만 안타깝게 폭탄이 불발되버리는 바람에 히틀러는 또 한 번 살아남는다. 한편, 아프리카에서 복무중인 슈타펜버그 대령. 히틀러가 독일과 유럽을 파멸시키기 전에 누군가 히틀러를 막아야한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그가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병사들이 헛된 죽음을 당하지 않도록 병력 이동을 하는 것 뿐이다. 하지만 예기치않은 공습으로 슈테판버그는 큰 부상을 당하게 되고, 이에 사령부로 발령받게 된다. 그 곳에서 비밀 저항세력의 눈에 띄어 그들의 계획에 가담하게 되고, 발키리 작전을 구상하기 시작한다. 자신과 가족들, 그리고 많은 이들의 목숨을 건 발키리 작전. 과연 작전은 성공할 수 있을까. 

  일단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군더더기가 없다는 것이다. 오로지 발키리 작전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영화는 초반에는 공습을 퍼붓는 것으로 관객을 사로잡지만, 이후에는 발키리 작전이 진행됨에 따라 긴장을 조여간다. 째깍째깍 시간이 흘러가는 것이 몸으로 느껴질만큼 영화는 긴장감있게 진행된다. 때문에 2시간이라는 러닝타임이 전혀 지루하지 않을 정도였다. 물론, 발키리 작전이 실패로 끝났다는 점은 어찌할 수 없는 사실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사건이나 인물들의 감정의 변화 등이 한 편의 괜찮은 스릴러 영화를 보는 느낌을 안겨줬다. 

  시국이 시국이니만큼 영화를 보며 영화 속의 모습과 현실을 나도 모르게 비교해버렸다. 타인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모습이라던지, 발키리 작전의 성공을 위해서는 언론 장악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모습 등 어디선가 본 듯한 이야기가 영화 속에 그려지고 있었다. 세계사에 대해서는 그저 얄팍한 습자지 지식 뿐이었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단기적으로는 히틀러에 대해, 좀 더 깊게는 세계2차대전에 관한 책을 접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읽을만한 책들이 워낙 두꺼워서 당장은 어렵겠지만. 어쨌거나 별 기대없이 본 영화였는데 대만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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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09-02-07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스릴러물에 결말을 미리 알고 있다는것은 김빠진 사이다를 먹는것과 같다는데 발키리는 나름 이 단점을 잘 커버했다고 하더군요.

이매지 2009-02-07 16:51   좋아요 0 | URL
긴장감을 극대화시킬줄 알더군요.
사실 100프로 만족스러웠던 건 아니지만 괜찮았어요 :)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 - 시칠리아에서 온 편지
김영하 글 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월
구판절판


한 시간 가까이 차를 몰아 학교에 도착하면 수업 준비를 했다. 예술학교의 영민한 학생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사실 나는 선생으로서는 별 재능이 없는 편이다. 선생에게는 지식 외에도 많은 것이 요구된다. 친화력, 학생에 대한 애정, 그리고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잘 제시할 수 있는 표현력이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선생에게는 자신이 가르치는 것에 대한 확신이 필요하다. 이것은 매우 중요하며 따라서 너희들은 이것을 제대로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하는 식의 신념이 없다면 수업은 맥이 빠진다. 내겐 그런 믿음이 없었다. 과연 소설 쓰기라는 게 배워서 되는 것일까? 내가 가르치면 뭐가 좀 나아지는 것일까? 오히려 재능 있는 학생들을 망치는 것이 아닐까? 늘 이런 의심에 사로 잡혀 있었던 것이다. 이런 의심을 떨쳐버리기 위해 나는 강의 시간이면 더 큰 목소리로, 더 신나게 떠들어댔다. 그러나 그럴수록 내 내면은 더 쪼그라들었다. -20쪽

방송 역시 강의와 비슷한 면이 있다. 이것 역시 한 편의 쇼다. 정해진 시간에 시작되어야 하고 또 끝나야 한다. 그리고 언제나,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 손님들이 다녀간 빈자리에 남아 나는 아무도 돌보아주지 않는 내 내면을 스스로 감당해야 했다. 버스가 왔는데, 와서 모두들 그 버스를 타고 떠나는데, 나만 정류장에 남아 있어야 하는 기분이었다. 나도 저 버스에 타고 떠나야 하는데, 타고 떠나버려야 하는데, 아, 그러나 나는 정류장에 남아 있는 대가로, 그들에게 손을 흔들어주는 대가로 돈을 받는 사람이었다.
이것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고전적인 저주의 형식을 닮았다. 너는 소설가가 되고자 하는 아이들에게 마음껏 소설 쓰기에 대한 얘기를 해도 좋다. 그러나 절대로 그 시간에 네 자신의 소설을 써서는 안 된다. 너는 다른 사람의 예술에 대해 얼마든지 말해도 좋다. 신나게 떠들어라. 하지만 그 시간에 네 소설을 이야기하거나 그것을 써서는 안 된다. 나는 그 저주의 대가로 월급과 연금을 보장받고 꽤 쏠쏠한 출연료를 받았지만 집으로 돌아오면 뒤통수 어딘가에 플라스틱 빨대가 꽂힌 기분이었다. 쉬익쉬익, 기분 나쁜 바람 소리가 들렸다. -21쪽

소설 연재를 시작한 것은 학교를 그만둔 것과 거의 같은 시기였다. <퀴즈쇼>는 고정된 직장을 박차고 나와 전업 작가로서의 운을 시험하는 장편소설이었다.매일 책상 앞에 앉아 새로운 소설을 쓰는 일은 그래도 즐거웠다. 강의 준비를 하고 학교 운영에 관한 이런저런 회의에 참석하는 대신, 오롯이 소설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였을 것이다. 장편소설을 쓴다는 것은 고통스럽지만 실로 진귀한 경험이다. 단편소설과는 완전히 다르다. 하나의 세계와 다양한 인물들을 창조하고 그 안에서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경험이다. 자신만의 테마파크를 만들고 그 안에서 논다는 점에서, <찰리와 초콜릿공장>의 윌리 웡카 같은 인물과 비슷하다고도 할 수 있다. 그래서 장편소설을 일단 시작하고 나면, 그리고 그 세계가 자신의 질서를 가지고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 안에서 나와 일상을 마주하기가 점점 싫어진다.일상은 어지럽고 난감하고 구질구질한 반면 소설 속의 세계른 언어라는 질료로 견고하면서도 흥미롭게 축조되어 있다. 무엇보다 내 소설은 나를 환영하고 있다. 나를 초대하고 언제나 내가 그들의 세계 속으로 들어와 자신들에게 활력을 불어넣어주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24~5쪽

여러분의 내면에는 상처받기 쉬운 어린 예술가가 있다. 여러분의 가장 큰 실수는 그 어린 예술가를 데리고 예술학교에 들어온 것이다. 물론 이곳은 좋은 학교이고 훌륭한 선배 예술가들이 있다. 그러나 예술의 세계는 질투라는 에너지로 이루어진 성운이다. 여러분의 주위에 있는 친구나 선생들은 본래 선량한 사람들이지만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자신도 모르게 여러분의 재능을 시기하고 있다. 그건 이 세계에선 아주 자연스런 일이다. 선생은 평가를 해야 하고 동료들도 당신의 작품에 판단을 내려야 한다. 우리는 모두 불완전하며 새로운 예술을 알아볼 준비가 돼 있지 않다. 게다가 마음속 깊숙한 곳에 이곳을 박차고 나가고 마음껏 자기 재능을 발휘하고픈 충동을 애써 억누르고 있는 중이다. 여기, 이 게토에 갇혀 있는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다른 누군가의 내면에 숨어 있던 어린 예술가가 신나게 붓을 휘두르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는 일이다. 따라서 주변 모든 예술가의 어떤 새롭고 참신한 시도에도 냉소적일 수밖에 없다. 아니 냉혹하다. 우리, 두꺼운 껍데기로 방어막을 둘러친 얼치기 애늙은이 평론가들은 여러분 내면의 어린 예술가를 노리고 있다.-26쪽

사자가 어린 치타 새끼를 물어죽이듯, 그것은 그들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어쩌면 여러분 자신도 동료들에게 저지르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일단 여기 들어온 이상, 여러분의 임무는 여러분 내면의 어린 예술가가 상처받지 않도록, 그가 겹겹의 방어막으로 단단히 자신을 감싸 끝내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정신적 불구가 되지 않도록 잘 아끼고 보호하여, 학교 밖으로 무사히 데리고 나가는 것이다. 배움은 다음 문제다. 학교에서는 평생을 함께할, 평가와 비난이 이나라 격려와 사랑을 함께 나눌 예술적 동지를 구하라. 타인의 재능을 샘내지 말고 그것을 배우고 익혀 훗날 여러분 내면의 어린 예술가가 활동을 시작할 때, 양분으로 삼고 그 어린 예술가의 벗으로 키우라. -26~7쪽

떠나기로 마음먹은 후, 나는 천천히 집 안의 모든 것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먼저 책들을 헌책방에 내다 팔기로 했다. 책을 쓰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책을 팔자니 속이 쓰렸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저 줄어들 줄은 모르고 오직 늘어나기만 하는 무시무시한 책들을 껴안고 살 수는 없었다. 우선은 지난 5년간 한 번도 들춰보지 않은 책, 그리고 앞으로도 보지 않을 책들을 먼저 골라냈다. 읽었으나 아무 감흥도 받지 못한 책들도 그 위에 얹었다. 고대 그리스의 수사학 학교에서는 좋은 연설에 다음 세가지가 필수적이라고 가르쳤다. 사람들을 감동시키든가 웃기든가, 아니면 유용한 정보를 줘라. 내 서가의 책들에도 그런 기준을 적용했다. 나를 감동시켰거나 즐겁게 해주었거나 아니면 필요한 정보를 갖고 있는 책들은 살아남았다. 그 세가지 중에 단 하나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책들은 다른 운명을 찾아 내 집을 떠났다. -29~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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