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크 젠틀리의 성스러운 탐정사무소
더글러스 애덤스 지음, 공보경 옮김 / 이덴슬리벨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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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재미있게 읽은 독자라면 누구나 더글러스 애덤스의 다른 작품은 더 소개되지 않을까 기대하지 않았을까 싶다. 내 입장에서는 영화도 찾아볼 정도로 나름 빠져들었는데, 취향을 타는 책이라 다른 작품이 소개될까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러던 차에 정말 오랫만에 더글러스 애덤스의 책이 번역되어 나왔으니 바로 이 책 <더크 젠틀리의 성스러운 탐정 사무소>였다. 

  유령에 SF에 코믹, 탐정, 타임머신 등등 이 책은 다양한 소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히치하이커>처럼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역시 '코믹'인 것 같았다. 모든 것을 믿기 위해 만들어진 '전자수도사'를 비롯해서 독특함이 넘치다 못해 매력이 뚝뚝 떨어지는 캐릭터들이 잔뜩 존재한다. 다들 나사가 하나씩은 풀린 것 같은 캐릭터들이라 읽으면서도 꽤 가벼운 마음으로 볼 수 있었다. 

  독특한 상상력과 빵 터지는 유머를 기대하고 본다면 가볍게 읽기에는 괜찮은 책이 아닐까 싶다. 다만, 제목의 오역 문제에 대한 찝찝함 때문에 책을 삐딱한 눈으로 볼 수 밖에 없었다는 점이 아쉬웠다. 책 속에서는 '성스러운' 탐정 사무소에 대해 더크 젠틀리는 이렇게 말한다.

   
  제 탐정사무소에 '성스러운'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건 모든 사물은 기본적으로 상호 연결되어 있다는 확신을 바탕으로 일처리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문감식용 파우더를 쓴다든지 호주머니 잔털을 증거로 확보한다든지 발자국을 확인한다든지 하는 쓸데없는 짓은 안 합니다. 세상만사가 돌아가는 패턴, 그리고 이리저리 얽혀 있는 관계 속에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죠. 우리는 물리적 세계에 관해 대충만 알고 살아가지만 원인과 결과 간의 관계는 훨씬 복잡 미묘하거든요, 로빈슨 부인.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부인이 치통 때문에 침술사를 찾아가면 침술사는 부인의 허벅지에 침을 놓지요. 그 이유를 아십니까, 로빈슨 부인?
모르신다고요. 예, 저도 모릅니다, 로빈슨 부인. 하지만 저희는 그 이유를 알아낼 겁니다.
 
   
  'holistic'이라는 단어로 보나, 책 속의 내용으로 보나 '성스러운'이 아니라 '종합적인'이나 '전체론적인'이 되어야 옳을 것 같다. 논란이 계속 이어지자(?) 관계자(혹은 옹호자)의 글이 올라왔는데, 그 분의 말에 따르자면 제목은 오역이 아니라 일부러 그런 선택을 했고, 흔히 말하는 "어른들의 사정"을 의미한다고 한다. 뭐 그렇다고 영 찝찝한 기분을 떨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런 오역에도 불구하고 나는 더크 젠틀리가 등장하는 다음 시리즈인 <길고 어두운 영혼의 티타임>도 읽게 될 것 같다. 이렇게 헤어져버리기엔 너무나 큰 웃음을 선사해준 재미난 이야기였으니까 말이다. <히치하이커>의 엄청난 분량때문에 겁을 먹은 독자라면 이 책으로 가볍게 더글러스 애덤스 식의 유머를 즐겨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상대적으로 적은 분량이면서도 유머만큼은 <히치하이커> 못지 않았던 책이었다. 정통 추리소설, 정통 SF를 기대하고 본다면 '뭐 이런 책이 다 있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저 웃고 즐기려고 보기엔 롤러코스터같이 정신없는 이 책이 꽤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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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09-09-21 1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에 대한 글을 올린적이 있지만 다소간의 오역을 떠나 유쾌한 마음으로 읽을 많한 책이라고 하더군요^^

이매지 2009-09-21 12:53   좋아요 0 | URL
다소간의 오역(혹은 의역)은 있었지만, 이 책의 유머를 제대로 이해할만한 깜냥도 안 되서 ㅎㅎㅎ 어쨌든 재미있었어요 ㅎ
 
더크 젠틀리의 성스러운 탐정사무소
더글러스 애덤스 지음, 공보경 옮김 / 이덴슬리벨 / 2009년 8월
절판


전자수도사는 식기세척기나 비디오녹화기처럼 수고로움을 덜어주기 위해 고안된 장치였다. 식기세척기는 여러분을 대신해 지긋지긋한 설거지를 해주고 직접 식기를 씻어야 하는 번거로움을 덜어준다. 비디오녹화기는 여러분을 대신해 텔레비전 화면을 쳐다보면서 여러분이 화면을 직접 쳐다보고 있어야 하는 고생스러움을 덜어준다. 전자수도사의 역할도 이와 비슷했다. 여러분을 대신해 무언가를 믿어주는 것, 점점 성가시고 부담스러워지기만 하는 그 일을 대신해주는 것, 세상이 여러분에게 믿으라고 하는 것들을 대신 믿어주는 것이다. -12~3쪽

"무언가를 확실히 이해하고 싶을 때 쓰면 제일 좋은 방법은 그것을 다른 누군가에게 설명하는 것입니다. 남에게 설명을 하려면 우선 자신의 머릿속에서 그 정보를 분류하고 정리해야 하거든요. 그러니 학생들이 우둔하고 머리가 나쁠수록 교수님은 지식을 더욱 간단한 개념으로 나누고 정리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컴퓨터 프로그래밍의 본질입니다. 복잡한 개념을 단계별로 나누어 멍청한 기게로 다룰 수 있게 하는 것이죠. 그 작업을 완성할 무렵엔 교수님 스스로도 그 개념을 확실히 익히게 되는 겁니다. 그런 이유로 교사가 학생보다 더 많이 배운다고들 하죠. 그렇지 않습니까?"
식탁 저쪽에서 누군가가 나지막하게 투덜거렸다.
"전두엽 절제 수술을 받지 않은 다음에야 학생보다 덜 배우는 게 오히려 더 어렵지."-37쪽

"컴퓨터 작업에 도움이 될까 싶어서 록 밴드에서 키보드 연주도 해봤는데요. 별로 도움이 안 됐습니다."
"그 얘기는 지금 처음 듣는데. 자네의 과거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암울하구만. 마치 이 수프처럼 찝찝한 맛이야."
리즈는 냅킨으로 입가를 꼼꼼히 닦으며 말을 이었다.
"언제 한번 주방 직원한테 가서 얘길 해야겠어. 어설프게 하지 말고 정량대로 꼭 맞춰 요리를 만들라고. 그래, 자넨 록 밴드를 했다고 했지. 그것 참, 흐흠. 놀랍네그려."
"예. 저희는 '상당히 훌륭한 밴드'라는 이름까지 붙였습니다만 그 이름처럼 되지는 못했습니다. 저희의 목표는 80년대 초의 비틀즈가 되자는 것이었는데 저희는 비틀즈보다 훨씬 훌륭한 재정적, 법적 조언을 얻을 수 있었거든요. 그 조언은 바로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다'는 내용이었죠. 그래서 저희는 밴드 활동을 집어치웠습니다. 저는 케임브리지를 떠났고 그 후 3년 동안 배를 곯았죠."-38쪽

"예, 거리 청소부 일을 하며 잘 지냈죠. 길에는 쓰레기가 끔찍스러울 정도로 많았거든요. 평생 그 일을 하며 먹고 살아도 될 정도로요. 그런데 다른 청소부의 담당 구역으로 쓰레기를 밀어놓았다가 해고당하고 말았습니다."
리즈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자네한테는 맞지 않은 직업이었군. 남한테 쓰레기를 떠다밀고 고속 승진을 보장받을 수 있는 직업이 얼마나 많은데."-39쪽

반가운 질문이네요, 로빈슨 부인. 제 탐정사무소에 '성스러운'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건 모든 사물은 기본적으로 상호 연결되어 있다는 확신을 바탕으로 일처리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문감식용 파우더를 쓴다든지 호주머니 잔털을 증거로 확보한다든지 발자국을 확인한다든지 하는 쓸데없는 짓은 안 합니다. 세상만사가 돌아가는 패턴, 그리고 이리저리 얽혀 있는 관계 속에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죠. 우리는 물리적 세계에 관해 대충만 알고 살아가지만 원인과 결과 간의 관계는 훨씬 복잡 미묘하거든요, 로빈슨 부인.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부인이 치통 때문에 침술사를 찾아가면 침술사는 부인의 허벅지에 침을 놓지요. 그 이유를 아십니까, 로빈슨 부인?
모르신다고요. 예, 저도 모릅니다, 로빈슨 부인. 하지만 저희는 그 이유를 알아낼 겁니다. 대화 즐거웠습니다, 로빈슨 부인. 이만 끊습니다. -18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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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Q84 2 - 7月-9月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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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려 5년 만에 출간된 하루키의 신작 <1Q84>. 사실 마지막으로 읽었던 <어둠의 저편>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1Q84>에 대해서도 반신반의했었다. 게다가 신흥종교가 소재를 소재로 두 남녀의 사랑을 담은 이야기라는 기사를 보고는 하루키 특유의 상상력을 버린 것인가라는 생각도 했었다. 그런 오만 잡생각을 끌어안고 '그래도 하루키니까'라는 일말의 희망을 갖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정작 책을 읽기 시작하니 책을 읽기 전 걱정했던 그 모든 것이 한순간에 사라져버렸다. 하루키는 죽었다고 생각했던 것도, 하루키는 한물 갔다고 생각했던 것도 모두 기우였다. 책 속에서 몇 번씩이나 등장하는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처럼 강렬한 음색으로 시작되는 이번 작품 <1Q84>는 그야말로 하루키 문학의 정점이었다.  

  ‘파란 콩’이라는 뜻의 이름인 ‘아오마메’와 학원에서 수학을 가르치고 있지만 소설가를 지망하는 ‘덴고’의 이야기가 교차 등장하는 <1Q84>의 구조는 <해변의 카프카>나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등의 하루키의 소설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것이었다. 각기 다른 상황 속에서 각기 다른 생활을 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여주는 교차적 배열은 한 가지 이야기에 대해 잠시 숨을 돌리고 다시 이야기를 전개시켜간다는 점에서 좀더 안정적으로 느껴졌다. 하나의 관점만 주어진다면 쉽게 지루할 수 있는 단점도 이런 교차적 구조는 완화시켜줬다. 독특한 것은 보통 이런 식의 구조를 가진 소설이라면 어느 지점에서는 두 사람이 만나 같은 사건을 각자의 관점으로 그려나간다던지, 혹은 같은 공간에서 두 사람이 저마다 겪는 이야기가 교차 등장하는 것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이 책은 교차 구조를 취하고 있으면서도 그런 식상한 전개를 하지 않고 끝까지 두 사람의 인생을 따로 보여주면서 독자로 하여금 마지막 책장을 넘기는 순간까지 두 사람의 이야기에 집중하게 만들었다.

  단순히 글의 배열뿐 아니라 소재 면에 있어서도 이 책은 몇 가지 대립(혹은 대칭)구조를 세워놓고 있다. 아오마메의 이야기에서는 가정폭력을 저지른 남자들을 저쪽 세계로 이동시키는 아오마메와 지나치게 자유분방한 경찰 아유미를 그렇게 볼 수 있다. 일면 닮은 점도 있지만 아오마메와 아유미는 빛과 그림자와 같다. 다른 주인공인 덴고의 이야기에서는 큰 덩치와 어울리지 않게 글을 쓰는 덴고와 몽환적인 매력의 후카에리가 등장한다. 소설가가 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문장력은 있지만 '열정'은 부족한 덴고와 문장은 엉망이지만 엄청나게 매력적인 소설 <공기 번데기>를 써낸 후카에리, 빅 브라더와 리틀피플 등등 1984년이 아닌 1Q84년을 살아가는 이들은 각각 누군가와 혹은 무언가와 대립(대칭)을 이룬다. (심지어는 책의 전체적인 구조까지도 1권 24장, 2권 24장이다.)

  일본에서는 이 책에 대해 해설서가 나올 만큼 이 책은 수많은 암시를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수수께끼와 같은 내용을 독자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대체 이들에겐 무슨 이야기가 있는 것인가, 다음에는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 것인가, 대체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등의 궁금증으로 도저히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게 만든다. 그저 소설이라고 생각했다가도 '나도 모르는 사이에 2009년이 아닌 200Q년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몇 번이나 쳐다봤는지 모른다. 현실과 비현실의 모호한 경계, 딱 떨어지게 설명할 수 없는 다층적인 스토리 등등 하루키는 지극히 자신의 강점을 살리면서도 새로운 시도를 함으로써 자신이 아직 건재함을 보여준다. 연륜이 쌓여서 그런지 <상실의 시대>에서는 젊은 감성이 느껴졌다면, <1Q84>는 그보다 농익은 감성이 느껴졌다. 총 4월부터 9월까지의 이야기를 담은 <1Q84>. 책을 덮고서 10월부터 덴고와 아오마메에게는 어떤 이야기가 벌어졌을까 궁금해서 견딜 수 없어졌다. 책을 읽으면서도, 책을 읽고나서도 나는 또 다시 하루키의 포로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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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9-09-14 0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주문해놓고 아직 포장도 안뜯었어요. 지금 읽고 있는 책 끝나면 시작할까 아니면 더 있다 시작할까 아직 마음도 정하지 못했어요. 오랜만에 나온 하루키는 이매지님께 별 다섯이로군요!! 아, 저도 기대,기대!!

이매지 2009-09-14 10:10   좋아요 0 | URL
꼭꼭 음악도 같이 들으세요~ 전 한동안 신포니에타에 빠져 지냈답니다 ㅎㅎ
지금 읽고 계신 책 끝나면 어여 시작하세요~
다락방님의 평은 어떨지 급 궁금해지네요 :-)
 
넘버원 여탐정 에이전시 넘버원 여탐정 에이전시 1
알렉산더 매콜 스미스 지음, 이나경 옮김 / 북앳북스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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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랫동안 재미있다는 소문을 들어왔던 '넘버원 여탐정 에이전시' 시리즈. 매번 읽어야지하면서 왠지 끌리지 않아서 미뤄오다가, 얼마 전(5월 정도;;)에 영국에서 드라마로 이 시리즈가 만들어졌다는 얘기를 듣고 '일단 원작부터 읽고 드라마를 봐야지'라고 쟁겨놨다. 아쉽게도 드라마가 시즌 1로 막을 내린 뒤에야 이 책을 찾아 읽기 시작했고, 어떻게 이런 작품을 여태 읽지 않았을까 탄식했다. 

  그동안 여탐정이 등장하는 많은 추리소설들을 읽어봤지만, 단연컨대 이 책의 주인공인 음마 라모츠웨가 가장 매력적이지 않을까 싶다. 물론, 외형적인 요소에서는 쭉쭉빵빵하고 예쁘장하게 생긴 여탐정에 비해 경쟁력이 다소 떨어질 수 있는 푸근한 몸매의 소유자지만, 성격과 유머, 그리고 센스만큼은 다른 어떤 여탐정에게 눌리지 않을 것 같았다. <넘버원 여탐정 에이전시>를 통해 처음 만났지만, 왠지 친근한 음마 라모츠웨. 시리즈의 첫 권이니만큼 이번 책에서는 그녀의 아픈 과거, 탐정 사무소를 차리게 된 경위 등 인물에 대한 기본적인 설정으로 구성되고 있었는데, 자칫하면 지루해질 수 있었지만, 곳곳에서 보이는 음마 라모츠웨의 유머와 삶에 대한 통찰이 지루할 틈을 주지 않았다. 

  일단 이 책은 정통 '추리소설'과는 거리가 멀다. 나름 '여탐정'이 주인공인데 뭔가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안고 봤다면 그 점에서는 실망할 가능성이 크다. 제시되는 사건도 누군가의 실종을 수사한다거나(하드보일드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지만 이 책 속에서는 하드보일드와는 거리가 멀다) 딸이나 남편을 감시하는 일 등 '탐정 사무소'보다는 '흥신소'에서 맡을 법한 사건들이 주를 이룬다.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것처럼 폼나는 탐정은 아니지만, 그래도 왠지 부시 차 한 잔 마시면서 마음속의 고민을 털어놓기에 그녀만한 탐정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아프리카가 배경인 소설을 몇 편 읽어봤지만, 아프리카 특유의 분위기나 전통이 우리와 제법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이 책 속에서도 몇 가지 그런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어서 재미있었다. (예를 들어, 주술이나 가족에 대한 부분) 책 속에서 음마 라모츠웨가 끊임없이 아프리카, 아니 그보다는 보츠와나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는데 그래서인지 나 또한 왠지 보츠와나가 어떤 곳인지 직접 가서 그들을 만나보고 싶어졌다. 짧은 이야기의 병렬이라 자칫하면 지루해질 수 있었는데, 음마 라모츠웨가 너무나 매력적이라 오히려 짧은 이야기가 아쉬울 지경이었다. 총 4권이 출간되어 있는 '넘버원 여탐정 에이전시'. 아직 읽지 못한 음마 라모츠웨의 이야기가 3권이나 더 있다는 사실이 책의 아쉬움을 덜어줬다. 한동안 라모츠웨의 매력에 빠져 지낼 것 같다. '넘버원'이라는 수식어가 전.혀! 아깝지 않은 시리즈.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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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버원 여탐정 에이전시 넘버원 여탐정 에이전시 1
알렉산더 매콜 스미스 지음, 이나경 옮김 / 북앳북스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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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마 라모츠웨('음마'란 아프리카에서 여성의 이름 앞에 붙이는 경칭. 남성에게는 '르라'라는 경칭을 씀:역주)는 아프리카 크갈레 산기슭에 탐정 사무소를 차렸다. 사무소의 재산이라고는 하얀색 미니밴 한 대, 책상 두 개와 의자 두 개, 전화 한 대, 낡은 타자기 한 대 정도가 전부였다. 그 외에 찻주전자가 하나 있는데, 음마 라모츠웨가 레드부시 차를 끓이는 데 사용했다. 그리고 머그잔 세 개. 하나는 그녀의 것, 하나는 비서의 것, 하나는 의뢰인을 위한 것이었다. 이것들 말고 탐정 사무소에 없어서는 안 될 것이 무엇이겠는가? 탐정 사무소란 사람의 직관력과 지능에 의해 돌아가는 법이었고, 음마 라모츠웨는 이 두 가지 모두를 충분히 갖추고 있었다. 물론 그런 능력을 적어 놓은 재산 목록은 없을 테지만 말이다. -9~10쪽

그러나 개중에는 약은 사람들도 있어서 영국인이 "이렇게 하시오." 하면 "네, 알겠습니다, 나리, 분부대로 합죠." 하고는 뒤에서 다른 일을 하거나 일을 하는 시늉만 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래서 여러 해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훌륭한 정부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랐으니까.
하지만 요즘 정부가 안고 있는 문제는, 바로 가만 있지를 못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항상 무슨 일을 하고 싶어 한다. 요즘 정부는 다음번엔 무슨 일을 할지 생각하느라 항상 바쁘다. 그러나 국민이 원하는 것은 그게 아니다. 사람들은 자기 마음대로 가축을 돌볼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29쪽

"남편이 의심스러워요. 바람을 피우는 것 같아요."
앨리스 부생이 말했다.
음마 라모츠웨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경험상, 남자들이란 하나같이 바람을 피우는 법이었다. 그렇지 않은 남자들은 종교에 귀의한 사람들이나 교장 선생님들밖에 없었다. -173쪽

음마 라모츠웨는 그와의 우정을 잃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곳에서 가장 친한 친구였고, 그와 편안히 함께 지낼 수 없는 삶이란 확실히 부족한 삶이 될 것이다. 어째서 사랑 - 그리고 섹스-이 삶을 이다지도 복잡하게 만드는 것일까? 그런 것을 놓고 걱정하지 않는다면 훨씬 더 살기 쉬워질 텐데. 이제 그녀의 삶 속에서 섹스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되고 보니 삶이 참 편안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신의 생김새에 대해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남자가 되어 내내 섹스를 생각하며 살면 얼마나 끔찍할까. 음마 라모츠웨는 잡지에서 보통 남자들은 하루에도 예순 번이나 섹스를 생각한다는 기사를 읽었다! 그녀는 그 숫자를 믿지 않았지만, 연구 조사한 결과라고 했다. 보통 남자들은 일상생활을 하면서도 늘 머릿속에 그 생각을 떠올리고 있는 것이었다. 실제로는 다른 일을 하고 있는데도 머릿속으로는 그딴 생각이나 하다니!-183~4쪽

그러나 변비는 또 다른 문제였다. 온 세상이 그런 문제를 다 알게 된다면 정말 끔찍한 일이었다. 음마 라모츠웨는 변비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엄청나게 불쌍히 여겼고 그런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아마 변비 환자를 모으면 정당을 하나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다수석을 차지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정당이 정권을 잡는다고 무슨 일을 하겠는가? 아무 일도 못할 것이다. 입법을 통과시키려고 할지는 몰라도 실패하고 말 것이다. -240쪽

음마 라모츠웨는 옛 친구에게 미소를 지었다. 살면서 해마다 새로운 친구를 사귈 수도 있었다. 매달 친구를 새로 사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성년이 되어서까지 계속되는 어린 시절의 우정을 대신할 만한 것은 결코 없었다. 그것은 우리를 서로에게 연결해 주는 강철 연결고리였다.
음마 라모츠웨는 마케치 선생의 팔을 부드럽게 잡았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을 때, 오랜 친구들이 이따금 그러는 것처럼. -2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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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9-09-09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매지님. 이 책 다 읽으셨어요? 긴장되는 순간도, 흥분되는 순간도 없지만 어쩐지 읽고나면 참 따뜻해지지 않나요? 아프리카에 가면 음마 라모츠웨 옆에서 저녁노을 보며 차 한잔 얻어 마시고 싶어지는, 그렇게 할 수 있을것만 같은, 그런 책이에요.
:)

이매지 2009-09-10 00:10   좋아요 0 | URL
아아. 이제 읽기 시작했어요 :) 다락방님의 이야기를 들으니 빨리 읽어야겠는걸요! 알게 모르게 4권까지 나왔더라구요 ㅎㅎㅎ

카스피 2009-09-10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책 아프리카가 배경이더군요.이미지님 이런 분위기를 좋아하신다면 절판됬지만 열린 책들에서 나온 카리냐기를 한번 읽어 보세요^^

이매지 2009-09-10 12:36   좋아요 0 | URL
흑. 이미지라니요 ㅠ_ㅠ
아프리카가 배경인 책들은 몇 권 읽어보긴 했는데, 카리냐기도 접수해둘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