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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크 젠틀리의 성스러운 탐정사무소
더글러스 애덤스 지음, 공보경 옮김 / 이덴슬리벨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재미있게 읽은 독자라면 누구나 더글러스 애덤스의 다른 작품은 더 소개되지 않을까 기대하지 않았을까 싶다. 내 입장에서는 영화도 찾아볼 정도로 나름 빠져들었는데, 취향을 타는 책이라 다른 작품이 소개될까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러던 차에 정말 오랫만에 더글러스 애덤스의 책이 번역되어 나왔으니 바로 이 책 <더크 젠틀리의 성스러운 탐정 사무소>였다.
유령에 SF에 코믹, 탐정, 타임머신 등등 이 책은 다양한 소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히치하이커>처럼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역시 '코믹'인 것 같았다. 모든 것을 믿기 위해 만들어진 '전자수도사'를 비롯해서 독특함이 넘치다 못해 매력이 뚝뚝 떨어지는 캐릭터들이 잔뜩 존재한다. 다들 나사가 하나씩은 풀린 것 같은 캐릭터들이라 읽으면서도 꽤 가벼운 마음으로 볼 수 있었다.
독특한 상상력과 빵 터지는 유머를 기대하고 본다면 가볍게 읽기에는 괜찮은 책이 아닐까 싶다. 다만, 제목의 오역 문제에 대한 찝찝함 때문에 책을 삐딱한 눈으로 볼 수 밖에 없었다는 점이 아쉬웠다. 책 속에서는 '성스러운' 탐정 사무소에 대해 더크 젠틀리는 이렇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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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탐정사무소에 '성스러운'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건 모든 사물은 기본적으로 상호 연결되어 있다는 확신을 바탕으로 일처리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문감식용 파우더를 쓴다든지 호주머니 잔털을 증거로 확보한다든지 발자국을 확인한다든지 하는 쓸데없는 짓은 안 합니다. 세상만사가 돌아가는 패턴, 그리고 이리저리 얽혀 있는 관계 속에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죠. 우리는 물리적 세계에 관해 대충만 알고 살아가지만 원인과 결과 간의 관계는 훨씬 복잡 미묘하거든요, 로빈슨 부인.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부인이 치통 때문에 침술사를 찾아가면 침술사는 부인의 허벅지에 침을 놓지요. 그 이유를 아십니까, 로빈슨 부인?
모르신다고요. 예, 저도 모릅니다, 로빈슨 부인. 하지만 저희는 그 이유를 알아낼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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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listic'이라는 단어로 보나, 책 속의 내용으로 보나 '성스러운'이 아니라 '종합적인'이나 '전체론적인'이 되어야 옳을 것 같다. 논란이 계속 이어지자(?) 관계자(혹은 옹호자)의 글이 올라왔는데, 그 분의 말에 따르자면 제목은 오역이 아니라 일부러 그런 선택을 했고, 흔히 말하는 "어른들의 사정"을 의미한다고 한다. 뭐 그렇다고 영 찝찝한 기분을 떨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런 오역에도 불구하고 나는 더크 젠틀리가 등장하는 다음 시리즈인 <길고 어두운 영혼의 티타임>도 읽게 될 것 같다. 이렇게 헤어져버리기엔 너무나 큰 웃음을 선사해준 재미난 이야기였으니까 말이다. <히치하이커>의 엄청난 분량때문에 겁을 먹은 독자라면 이 책으로 가볍게 더글러스 애덤스 식의 유머를 즐겨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상대적으로 적은 분량이면서도 유머만큼은 <히치하이커> 못지 않았던 책이었다. 정통 추리소설, 정통 SF를 기대하고 본다면 '뭐 이런 책이 다 있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저 웃고 즐기려고 보기엔 롤러코스터같이 정신없는 이 책이 꽤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