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Q84 2 - 7月-9月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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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려 5년 만에 출간된 하루키의 신작 <1Q84>. 사실 마지막으로 읽었던 <어둠의 저편>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1Q84>에 대해서도 반신반의했었다. 게다가 신흥종교가 소재를 소재로 두 남녀의 사랑을 담은 이야기라는 기사를 보고는 하루키 특유의 상상력을 버린 것인가라는 생각도 했었다. 그런 오만 잡생각을 끌어안고 '그래도 하루키니까'라는 일말의 희망을 갖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정작 책을 읽기 시작하니 책을 읽기 전 걱정했던 그 모든 것이 한순간에 사라져버렸다. 하루키는 죽었다고 생각했던 것도, 하루키는 한물 갔다고 생각했던 것도 모두 기우였다. 책 속에서 몇 번씩이나 등장하는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처럼 강렬한 음색으로 시작되는 이번 작품 <1Q84>는 그야말로 하루키 문학의 정점이었다.  

  ‘파란 콩’이라는 뜻의 이름인 ‘아오마메’와 학원에서 수학을 가르치고 있지만 소설가를 지망하는 ‘덴고’의 이야기가 교차 등장하는 <1Q84>의 구조는 <해변의 카프카>나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등의 하루키의 소설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것이었다. 각기 다른 상황 속에서 각기 다른 생활을 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여주는 교차적 배열은 한 가지 이야기에 대해 잠시 숨을 돌리고 다시 이야기를 전개시켜간다는 점에서 좀더 안정적으로 느껴졌다. 하나의 관점만 주어진다면 쉽게 지루할 수 있는 단점도 이런 교차적 구조는 완화시켜줬다. 독특한 것은 보통 이런 식의 구조를 가진 소설이라면 어느 지점에서는 두 사람이 만나 같은 사건을 각자의 관점으로 그려나간다던지, 혹은 같은 공간에서 두 사람이 저마다 겪는 이야기가 교차 등장하는 것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이 책은 교차 구조를 취하고 있으면서도 그런 식상한 전개를 하지 않고 끝까지 두 사람의 인생을 따로 보여주면서 독자로 하여금 마지막 책장을 넘기는 순간까지 두 사람의 이야기에 집중하게 만들었다.

  단순히 글의 배열뿐 아니라 소재 면에 있어서도 이 책은 몇 가지 대립(혹은 대칭)구조를 세워놓고 있다. 아오마메의 이야기에서는 가정폭력을 저지른 남자들을 저쪽 세계로 이동시키는 아오마메와 지나치게 자유분방한 경찰 아유미를 그렇게 볼 수 있다. 일면 닮은 점도 있지만 아오마메와 아유미는 빛과 그림자와 같다. 다른 주인공인 덴고의 이야기에서는 큰 덩치와 어울리지 않게 글을 쓰는 덴고와 몽환적인 매력의 후카에리가 등장한다. 소설가가 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문장력은 있지만 '열정'은 부족한 덴고와 문장은 엉망이지만 엄청나게 매력적인 소설 <공기 번데기>를 써낸 후카에리, 빅 브라더와 리틀피플 등등 1984년이 아닌 1Q84년을 살아가는 이들은 각각 누군가와 혹은 무언가와 대립(대칭)을 이룬다. (심지어는 책의 전체적인 구조까지도 1권 24장, 2권 24장이다.)

  일본에서는 이 책에 대해 해설서가 나올 만큼 이 책은 수많은 암시를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수수께끼와 같은 내용을 독자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대체 이들에겐 무슨 이야기가 있는 것인가, 다음에는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 것인가, 대체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등의 궁금증으로 도저히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게 만든다. 그저 소설이라고 생각했다가도 '나도 모르는 사이에 2009년이 아닌 200Q년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몇 번이나 쳐다봤는지 모른다. 현실과 비현실의 모호한 경계, 딱 떨어지게 설명할 수 없는 다층적인 스토리 등등 하루키는 지극히 자신의 강점을 살리면서도 새로운 시도를 함으로써 자신이 아직 건재함을 보여준다. 연륜이 쌓여서 그런지 <상실의 시대>에서는 젊은 감성이 느껴졌다면, <1Q84>는 그보다 농익은 감성이 느껴졌다. 총 4월부터 9월까지의 이야기를 담은 <1Q84>. 책을 덮고서 10월부터 덴고와 아오마메에게는 어떤 이야기가 벌어졌을까 궁금해서 견딜 수 없어졌다. 책을 읽으면서도, 책을 읽고나서도 나는 또 다시 하루키의 포로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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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9-09-14 0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주문해놓고 아직 포장도 안뜯었어요. 지금 읽고 있는 책 끝나면 시작할까 아니면 더 있다 시작할까 아직 마음도 정하지 못했어요. 오랜만에 나온 하루키는 이매지님께 별 다섯이로군요!! 아, 저도 기대,기대!!

이매지 2009-09-14 10:10   좋아요 0 | URL
꼭꼭 음악도 같이 들으세요~ 전 한동안 신포니에타에 빠져 지냈답니다 ㅎㅎ
지금 읽고 계신 책 끝나면 어여 시작하세요~
다락방님의 평은 어떨지 급 궁금해지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