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크 젠틀리의 성스러운 탐정사무소
더글러스 애덤스 지음, 공보경 옮김 / 이덴슬리벨 / 2009년 8월
절판


전자수도사는 식기세척기나 비디오녹화기처럼 수고로움을 덜어주기 위해 고안된 장치였다. 식기세척기는 여러분을 대신해 지긋지긋한 설거지를 해주고 직접 식기를 씻어야 하는 번거로움을 덜어준다. 비디오녹화기는 여러분을 대신해 텔레비전 화면을 쳐다보면서 여러분이 화면을 직접 쳐다보고 있어야 하는 고생스러움을 덜어준다. 전자수도사의 역할도 이와 비슷했다. 여러분을 대신해 무언가를 믿어주는 것, 점점 성가시고 부담스러워지기만 하는 그 일을 대신해주는 것, 세상이 여러분에게 믿으라고 하는 것들을 대신 믿어주는 것이다. -12~3쪽

"무언가를 확실히 이해하고 싶을 때 쓰면 제일 좋은 방법은 그것을 다른 누군가에게 설명하는 것입니다. 남에게 설명을 하려면 우선 자신의 머릿속에서 그 정보를 분류하고 정리해야 하거든요. 그러니 학생들이 우둔하고 머리가 나쁠수록 교수님은 지식을 더욱 간단한 개념으로 나누고 정리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컴퓨터 프로그래밍의 본질입니다. 복잡한 개념을 단계별로 나누어 멍청한 기게로 다룰 수 있게 하는 것이죠. 그 작업을 완성할 무렵엔 교수님 스스로도 그 개념을 확실히 익히게 되는 겁니다. 그런 이유로 교사가 학생보다 더 많이 배운다고들 하죠. 그렇지 않습니까?"
식탁 저쪽에서 누군가가 나지막하게 투덜거렸다.
"전두엽 절제 수술을 받지 않은 다음에야 학생보다 덜 배우는 게 오히려 더 어렵지."-37쪽

"컴퓨터 작업에 도움이 될까 싶어서 록 밴드에서 키보드 연주도 해봤는데요. 별로 도움이 안 됐습니다."
"그 얘기는 지금 처음 듣는데. 자네의 과거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암울하구만. 마치 이 수프처럼 찝찝한 맛이야."
리즈는 냅킨으로 입가를 꼼꼼히 닦으며 말을 이었다.
"언제 한번 주방 직원한테 가서 얘길 해야겠어. 어설프게 하지 말고 정량대로 꼭 맞춰 요리를 만들라고. 그래, 자넨 록 밴드를 했다고 했지. 그것 참, 흐흠. 놀랍네그려."
"예. 저희는 '상당히 훌륭한 밴드'라는 이름까지 붙였습니다만 그 이름처럼 되지는 못했습니다. 저희의 목표는 80년대 초의 비틀즈가 되자는 것이었는데 저희는 비틀즈보다 훨씬 훌륭한 재정적, 법적 조언을 얻을 수 있었거든요. 그 조언은 바로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다'는 내용이었죠. 그래서 저희는 밴드 활동을 집어치웠습니다. 저는 케임브리지를 떠났고 그 후 3년 동안 배를 곯았죠."-38쪽

"예, 거리 청소부 일을 하며 잘 지냈죠. 길에는 쓰레기가 끔찍스러울 정도로 많았거든요. 평생 그 일을 하며 먹고 살아도 될 정도로요. 그런데 다른 청소부의 담당 구역으로 쓰레기를 밀어놓았다가 해고당하고 말았습니다."
리즈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자네한테는 맞지 않은 직업이었군. 남한테 쓰레기를 떠다밀고 고속 승진을 보장받을 수 있는 직업이 얼마나 많은데."-39쪽

반가운 질문이네요, 로빈슨 부인. 제 탐정사무소에 '성스러운'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건 모든 사물은 기본적으로 상호 연결되어 있다는 확신을 바탕으로 일처리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문감식용 파우더를 쓴다든지 호주머니 잔털을 증거로 확보한다든지 발자국을 확인한다든지 하는 쓸데없는 짓은 안 합니다. 세상만사가 돌아가는 패턴, 그리고 이리저리 얽혀 있는 관계 속에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죠. 우리는 물리적 세계에 관해 대충만 알고 살아가지만 원인과 결과 간의 관계는 훨씬 복잡 미묘하거든요, 로빈슨 부인.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부인이 치통 때문에 침술사를 찾아가면 침술사는 부인의 허벅지에 침을 놓지요. 그 이유를 아십니까, 로빈슨 부인?
모르신다고요. 예, 저도 모릅니다, 로빈슨 부인. 하지만 저희는 그 이유를 알아낼 겁니다. 대화 즐거웠습니다, 로빈슨 부인. 이만 끊습니다. -18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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