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유미리는 여기에서 출발했다
무색무취한 언어로 그려낸 고통의 기록


재일한국인 2세이자 젊은 극작가 ‘양 히라카’는 자신의 연극 상연을 위해 처음으로 한국을 찾는다. 그러나 한국에서 그녀가 경험하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과 이질감뿐이다. 한편 그녀는 동행한 친구의 소개로 ‘박리화’라는 여자와 만나게 되는데, 그녀는 박리화의 얼굴에 난 상처에 반사적인 거리감을 느끼면서도, 타인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고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그녀의 모습에 점차 이끌리게 된다. 그녀는 일본에 돌아와서도 박리화와의 관계를 조금씩 이어나가지만, 그녀를 둘러싼 다른 관계들은 하나같이 위태롭다. 빠찡꼬 가게의 기술자로 일하면서 습관적으로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와 집을 나가 호스테스로 일하는 어머니, 원조교제를 일삼는 여동생과 정신장애로 병원에 입원하는 남동생, 연극 연출가와의 불륜과 또다른 남자와의 위험한 만남, 그리고 낙태와 자살 미수…… 주변의 모든 것들이 사라져가는 듯한 생활 속에서 아슬아슬하게 자신을 지탱해주고 있던 박리화와의 관계마저 그녀가 갑작스럽게 연락이 끊어짐으로써 위기에 처하자 히라카는 그녀를 만나기 위해 다시 한번 한국을 찾지만, 그곳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상실과 배신감, 그리고 절대적인 고독뿐이다.
작가 유미리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그녀의 첫 소설 『돌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는 부모의 불화와 그로 인해 뿔뿔이 흩어진 가족, 정신적인 교감을 얻지 못하는 남자들과의 연애, 낙태와 자살 미수 경험 등 그녀의 이후 작품들의 모태가 되는 모티프들을 모두 담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적인 상처를 공유하며 인간적인 유대를 바랐던 상대의 배신에 대한 안타까움과 분노와 슬픔이, 칼날 끝으로 그려낸 듯 날카로운 필체로, 또한 생의 의미만큼이나 둔탁한 무게로 표현되어 있다. “무엇이든 간에 보호를 바라는 것, 힘이 없는 것, 가엾어 보이는 것들을 나는 미워했고 용서하지 않았다”는 주인공의 입을 빌린 유미리 자신의 고백은, 그녀의 작품 전체에 흐르고 있는 세상에 대한 특유의 태도와 시각의 원점이라 봐도 좋을 것이다.

우리들은 돌의 바다에 풀려난 물고기
영혼의 피를 흘리며 계속해서 헤엄친다


『돌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는 그 제목에서처럼 세상에 나온 순간부터 피를 흘리며 헤엄쳐야 했다. 박리화의 모델이 된 실존인물에게 사생활 침해로 고소를 당해 팔 년이 넘는 재판 끝에 출판금지 조치를 당한 것이다. 재판 중 그녀는 문제가 된 일부분을 수정·삭제한 개정판을 법정에 제출하였고 이것이 후에 단행본으로 발간되었다.
법이라는 절대권력의 틀 속에서, 개인의 인권와 표현의 자유라는 두 윤리 사이에서 문단과 언론의 일방적인 비판을 받아야 했던 유미리는, 이와 같은 거대한 권력과 맞서 싸우면서 작가의 역할과 문학의 의미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밝힌다.

“나는 이 소설에 사실 그대로를 쓴 부분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작가인 ‘나’의 눈을 거친 픽션일 뿐이다. 판결문에서는 ‘이것은 허구이고 이것은 사실이다’라며 하나하나 따지고 들어 단정하고 있지만, 그런 식으로 소설을 읽는다는 것 자체를 나는 이해할 수 없다. 이런 자세들이 일본에서 오랫동안 이어져내려온 사소설이라는 장르에 걸림돌이 되고 있으며, 모든 소설가들에게 있어서도 중대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 소송과 관련해 유미리는 『세상의 균열과 혼의 공백』(문학동네, 2002) 등의 에세이에서 사건의 상세한 전말과 자신의 생각을 밝히고 있다. 유미리 소설 속의 주인공이 세상을 향한 분노와 절망을 끊임없이 표출하고 있는 것은 이런 작가 자신의 모습과도 겹친다. 스스로의 살점을 도려내는 가위질을 통해 다시 세상에 탄생한 이 처녀작은 그녀에게 ‘쓴다는 것은 곧 싸운다는 것’이라는 의미를 확립하는 계기가 되어주었고, 그 자체로 이미 그녀의 ‘싸움’의 기록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현대에 자살할 의미가 있는 작가는 유미리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직접적으로 나타내고 있지는 않지만 이 소설은 자살자들의 책이다.
스스로 선택해야 하는 종말을 바라보고 있는 자들의 분격과 격투이다.
_후쿠다 가즈야 (문학평론가)

유미리의 소설을 읽으면 목에 비수가 들이대어지는 느낌을 받는다.
그녀의 소설을 사소설이라는 말로 폄하하는 치들도 있지만,
그런 명칭이나 비평 따위와는 상관없이, ‘쓴다’라는 행위의 무게와
그 ‘윤리’에 감동을 받기 위해 읽어야 할 소설이다.
_주간 포스트

마지막에 마음에 남는 것은 절망이 아니라
누구나 억누를 수 없을 만큼 격렬하게 연소되는
그녀의 한결같은 생의 에너지이다.
_스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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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 여자 ㅣ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터리 Agatha Christie Mystery 34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김석환 옮김 / 해문출판사 / 198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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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날, 포와로에게 마치 오필리아같은 이미지를 가진 한 여자가 찾아온다. 그녀는 자신이 저질렀을지도 모를 살인사건에 관해 의논하고 싶다며 찾아왔지만 포와로를 보고는 '너무 늙었다'며 무례하게 떠나버린다. 그 말에 기분이 상한 포와로는 마침 걸려온 추리작가 올리버 부인의 전화를 받고 그녀와 얘기를 하던 중 자신을 찾아온 여자가 올리버 부인이 만났던 사람임을 알게 되고, 호기심에 이끌려 수사를 시작한다.

  난 애거사 크리스티의 소설은 참 좋아하지만, 포와로가 잘난체하며 뽐내는 건 또 무척이나 싫어하는 사람중에 하나다. 올리버부인이 "그녀는 누군가에게 당신의 얘기를 듣고 왔을텐데.."라고 얘기하자 포와로는 "세상에 나의 명성을 모르는 사람이 있느냐?"라는 반응으로 나온다. 포와로 특유의 자신감이란. 흥. 하지만 사건을 조사하면서 그는 왠일로 평소의 그와는 다른 모습을 많이 보인다.(자신이 모아 놓은 조각이 맞지 않음에 대한 불만이 대다수이지만.) 가해자는 분명한 것처럼 보이는데 피해자와 사건은 도무지 찾을 수 없는 이 사건. 진실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세번째 여자는 일종의 룸메이트 개념이다. 방이 여러개인 하나의 집을 구하고, 그 방마다 각각의 사람이 사는 것이다. 방의 크기나 상태에 따라 방값은 달라지고, 돌아가면서 집 전체를 사용할 수 있는 날도 정해놓는 식이다. 한 집에 사는 사람들끼리는 별로 친밀감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들은 그저 사정에 맞게 같은 집에서 생활하고 있을 뿐이다. 책은 그 책이 쓰여진 시기를 반영하기 마련인데, 고전적인 모습에서 변해가는 모습이 드러난다. 히피족이나 여자처럼 생긴 남자 등등. 한마디로 구시대의 사람들에게는 "요즘 사람들이란. 쯧쯧"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시대상이랄까. 마지막 대화는 약간 생뚱맞아 보였고, 아무리 번역이라지만 '쌍화차' 앞에서는 심하게 키득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언제나 애거사 크리스티의 어떤 작품을 읽던지 중간 이상은 가니까 읽어서 나쁘지는 않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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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2-16 1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대를 생각하고 보면 대단하죠^^

이매지 2006-02-16 1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긴 하죠^^ 한 두권도 아니고 꽤 많은 작품을 냈는데도 보통 이상 된다는건 그만큼 필력이 있는거겠죠^-^
 

뭐 길게 말할 것도 없다.
워낙에 좋아하는 가네시로 카즈키의 신간인데 무슨 긴 말이 필요할까.

오랜만에 만나는 좀비스 시리즈 기대된다.
더불어 새로운 여자아이의 모습도!

일러스트 가방을 상품으로 준다는데 알고보니 비닐 주머니 같은거 아닌가 몰라.



요리관련해서 자주 가는 블로그 중에 한 군데이다.
요새 웹상에서 활동하고 있는 요리관련 블로거들의 출판이 대세인가.
얼마 전에 나왔던 <야옹양의 두근두근 연애요리>와 표지가 비슷하다.
책의 제목으로 사용된 폰트도 비슷한 것 같고.
따라한건가. 싶어서 봤더니 출판사가 같은 곳이긴 하다만.
그래도 참 왠지 떨떠름하긴 하다. (내가 왜 -_ -)
연애요리보다는 요리비책쪽이 좀 더 일상생활과 맞닿아있을 듯.


삼국지를 읽으면서 궁금해할 법한 것들에 대해 정리된 책.
워낙 분량이 많기도 하고, 그에 맞게 등장인물들도 많아서 읽다보면 영 헷갈린다.
차례를 보니 더 흥미롭다.
도원결의는 진실인가 허구인가? , 관우의 진짜 무기는 무엇이었을까? , 절대미인 초선이 연환계를 펼쳤는가? 유비는 과연 황숙이었는가? 등등등.
제법 두꺼운 분량이지만 그래도 읽어봐야겠다.


 


줄리앙 그라크. 솔직히 처음 들어보는 작가이긴 하다.
문학상 제도를 비판한 사람이라 공쿠르 상 수상을 거부하기도 했다는데.
그렇다면 공쿠르 상 수상이라면 실력은 있는 작가일텐데...
새로운 작가와의 만남에 기대된다.


 

아직도 <눈먼자들의 도시>를 읽었을 때의 그 느낌이 사라지지 않는다.
이베리아 반도의 분리라는 환상적인 장치를 사용한 이야기라니.
비현실적인 것을 현실적인 것으로 보이게 만드는 게 그의 힘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번에도 그런 느낌을 느낄 수 있을 듯 싶다.





서울에서 촬영한 영화들을 통해서
서울의 명소(?)들을 알려주는 책.
각 장소의 위치와 교통편, 입장료, 영업시간, 연락처 등의 정보와 함께
감독들이 그 장소를 선택한 이유도 들고 있다고 한다.
지금은 사라진 장소들에 대한 이야기도 부록으로 실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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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 14 - 그리스도의 승리 ㅣ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14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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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권이 나온지도 어언 1년이 다 된 시점에 14권이 나왔다. 매번 약 1년의 주기로 다시 찾아오는 <로마인 이야기>의 리듬을 뻔히 알면서도 귀찮고, 시간도 없고라는 이유로 13권까지의 흐름을 대충 연보로 파악하고 14권을 잡았다. 13권까지의 표지가 그 시기를 이끄는 지도자의 모습을 싣고 있다면, 이번에는 좀 다르게 성 암브로시우스의 모습을 표지에 싣고 있다는 점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왔다. '독자들에게'를 빌려 시오노 나나미 스스로도 이전의 지도자들과 성 암브로시우스의 모습이 왜 다른지에 대해서 약간의 암시를 주고 있다. 13권은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죽음으로 끝이 났다. 그리고 14권에서는 당연히 그의 뒤를 잇는 이들의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전의 책에서는 한 황제의 성장과정을 통해 그가 어떤 성격을 띄고 있으며, 어떻게 로마를 이끌어갈지 짐작해볼 수 있었다. 하지만, 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과 반비례하여 인간에 대한 관심은 낮아진 것이 제국 말기의 특색인지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뒤를 이은 세 아들(콘스탄티누스 2세, 콘스탄티우스, 콘스탄스)의 성장에 대한 정보는 부재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세 아들은 제국을 삼분하여 다스린다. 하지만, 한 사람이 퇴장하고, 또 한 사람이 퇴장하여 콘스탄티우스 혼자 남게 된다. 콘스탄티우스의 행보는 씁쓸함만 남긴다. 아버지인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행보를 밟으면서 그 자신의 계략(?)에 스스로 얽매는 모습을 보인다. 특히나 유일한 친족이라 어쩔 수 없이 부제로 율리아누스를 앉히는 모습에서 특히나 씁쓸함이 크게 남았었다.

  콘스탄티우스 황제는 아버지인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바톤을 이어받아 기독교 우대정책에 있어 '확신을 가지고 걸음을 옮긴다'. 그는 특히 다른 종교 중에서 로마의 전래 종교를 배척하는 방침을 명확히 하여 우상 숭배 금지, 희생의식 금지, 심지어 신전 폐쇄 명령까지 내린다.(신전폐쇄명령은 그리스, 로마교 뿐만 아니라 시리아의 태양신전과 이집트의 이시스 신전까지 폐쇄하여 폭동을 낳기도 했다.) 이렇게 기독교를 로마의 정신적 기둥으로 삼으려고 하나 기독교는 이미 내부적으로 삼위일체설을 주장하나는 아타나시오스파와 아버지와 아들은 다르다고 주장하는 아리우스파로 나뉘어져 대립하고 있다. 이런 기독교 내부의 갈등뿐만 아니라 페르시아와의 대립, 야만족과의 대립으로 이래저래 로마는 심란한 모습을 보인다. 기껏 율리아누스 황제에 이르러 일신교을 버리고, 개혁을 해보려고 하나 시대를 거스르려는 그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흘러가고, 대세는 어쨌거나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가 되버린다.

  이번 책에서는 이전에는 크게 부각되지 않았던 두 계급이 돋보인다. 하나는 콘스탄티우스 황제 때 활발히 활동한 '에우누코스'라는 환관계급이다. 그들은 왕과 자신의 관계를 중요시여겨(달리 자신의 자식이 없으므로) 국가의 행정을 자신들의 구미에 맞게 이끌어간다. 어느 지역을 불문하고 그들의 지역망은 촘촘히 있었고, 그 때문에 실제로 콘스탄티우스 황제는 환관의 입놀림에 많은 인재들을 처형하기도 한다. 율리아누스 황제가 이들을 몰아낸 뒤에는 '대제'가 힘을 발휘한다. 보통 이전의 황제들은 죽기 바로 전에 세례를 받았던 반면,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병때문에 일찍 세례를 받는다. 때문에 그는 다른 황제들과 달리 일찍 주님의 '양'이 되버렸고, 그를 인도하는 '양치기'인 대제의 입김을 무시할 수 없게 되버렸다. 황제인 테오도시우스를 좌지우지하는 힘을 가진 사람이 바로 책의 표지에 나온 성 암브로시우스였다.

  사실 14권은 '어떻게 기독교는 로마국교가 되었는가'에 대한 답이라고 볼 수 있다. <로마인 이야기>는 시오노 나나미에 의해서 쓰여지고 있는 만큼 어느 정도 그녀의 사적인 감정이 실리는데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그녀는 기독교도가 아니다. 때문에 어느 정도 공정한 시선에서 로마 안에서 기독교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게 됐다(만약 독실한 기독교도에 의해서 책이 쓰여졌다면 율리아누스는 배교자로 낙인찍혔을 것이다.). 기독교라는 거부할 수 없는 시대의 흐름 속에 로마인들이 어떻게 살아갔는지에 대한 이해, 그리고 제국의 영광을 다시 돌릴 수 없게되는 흐름에 대한 안타까움 등을 느낄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이미 관용과 같은 로마다움을 상실해버린 로마의 모습. 지는 해는 아름답지만 로마가 지는 모습은 참 껄끄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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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06-02-13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명쾌하게 잘 쓰셨네요~~ 헛. 전 1권도 안읽었어요~~~

이매지 2006-02-13 2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명쾌라니요 ㅠ_ㅠ 소설책보다 리뷰쓰기 더 어려웠어요 ㅠ_ㅠ
내년에 15권 나오면 완결될텐데 완결되시걸랑 읽어보셔요.
전 띄엄띄엄 읽으니 영 기억도 가물한게 아쉽네요 ^^;

이잘코군 2006-02-13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1권도 안읽었는데. 이거 길어서 엄두도 안나요. 저 복잡한 이름들 틈에서 내용을 파악할까 싶기도 하고.

이매지 2006-02-13 2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각 편을 따로보면 나오는 인물은 그 사람이 그 사람이라서 별로 껄끄럽지 않아요 ^^;; 전 개인적으로 6권까지가 젤 좋았어요.

이리스 2006-02-13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이매지님.. 건조하지 않으면서 적당히 단단하고 또 명쾌합니다. 지금까지 제가 읽은 이매지님 리뷰 중에서 이 리뷰에 가장 후한점수를 주겠어요. ㅋㅋ (내가 뭔데 점수를 .. --;) 추천 누르고 갑니다.

이매지 2006-02-13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써놓고 너무 책 요약을 해놓은 거 같아서 떨떠름했는데 좋게 봐주시니. 몸둘바를. (이거 무슨 이주의 마이리뷰 당선 소감같잖아요 ㅋㅋ)
 
나니아 연대기
클라이브 스테이플즈 루이스 지음, 폴린 베인즈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시공주니어 / 200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 전, <사자와 마녀와 옷장>이라는 영화가 개봉을 했었다. 이전에 분권으로 나왔던 나니아 연대기는 그와 비슷한 시기 합본으로 새로이 출간되었다. 두꺼운 양장본이 주는 무게감. 압박. 1000페이지에 가까운 이야기들. 왠지 읽기 전에는 주눅이 들었지만 일단 손에 잡고 나니 나니아의 매력에 흠뻑 젖어들 수 있었다. 책을 읽기 전에 어떤 순서로 읽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했었다. 출간연도대로 읽을 것인가, 아니면 나니아 세계의 연대기 순서대로 읽을 것인가.어떻게 할까 약간의 고민 뒤에 결국 책에 실린 순서대로 읽었지만 그렇게 읽어도 전혀 재미가 없지 않았으니 만족한다(출간순서대로 읽는다면 '사자와 마녀와 옷장- 캐스피언 왕자- 새벽 출정호의 항해 - 은의자- 말과 소년- 마법사의 조카 - 마지막 전투'의 순서대로 읽었어야 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기독교적 세계관'이 스며들어 있다는 것이었다. 난 워낙에 주위에서 강한 기독교적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을 봐와서인지 사실 기독교적 세계관이라면 진저리를 낸다.(물론, 그들은 날보고 안타까워하겠지만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생각보다 이 책에는 그런 면들이 많이 보이지 않는다. 책의 앞 부분에 실린 문학평론가의 말을 빌리자면 '그는 강한 무신론자였다가 어느날 변신론자가 되었고, 그때문에 간결하고 품위있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기독교에 대한 의문을 풀어나가는 글을 많이 썼다. 나니아 연대기에서는 기독교적인 세계관과 모티프가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거기에 얽매인 이야기가 아니라 오히려 성서적인 분위기를 감추고, 더 신화적이고 환상적인 세계를 만들려고 애썼다'고 한다. 때문에 어느 정도 기독교적인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상식을 바탕으로, 나처럼 어느 정도의 상식은 있지만 거리감이 느껴지는 사람, 아예 상식이 없는 사람, 어떤 사람이라도 이야기 자체만으로도 즐거움을 얻을 수 있을 듯 하다.

  나니아 연대기는 총 7편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네 명의 아이들인 루시, 수잔, 에드먼드, 피터가 말하는 동물들과 나무들, 절대적인 존재인 아슬란이 살고 있는 나니아로 우연히 들어가고, 그곳에서 일련의 모험을 한다는 것이 주된 이야기이다. 물론, 네 남매와 관계를 맺고 있는 유스터스나 디고리 경, 폴리 부인 등의 이야기도 등장한다. 그들은 나니아에 와서 일련의 경험을 하고, 다시 자신들이 살고 있는 영국으로 돌아가 이전과는 다른 아이가 되어 살아가는 모습을 보인다. 나니아와 아슬란의 존재가 그들을 변화시킨 것이리라.

  모두가 공평하고, 평화롭게만 보이는 나니아. 그곳을 어떤 지향점이나 천국으로 보기엔 찝찝한 마음이 들었다. 나니아에서 모든 생물체는 공평하다고 하지만, 나니아 사람들은 하얀 얼굴을 가진 사람들(백인을 의미하는 것이겠지. 아마도.)에 의해서 다스려지고, 말을 하는 온갖 동물은 조력자로 등장할 뿐이다. 이런 점은 루시와 수잔과 같은 여자아이들에게는 이브의 딸, 피터와 에드먼드와 같은 남자아이들에게는 아담의 아들이라 칭하는 나니아 사람들의 반응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는데, 그들에게 있어서 아담의 아들과 이브의 딸은 어떤 경외의 대상으로 존재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 외에도 나니아가 위기에 처할 때면 나니아에 사는 생물들은 아슬란이 오기를 애타게 기다린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 아슬란은 짜잔! 하고 등장해서는 모든 일을 해결한다. (이게 기독교적 세계관이겠지만.) 특히나 마지막 이야기인 <마지막 전투>에서는 나니아는 탐욕과 거짓에 점령을 당하고, 심지어는 나니아 국경에 있는 구릿빛 피부를 한 칼로르멘 사람들이 등장하는데 그들이 (악마라고 보여지는)타슈를 믿는다는 것에서는 특히나 심하게 기독교적 세계관이 느껴졌다.

  어쨌거나, 나니아 연대기는 비록 아이들을 위해서 쓰여진 판타지 동화이긴 하지만, 어른들이 읽어도 충분히 재미를 느낄 수 있을 듯 싶다. 특히나 기독교적인 세계관을 가진 사람이라면 더더욱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듯. 만만치 않은 분량이라 읽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한 번쯤은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었던 것 같다. '좀 더 어렸을 때 읽었더라면 순수한 마음으로 작품을 즐길 수 있었을텐데..'라는 아쉬움은 어쩔 수 없이 들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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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2-12 22: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매지 2006-02-12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여주신분 / 저도 그부분 참 어이없었어요. 근데 그부분도 꽤 성서와 일치하긴해요. 그죠?

2006-02-13 0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매지 2006-02-13 0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랑 같으시군요 ㅋㅋ 그나저나 반지전쟁은 반지의 제왕과 같은 책 맞나요? 괜히 헷갈리는. 저도 둘 중에 우열을 가리자면 톨킨쪽이 좀 더 깔끔한거 같은.

panda78 2006-02-13 0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지 전쟁은 구판이에요. ^^ 국민학교 5학년 때 아는 언니 집에서 빌려본 호비트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반지의 제왕은 몇번을 읽어도 안 질리고 재밌던데,
나니아는 정말 대실망입니다. = _ = 합본에 넘어가는 게 아니었는데..... ;;

예전에 나니아 처음 읽을 땐 연대기순으로 읽었고, 이번 합본은 출간순으로 읽었는데, 저는 그나마 후자가 낫더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