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이 당신의 인생을 구할 것이다
A.M. 홈스 지음, 이수현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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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샛노란 표지에 확 끌려서 이 책을 처음 잡았을 때만 해도 이 책이 이렇게 웃길 줄 몰랐다. 미국드라마 <L 워드>의 각본을 썼다는 저자는 온통 비현실적인 인물들을 등장시키고, '이건 뭐 어디 한 번 갈데까지 가보자는건가' 싶을 정도로 말도 안되는 사건들이 연달아 만들어낸다. 처음에는 다소 심드렁하게 읽었지만,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기면서 책의 두께때문에 가방에 공간이 없거나말거나 며칠동안 이 책을 끼고 살 정도로 푹 빠졌다. 

  가정부와 트레이너, 영양사가 집으로 찾아오고, 직업도 집 밖으로 나갈 일이 없어 몇 달째 집안에서만 지내고 있는 주인공 리처드 노박. 나름 정해진 규칙을 지키며 어디까지나 예측가능한 범위에서만 살던 그는 어느날 정체 모를 통증을 느낀다. 여차저차해서 응급실에 실려왔지만 별다른 문제점이 발견되지 않는다는 검사 결과가 나와 바로 퇴원한다. 집으로 돌아가던 중 그는 우연히 한 도넛 가게에 끌려 택시를 세우고 그 곳에 들어간다. 만약 바로 집으로 갔더라면 다시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일상이 펼쳐졌겠지만, 도넛 가게에 들어서며 그의 인생은 바뀌기 시작한다. 그저 고용-피고용적인 인간관계를 맺고 있었던 그에게 도넛 가게의 주인 앤힐은 친구가 되어 준다. 앤힐과의 만남으로 세상에 한 걸음 발을 내딛는 노박. 그가 그렇게 만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 책에 그려지고 있다.  

  평온하게 살고 있던 노박이 어느날 갑자기 고통을 느낀 것과 노박이 살고 있는 집 앞에 큰 구덩이가 생기고 이게 점점 커진다는 사실은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둘 다 '왜' 그런 것인지는 끝까지 설명을 나오지 않지만, 어쨌거나 노박의 인생은 두 사건(고통과 구덩이)때문에 변하기 시작한다. '대체 무슨 맛으로 먹나' 싶은 영양적 밸런스를 맞춘 파우더 정도만 먹는 노박의 모습은 정말인지 비인간적이다. 타인과의 대화도 거부한다는듯이 방음이 잘 되는 헤드폰을 끼고 러닝머신을 하고, 주가를 체크하는 모습은 영 정이 가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게 자신만의 공간에서 생활했던 노박은 '고통'을 없애기 위해 병원에 가기도 하고, 명상원에 들어가기도 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며 세상과 교류한다. 그 과정에서 그는 식료품 매장에서 울고 있던 여자를 가사에서 해방시켜 주기도 하고, 뉴욕에서 자동차를 타고 로스앤젤리스까지 여행을 한 아들을 만나 그동안 쌓였던 감정과 대면하기도 한다. 노박은 이전과는 180도로 달라져 '어떻게 남한테 그렇게까지 해줄 수 있나'라고 생각될 정도로 남을 도우며 살아간다. 

  사람들이 책을 읽는 이유중 하나는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기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온통 비일상적인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어 정말 '소설'을 읽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뭐가 이렇게 황당해'가 아니라 '야, 이거 밑도 끝도 없는 얘긴데 희안하게 재밌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간간이 등장하는 유머에서는 정말 혼자 빵터져서 키득거리기 일쑤였다. <이 책이 당신의 인생을 구할 것이다>라는 다소 강렬한 제목처럼 이 책이 누군가의 '인생'을 구해줄 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책은 누군가의 '일상'을 구해줄 것이라는 것이다. 매일 똑같은 생활에 지루했던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으며 눈이 번쩍 뜨이고, 가슴이 뻥 뚫린 기분을 맛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책 읽기에 시들해진 사람이라면, 뭔가 일탈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이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에 빠져보는 것도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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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1 - 광해군일기 - 경험의 함정에 빠진 군주 ㅣ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1
박시백 지음 / 휴머니스트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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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광해군'이라면 중립외교가 먼저 떠올랐기 때문에 뭔가 실리적인 이미지가 강했다. 그랬기에 나라를 말아먹은 뒤 광해군이 세울 조선이라는 나라가 더 기대됐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점점 <광해군일기>를 읽어가며 '결국엔 그놈이 그놈인가'라는 생각이 들어 참 아쉬웠다.

  책의 초반에 그려진 세자 시절의 광해군의 모습만 보면 훌륭한 왕이 될만한 자질과 경험은 충분했다는 생각이 든다. 왜의 침략에 비겁하게 혼자 살겠다고 도망간 선조보다 사실상 적지나 다름없는 지역에서 7개월이 넘게 분조(나뉜 조정) 활동을 하며 민심을 휘어잡는 광해군의 모습은 세자로서, 아니 한 명의 왕으로서 더할나위 없어 보였다. 하지만 이에 대한 선조의 질투는 결국 광해군을 10년을 울분과 두려움 속에서 보내게 한다. 이를 잘 이겨내고 개혁을 했으면 좋았으련만. 광해군은 망나니 같이 행동하던 형 임해군과 이복동생인 영창대군까지 없애고, 잇단 옥사를 일으키는 등 점점 예전의 광해군이 아니게 되어버렸다. 게다가 미신을 크게 믿어 연달아 궁궐을 지어 국가의 재정을 바닥나게 하고, 백성들을 토목공사에 시달리게 만드는 등 점점 광해군은 총명했던 세자의 모습에서 멀어져 결국 반정으로 쫓겨나기에 이른다. 

  작가도 후기에서 '정세를 바로 볼 줄 아는 혜안과 옳다고 믿는 바를 끝까지 밀어붙일 줄 아는 추진력을 겸비했음에도 광해군이 실패했던 것도 바로 경험 때문이다. 경험을 활용하지 못하고 경험에 사로잡혀버렸기 때문이다. 광해군 자신뿐 아니라 조선과 조선 백성에게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라고 말했듯이 전쟁이라는 혼란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광해군은 조선의 건강성을 흔드는 갖가지 폐단을 시정할 수 있었다. 물론, 방납의 폐단으로 백성들에게 고통을 안겨줬던 대동법을 일부 지역에서나마 시행시킨 점이나 '오직 성리학'을 외치는 이들과는 달리 명분보다는 실리를 추구하는 모습 등의 긍정적인 부분도 있었지만, 북방에 대한 대비책은 근본적이지 못했고, 신분질서의 폐해도 전혀 고쳐지지 않았다. 게다가 대동법의 일부 지역 시행 외에는 민생안정에도 성공하지 못하고 되려 무리한 궁궐 공사로 민생을 피폐하게 할 뿐이었다. 시대적인 조건과 자신의 능력을 모두 갖추었지만 아버지 선조의 그늘에서 결국 벗어나지 못한 것은 결국 그의 자질이 부족했기 때문이지만 그래도 능양군에게 왕위를 뺏긴 것은 너무나 가장 안타까웠다.

  인조는 썩 좋아하는 왕이 아니라 12권을 읽기가 살짝 꺼려지는데, 그래도 박시백이 풀어가는 <조선왕조실록>은 너무 마음에 들어서 구시렁거리며 결국 읽게 될 것 같다. 언제 읽어도 펴는 순간 빠져드는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덕분에 역사가 좀더 재미있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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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9-04-26 0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쎄요. 저는 광해군이 시대적인 조건을 지지리도 못타고 났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걸요. 출발부터 불안정한 왕권, 바로 머리앞에서 왕위를 위협하는 서인들. 그것도 적통대군이란 정통성을 무기로.. (조선시대에 가장 큰 무기죠) 제 개인적으로는 그가 미치지 않은것만도 참 힘들었을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이매지 2009-04-26 00:20   좋아요 0 | URL
사실 연산군처럼 미치지 않은 것만으로도 대단하죠. 16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쭉 기도 못 펴고 살았고 왕위에 올라서도 끊임없이 시달렸으니. 그놈의 적통대군은 정말 여러 왕을 망치는듯.

초기에 보여줬던 그런 결단력을 조금만 더 보여줬더라면 인조라는 찌질한 왕은 없었을 것 같아서 아쉽기도 하고, 결국 변화의 끈을 놓친 것 같아서 여러모로 아쉬웠어요.

미미달 2009-04-29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헐 이 시리즈를 11권째! 대단하세요!! 오랜만이네요. ㅋㅋㅋㅋㅋ

이매지 2009-04-29 22:48   좋아요 0 | URL
지금 13권까지 나와있어요 ㅎㅎ
완결되면 읽었어야했나 살짝 후회 ㅎ

살수검객 2009-04-30 0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매지님덕에 재밌는 책을 야금야금 보고 있네요...전 지금 2권 빌렸는데..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기분 나쁘지 않은듯..님의 리뷰는 너무나 끌려요..^^

이매지 2009-04-30 14:21   좋아요 0 | URL
워낙 유명한 책인걸요 :)
리뷰는 그냥 내용을 정리한 것 같아서 좀 찝찝했는데,
그래도 좋게 봐주시니 감사! ㅎㅎ
 
실격사원
에가미 고 지음, 김주영 옮김 / 북하우스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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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가 들어 직장을 다니는 친구들이 하나씩 늘자, 예전엔 연예인 누가 좋다는 둥, TV는 무슨 프로가 재미있다는 둥 그런 얘기를 하던 녀석들이 점점 회사에서 일어난 갖가지 이야기들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진상을 부리는 고객에서부터, 상사에 대한 험담까지. 남의 돈 벌어먹고 사는 게 어디 그리 쉬운 일이겠냐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한 친구의 이야기에 다른 친구들은 공감하며, 자신의 비슷한 경험을 털어놓기도 한다. 이 책 <실격사원>은 그렇게 직장생활을 하는 이라면 한 번쯤 겪어봤을(혹은 들어봤을) 이야기들로 구성된 소설이다.

  독특하게도 10개의 이야기의 제목은 십계명으로 되어 있다. 기독교의 십계명과 직장생활에서의 십계명은 기가막히게 잘 어울렸다. 예를 들어, '야훼 이외의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에서는 헤드 헌팅이라는 유혹을 당하는 주인공이 등장하고, '도둑질하지 말라'에서는 부하직원의 공을 자신의 공처럼 속이는 밉상스러운 인물이 등장하며,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에서는 월월화수목금금으로 평생 제대로 쉬지 못하고 은행에서 일하던 주인공이 퇴직당한 뒤 IT회사에서 일은 안하고 노는 것처럼 보이는 직원들을 바꾸겠다는 계획때문에 겪는 이야기 등이 등장한다. 

  에가미 고라는 저자는 다소 낯설어서 책 날개에 있는 작가 소개를 읽어봤더니 은행에서 일했던 경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 총 10개의 에피소드 가운데 절반 이상에서 은행이 등장할 정도였다. 아마 작가의 경험도 경험이지만 폐쇄적인 조직을 보여주기에 은행만한 곳도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책을 읽으며 예전에 읽었던 (역시 은행원 출신 작가의) <은행원 니시키씨의 행방>이 떠올랐다. 그 책에 등장하고 있는 은행원들의 모습은 <실격사원>에 등장하는 은행원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저마다 좀더 실적을 쌓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나 설사 고객에게 위험을 떠넘기는 것이 되더라도 그들의 성공을 위해 고객은 그저 하나의 발판으로 이용하는 모습은 닮아 있었다. 하지만 <은행원 니시키씨의 행방>보다 <실격사원>쪽이 회사원들의 애환을 잘 풀어냈고 좀더 유머러스한 부분도 있는 것 같아 더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었다. 

  직장생활을 하며 겪는 부당한 일들, 그리고 누구에게도 쉽게 얘기하지 못한 답답한 일들. 그런 이야기들이 <실격사원>에는 잘 담겨 있다. 주머니 속에 사표를 만지작거리며 하루하루를 견디는 이들에게 이 책이 잠시나마 일상을 탈출하게 도와줄 수 있게, 또 다른 이들의 이야기에서 위안을 얻을 수 있게 해주지 않을까 싶었다. 일본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주인공들의 이름만 한국식으로 바꾼다면 깜빡 속을 정도로 사실상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아 더 재미있게 읽은 것 같다. 작가 약력에 보니 <사장실격>이라는 책도 있던데 그 책도 왠지 재미있을 듯. 앞으로 좀더 다양한 에가미 고의 책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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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당신의 인생을 구할 것이다
A.M. 홈스 지음, 이수현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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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슬처럼 이어진 집들이 계곡 벽을 따라 위아래로 퍼져 있다. 사회적인 사슬, 경제적인 사슬, 먹이사슬이다. 목표는 꼭대기, 언덕의 왕이 되는 것이다. 이기는 것이다. 모두들 옆집을 내려다보며 자기들이 더 낫다고 생각하지만, 언제나 아래에서 밀고 올라오거나 위에서 내려다보는 사람이 있다. 영원한 승자는 없다.
그는 집의 꼭짓점, 두꺼운 창유리 두 장이 만나 배 앞머리처럼 언덕 위로 튀어나온 날카로운 모서리에 서 있다. 그는 서 있다. 선장, 왕, 주인, 그리고 스스로 만든 감옥의 죄수. -9쪽

그는 그곳에 누워 자신이 얼마나 철저하게 세상으로부터 스스로를 지우고 의무를 없애버렸는지, 얼마나 바보같이 독립적이었는지 깨달았다. 그는 아무도 필요로 하지 않았고, 아무도 알고자 하지 않았으며, 어느 누구의 인생에도 끼어들려 하지 않았다. 어찌나 철저히 스스로를 의무의 세상으로부터 고립시켰던지 자신이 아직 존재하고 있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25~6쪽

미국에선 모두가 거물이죠. 이미 많이 가졌는데 다들 더 갖길 원해요. 우리나라에선 모두가 보잘것없어요. 더 쉽죠. 여기 사람들은 언제다 다른 사람이 되려고 해요. 의사에게 가서 새 코를 얻고, 가슴을 더 크게 부풀리죠. 왜 멀쩡한 코와 좋은 날씨에 행복해하지 않는 걸까요? (중략) 설명해봐요. 왜 미국에선 모두가 장님 행세를 하죠? 미국인은 보지 않는 연습을 해요. 차에 타면 휴대전화로 사람을 부르죠. 혼자 있는 건 무서워하면서 주위에 있는 사람은 보지 않아요. -49쪽

"다행히도 보는 것만큼 지독하진 않아요."
"그게 문제예요. 사람들은 보이는 게 진실이라고 생각하거든요."-87쪽

사람은 자기에게 시간이 얼마나 있는지 절대 알 수 없는 법이야. 촌스러운 소리인 줄은 안다. -125쪽

"음식이 당신에겐 어떤 의미죠?"
"모든 것이요. 모든 것을 의미해요. 사랑, 영양, 편안함, 보살핌. 오히려 물어야 할 건 당신에게 음식이 어떤 의미냐가 아닐까요?"
"처음 식이요법을 시작했을 때는 몸을 가볍고 건강하고 깨끗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는데, 지금은 그저 습관과 삶의 체계가 되어버렸어요."-142쪽

고통은 정상입니다. 아픔은 정상입니다. 삶의 일부죠. 그렇다면 우리는 왜 여기에 있을까요? 우리는 왜 고통을 두려워할까요? 왜 고통을 피하고 막으려 할까요? 왜 고통이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할까요? 우리는 약을 먹고, 명상을 하고, 고통받지 않으려 애씁니다. 고통이 무엇입니까? 고통이 표현하는 것, 그러니까 감정의 깊이, 우리의 애정,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욕망, 자아, 그 모든 것이 우리를 끌어내릴 수 있나요? 이번 주, 여행의 첫머리에서 우리는 느끼는 그대로를 느끼고 그 느낌을 밀어내지 않으며, 그 느낌에 압도당하지 않고 오직 그에 주목하고, 숙고하고, 알기 위한 의지를 가질 것입니다. 고통의 본질은 무엇이며, 얼마나 무거운가? 고통의 의미는 무엇인가? 고통에 닿고, 고통과 가까워지고, 고통을 받아들이는 것부터 시작하십시오. 안녕, 고통, 난 여기 너와 함께 있어. 네 옆에 있어. 난 너야. 난 고통이야.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세요. 바로 지금. -214~5쪽

고통을 변화시켜라. 변화가 더 나쁜 쪽으로 이루어진다면 받아들여라. 뭔가가 변하면 그것을 참아내고, 인내하라. 그러나 참아낼 수 없다면? -218쪽

"마음에 들었어요. 가치 있었고, 아주 오랫동안 어떤 것에서도 받지 못한 자극을 받았어요. 돌아오고 나니 모든 것이 이상하게 느껴지고 어색하다는 것만 빼면 아주 좋았어요. 난 내가 생각한 그런 사람이 아니었어요."
"우리 중에 그런 사람은 없죠."
"사실 난 전혀 달라지지 않았는데, 전과 같은 게 아무것도 없어요."
"통증은 어때요?"
"뭐랄까, 기분이 아주 좋습니다. 통증은 아직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분명히 그렇겠죠? 우리 모두 고통 속에 사니까요.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그게 신경 쓰이지 않습니다."-259쪽

"우리 모두 마음만 먹으면 훌륭해질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썩을 놈의 짐승들이지. 현실에 VIP실 따윈 없어. 그리고 이 도시에는 현실이 없지. 인터넷 검색으로 답을 찾을 순 없어. 사람들은 자기 인생을 살라고 지껄이지만 이게 바로 인생이야." 닉은 숨을 몰아쉰다. "다들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이든 이미 알고 있어. 다른 나라, 다른 풍경에서 사는 게 어떨지 상상해봐. 열기, 벌레, 공포. 바로 코앞에서 누군가가 철선을 건드리고 지뢰를 밟아서 말을 하다 말고, 담배를 피우다 말고 산산조각나는 걸 상상해봐. 몸에 살점을 뒤집어쓴 광경을 상상해보란 말이야. 집에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고 있는 녀석과 오 분 동안 이야기 나누는 상황을 상상해봐. 그거랑 뉴욕 북부에서 맥주를 마시고 총각딱지를 떼보려고 애쓰면서 여름 한철 조지 호수에서 구조원으로 일하는 삶의 차이를 상상해봐. 친구들을 시체 운반용 부대에 넣고 잠그는 모습을 상상해봐. 도대체 어떤 놈이 이게 좋은 생각이라고 생각한 건지 말해봐. 어떻게 아무도 화내지 않을 수 있지? 돌아버려야 마땅해. -291~2쪽

'이것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전신주에 붙은 종이에 신경이 쓰인다. 도대체 뭘까. 이 사람은 뭘 원하는 걸까? 그는 포스터를 한 장 뜯어 들고 집 안으로 들어가 전화해본다.
남자가 받는다. "예."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듣고 있습니까?"
"예."
"이 포스터가 무엇에 대한 건지 알고 싶어서요."
"뭔가 봤소?"
"고속도로 아래위에 잔뜩 붙은 종이를 봤지요."
"계속 보쇼." 남자는 전화를 끊는다. -306~7쪽

웨이터가 초가 꽂힌 디저트를 가져온다. "생일 축하드립니다. 제가 노래를 부르는 건 원치 않으시겠죠."
"아, 내 생일이 아닌데요." 리처드가 말한다.
"생일 맞잖아요. 부끄러워하지 말아요." 신시아가 말한다.
"촛불을 불어 끄세요." 웨이터가 말한다.
세 사람은 디저트를 같이 먹는다. 리처드는 계속 항의한다. "생일이 아니라니까요."
신시아가 말한다. "당연히 아니죠. 생일이라고 하면 공짜 디저트를 주는 식당이 많아서 그렇게 말했어요."-385~6쪽

"어렸을 때에 대해 기억나는 게 있나?" 리처드가 묻는다. (중략)
"난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 계속 생각하다가 어, 기억이 안 나네, 이런 게 아니야.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다가 갑자기 작은 부분이 떠오르고 이거 재미있군, 완전히 잊고 있었는데, 하는 식이지."
"우린 아무도 기억하고 싶어하지 않는 시대에 살아. 우리가 시작 지점에 있는 척 굴지. 우리가 사는 방식을 봐. 절벽 끝에, 단층선에, 지나다니는 길 위에 집을 짓고선 무슨 일이 생겨도 역사에서 배울 줄을 몰라. 똑같은 장소에 다시 짓지. 더 크게, 더 좋게." 닉이 술을 따른다. "몰락만 더할 뿐이야. 지금 우리가 가진 건, 사실과 우리가 현실이라고 부르기로 한 허구의 혼합이야."-388~9쪽

토요일, 그는 벤과 디즈니랜드에 간다. 바스는 앤힐의 집에 가 있다. 운전은 벤이 한다. 벤은 동부 해안에서 온 아이답게, 그러니까 주말에 운전을 배우고 여름에만 운전해본 아이답게 운전을 한다.
고속도로에서 벤은 오른쪽 차선을 고수한다. 수백만 명이 그 차선을 들락거리는 데도 바꾸지 않는다.
"내가 뭔가 잘못하고 있는 건가요?"
"아니. 전혀 그렇지 않아. 그냥 속도를 조금만 올리면 어떨까. 사람들이 돌아서 갈 필요 없게 말이다. 이 차선으로 차들이 계속 들어왔다 나가는데 시속 45마일을 유지하고 있으니 힘들지."
벤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속력을 48일로 올린다. -3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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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격사원
에가미 고 지음, 김주영 옮김 / 북하우스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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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퍼니(company)를 '회사'라고 제일 먼저 번역한 사람은 누구일까? 후쿠자와 유키치일까? 시부사와 에이이치일까? 아마도 메이지 시대로 들어서면서일 것 같은데 어떤 이유로 이 글자를 생각하게 됐을까? '회(會)'는 모임, '사(社)'는 토지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인다는 뜻이다. 그럼 사람들이 모여 제사 지낼 곳을 만드는 것이 회사인가?
'회사'와 닮은 꼴로 '사회'가 있다. 이는 신을 모시는 곳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졌다는 의미일 것이다.
사전을 찾아보면 후쿠치 오우치가 소사이어티(society)를 '사회'로 번역했다고 나왔다.
'사회'라는 단어를 보면 신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공동체로 신뢰관계를 맺고 있거나, 맺어야만 한다는 번역가의 강한 의지가 느껴진다.
하지만 '회사'는 단순히 '사회'를 거꾸로 뒤집어놓을 것 같기도 하다.
만약 '회사'가 '사회'를 거꾸로 뒤집어놓은 것이라면 참으로 적절한 번역이라고 할 만하다. 왜냐하면 '사회'가 사람과 사람의 신뢰를 바탕으로 이뤄진다면 '회사'는 정반대인 '배신'을 기반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72~3쪽

즉, 회사란 '배신자'의 소굴인 셈이다. 그리고 '배신'을 하는 권력투쟁의 장이기도 하다. -73쪽

사람에게 할당량을 주어 소나 말처럼 위협하고 채찍질하면서 일을 시키는 업무방식은 이제 통하지 않습니다. 그보다 자신이 하는 일에 감사하면서 일하는 편이 훨씬 능률도 오르고 아름다우니까요. -137쪽

휴식이란 건 단순히 몸을 쉬기 위한 것이 아니라 부부나 직장 동료들에게 감사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1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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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09-04-24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휴식이란 건 단순히 몸을 쉬기 위한 것이 아니라 부부나 직장 동료들에게 감사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오호.. 혜안인데요.

이매지 2009-04-25 11:26   좋아요 0 | URL
휴식은 나 자신을 위한 시간이라고 생각했는데 저 얘길 들으니까 공감이 되더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