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1 - 광해군일기 - 경험의 함정에 빠진 군주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1
박시백 지음 / 휴머니스트 / 200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광해군'이라면 중립외교가 먼저 떠올랐기 때문에 뭔가 실리적인 이미지가 강했다. 그랬기에 나라를 말아먹은 뒤 광해군이 세울 조선이라는 나라가 더 기대됐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점점 <광해군일기>를 읽어가며 '결국엔 그놈이 그놈인가'라는 생각이 들어 참 아쉬웠다.

  책의 초반에 그려진 세자 시절의 광해군의 모습만 보면 훌륭한 왕이 될만한 자질과 경험은 충분했다는 생각이 든다. 왜의 침략에 비겁하게 혼자 살겠다고 도망간 선조보다 사실상 적지나 다름없는 지역에서 7개월이 넘게 분조(나뉜 조정) 활동을 하며 민심을 휘어잡는 광해군의 모습은 세자로서, 아니 한 명의 왕으로서 더할나위 없어 보였다. 하지만 이에 대한 선조의 질투는 결국 광해군을 10년을 울분과 두려움 속에서 보내게 한다. 이를 잘 이겨내고 개혁을 했으면 좋았으련만. 광해군은 망나니 같이 행동하던 형 임해군과 이복동생인 영창대군까지 없애고, 잇단 옥사를 일으키는 등 점점 예전의 광해군이 아니게 되어버렸다. 게다가 미신을 크게 믿어 연달아 궁궐을 지어 국가의 재정을 바닥나게 하고, 백성들을 토목공사에 시달리게 만드는 등 점점 광해군은 총명했던 세자의 모습에서 멀어져 결국 반정으로 쫓겨나기에 이른다. 

  작가도 후기에서 '정세를 바로 볼 줄 아는 혜안과 옳다고 믿는 바를 끝까지 밀어붙일 줄 아는 추진력을 겸비했음에도 광해군이 실패했던 것도 바로 경험 때문이다. 경험을 활용하지 못하고 경험에 사로잡혀버렸기 때문이다. 광해군 자신뿐 아니라 조선과 조선 백성에게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라고 말했듯이 전쟁이라는 혼란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광해군은 조선의 건강성을 흔드는 갖가지 폐단을 시정할 수 있었다. 물론, 방납의 폐단으로 백성들에게 고통을 안겨줬던 대동법을 일부 지역에서나마 시행시킨 점이나 '오직 성리학'을 외치는 이들과는 달리 명분보다는 실리를 추구하는 모습 등의 긍정적인 부분도 있었지만, 북방에 대한 대비책은 근본적이지 못했고, 신분질서의 폐해도 전혀 고쳐지지 않았다. 게다가 대동법의 일부 지역 시행 외에는 민생안정에도 성공하지 못하고 되려 무리한 궁궐 공사로 민생을 피폐하게 할 뿐이었다. 시대적인 조건과 자신의 능력을 모두 갖추었지만 아버지 선조의 그늘에서 결국 벗어나지 못한 것은 결국 그의 자질이 부족했기 때문이지만 그래도 능양군에게 왕위를 뺏긴 것은 너무나 가장 안타까웠다.

  인조는 썩 좋아하는 왕이 아니라 12권을 읽기가 살짝 꺼려지는데, 그래도 박시백이 풀어가는 <조선왕조실록>은 너무 마음에 들어서 구시렁거리며 결국 읽게 될 것 같다. 언제 읽어도 펴는 순간 빠져드는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덕분에 역사가 좀더 재미있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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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9-04-26 0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쎄요. 저는 광해군이 시대적인 조건을 지지리도 못타고 났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걸요. 출발부터 불안정한 왕권, 바로 머리앞에서 왕위를 위협하는 서인들. 그것도 적통대군이란 정통성을 무기로.. (조선시대에 가장 큰 무기죠) 제 개인적으로는 그가 미치지 않은것만도 참 힘들었을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이매지 2009-04-26 00:20   좋아요 0 | URL
사실 연산군처럼 미치지 않은 것만으로도 대단하죠. 16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쭉 기도 못 펴고 살았고 왕위에 올라서도 끊임없이 시달렸으니. 그놈의 적통대군은 정말 여러 왕을 망치는듯.

초기에 보여줬던 그런 결단력을 조금만 더 보여줬더라면 인조라는 찌질한 왕은 없었을 것 같아서 아쉽기도 하고, 결국 변화의 끈을 놓친 것 같아서 여러모로 아쉬웠어요.

미미달 2009-04-29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헐 이 시리즈를 11권째! 대단하세요!! 오랜만이네요. ㅋㅋㅋㅋㅋ

이매지 2009-04-29 22:48   좋아요 0 | URL
지금 13권까지 나와있어요 ㅎㅎ
완결되면 읽었어야했나 살짝 후회 ㅎ

살수검객 2009-04-30 0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매지님덕에 재밌는 책을 야금야금 보고 있네요...전 지금 2권 빌렸는데..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기분 나쁘지 않은듯..님의 리뷰는 너무나 끌려요..^^

이매지 2009-04-30 14:21   좋아요 0 | URL
워낙 유명한 책인걸요 :)
리뷰는 그냥 내용을 정리한 것 같아서 좀 찝찝했는데,
그래도 좋게 봐주시니 감사!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