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천 정사 화장 시리즈 1
렌조 미키히코 지음, 정미영 옮김 / 시공사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회귀천 정사>라는 의미가 단번에 와닿지 않는 제목. 반쯤 드러나 있을 뿐이지만 어딘지 섬뜩하면서도 슬퍼 보이는 여인의 모습. 아무런 기본 정보도 없이 이 책을 고른 것은 순전히 어딘가 사연 있어 보이는 표지 때문이었다. 작가 스스로 어디까지나 꽃이 주인공이라고 밝히고 있는 화장(花葬) 시리즈. 한 송이 꽃처럼 아름답게 피어났다가 스러져간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연작소설집 <회귀천 정사>는 그 향기를 은은히 떨치듯이 자신의 이야기를 조용조용히 풀어놓는다.

  주변 사람들의 편지 등을 대필해주며 살아가던 대필가가 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되는 이야기 <등나무 향기>를 비롯해 도라지꽃을 손에 쥔 채 죽은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도라지꽃 피는 집>처럼 홍등가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를 비롯해, 야쿠자의 이야기를 다룬 <오동나무 관>, 어린 시절 어머니가 누군가를 살해하는 모습을 목격한 이야기를 다룬 <흰 연꽃 사찰>, 천재라 불린 가인의 정사 미수 사건을 다룬 <회귀천 정사> 등 이 책에서는 밝음보다는 어둠의 세계를 더 많이 다루고 있다. 물론 사랑을 이루지 못한 남녀가 서로 죽음으로 사랑을 이루고자 하는 '정사'라는 소재가 태생적으로 밝음과 이어질 수 없기 때문이도 하겠지만, 짓밟힌 꽃, 시들어버린 꽃이라는 화장 시리즈의 내용적인 측면도 고려한 설정인 듯하다. 

  미스터리적 요소가 섞여 있긴 하지만, 이 책을 읽을 때는 그 중심에 분위기를 놓아야 한다. 시각, 후각, 청각을 곤두세우며 이 책을 몰입해 읽다보면 어느새 코끝에는 등나무 향기가, 귓가에는 연꽃 피는 소리가, 눈앞에는 하얀 도라지꽃이 스쳐간다. 어쩐지 몽환적이면서도 은은한 분위기의 이야기. 하지만 그 이야기들은 저마다 죽음과 맞닿아 있기에 마냥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았다. 섬세한 묘사는 충분히 매력적이었지만 그보다는 선 굵은 매력을 기대하고 읽었던 터라 아쉬움이 들었다. 독자의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듯한 이야기. 얼마 전 화장 시리즈의 나머지 작품이 수록된 <저녁싸리 정사>가 나왔는데, 기회가 닿는다면 <저녁싸리 정사>까지 한번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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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1-07-12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이매지님 리뷰를 보니 마구 읽고 싶어지는데요^^

이매지 2011-07-13 13:58   좋아요 0 | URL
카스피님은 어떻게 보실지 궁금해지는데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