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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옷을 입은 여인
윌리엄 월키 콜린스 지음, 박노출 옮김 / 브리즈(토네이도)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당장 눈에 들어오는 책에 정신이 팔리다보니 자연스레 요즘 우후죽순처럼 쏟아져나오는 일본추리소설을 위주로 읽게 됐다. 하지만 최근 <붉은엄지손가락 지문> <월광석> 같은 영미 고전 추리소설을 읽으며 가볍게 읽기는 좋지만 어쩐지 자극적인 맛에 익숙해지는 일본미스터리와는 다른 맛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그리운, 그렇지만 한편으론 새로운 맛을 느끼기 위해 고른 책, 바로 <흰옷을 입은 여인>이다.
19세기 영국, 그림을 그리며 근근이 살아가는 월터 하트라이트는 우연히 친구의 소개로 리머리지 가의 그림 선생으로 떠나게 된다. 그리고 바로 그날, 흰옷을 입은 의문의 여인과 마주쳐 가벼운 모험(?)을 하고, 그녀에게 어떤 준남작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리고 다음 날, 리머리지 가에 도착해 자신이 가르칠 로라와 마리안을 만난 월터는 흰옷을 입은 여인과 너무나 닮은 로라를 보고 놀란다. 하지만 그런 놀라움도 잠시, 시간이 지나며 로라와 월터는 서로를 향하는 마음을 느낀다. 하지만, 로라에겐 이미 돌아가신 아버지가 맺어준 약혼자가 있었기에, 둘의 사이를 눈치 챈 마리안은 두 사람 모두를 위해 월터가 떠나주길 권한다. 결국 계약기간을 다 채우지 못하고 월터는 자발적으로 리머리지 가를 떠나 이별의 아픔을 잊으려 남미의 유적 발굴단을 따라 나선다. 그리고 약혼자와 결혼을 한 로라. 하지만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월터와 로라 사이에는 끊임없이 '흰옷을 입은 여인'이 떠돈다. 복수와 비밀, 그리고 사랑. 빅토리아 시대의 이 어두운 이야기가 <흰옷을 입은 여인>에 그려진다.
한동안 꽤 괜찮은 작품이라는 평을 여기저기서 들었지만, <흰옷을 입은 여인>이라는 말에 어쩐지 소복 입은 처녀귀신 같은 느낌이 들어서(물론 시대도, 배경도 다르지만) 미뤄왔었다. 하지만 얼마 전, <월장석>을 읽으며 윌키 콜린스의 작품을 다시 한 번 만나고 싶은 마음에 무지막지한 두께의 압박을 감수하고 읽기 시작했다. <흰옷을 입은 여인>은 <월장석>처럼 이야기의 각 부분마다 화자가 바뀐다. 여러 사람이 돌아가면서 하나의 사건을 서술한다는 것은 다양한 관점을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장점이 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산만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단점도 있다. <월장석>을 읽을 때도 그랬지만, 윌키 콜린스는 이런 설정으로 분량을 늘리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각각의 캐릭터를 친근하게 느낄 수 있게끔 하는 것 같다. '대체 흰옷을 입은 여인이 그래서 어떻다는 거야!'라고 생각할 정도로 이 책의 전개는 느리다. 쓸데없이 보이는 부분도 있고, 진실을 알기 위해 조금 돌아가는 경향도 있다. 하지만 그 당시의 시대상을 엿보는 재미, 또는 그 반대로 시대가 변해도 여전히 먹히는(?) 돈을 위한 계략 같은 이야기를 엿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정통 고전 미스터리를 기대하고 본다면 다소 실망할 수 있을 작품. 로맨스 미스터리를 기대한다거나, 빅토리아 시대를 엿보길 원한다면 만족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