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 87분서 시리즈
에드 맥베인 지음, 이동윤 옮김 / 검은숲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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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얼마 전 <살의의 쐐기>로 87분서 시리즈를 처음 접한 뒤 <아이스> 출간 소식을 듣고 이 매력 터지는 형사들을 다시 만날 생각에 가슴이 두근, 했다. <살의의 쐐기>가 짧고 굵게 87분서 형사들에게 빠지게 해줬다면 <아이스>는 그보다는 더 긴 호흡으로 이들의 매력을 곱씹게 한다. <살의의 쐐기> 같은 긴장감과 스릴감을 원한다면 <아이스>는 지루할 수도 있다. 하지만 경찰소설로 읽기에, 87분서 형사들을 만나기에 <아이스>는 최적화된 이야기다.

 

  인기 뮤지컬에 출연중인 여자 무용수가 공연을 마치고 귀가하다 총에 맞아 죽는다. 조사 결과 같은 총으로 마약판매상이 죽은 사건이 수사중임이 밝혀진다. 생활 반경도, 삶의 방식도 완전히 다른 두 사건의 연결고리를 찾던 중 또 한 명(보석상)이 같은 총으로 살해당한다. 면식범의 소행인지, 미치광이 살인범인지도 가늠이 되지 않고, 살해당한 세 사람의 연관성도 눈에 띄지 않는 상황 속에서 87분서 형사들은 작은 실마리라도 찾아내려 모든 노력을 기울인다. 

 

  시리즈가 오랫동안 계속 이어지는 것은 이야기 때문일 수도 있다. 기본적으로 사건 자체가 흥미진진해야 독자가 매력을 느낄 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리즈를 읽는 것은 단순히 스토리 때문은 아니다. 사건이 시리즈가 아닌 단독적인 다른 책보다 조금 재미가 덜하다고 해도 그 사건을 구성해가는 캐릭터 때문에라도 시리즈는 한번 빠지면 헤어나올 수가 없다. 대부분의 시리즈가 한 명의 주인공을 원톱으로 내세워 그를 중심으로 주변 캐릭터를 정리해가는 방식이라면 87분서 시리즈는 반대다. 같은 인물이 등장한다고 해도 그 분량이나 비중이 작품마다 다르다. 마이어나 카렐라의 경우에는 <살의의 쐐기>와 마찬가지로 <아이스>에서도 어느 정도 비중이 있지만, <살의의 쐐기> 때는 별로 주목받지 못했던 클링과 브라운이 <아이스>에서는 조명된다. 원톱이 아니라 팀웍을 보여주는 시리즈이기 때문에 이런 부분을 즐기는 재미가 있었다. 


  또 하나 재미있었던 것은 깨알같은 유머다. <살의의 쐐기> 때도 그랬지만 <아이스>를 읽으면서 이들의 유머에 좀더 빠져들었는데, 초반에 그려지는 임신한 매춘부와 잡범들의 에피소드나 밸런타인데이 관련한 에피소드 등을 읽으며 정말 한참 키득거렸다. ("밸런타인데이 선물로 뭘 받으셨습니까?"라는 질문에 "살인 사건"이라고 답하는 시크함이라니.) 책 속에서 경찰 업무에 대해서 사람을 닳게 만드는 겨울처럼 "눈이나 얼음, 진눈깨비, 얼어붙을 정도로 차가운 비 같은 것들이 두 손을 들고 항복을 표시할 때까지 계속해서 들이닥"치는 것이라 묘사한 부분이 있었다. "봄이 찾아와 얼음을 녹이고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일 때까지 어떻게든 견뎌낼 수 있었다. 그러면 다음 겨울이 들이닥치는 것이었다"라는 식으로 이어졌는데, 그 말처럼 경찰 업무의 추위를 녹이는 것은 결국 유머와 동료애가 아닐까 싶었다. 이들이 함께 전투를 치르는 모습을 보면서 어느샌가 나도 한자리 끼어들게 되는 것이 87분서 시리즈의 매력이 아닐까.


  반전이나 범인의 의외성 등을 고려하면 사건의 진상은 어떻게 보면 시작은 거대했으나 끝은 평범했더라 싶었다. 잘 나가다가 끝에서 맥이 빠지는 느낌이었다랄까. 하지만 어쨌거나 거기까지 꼼꼼히 수사과정을 짚어가며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은 좋았다. 아내의 불륜을 목격하고 마음의 문을 닫은 클링과 여형사 아일린이 조금씩 부농부농해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사건 외의 재미 중 하나였다. 느긋하게 87분서 형사들을 만나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추천. 또 다시 87분서 형사들을 만날 날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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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3-03-01 0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는 유혹이네요
저도 보고파요

이매지 2013-03-01 12:41   좋아요 0 | URL
시리즈마다 집중 조명되는 인물이 다른 게 재밌더라구요. ㅎㅎㅎ
좀 길어서 그렇긴 하지만 시간 되시면 한번 읽어보셔용~
 
점과 선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경남 옮김 / 모비딕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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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년 전, 기타노 다케시 주연의 드라마를 볼 때 겸사겸사 읽었던 『점과 선』이 새 번역과 새 옷을 입고 출간됐다. 기존에 동서판에서는 『제로의 초점』과 함께 수록되어 있었기 때문에 제법 두꺼웠지만, 이번에는 『점과 선』만으로 부담없는 분량으로 다시 만났다. 마쓰모토 세이초를 처음 알게 된 작품은 『모래그릇』이었지만, 뇌리에 가장 오래 박힌 작품은 『점과 선』이었기에 '마쓰모토 세이초 월드'로 다시 만난 이 책이 더 반가웠다. 『모래그릇』을 비롯해 그동안 읽어온 세이초의 작품들이 현실을 날카롭게 그리는 경우 또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타락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 경우가 많았다면, 첫 장편소설인 『점과 선』은 그보다는 트릭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도쿄 역 13번 플랫폼의 숨겨진 4분'부터 시작해 철벽같아 보이는 알리바이를 깨나가는 과정이 짧은 분량이지만 강한 인상을 남긴다.

 

  요정의 여급인 오토키와 중앙 관청의 과장대리인 사야마 겐이치가 후쿠오카의 외딴 해안에서 청산가리가 든 주스를 마시고 함께 죽은 채 발견된다. 모두가 정사(情死)라고 생각하지만, 베테랑 형사인 도리카이 준타로는 사야마의 소지품 가운데 1인으로 되어 있는 열차 식당의 영수증에 의문을 품는다. 도리카이는 마침 사야마가 진짜 자살을 한 것인지 확인차 온 경시청의 형사 미하라에게 이런 의문을 털어놓고, 이후 미하라는 이 사건에서 뭔가 지나친 우연으로 인한 작위의 기운을 감지한다. 난공불락처럼 보이지만 어딘가에 있을 작은 틈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미하라, 그리고 마침내 알리바이의 벽은 무너진다. 

 

  너무나 '완벽'한 알리바이였기 때문에 그 알리바이가 깨져가는 과정, 그리고 마침내 간파했을 때의 통쾌함은 다시 읽어도 즐거웠다. 시대적인 흐름 탓도 있겠지만 사실 트릭 자체는 엄청나게 놀라운 정도는 아니고 그리 자극적이지도 않다. 어쩐지 끼워맞추기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4분 간'을 비롯해 치밀하게 짜여진 트릭은 마쓰모토 세이초가 얼마나 꼼꼼한 작가인지 실감하기엔 충분하다. 이래서야 1분까지도 허투루 넘길 수 없을 것 같을 정도다. 사실 이 책의 메인은 시간표 트릭이지만 인간 심리에 대한 부분도 놓칠 수 없다. 1인 영수증을 두고 "식욕보다 애정의 문제"라는 말로 절묘하게 표현하는 부분이나 함께 죽은 남녀의 사체를 보고 자연스레 정사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선입관이 맹점을 만드는 경우를 풀어가는 과정은 다시 읽어도 허를 찔리는 듯했다. 분량은 얼마 되지 않지만 그 치밀함과 의식, 트릭 등은 잘 짜여 있어 『점과 선』이야말로 마쓰모토 세이초의 입문서로 손색이 없지 않나 싶다. 중간중간 삽화와 함께 읽어 한결 새로웠던 『점과 선』. 다시 읽어도 여전히 감탄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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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3-02-16 1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철도 매니아가 많은 일본에서 나올만한 책이지요^^

이매지 2013-02-16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그런 점도 영향이 있었겠죠. ㅎ
 
푸른 묘점 세이초 월드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욱 옮김 / 북스피어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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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쓰모토 세이초,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호칭은 '사회파 미스터리'다. <점과 선> <짐승의 길> <모래그릇> 등 그동안 출간된 작품들은 조금씩 분위기나 정도의 차는 있었지만 내 나름대로 구축한 '마쓰모토 세이초'라는 작가의 이미지와 그리 거리가 멀진 않았다. 하지만 <푸른 묘점>은 기존의 작품과는 구분됐다. "유명 작가에게 씌워진 표절 의혹과 살인사건, 편집자 콤비가 이를 추적하다가…… 연애한다"라는 다소 장난스러운 띠지문안에 키득거리며 책을 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푸른 묘점>을 편집하다가 살인낼 뻔했다는 솔로편집자의 마음을 십분 이해하게 됐다.


  이야기는 문예잡지 편집부의 신입 사원인 노리코가 담당 작가인 무라타니 아사코에게 어떻게든 원고를 받아내기 위해 하코네로 떠나는 것으로 시작된다. 까탈스럽지만 글만은 빼어난, 무라타니의 비위를 맞추며 그녀의 탈고를 기다린다. 그렇게 원고의 완성을 기다리며 산책을 하던 노리코는 안개 속에서 이상한 조합의 두 쌍을 목격한다. 원고 마감으로 바쁠 무라타니 아사코와 잡지사에 자극적인 기사를 팔고 다니는 다쿠라 요시조가 하나, 아사코의 남편인 무라타니 료고와 미지의 여자가 다른 하나였다. 호기심이 동하지만 그냥 넘길 수도 있었던 이 일은 다음 날 다쿠라 요시조가 벼랑에서 떨어져 죽은 채 발견되며 급변한다. 과연 다쿠라는 자살을 한 것일까 하는 의문을 품은 노리코는 이를 편집장에게 제기해 그의 지시로 동료 편집자 다쓰오와 함께 이 사건을 파헤치게 된다. 이후 무라타니 아사코의 남편의 실종, 아사코의 대필 문제의 대두, 그 외의 살인과 자살 등으로 사건은 점점 복잡해지고 두 아마추어 탐정은 계속해서 고전하게 된다. 


  여류 작가의 표절과 그 주변인들의 얽히고설킨 이야기가 중심 소재고, 문학을 매개로 한 욕망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지만, 그보다 더 눈에 들어오는 것은 이 사건을 함께 조사하는 노리코와 다쓰오의 관계다. 처음에는 "사람들 앞에서는 말할 생각이 없었는데 이상하게 사키노에게는 꼭 들려주고 싶었다" 정도의 감정이었던 것이 어느샌가 그가 땀을 닦는 모습에 흐뭇해하고, 그를 생각하며 입가에 미소가 번지고, 그의 손을 잠시 잡고는 그 감촉을 한동안 못 잊는 지경에 이른다. 단서를 쫓기 위해 무단결근에 특근도 마다않고 함께 수사를 진행하며 아옹다옹하는 모습이 보기 좋(을 리가 없)았다. 너무 우연이 잦고, 사건이 늘어지는 경향도 없잖아서 본격미스터리로는 갸웃할 수밖에 없지만 마쓰모토 세이초의 팬에게는 '세이초가 이런 소설도 썼구나' 하는 발견의 기쁨도 있다. 세이초가 이렇게 부농부농한 이야기를 쓰다니! 

 

  다쿠라 요시조는 사고사일까, 타살이라면 누가 왜 죽였을까, 무라타니 료고는 어디로 사라졌는가, 무라타니 아사코는 표절을 했는가, 그렇다면 누구의 글인가 등 다양한 의문을 던지고, 이 의문을 아마추어인 두 편집자가 풀어가는 터라 사실 굉장히 어설프고 마지막까지 종잡을 수가 없다. 하지만 읽다보면 의문점이야 어떻게든 해결되겠지 싶어지면서 미스터리에는 손을 놓고 몸을 배배 꼬면서(때로는 절규하면서) 연애감정이 생겨날 무렵의 두 사람을 지켜보게 된다. 하나의 사건의 비극적 결말, 다른 한 사건의 해피엔딩이 묘하게 엉켜 있지만 산만하지는 않으면서도 낯간지러워서 지금까지 출간된 세이초의 어떤 작품보다 그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는 작품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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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의의 쐐기 87분서 시리즈
에드 맥베인 지음, 박진세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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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셜록 홈스를 만난 이후부터 내 삶에서 미스터리는 떼놓을 수 없는 부분이 되었다. 하지만 어렸을 때는 주변에 책, 더군다나 장르소설을 읽는 사람은 없었기에 누구의 소개나 추천을 받아서라기보다는 대개 엉겁결에 이런저런 작품들을 만났다. 세월이 흘러 인터넷서점에 둥지를 틀면서 그동안 어디에 숨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책에 해박한 사람들을 많이 알게 됐다. 그들에게 많은 작가를 추천받았고, 많은 탐정 또한 소개받았다. 그렇게 알게 된 작가 중에 한 명이 바로 에드 맥베인이다. '87분서 시리즈'에 대한 찬양을 꾸준히 들어왔고, 경찰소설도 좋아하지만 이상하게도 에드 맥베인은 계속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굳이 핑계를 대자면 <경관혐오자>를 읽은 뒤에 '87분서 시리즈'에 열광하게 되도 그 욕구를 채울 다른 작품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살의의 쐐기>의 출간 소식을 듣고는 이제는 최소한 <경관혐오자>로 아쉬움을 달랠 수 있을 테니까 하는 생각에 드디어 첫 발을 내뎠다. 오랫동안 미뤄온 만남이었기에 더 반갑고 즐거웠던 에드 멕베인, 그리고 87분서 형사들과의 첫만남.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범한 오후, 87분서 형사실에 "마치 병상에서 막 걸어 나온 것처럼 창백해 보"이는, "검은 외투에 검은 구두를 신"고 "커다란 검은 가방을" 든 여자가 찾아온다. 여자는 스티브 카렐라 형사를 찾지만, 카렐라는 마침 개인적인 볼일과 순찰업무 때문에 자리를 비운 상황. 여자는 시간이라면 얼마든지 있다며 38구경과 니트로글리세린이 담긴 병을 무기로 87분서 형사들을 인질로 잡고 카렐라 형사를 기다린다. 언제 돌아올지 알 수 없는 카렐라를 기다리며 87분서 형사들은 이 상황을 타개할 방안을 각각 궁리하기 시작한다. 한편, 동료 형사들이 인질로 잡힌 것도 모른 채 카렐라는 한 부호의 자살을 조사하러 출동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자살처럼 보이지만 살해동기와 적대감이 분명한 상황이라 타살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떨치지 못하고 수사를 시작한다. 인질극과 밀실극. 교차되는 두 이야기가 87분서 형사들의 캐릭터와 함께 어우러져 긴장감을 늦출 새 없이 빠르게 전개된다. 


  얼마 전 읽었던 <빅 클락>과 마찬가지로 <살의의 쐐기>도 분량은 그리 길지 않지만, 그래서 더 매력이 빛난다. 에드 맥베인은 일단 독자를 바로 87분서 형사실로 데리고 가서 '인질극'의 목격자(또는 관찰자)로 만든다. 땅, 하고 총성이 울리면 결승점까지 쉴새없이 달리는 백 미터 달리기처럼 87분서에서 벌어지는 인질극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진행된다. 하지만 아무리 긴장감 넘치는 이야기라도 독자를 너무 몰아세우면 숨이 가빠지게 마련. 영리하게도 에드 맥베인은 여기에 '밀실살인'이라는 중거리 코스를 하나 추가한다. 형사실과 현장의 긴장감의 대비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인물의 대비였다. 카렐라 때문에 남편을 잃었다고 폭주하는 버지니아 도지와 아내의 임신 소식을 갓 듣고 기쁨에 찬 카렐라, 니트로글리세린이 진짜일까 의문을 품기에 선뜻 나서지는 못하지만 자기 나름의 타개책을 찾는 87분서 형사들, 그런 동료 형사들의 괴로움도 모른 채 유유자적하게 복귀하는 카렐라의 모습 등이 반나절도 안 되는 시간을 꽉 채운다.


  <살의의 쐐기>로 에드 맥베인을 처음 만나면서 물론 긴장감 넘치는 이야기에도 매력을 느꼈지만, 일반적으로 경찰소설에 기대하는 동료 경찰 간의 의리나 갈등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인간에 대한 이해나 태도가 눈에 들어왔다. "빈민가에 사는 사람들도" "그와 똑같은 기쁨으로 즐거워했고, 그가 겪어본 적도 없는 불행으로 고통받고 있었"다거나 그들이 모두 "사랑과 존경을 원했고, 공동주택의 벽이 동물 우리의 철창과 같지 않다"는 식, 또는 "범죄는 범죄였고, 범죄의 악을 합리화하려는 87분서 형사들은 아무도 없었다"는 식의 서술이 눈에 들어왔다. 이 외에도 중간중간 용기, 참을성, 공정성 등 인간의 내면에 대해 살짝 짚고 넘어갈 때마다 통찰력이 보통이 아닌데 싶다가도 중간중간 던지는 유머에 낄낄거리면서 에드 맥베인을 더 알고 싶어졌다. 다행스럽게도 기존에 출간된 <경관혐오자>는 물론이고 <10 플러스 1>도 어찌저찌 구할 수 있고, 설을 전후해 다른 출판사에서 <아이스>도 출간될 예정인 듯하니 기다림이 그리 지루하지는 않을 듯하다. 50권이 넘는 87분서 시리즈의 모든 작품이 소개되는 것까지는 무리일지 모르겠지만, 아무쪼록 꾸준히 만날 수만 있다면 그걸로 행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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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3-01-30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이 책에 대한 글이 부쩍 올라와서 늘 궁금했는데요 [87분서]가 뭐에요? 경찰서 이름이 87분서에요?

이매지 2013-01-30 10:52   좋아요 0 | URL
한국으로 치면 강남경찰서 시리즈, 수서경찰서 시리즈랑 같은 맥락이예요.
이 시리즈에서 다루는 관할지역이 '87분서'예요~


가넷 2013-01-31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구입했습니다. 오늘 도착하는데... 언제 볼지는 모르겠네요. ㅋㅋ

이매지 2013-01-31 14:25   좋아요 0 | URL
한번 잡으면 금방 읽으실 텐데 말이죠. ㅎㅎ

가넷 2013-02-10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끝내주네요...ㅠㅠ 읽는 내내 긴장감이란...

이매지 2013-02-13 09:44   좋아요 0 | URL
그쵸그쵸그쵸? ㅎㅎㅎ
 
빅 클락
케네스 피어링 지음, 이동윤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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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대한 출판그룹인 재노스 엔터프라이즈의 총수 얼 재노스는 우발적으로 애인 폴린 델로스를 살해한다. 워낙에 우발적으로 벌어진 일이라 살인 현장을 목격한 사람은 없었지만, 폴린의 집 앞에서 그녀와 헤어지던 남자가 혹시 자기를 보지 않았을까 마음에 걸린다. 당황한 그는 기업의 파트너이자 브레인인 스티브 헤이건에게 달려가 이 사태에 대해 의논하고, 사내의 월간지 <크라임웨이>의 편집주간인 조지 스트라우드에게 다른 이유를 붙여 그 남자를 찾아내라는 지시를 내린다. 하지만 조지는 이 같은 지시가 당혹스럽기만 하다. 그 의문의 목격자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업무 지시에 따라 자기 자신을 쫓을 수밖에 없게 된 조지. 회사와 경찰. 양쪽에서 각각 진행되는 조사는 점점 조지를 조여들기 시작한다. 


  300페이지도 되지 않는 얇은 분량이지만 <빅 클락>은 긴장감이 넘친다. 아니, 오히려 분량이 적기 때문에 불필요한 요소를 과감하게 쳐냈고, 최소한의 정보만으로 최대한의 긴장을 이끌어내고 있었다. 자기 손으로 자기 자신을 추적해야만 하는 조지. "이런 말을 해 봐야 우는 소리밖에는 안 되겠지만, 나는 지구상에서 자신의 모든 인생이 갈기갈기 흩어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무언의 저항 한 번 하지 않고 자신의 인생이 재로 변하는 것을 지켜보는 유일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자신의 운명을 정말로 받아들이고, 자신이 뛰어들었다가 지고 만 커다란 도박에 대해 진심으로 경의를 표하는 사람이란 분명 거짓말이거나 신화일 뿐이다. 세상에 그런 사람은 없다. 예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라는 말처럼 그는 매우 특수한 상황에 놓여 있다. 조지 외에도 조지의 부인 조젯, 조지를 잡으려는 얼과 스티브 등의 관점에서도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에 이 사건을 각각 다른 관점에서 조망하고 각 이해관계자가 어떤 심리를 가지고 있는지 읽어가는 것도 흥미로웠다. 


  자기 자신을 쫓는 컨셉 외에 또 하나 관심을 끈 것은 제목이기도 한 '빅 클락'의 존재다. 책 속에서는 빅 클락에 대해서 여러 번 언급이 나오지만, 구체적으로 빅 클락이 무엇인지 정의내리지는 않는다. 빅 클락은 자신이 어쩌지 못하는 거대한 운명일 수도 있고, '빅 브라더'처럼 사회의 감시자일 수도 있으며, <모던 타임즈>의 시계 같이 시스템의 부속이 된 사람을 의미할 수도 있다. "빅 클락은 어디에서든 작동한다. 빅 클락은 아무도 간과하지 않고, 아무도 빠뜨리지 않고, 아무것도 잊어버리지 않고,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고, 아무것도 알려 하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라는 말을 더하고 싶었지만, 그럴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았다. 빅 클락은 모든 것을 끌어안는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을"이나 "질서를 잡고 혼동 속에서 패턴을 만들어 내는 이 거대한 시계는 이제껏 아무것도 바꾼 적이 없었고, 아무것도 바꾸지 않을 것이며, 바뀌지도 않을 것이다"라는 식으로 언급되는 빅 클락. 한 사람의 개인(조지)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그는 이 시스템 안에서 벗어날 수 없고, 빅 클락에 의해 움직일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빅 클락을 그 어떤 의미로 받아들이던지 간에 말이다. 


  아무튼 최소한의 투자를 통해 최대한의 만족을 이끌어낼 수 있는 가성비 좋은 고전 스릴러. 케네스 피어링의 소설은 처음이었는데 어떤 기대치가 설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책을 읽어서인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만족스러웠다. 영화 <노 웨이 아웃>의 원작이라고도 하던데, 영화정보를 찾아보니 배경부터 세부적인 설정이 다른 것 같아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각색했을지 궁금해졌다. 자극적인 맛은 떨어질지 모르겠지만, 어떤지 '필립 말로' 같은 하드보일드 탐정의 그림자도 엿보이는 꽤 괜찮은 심리 스릴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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