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미스터리한 일상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권영주 옮김 / 북폴리오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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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본 히치콕 감독의 <이창>은 촬영 도중 다리를 다쳐 깁스를 해 꼼짝할 수 없었던 한 사진 작가가 소일거리로 건너편 건물에 사는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시작된다. 어느 날 새벽 2시에 한 남자가 몇 번이나 집을 왔다갔다 하는 것을 보며 의심을 품는데서 시작된다. 건너편에 사는 남자가 일상에서 벗어난 행동을 했다는 이유로 부인을 죽였다고 생각하는 영화 속의 주인공처럼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사건들도 뭔가 일상의 미스터리한 사건을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관찰하면서 생기는 일들이 이 책 속에는 그려져있다. 

  회사의 사내보 편집을 하는데 단편 소설을 싣기로 했다고 소설을 좀 써달라고 선배에게 부탁한 나나미(저자와 동일.) 하지만 선배는 주변에 자기 일상에서 일어난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사람이 있다며 그를 소개시켜준다. 한 달에 한 편의 소설을 사내보에 게재하는 익명의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미스터리라고 하기엔 약하지만 뭔가 재미있는 구석이 숨어 있다. 개개의 이야기를 읽는 재미도 쏠쏠했지만, 마지막에 편집 후기라는 제목을 달고 그간 게재된 이야기 속의 비밀을 파헤치고, 마침내 진실을 알게 되는 설정은 또 하나의 재미를 안겨줬다. 

  코지 미스터리는 아니지만 부담없이 편하게 볼 수 있는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공포 소설집은 아니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오싹함을 느낄 수 있는 작품도 있고, 코믹스러운 작품도 있는 등 다양한 장르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어서 즐거웠다. 추리소설이라고 생각하고 읽는다면 본격 추리소설과는 거리가 있기에 실망스럽겠지만, 그냥 뭔가 미스터리한 일상을 담고 있는 소박한 이야기를 바란다면 이 책이 만족스럽지 않을까 싶다. 

  아쉬운 점이라면 사건을 100프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본 고유어나 한자, 하이쿠, 종교 등 일본 문화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가 필요했다는 것. 개개의 이야기를 읽을 때는 약간씩 걸리는 느낌이었지만, 마지막 편집 후기를 읽으며 한국의 독자로서는 좀체 풀지 못할 미스터리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소 아쉬움은 들었지만 독특한 방식의 소설을 만나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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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9 21: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8-19 22: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외딴집 - 하 - 미야베 월드 제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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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만 미야베 미유키라도 에도 시대를 배경으로 한 시대소설은 왠지 어려울 것 같다는 편견도 있었고 상, 하권 다 해서 800페이지가 넘는 분량때문에 미뤄왔던 작품이지만 우연히 도서관 서가에서 발견하고 이것도 인연인데라는 생각에 빌려왔다. 하지만 호기롭게 빌려왔던 것도 잠깐, 책상에 놓고 저걸 언제 읽나 미루고 미뤄오다 발에 염증이 생겨 거동이 불편해진 걸 핑계로 침대에 누워 빈둥거리며 읽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낮부터 시작한 이 책은 날이 선선해질 때까지 내 손을 떠나지 않았다. 

  염색과 고기잡이로 풍요롭지는 않지만 그런대로 평온한 생활을 하고 있는 마루미 번에 정신 이상으로 아내와 자식, 부하까지 죽였다는 소문이 도는 막부의 중신인 가가 님이 유배된다는 소식이 전해져온다. 가가 님이 마루미 번에 도착하기도 전에 흉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하고, 식중독이라도 걸리면 가가 님의 저주때문이라고 두려워하기 시작한다. 한편, 이 마을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호'(바보의 의미)라는 아이는 천애고아로 온갖 고생 끝에 엉겁결에 마루미 번에 정착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호는 자신에게 자상하게 글을 가르쳐줬던 고토에님의 죽음을 경험하게 된다. 범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지만 어느샌가 어른들로부터 '너는 귀신을 본 것이다'라고 혼쭐이 나고 결국 호는 자신이 우둔하기때문에 귀신을 본 것이라고 단정짓는다. 하지만 실상은 마루미 번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사건을 은폐한 것인데... 

  호의 말만 믿고 코토에의 죽음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한 히키테인 우사,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누이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던 게이치로,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이었기에 더 간절했던 와타베 등 <외딴 집>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저마다의 아픔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의 아픔을 적극적으로 극복하려 들기보다는 그저 주어진 상황에 순응하고 아픔을 감내할 뿐이다. 정작 '외딴 집'에 갇혀 있는 가가 님 역시 이들처럼 자신의 운명을 체념한 채 받아들인다. 하지만 이들이 저마다의 삶과 맞서 싸우기보다는 그저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은 그들의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살고 있는 시대가 에도였기 때문이다. 번을 지키기 위해서 한낱 평민의 생각따위는 그저 작고 작은 티끌에 불과할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위정자들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서슴없이 공포로 밀어넣을뿐이다. 진실이 무엇인지, 왜 부당한 죽음을 당해야하는 것인지는 묵살당하고 그저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한다는 명분만 남아 있을 뿐이다. 

  이야기 속에서 가장 때묻지 않은 시선을 가진 것은 역시 나이가 어려 분별력이 떨어지는(하지만 바보는 아닌) '호'이다. 머리에 뿔난 귀신이라고 상상한 가가 님에게 글을 배우며 호는 다른 사람들이 꾸며낸 이미지로 가가 님을 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관점으로 가가 님을 판단한다. 모두가 귀신이라고 무서워하는 가가 님의 본성을 느끼고 그에게 충의를 다하는 호의 모습은 눈가에 눈물이 핑 돌게 만들었다. 모두가 편견없이 자신의 눈으로 사물을 꿰뚫어보고 판단할 수 있는 힘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덧없는 생각도 호를 통해 잠시나마 해볼 수 있었다. 

  위정자들이 만들어놓은 스토리에 속기는 쉽다. 그리고 때로는 진실을 묵인하거나 회피하고 거짓을 진실인 채 받아들이기도 쉽다. 하지만 이 책이 보여주는 것은 결국 실제 일어난 일보다 만들어진 사실이 그럴싸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에 대한 자조가 아닐까 싶었다. 시대물이라 회피해왔지만 시대물이었기에 이 책의 메시지가 더 잘 드러난 것 같다. 상권 책 날개에 담긴 편집자의 글처럼 끈기를 가지고 읽는다면 절대로 후회하지 않을 소설이 아닐까 싶다. 한 편의 잘 만들어진 영화를 본 것처럼 눈 앞에 영상이 아른거렸던 작품. 역시 미야베 미유키라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발은 아직 낫지 않았지만 책을 읽으며 발이 아프다는 사실조차 까먹었을만큼 재미있게 읽었다. 또 발에 염증이 나는 것은 바라지 않지만, 미야베 미유키의 시대물이라면 한 트럭을 갖다줘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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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덕괭이 2008-08-24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리 소설 많이 읽으셨네요.. ! 책 검색하다 여기까지 왔는데 서재 참 정리를 잘해놓으셨네요..^^

요즘 미야베 미유키 <화차>읽구 있답니다. 나는 지갑이다 먼저 읽고 꽤 괜찮은 느낌이 들어서 화차 읽게 되었는데 , 작가 정말 굿입니다.. ^^
추리소설 좋아한지가 오래가 아니라 많이 읽어보지 못했는데요. 베스트 5 추천 해주시면
^^


이매지 2008-08-25 18:25   좋아요 0 | URL
화차는 뒷표지에 닉네임이 들어가서 더 애정이 가는 ㅎㅎㅎ
미야베 미유키 작품은 후회하지 않으실꺼예요.
<모방범> 아직 안 읽어보셨다면 꼭 읽어보세요 :)
제법 두껍지만 한 번 잡으면 놓으실 수 없을꺼예요 ~
 
다질링 살인사건 찻집 미스터리 1
로라 차일즈 지음, 위정훈 옮김 / 파피에(딱정벌레)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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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나 스웬슨 시리즈가 어느 정도 인기를 끈 탓인지 스테파니 플럼 시리즈나 커피하우스 시리즈 등 코지 미스터리도 쏠쏠하게 출간되는 것 같아서 반갑다. 아직 번역되지 않은 코지 미스터리류가 많지만, 그 중에서 원서의 표지를 보며 가장 혹했던 작품은 바로 이 tea shop 시리즈였다. 번역서의 표지는 너무 만화같은 느낌이라 다소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내용은 어떨까 기대를 하며 읽어나갔다. 

   예스런 운치가 있는 상점가에 위치한 인디고 찻집. 평화롭기만 하던 찻집은 램프라이터 투어(2주간 열리는 도보 투어)를 하며 바빠진다. 지난 해보다 더 많은 관광객을 처치 스트리트에 유치했다는 기쁨도 잠시, 티파티에서 한 남자가 차를 마시다 죽은 채로 발견되고 이에 사람들은 수근대기 시작한다. 이에 찻집의 명예를 위해 진범을 찾기 시작하는 주인 시어도시아. 과연 시어도시아는 범인을 체포하고, 찻집의 명성도 되돌릴 수 있을까? 

  기본적인 플롯은 베이커리 카페를 운영하는 한나 스웬슨 시리즈와 비슷하지만 한나보다 시어도시아 쪽이 좀 더 아마추어틱하다고 할까 뭔가 더 어설픈 느낌을 풍기는 점이 관심을 끌었다. 한나의 경우에는 경찰에도 끈이 있어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던 반면에, 시어도시아는 끈도 없고, 그냥 일단 부딪혀보는 스타일. 그렇기때문에 더 일반인같은 느낌을 풍겨줬다. 단순히 용의자 선상에 죽은 사람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는 인물들을 올려놨다는 것도 꽤 단순했고, 우여곡절 끝에 결국 범인의 정체를 밝혀내는 것도 논리적인 추론에 의한 것이 아니라 소 뒷걸음에 쥐 잡는 격이라 어설픔의 극치랄까. 뭐 이런 부분이 코지 미스터리만의 특색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내게는 왠지 모를 아쉬움이 남았던 책이었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홍차를 마시고 있어서 중간중간에 맛있는 홍차를 우려내는 법, 홍차의 등급, 홍차의 종류, 필요한 기구와 도구 등의 내용이 담긴 '잠깐! 깜짝 홍차 상식'을 비롯해 간간이 소개되는 차 이야기도 재미있게 읽어갈 수 있었다. 책 날개에 보니 찻집 미스터리도 더 출간될 것 같고, 미식가 탐정 시리즈(어째 식탐정이 살짝 생각나는)도 출간될 예정이라고 하니 앞으로 더 많은 코지 미스터리물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반가우면서도 왠지 모르게 기대됐다. 

 
덧) 왠만하면 번역에 대해서는 태클을 걸지 않는 편인데, 이 책을 읽으면서는 몇 번이나 번역때문에 짜증이 났다. 역자의 이력을 살펴보니 소설 번역은 이 책이 처음인 것 같은데, 혼자서 한 생각을 언급할 때도 큰 따옴표를 쓰지를 않나(원래는 작은 따옴표 사용), 시제나 시점이 섞이기도 하고(원작에서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굳이 어려운 용어로 번역을 하지 않나, 게다가 "매매가 어떻다는 둥 이야기했대요. 게다가 어느 쪽인가가 약속을 취소(리니그)했다든지, 해지(리신드)하고 싶다는 둥 말하고 있었대요." 들레인은 대답했다. "어쩌면, 복수(리밴지)하고 싶다고 했을지도 몰라요."와 같은 식으로 괄호 안에 영어 발음을 그대로 적는 일도 몇 번이나 등장. (뭐 이 부분은 언어유희의 맛을 살리고 싶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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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딩턴발 4시 50분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터리 Agatha Christie Mystery 63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심윤옥 옮김 / 해문출판사 / 199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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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딩턴발 4시 50분>이라는 제목만 보고는 혹시 <오리엔트 특급 살인사건>처럼 열차 내에서 사건이 벌어지는 것이 아닐까 어림짐작하며 책을 펼쳤다. 하지만 열차 내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나는 것은 사실이지만 한 열차 내에서의 사건을 다룬 것이 아니라, 한 노부인이 평행을 그리며 지나가는 열차에서 발생하는 살인사건을 목격한다는 이야기를 다뤄서 왠지 흥미로운 구성이라 생각하며 책을 읽어갔다. 오랜만에 미스 마플을 만나게 됐지만, 생각보다 적은 출연에 다소 아쉬웠던 작품이었다. 

  건너편 열차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을 목격했지만, 노부인이 기억하고 있는 것은 목졸리고 있는 젊은 여자의 얼굴과 범인의 등 뿐. 기차에 내려 신고하지만 어디에도 시체는 발견되지 않는다. 그저 노부인이 잠결에 헛것을 본 것이라고 치부해버리는 사람들. 하지만 노부인은 자신의 친구 미스 마플에게 이 사건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미스 마플은 조사를 통해 시체를 찾기 시작한다. 그리고 의심스러운 장소에 자신의 노쇠함을 대신해 뛰어줄 수 있는 아일리스배로 양을 그 집에 가사도우미로 들여보낸다. 하나씩 정보를 수집해나가던 중 마침내 시체를 발견하게 되고, 가족들의 생명도 위협받기 시작하는데...

  '억세게 재수 없는 범인'이라는 책 뒤표지에 있는 표현처럼 이 책 속의 범인은 정말 억세게 재수가 없다고 할 수밖에 없다. 하필 그 때 노부인이 창 밖을 보고 있었고, 하필 그 때 목격자가 들어와 자신을 범인으로 지목한다니. 이야기 자체가 논리적인 개연성보다는 우연의 일치가 계속되는 상황이라 다소 황당한 결말에도 그냥 그러려니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역시 뭔가 읽고나니 찝찝한 기분. 가족 중 누군가가 범인이라는 설정 자체는 낯설지 않았지만, 그 속에서 복잡하게 얽혀있는 인물들에게 지나치게 초점이 맞춰졌다는 느낌도 들었다. (요컨대 공정하지 못한 느낌이었다랄까) 게다가 엄연히 미스 마플이 주인공이건만, 미스 마플의 역할은 시체가 있을 법한 장소를 추정해서 그 곳에 사람을 잠입시키는 것, 그리고 사건의 종결을 위해 찾아가 범인의 정체를 밝힌다는 것뿐. 이거야 미스 마플이 등장한다는 것뿐 그녀 특유의 매력을 느끼기엔 부족해서 평소 미스 마플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아쉬움이 남지 않을까 싶었다. 

  나란히 지나가는 열차에서 건너편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목격한다는 소재 자체는 뭔가 독특한 느낌이었지만(KTX처럼 빠른 기차라면 말도 안되는 소리겠지만 당시 상황으로 봐서는 충분히 있을 법해서 더 그럴싸해보이고.) 전반적인 내용은 다른 작품에 비해서는 약한 느낌이었다. 미스 마플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대가족의 비뚤어진 관계라는 상황을 좋아한다면, 매력이 넘치는 아일리스배로 양을 만나보고 싶다면 괜찮겠지만, 솔직히 다른 애거사 크리스티 작품보다는 떨어지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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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나크 사냥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북스피어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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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 중 가장 좋아하는 분야를 꼽으라면 단연 사회파 추리소설이다. SF, 시대소설, 게임소설 등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지만 <이유>, <화차>, <모방범> 등 사회파 추리소설에서 미야베 미유키의 능력은 최대로 발휘된다. 다른 사회파 추리소설보다는 강도는 떨어지지만 여전히 자신의 매력을 발휘하는 미야베 미유키를 만날 수 있는 소설이 바로 이 책 <스나크 사냥>이다. 

  하나의 사건을 둘러싸고 다양한 사람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은 이전의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에서도 쉽게 볼 수 있었던 방식이다. 하지만 이 책이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은 전형적인 아버지의 분위기를 풍겼던 오리구치가 그의 캐릭터와 맞지 않게 갑자기 자신이 일하던 피셔맨 클럽에 손님으로 찾아와서 알게된 게이코의 총을 빼앗아 어디론가 떠나고, 오리구치의 계획을 어렴풋이 눈치챈 회사 직원 슈지가 오리구치를 추격한다는 내용이 깔리기 때문이다. 얼핏 보기에는 얼마 전에 읽었던 이사카 코타로의 <골든 슬럼버>와 비슷한 구성이라 두 작품을 비교하며 읽는 재미도 느낄 수 있었다. 

  루이스 캐럴의 <스나크 사냥>에서 스나크란 괴물은 잡는 순간 사라져버리는 존재라고 한다. 이 작품 속에서 드러나는 '괴물'도 잡는 순간 사라져버린다. 이 책에서 보여지는 것은 단순히 악한 인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마음 속에 가지고 있는 '괴물'이 순간 정체를 드러냈다가 사라지는 사건을 비춘다. 사랑했던 남자의 결혼식날 산탄총을 가지고 가는 게이코도, 게이코에게 미안한 마음을 느끼며 오빠가 망신을 당하기를 바라는 노리코도, 회사에서 고객의 클레임을 능숙하게 해결하는 슈지도, 아버지라 불리며 직원들이 의지하는 오리구치도 모두 우리가 근처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인간상이다. 그런 이들이 어떻게 비인간적으로 변해가는지를 보며, 독자 또한 인간의 비밀스런 내면을 바라보며 연민과 공포라는 복잡한 심정을 겪게 된다. 

  '독자들이 꼽은 미야베 미유키의 최고작'이라는 수식어는 다소 실망스럽지만, 초기에 나온 작품치고는 꽤 탄탄하고 긴장감을 느낄 수 있어서 만족스러웠다. 책을 읽는다기보다는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끝까지 긴장감을 갖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너무 작위적인 설정이 이에 고기가 끼었을 때처럼 불편한 느낌을 안겨줬던 책이었다. 미야베 미유키를 좋아하고 몇 권 그녀의 작품을 접해봤다면 이 책도 읽어보길 권하고 싶지만, 아직 한 권도 접해보지 않았다면 이 책으로 시작하지는 않았으면하는 생각이 들었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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