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큐리
아멜리 노통브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0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올 여름 이 책과 함께 나온 <공격>을 읽었을 때는 아멜리 노통브 특유의 작법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기 때문에, 재미는 있었지만 좀 진부하지 않나. 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내심 별반 기대를 하지 않고 읽었기 때문인지 내게는 공격보다는 이 책쪽이 더 재미있었다.

  이 책에서도 <공격>에서와 마찬가지로 주요한 소재는 외모이다. <공격>에서는 못생긴 남자가 아름다운 여자를 사랑하게 됨으로써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다면, 이 책에서는 70넘은 노인네가 20살도 채 되지 않는 (끝내주게 아름다운) 소녀를 사랑한다. 사고현장에서 그녀를 만나 데리고 온 그는 그녀를 붙잡아두기 위해 그녀의 얼굴이 차마 눈뜨고 못 볼 정도로 망가져버렸다고 하며, 외딴 섬에서 거울을 모두 숨긴채,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있는 모든 것을 없애버린다. 그릇에는 광택이 모두 사라졌고, 샤워실에서는 물을 받을 수 없으며, 볼일을 보는 곳에도 물은 고여있지 않다. 심지어, 필요에 의해 육지에서 간호사를 데리고 올 때도 안경을 쓰지 않은 여자라는 조건이 붙을 정도이다. 소녀는 자신의 얼굴이 끔찍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있지만, 한 편으로는 자신을 구해준 노인네에게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노인네와 성관계를 맺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고 있기도 하다.

  이런 노인네와 소녀의 관계 속에 육지에서 온 간호사가 등장하게 되고, 그녀는 노인으로부터 치료 외에 개인적인 질문을 절대 하지 못하게 한다. 만약 어긴다면 그에 대한 응징을 받을 것이라는 협박과 함께. 눈부시게 아름다운 소녀가 자신의 얼굴이 흉칙하다는 착각 속에서 살아가는 것을 본 간호사는 그녀에게 진실을 알려주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하지만, 그녀의 일련의 행동은 노인네의 감시때문에 자유롭지 못하다. 과연 그녀는 어떻게 진실을 전달하고, 소녀를 자유의 세계로 이끌어낼 수 있을까?

  공격에서의 메세지의 전달법과 머큐리에서의 메세지의 전달법은 확실히 다르다. 전자가 대놓고 직설적으로 보여준다면, 후자는 아닌척하면서 빙 둘러서 메세지를 전달한다. 게다가 독특하게도, 작가 내면의 목소리에 의해서 두가지 결말이 등장하게 되었다고 하며 서로 다른 두 개의 결말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 둘의 결말 모두 아멜리 노통브 다운 것들이라 '뭐 그래?'라는 반발을 차마 못하겠다. 어느 쪽이 되었건 간에 '결국 그렇게 됐구만'이라는 생각을 하게 해줄 뿐.

  내심 아멜리 노통브의 작품들에 대해 식상하게 생각하는 감도 없지 않아 있지만, 가만 생각해보니 이런 게 도리어 그녀 고유의 스타일, 혹은 한계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멜리 노통브 다운 소설. 그렇기에 어느 정도까지는 먹히는 소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6-02-09 10: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도쿄 타워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5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대개 어떤 작가를 접할 때 있어서 두어 작품만 접해보면 나와 코드가 맞는지 안 맞는지가 대번에 판단된다. 물론, 단 한권으로 호불호를 판단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왠지 나름대로 열심히 쓴 작가에 대해 실례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한 권만 접했을 때는 별로였던 작가들이 두 권째 들어 확 좋아하지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대표적인 예가 레이몬드 챈들러다), 언제나 판단은 최소한 2권을 읽고. 라는 나름의 규칙을 만들어 놨다. 그렇게 시험적으로 2권을 읽고서 ' 나와는 정말인지 궁합이 안 좋군'이라고 판단을 내리게 되면 그 뒤로는 신간이 나와도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대표적인 예가 파울로 코옐로.) 그런데 그런 내 독서생활에 있어서 모호한 작가가 한 명 있으니 그가 바로 이 책을 지은 에쿠니 가오리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난 그녀와 코드가 맞지 않는다. 심지어 가끔씩은 책을 보다가 짜증이 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출간된 그녀의 작품을 죄다 읽었다. 게다가 신간이 나오면 '이번엔 괜찮으려나.'라는 생각으로 또 그 신간을 집어든다. 그것도 능력이면 능력이겠지만, 뭐.

  이번 책에서는 나이차가 엄청나게 나는 두 남녀의 사랑이 그려진다. 엄마의 친구와의 연애이니. 삐딱한 눈으로 본다면 둘의 관계는 원조교제처럼 보일테고, 그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사랑에 빠진 두 남녀로 보일 거다. 세상에 별 다른 흥미도 없고, 학교는 그냥 졸업만 하기를 바라고, 아르바이트를 몇 개씩이나 하면서 살아가는 토오루. 그는 삶의 이유를 시후미를 통해서 얻는다. 한 편, 시후미는 나름 토오루에게 시간이 갈수록 빠져든다. 이들의 사랑은 사랑인지. 아니면 서로에 대한 욕망인지. 책을 읽으면서 참 모호해졌다. 이들 뿐만 아니라, 또 다른 연상연하 커플인 코우지와 키미코. 그들의 사랑도 모호하다. 싸움을 하듯이 섹스에 탐닉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 사랑과 성욕의 구분이 모호해짐을 느낀다. 점점 서로를 옭죄는 사랑. 시간이 갈수록 파멸의 길로 이끌어가는 사랑. 스무살의 젊은이들과 유부녀들의 사랑은 떨어질 듯 떨어질 듯 하면서 아슬아슬하게 길을 가는 외줄타기 같았다. 언제 파괴될 지 모르기 때문에, 더 짜릿하고 더 소중한 것이랄까.

  에쿠니 가오리의 어떤 책보다 나와는 지독하게 코드가 맞지 않았던 책이었다. 몇 군데의 문장은 마음에 들었지만, 이야기의 전개방식은 따분했고, 분위기 또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과연 내가 다음 그녀의 작품을 또 읽겠다고 덤빌 수 있을까. 싫으면 안 읽으면 그만일텐데. 그것도 쉽지 않으니 참. 난감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꿈을 낚는 마법사
미하엘 엔데 지음, 서유리 옮김 / 노마드북스 / 2005년 10월
평점 :
절판


  <모모>에 비하면 턱없이 얇은 두께. 이 책을 처음 봤을 때 든 생각은 그거였다. 뭐 200페이지도 채 안되는 책이니 얇기는 얇지만, 책을 읽어가면서 수많은 이야기들을 접할 수 있었고, 수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문단의 배열이 이상하다.'라는 생각을 했는데, 책을 다 읽고 나서 설명을 읽으니 원래 이 책은 미하엘 엔데의 노래 가사집이었으나, 글로 소개할 수밖에 없는 한계성 때문에 이해를 돕기 위해 가사를 이야기식으로 풀어쓴 것이라 했다. 그러니 이 이야기는 미하엘 엔데의 이야기이나 어떻게 보면 100프로 그의 창작물은 아닌 것이다.

  하지만, 이 얇은 책을 통해서 미하엘 엔데는 인생에 대해서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여 준다. 꿈과 환상, 사랑, 외로움과 고독, 죽음과 증오와 같은 우리 인생에서 경험하는 다양한 감정들이 이 책 속에서는 압축되어 있다. 그 속에서 어떤 교훈을 찾는 것도 우리의 몫일 것이고, 그런 이야기를 통해서 행동을 수정하는 것도 우리의 몫일 것이다.

  미하엘 엔데의 글도 글이었지만, 함께 수록된 클레의 그림들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너무 동화같은 그림들이 글과 어울어져 마음에 잔잔한 파동을 전해줬다. 하지만, 너무 짧아서 뭔가 강력한 인상을 주기엔 부족함이 남은 작품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앤서니 브라운의 킹콩
앤서니 브라운 지음 / 넥서스 / 2005년 11월
평점 :
절판


  곧 있으면 영화로 개봉하는 킹콩. 우연히 서점에 갔다가 이 책을 만나서 '영화로 나온다는 그 킹콩인가?'라고 생각하고 집어 들고 읽었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옆에서 가자고 재촉하는 남자친구의 말을 무시하고 끝까지 다 읽어버렸다.

  독특한 영화를 찍기로 유명한 영화 감독, 그는 촬영을 위해 여배우를 찾던 중 사과를 훔치려고 하던 한 여자를 만난다. 그리고 그녀는 그가 찾는 딱 그 이상형의 배우였다.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던 그녀와 영화를 찍기로 결정하고 떠난 곳은 지도에도 나와있지 않는 한 섬. 그 섬에 킹콩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감독은 그곳으로 간 것이다. 하지만, 정작 섬에 도착했을 때에는 여배우는 킹콩의 신부가 될 운명에 처한다. 촬영팀과 선원들은 그녀를 구하기 위해 애쓰는데...그들이 접하는 기괴한 섬의 모습. (공룡도 이 섬에는 아직까지 살아있었다.) 그리고 뉴욕으로 온 킹콩의 최후까지. 이 책은 그런 일련의 이야기들을 깔끔한 그림들로 보여준다.

  어찌보면 킹콩의 이야기는 사뭇 잔인하기도 하고, 공포스럽기도 하다. 거대한 괴물인 킹콩이 공룡과 싸우는 모습이나, 뉴욕으로 와서는 도시를 활보하는 모습같은 건, 왠지 섬뜩한 느낌마저 들게 한다. 하지만, 그런 킹콩의 마음 속에 들어있는 여배우에 대한 사랑이 느껴져 왠지 안타까운 느낌마저 들었다. 미녀와 야수는 이루어지기라도 했지, 킹콩은 무참하게 죽어버리니...불쌍한 킹콩. 우리가 정작 무서워하고 비난해야 하는 것은 킹콩의 거대한 모습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악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여담이지만, 이 책 속에 나오는 여배우의 모습은 사뭇 마릴린 먼로가 떠올랐다. 특히나 이 모습은.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늘바람 2005-12-04 1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 더 구경할 수 있는 기횔 주실줄 알았는데 사보라는 의미시군요

이매지 2005-12-04 1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저도 서점에서 서서 본거라서 ^-^;;
 
세계 챔피언
로알드 달 지음, 정해영 외 옮김 / 강 / 2005년 11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지난 번 단편집인 <맛>에 이은 로알드 달의 단편집이다. 얼마 전에 읽었던 <당신을 닮은 사람>과 혹 겹치는 단편이 있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역시나 읽다보니 몇 편(두편인가) 겹치긴 했지만, 그래도 처음 읽어보는 작품들이 더 많아서 재미있게 읽어갈 수 있었다.

  사실 지난 번 <당신을 닮은 사람>을 보고 약간 실망해버려서 그의 새 책이 나왔다고 했을 때 주저주저하는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에 대한 애정은 식지 않았기에, 약간의 고민끝에 집어든 책 속에 실린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내게 "읽기를 잘했지?"라고 옆구리를 푹푹 찔러대니. 괜시리 로알드 달에게 미안해진다.

  이번 책은 크게 7개의 챕터로 나눌 수 있는데, 그 중 가장 재미있는 챕터는 '클로드의 개'라는 제목이 붙은 챕터의 이야기들이었다. 다른 챕터는 하나의 이야기만 등장하는데, '클로드의 개'에서는 무려 5가지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책 속에 일종의 시리즈물이라고 할까? 괴짜인 클로드와 그의 동료가 맨 손으로 꿩을 잡는 이야기에서부터 미래의 장인어른이 될 사람과 이야기하면서 구더기 공장을 차리려고 한다는 황당한 이야기니, 똑같은 모습의 개를 구해서는 경견(개 달리기 대회)에 참가하는 이야기 등. 하나같이 황당한, 하지만 이 세상 어디엔가 이런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이 후에 등장하는 다른 이야기들도 신선하고 재미있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클로드의 개' 챕터가 가장 재미있었던 것 같다. 몇 번 접하다보니 로알드 달의 단편을 처음 만났을 때의 신선함을 떨어졌지만, 그가 가진 독특한 유머나 상상력은 여전히 내게 약발이 먹히는 것 같다. 혹, 또 다시 로알드 달의 단편집이 나온다면 그 때도 다시 선택을 하게 될 듯 싶다. 미우나 고우나, 로알드 달은 굉장한 이야기꾼이니까 말이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물만두 2005-11-30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클로드의 개도 당신을 닮은 사람에 있는데 번역이 영 그랬으니 보시는 맛이 좋으셨겠어요^^

2005-11-30 16: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매지 2005-11-30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두님 / 역시 붕어 기억력은 이럴 때 좋아요. 그 때 읽었던 건 벌써 훌훌 털어버린거 있죠? ^-^ 자꾸 변덕부려서 로알드 달에게 내심 미안하다니까요 ^-^;
속삭여주신분 / 앗. 감사합니다. 쓰면서도 헷갈려서 찾아보려고 했거든요^-^

하늘바람 2005-11-30 2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지가 아주 재미있네요. 내용도 재미있을까요?

이매지 2005-11-30 2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 로알드 달 단편을 읽어보지 않으셨다면 <맛>을 먼저 추천해드리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