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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김기태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5월
평점 :
이 작가는 25년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속의 우수작 일렉트릭 픽션을 읽기 전까지는 알고 있지 않은 작가였다. 대상 수상자 예소연 작품에 대한 궁금함 혹은 갈망 때문에 거의 20년(2005년 한강의 몽고반점 이후니까)만에 사봤던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이니까.
이상문학학상 수상작품집 속의 우수작
일렉트릭 픽션 중에서
“삶이란 이미 뭉쳐버린 반죽 같아서 이것과 저것으로 분해할 수는 없지만, 그는 진짜 삶이라 부를 만한 것은 문 안에 있다고 느꼈다. 문 밖의 일은 문 안의 삶을 위하여 수행하는, 견디는 무엇이었다. 세상에는 반대로 사는 사람도 많았다. 문밖의 삶을 위하여 문 안에서는 몸뚱이를 씻기고 눕히는 일만 하는 사람들. 너무 많이 가졌거나 너무 적게 가졌기 때문이라 짐작하며, 그는 자신이 무엇을 얼마나 가졌는지 헤아려보기도 했다.”
“익명이 되려고 서로 최선을 다하는 이곳에서 자신이 505호, '여기'에 있다고 고백한 사람, 배려와 무례가 섞인 문장들이 아주 조금 열어놓은 문,. 그 틈으로 나는 김수영처럼 "혁명은 안 되고 방만 바꾸"느라 가구를 끌어 옮겼던 이, 자우림처럼 "신도림 역 안에서 스트립쇼를" 하는 기분으로 옷을 벗어 던지며 흥얼거린, 자신이 노래를 잘 부른다고 믿었던 이를 돌아본다.”
일렉트릭 픽션에서는 1층의 필로티식 주차장을 빼고 2층부터 6층까지 스물다섯 가구쯤은 살지만 서로 마주치지 않기 위해 문밖의 기척에 귀를 기울이고 다음 엘리베이터를 타는 곳." 도시 풍경에 흔한 빌라촌에 사는 '그'는 에너지 공기업의 한 사무실에서 유일한 계약직으로 일한다. 8년째 재계약을 거듭하며 같은 곳에서 일하지만, 아무도 그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는다. 전 직원이 사옥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는 날, 나오지 않고 사무실을 지키더라도 아무도 왜 안 나왔냐고 묻지 않는 존재에 대한 이야기인데, 주인공으로 추정(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므로)할 수 있는 이 인물은 일렉트릭 기타를 배우고 싶어 하는데, 이는 단순히 악기를 배우는 것에서 넘어서 무기력한 삶에 작은 자극을 주는 소재로 설정되었다. 현대인의 무기력과 소외, 익명성의 빛과 어둠 등을 조금은 유머러스하게 풀어냈기에.
8년째 계약직이라. 같은 자리에서 일하지만 이름조차 잘 불리지 않는 사람. 고용은 보장되지만, 그 보장이 곧 "갇힘"으로 느껴지기도 하며, ‘안정에 안주해야 하나, 아니면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하나?’라는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게 되고, 작고 반복적인 하루가 쌓여가면서, 그 틈새에서 발견하는 작은 자유, 예기치 못한 변화의 불씨, 계약직 신분 자체가 현대 사회의 노동 현실, 제도와 개인의 삶이 교차하는 지점을 드러내는 장치가 되기도 하는데, ‘그런데 문 밖의 일은 문 안의 삶을 위하여 수행하는, 견디는 무엇이었다.’라고 했다.
일렉트린 픽션을 읽은 게 계기가 되어 찾아봤더니, 김기태는 이미 봤던 이동진의 파이아키아에 소개되었던 그 작가였고, 더 찾아봤더니 24년 국제 도서전에서 특별히 핸드폰에 사진으로 담아두기까지 했었던 바로 그 책이었던 것이다.

이제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로 들어가서
두 사람의 인터네셔널 중에서
롤링 선더 러브
“사람들이 클래식을 듣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마음을 증류해서 색과 맛과 향을 없애기. ”
“맹희는 자신의 따뜻하고 웃긴 친구에게 선물을 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전조등
“통계학이란 숫자 안에 숨은 메시지를 꺼내는 일이랍니다. 라는 옛교수의 말은 멋있었지만 사실이 아니었다. 메시지는 숫자 안에 숨은 것이 아니라 그가 참석하지 못하는 회의실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정해진 결론에 봉사하도록 숫자를 가공하는 일이 그의 몫이었다. ”
“회사에서는 업무적인 유능함이 인간적인 호감으로 이어지기 쉬웠다. ”
“결혼이란 적령기에 옆에 있던 사람과 하는 것이며, 돈을 모으려면 꼭 해야 하지만 돈을 모아야지만 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고, 죽음만큼이나 미룰수록 좋지만 사람 구실을 하려면 하긴 해야 하며,...”
전반적으로 현실적인 듯 보이면서도, 자조하는 듯 미묘한 어조의 문제적 평범함을 다루고 있다. 그렇지만 진지한 테마나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고, 쓰는 작가의 입장에서 철저한 서비스 정신 같은 것도 잘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말이 좀 싼티가 나는데, 포장하면 이런 것이다. 특정하고 숭고한 문학적 리얼리티를 추구하기 보다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겪는 사회적 고충이나 대중 문화의 코드 등을 잘 버무려 평범함이라는 콩코물을 뿌려 주어서, 독자로 하여금 고단한 인생살이에서 한발짝 물러나 일상을 관조하게 한다. 약간의 유머도 한 스푼 넣어서. 그렇다. 소설가는 퇴근길에 당신, 책을 보는 독자들이 훨씬 인생살이 힘들게 산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해설에 붙은 이희우 평론가는 이 작품집의 키워드를 다음과 같이 찾았다.
통속성- <롤링 선더 러브>는 리얼 연애 프로그램 <나는 솔로>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대중적인’ 유행과 접속하여 그 통속성을 사랑스럽게 다룬다.
핍진성- <무겁고 높은>의 고등학생 역도 선수 송희는 진로에 대한 일 때문에 승부에 집착하지 않을 수 없는데, 승패를 떠나 무게와 힘에 집중하려고 한다. 사물을 규정하는 관습적인 정의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사물의 작동 방식을 기술하는데, 송희는 “바벨을 던질 때의 그 가벼운 느낌”에 천착하고 의미를 규정한다.
무난함- 요즘말로 육각형 같은 남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전조등>이다. 성실하고 유능하고 적당히 예의바르고 생애 주기에 따라 과제를 무난하게 수행하였고, 다음 미션, 그 다음 미션에 집중해 나간다. 하늘에서 떨어져 한쪽 전조등을 고장내 버린 기이하고 요상한 일이 있었어도, 이내 잊어버리고, 토끼같은 가족들이 있는 “예쁜 풍경 속으로” 들어간다.
허구적이거나 모순된 보편성- <보편 교양>을 보면, 수험생 자녀들을 둔 부모의 입장에서 하아- 제목처럼 보편적이지 못한 교육의 왜곡된 현실을 목도하게 한다. 곽은 학생들에게 진정한 교양을 전달하고자 하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히며 자신의 역할과 한계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그의 내면의 갈등은 실제 현상 교사들의 어려움을 대변할 것이다.
나머지는 책에서 확인하시면 좋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