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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 - 세상을 뒤바꾼 위대한 심리실험 10장면
로렌 슬레이터 지음, 조증열 옮김 / 에코의서재 / 2005년 7월
평점 :
다소 수전증이 있는 나( 다른 사람과 밥 먹을 때 전방 30센티 이내에 위치하지 않은 반찬은 가급적 먹지 않는다. 좀더 멀리 있는 반찬을 내 밥까지 가져올 때 내 손이 떨리고 있다는 걸 내가 느끼고, 남이 알아채고 하는 게 싫어서 말이다. 대학 다닐 때는 내내 클래식 기타 동아리에 있었는데, 나 혼자 기타를 중뿔나게 연습하거나 할 때는 눈에 안 띠던 떨림이, 다른 사람들이 있는 가운데서 연주를 하려 하면 원곡에 심히 무리가 갈 정도였다.-- 내가 만약 외과 의사였다면 사람 여럿 잡았을까? ). 이 증세가 정신적인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이르렀지만 이것이 죽고 사는 문제이거나 통증을 수반하는 것이 아닌 이상 의료 기관에 자문을 구한다거나, 딱딱하고 단조로운 의학 서적을 찾아볼 적극성은 갖지 않았다.
뭐, 수전증뿐일까. 각성 기능에도 문제가 있고, 탐닉 중독 경향이 짙다. 일명 “폐인기질” 같은 게. 음식 조절(좋아하는 음식은 배터질 때까지), 인터넷 시간 조절, 게임 종료 조절, 수면 조절... 같은 걸 못하고 끝장을 보려 하는 기질.
한번은 이것에 대한 뭐 얻어 들을 지식이 있을까 싶어 ‘학습 부진과 뇌기능’이라는 제목의 어떤 세미나를 들었던 적이 있다. 요는 그거였다. 전두엽의 실행기능 중 한 부분인 주의력에는 이 실행 기능을 조절해 주는 주요한 신경 전달 물질 도파민이라는 것이 있는데, 도파민이 결핍되면 저와 같은 증상이 일어난다는.... 그러면서 세미나는 약 장수의 그것이 되어 갔다. 왜냐, 다른 해결책은 없고, 도파민이라는 결핍 약물을 주입해 주면 된다는 진단으로 강의가 흘렀기 때문이다.
내가 듣고 싶었던 것은 도파민에 대한 홍보가 아니라, 좀더 타탕한 가설과 이론 그리고 인간의 심리와 본성에 대한 통찰력 같은 좀 거창한 것이었는가 보다.
그러던 와중에 만난 이 책. 이 책에서는 10명의 심리학자 혹은 정신과 의사들의 각각 인간의 자유 의지와 복종, 군중 심리와 방관자 효과, 기억의 메커니즘, 스킨십의 힘, 정신 진단의 타당성 등에 대한 10가지 실험과 수술을 소개한다. 당시 이 실험이 세상에 알려졌을 때 사람들은 당연히 알고 있던 지식과 사실에 반하는 놀라운 발견에 당혹해했다. 인간의 행동은 보상과 처벌에 의해 좌우됨을 최초로 증명한 스키너의 상자 실험이, 할로의 철사 원숭이 실험이, 스탠리 밀그램의 전기 충격 실험이 그리고 인간 기억의 허구성을 증명한 엘리자베스 로프터스의 가짜 기억 이식 실험이 그렇다.
개인적으로 이 책이 좋았던 것은 이 실험들의 내용에 있지 않다. 정말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실험들과 피실험자들의 중간에서 부단하게 행동을 하고 있는 글쓴이의 고뇌의 흔적과 그 바지런함이 통찰력으로 빛을 발하고 있다는 것에 있다.
일테면 글쓴이는 실험 상자에서 키워졌다는 스키너의 딸을 수소문해 소문의 진의를 알아낸다. 사람이 불합리한 권위 앞에 복종하는 이유를 밝혀낸 스탠리 밀그램의 실험에 참가했던 사람들 찾아(인명 자료가 공개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들과 인터뷰한다. 실험에 복종했던 사람과 실험에 반항했던 사람들의 인생이 그 실험 이후 어떻게 바뀌었는지 그 아이러니컬한 상황을 그려낸다. 바로 이것이 실험 밖의 영역 그러니까 순전 작가의 역량이 아닐까.
모든 판단은 개인에게서 시작된다고 본다. 누구에게는 절실하지만 누구에게는 그렇지 않은 것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우리 모두 사람이고 보니, 생생한 인간에 대한 통찰력을 발견하는 장(場)에서는 그만 주의가 환기되고 만다.
가설과 실험의 사이, 새로운 이론과 새로운 믿음이 탄생하는 그 곳에서 사람들은 살아간다.
참으로 흥미로운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