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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잃어버린 아이
데이브 펠처 지음, 신현승 옮김 / 생각의나무 / 2004년 5월
평점 :
품절
읽으면서 참으로 답답했던 것은 데이브 펠처의 어머니가 왜 갑자기 악마보다 더 극악한 사람으로 변해 자신의 아들을 학대하기 시작하는지 그 이유가 나와 있지 않은 것이다. 다만, 어머니 자신이 어릴 적에 외할머니로부터 받은 아동 학대의 충격으로 비정상적인 알콜 중독에 빠져 들었고, 마치 복수를 하듯 아들에게 학대를 하기 시작했다고만 전한다.
데이브의 어머니는 처음부터 데이브를 학대했던 것이 아니었다. 데이브가 꼬마일적만 해도 어머니는 따뜻하고 자상한 분이었다. 그런데, 위에도 언급했지만,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서였다. 그리고 형제들 중 큰 아이인 데이브에게만 지독한 학대를 하기 시작한다.
욕실 청소 세제와 같은 독성 물질을 먹이거나, 불켜진 가스렌지 위에 손을 대놓고 있게 하거나 칼로 찌르거나 차고에 감금, 상습적인 굶김을 통해 아이가 학교에 가서 다른 친구들의 도시락을 훔치게끔 하는 데이브의 엄마. 어느 순간 나는 여기에 나온 모두가 진짜 일어난 일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모두가 사실이 아니라 더러더러는 데이브의 과대 망상도 섞여 있거나 한 것이 아닐까 했다. 그의 엄마가 단순히 알콜 중독자였고, 어릴 적에 학대받고 자랐다는 이유만으로 이럴 수 없다는 생각. 정말이지 이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어머니에게 아들이 데이브 하나 뿐이 아니라 그 아래로 줄줄이 형제들이 있었다. 그런데 데이브의 형제들이 이 학대의 상황에서 형 데이브를 구원하기란 역부족이다. 그들은 어렸고, 그저 파편이 튀지 않고, 자신들이 위험 상황을 빠지지 않고 그저 모면하기 위해서만 애를 쓸 뿐, 그러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결국엔 엄마와 한편을 이루고, 형을 발로 차고 때리며 학대의 현장에 가담하기까지 한다. 형을 때리면서 일종의 쾌감을 느끼는 것이었다. 가족의 노예(데이브)보다 자신이 월등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러면서 데이브도 점점 세상의 모든 이들을 혐오하게 되었다. 그에게 남겨진 것은 오직 증오뿐이었다........
데이브 펠처가 자신의 고통스러운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할 수 있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아니고서는 어려웠을 듯하다. 그런 그의 용기에 진심으로 찬사를 보낸다.
그의 이런 글은 학대받고 자랐다고 해서, 모두 사회 부적응자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기도 한다.
세상에서의 극악무도함 중에 가장 악질적인 것이 바로 어린아이를 학대하는 것이다. 때리고, 던지고, 굶기고, 납치하고, 성폭행하고 급기야 목숨을 빼앗는다. 아동 학대가 비겁한 행위인 이유는 그것이 가장 약한 곳에 행해지는 일종의 분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잔인한 범죄의 희생자인 아이들은 두려움 때문에 자신들의 학대자들에 대해 입도 뻥긋하지 못한다. 몸의 곳곳에 의문의 상처 자국을 달고 다니고, 옷을 갈아입지 않고 빨지 않은 옷을 늘 입고 있는 데이브를 지켜 본 주변 선생님들은 데이브에게 이것저것을 물어보지만, 아이는 사실을 말하지 않고, 집에서 엄마에게 세뇌 당한 멘트를 반복한다.
책 읽으면서, 많이 나오는 말은 어린 데이브 펠처의 다음과 같은 독백이다.
“나는 나쁜 아이야.”
“나는 사랑 받을 만한 가치가 없어.”
“내가 미워, 내가 미워.”
어린 그가 수년 동안 자신만의 어두운 세계에 갇혀 홀로 처량한 ‘패배자’로 갇혀야 했던 깜깜한 시간들의 기록인 이 글.
그의 애초의 소망은 다른 평범한 사람들처럼 되는 거였는데 말이다.
아동 학대, 그것의 유일한 해결책은 예방일 것이다. 여전히 고통받고 있을 수백만 명의 아이들,,, 그 친구들을 잊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