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이윤기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조르바 왈, “새끼 손가락 하나가 왜 없느냐고요? 질그릇을 만들자면 물레를 돌려야 하잖아요? 그런데 왼손 새끼손가락이 자꾸 걸리적거리는 게 아니겠어요? 그래서 도끼로 내려쳐 잘라 버렸어요”

나도 이 책을 읽으면서 뭐 하나를 잘라야만 했다. 조르바의 말과 행동에 온전히 빠져 보려 하는데... ‘ 모든 여자는 화냥것들이다 ! 여자는 그저 보호해 주어야 할 약한 존재 지나지 않는다! ’는 조르바의 언사를 진지하게 듣고 있노라면 조르바가 목을 ‘조르’는 느낌이 드는 ‘바’라서 말이다. 여성주의적인 잣대의 렌즈를 저만치 던져 두고 읽어야 속에서 덜 걸리적 거렸던 것.

여자에게 뿐일까, 조르바는 말한다. 조국 같은 게 있는 한 인간은 짐승, 그것도 앞 뒤 헤아릴 줄 모르는 짐승 신세를 벗어나지 못한다고, 조르바는 그토록 인간을 경멸하면서도 그들과 함께 살고 일하려는 사람이다. 조르바가 애초부터 이렇게 조국을 불신했던 것은 아니다. 젊은 시절, 터키로부터의 독립 운동을 위해 비정규 전투 요원 활동을 하다가, 불가리아 비정규군 신부를 살해하게 되었다. 그런데 몇일 후, 조르바는 거리에서 맨발에 검은 옷을 입고, 거리에서 구걸을 하는 다섯 명의 아이들을 만났는데, 이 아이들이 얼마 전 자신이 죽인 신부의 자식들이었던 것이다.

작중 ‘내’가 펜과 잉크로 배우려 했던 것을, 조르바는 살과 피로 싸우고 죽이고 입을 맞추면서 고스란히 살아왔던 것.


“그래요, 당신은 나를 그 잘난 머리로 이해합니다. 당신은 이렇게 말할 겁니다. ‘이것 옳고 저건 그르다. 이건 진실이고 저건 아니다. 그 사람은 옳고 딴 놈은 틀렸다.’ 그래서 어떻게 된다는 겁니까? 당신이 그런 말을 할 때마다 나는 당신 팔과 가슴을 봅니다. 팔과 가슴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아십니까. 침묵한다 이겁니다. 한마디도 하지 않아요. 흡사 피 한 방울 흐르지 않는 것 같다 이겁니다. 그래, 무엇으로 이해한다는 건가요. 머리로? 웃기지 맙시다!”

웃기지 말란다. 펜대 운전수(작중 ‘나’) 뜨끔할 소리다. 그래서 작중 ‘나’는 조르바를 더 존경어린 눈으로 보는 것이다. 두 사람은 상반된 사람이다. ‘나’가 문자와 지식으로 이루어진 현실 세계에 갖혀 있는 백면서생 의 위치에 점하고 착찹해하는 존재였다면, 조르바가 있는 지점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육체와 영혼, 물질과 정신 저 너머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자각하는 상태였다.


포도가 포도즙이 되는 물리적 변화, 포도즙이 마침내 포도주가 되는 화학적 변화를 넘어서, 포도주가 인체에 들어가서 사랑을 하게 하고, 성체(聖體)가 되는 것.

 

먹고 있는 음식이 무엇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음식이 무엇으로 변하는지가 더 중요한, 육체와 영혼의 이분법을 뛰어 넘으려는 존재로 그려진 조르바였기에, 펜대 운전수 ‘나’도 독자인 이 아줌씨도 조르바에 대해 경의를 느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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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5-25 01: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icaru 2005-05-25 0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할마씨, 펜대 운전사 이런 단어들이 참 재밌었어요...

2005-05-25 02: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5-05-25 0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야징!! 쌩쓰투 뜨면 난 줄 아시오~~~~~!! 이까루 언니!

파란여우 2005-05-25 0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등학교때 강렬하게 읽은 기억이 남는 책입니다.
지금 다시 읽으라고 한다면 어려울 것 같아요. 왜? 조르바의 말투는 이제 나이든 제게 그다지 매력직인 자극을 주지 않거든요..이렇게 건방을 떨면서 어떡하든 읽지 않으려고..^^, 포도는 제가 자주 사용하던 단어인데 반가웠습니다. 농익은 포도만큼 님의 서평도 찐한 맛을 낸다는 거 아시나요?^^

진주 2005-05-25 0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저껜가? 마태우스님의 이벤트에 이 책으로 퀴즈를 낸 걸, 저는 읽지도 못했으면서 12문항 중 자그마치 6개나 맞췄다는 거 아님뉘까? 캬캬캬.....
정독은 못했지만 워낙 유명해서 줏은 들은 건 좀 있었죠...안소니 퀸인가? 영화도 찍었었고....(앗..여기서 이벤트후기를?) 암튼, 반갑네요^O^

hanicare 2005-05-25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르바가 목을 ‘조르’는 느낌이 드는 ‘바’라서 말이다- 푸힛. 이카루님도 은근히 유머러스하시다니까요. 참 강렬하게 읽었던 건데 여성관은 정말 꽝이죠? 그래두 마루야마 겐지와는 다르게 조르바에겐 정이 가는 구석이 있었지요.

비로그인 2005-05-25 1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끄럽습니다. 이 유명한 책을 읽지 못했어요. 먹고 있는 음식이 무엇으로 변하게 되는가, 라는 문제는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라는 의미와 닿을 수도 있다고 추측합니다. 도서관에 가기로 되어 있는데 빌려 올거에요..근데 늘 반납을 못해 정지를 먹어요, 읽기나 하면 말을 안 해. 으이구, 제가 하는 일이란 게 다 글쵸, 뭐어~

icaru 2005-05-25 1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02:43에 속삭이신 님.. ㅍㅎㅎㅎ.. 앞으로 더 노골적으로 능청스러워지도록 허것슴돠!!! 아줌씨들 화링... !
떙스투 적립금이 생기면...."아! 바겐셀언니구나..." 헐께요... 땡겨서 고마움 전해유!!
파란여우님..ㅎㅎㅎ... 신포도 말이지요~ 역쉬 인간보다 여우가 낫단께요!!
진주 님... 그 영화 보셨어요...예에...안소니퀸이 조르바역으로 나왔다대요... 아고 보고파라...
하니케어 님..... 조르바에겐 정이 가요..... 여성관은 심히 마음에 안 들지마는...ㅋㅋ 이 리뷰 쓰면서... 조르바의 그 완숙한 넉살을 좀 따라해보려 했는데... 전 안돼나봐요...죽었다깨어나도요...ㅋㅋ 그래도 얼핏...님은 유머러스하게 보아 주신거네요...아이 좋아.. !

복돌언냐,.... 그죠...제말이 그말이어요...님이 제대로 말쌈해주시니... 제 횡설수설이...조금 덜 부끄럽사와요... 님이 하는 일이 그렇긴요...제가 하는 일이 다 그렇죠..헤헤..

2005-05-25 17: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5-05-25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흐.. 읽어봐야하는데.. 언제나 시간핑계만...;;;

icaru 2005-05-26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 혹 그 당시 쓰셨던 독서 노트 같은 게 있다면...느무느무 보고 싶다는생각입니다... 87년도에 고등학생이셨던거죠 ?? ㅋㅋ 중학교 때 읽었던 셰익스피어 작품은 어느 정도 기억난다 하셔서...ㅋㅋ 넘겨짚지 말라구요오? (깨갱..)
저는 고려원에서 나온 책 인간 카잔차키스 라는 책 상,하 권이 있거든요...(읽었냐고 묻지 말아주셈^^) 날개를 대충 보니, 그의 두번째 부인이 그에 대해 쓴 것인듯... 그건 언제 읽으까요...
비숍님... 읽을 책은 많고, 시간은 없고... 헙니다... 전 그래서,,,, 평소 베스트셀러나 신간엔 눈길도 못 주죠...감히...어데...
이 책도 산지 만 1년만에 읽음...작년 코엑스 전시장에서 열린, 도서박람회 때 열린책들 부스에서 삼십프로 할인해서 산 책이었다죠...

잉크냄새 2005-05-26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산 남자....라는 말에 한동안 매료되었던 사람입니다.
아마 저책 표지가 앤소니 퀸이죠? 아, 전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앤소니 퀸의 팬이라지요. ㅎ... 이참에 서재 이미지를 앤소니 퀸으로 바꿔볼까요? 안 그래도 한적한 서재.. 더 한적해지겠죠?^^ㅎㅎ

icaru 2005-05-26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말이죠!!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산 남자...
와...앤소니 퀸 팬이시로구나... ㅎㅎㅎ 더 한적해질거라구요오?..음 ...이 참에 바꾸심... 제가 이카루로 바꾼 거 보다 더한 혼돈이 예상되옵니다...
시험삼아... 바꿔 보시겠어요? (아아...농담요...ㅋㅋ)

sayonara 2005-05-30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소니 퀸의 작품으로 대충 본 적이 있는 작품인데... 역시 원작의 무게감은 대단한가 봅니다. 리뷰만으로 판단하자니.. 최양일 감독의 '피와 뼈'라는 영화와 일맥상통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전혀..?!)
저도 꼭 읽어봐야겠습니다. 혹시 thanks to 두 개 뜨면 두번째껀 접니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