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서랍 - 이정록 산문집
이정록 지음 / 한겨레출판 / 201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새 발자국을 따라서

 

 

말라붙은
저수지 밑바닥을
끈적끈적 지나간 새 발자국


그가 바라보았던 풍경의
반대편으로 화살표 찍혀 있다


새는 왜 눈뜬 것들에게
과거 쪽으로 과거 쪽으로
화살을 쏘며, 사라졌나


두개골을 닮은 마지막 웅덩이,
시궁창 하늘 속으로

 

 

 

 

선생님의 시 중에서 유일하게 지금껏 기억하고 있는 시이다. 제자란 참 박한 존재이다. 제일 좋아하는 시, 라거나 정말 존경했던 선생님이라고도 말해도 이상하지 않으련만 꼭 이렇게..

조금 덜고 깎아서 말하고 싶은 이 마음은..

 

새는 과거로 과거로(새의 발자국 모양이 진행 방향과는 반대의 화살표로 보이니까 -> -> -> : 이 발자국은 나타내는 것처럼 오른쪽 오른쪽으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실은 왼쪽으로왼쪽으로 가고 있는 새 발자국임) 화살표 모양의 발자국을 향하다가 결국은 두개골 닮은 시궁창 하늘 속으로 사라졌다. 이 참신한 시인의 눈이 매섭게도 '미래로 향하지 않고 과거에 골몰하는 새'를 날카롭게 이야기했지만, 선생님 장본인은 이 에세이에서 그려지는 사람됨처럼 해학적이고 유들유들한 충청도 말뽄새 그대로이신 분이다.

 

선생님의 시집을 사 보는 것과 에세이를 사 읽는 것은 이렇게 다른 거구나 한다.

 

에세이집을 통해서 선생님이 말하는 선생님의 생생한 터전 그 현장과, 선생님 문학의 기원이기도 한 가족들을 본다. 그리고 여고 시절까지 살았던 홍성을 읽는다.

읽다가 멈추어 잠시 회상하기를 몇번을 했나 모른다. 홍성 초등학교, 홍성 서점, 그리고 수덕사 등등 ..

 

이래서야 원, 이 에세이를 다 읽으려면 한참 걸리지 않겠나.

 

그리고 비로소 실타래 엮이듯 떠오르는 선생님에 대한 기억들,, 우리들에게 해 주신 말씀들, 그 기억들,, '다 말할 수 없거니와, 다 말하려고 주접 떨지도 않겠다. 세상엔 다 말할 수 없는 것이 훨씬 많다는 것을 알만한 나이가 된 것이다. '라고 옮겨본다. ㅎ

 

덧붙임

선생님은 한문 선생님이셨는데, 반에 들어와서 한문 수업을 하셨던 것은 3학년 때 여름 보충 수업 한달이셨다. 한문은 개인적으로 약간 졸린 과목이기도 했고, 3학년씩이나 되었다고, 밤잠 못자고, 공부도 또한 딴짓도 많이 하던 시기라 쉽게 체력 저하가 오는 여름이면 곧잘 졸기 일쑤였다. 나뿐만 아니고, 대개의 친구들이 그랬던지 선생님은 아이들이 지루해하는 것 같으며, 당신의 학창 시절 에피소드를 이야기해 주셨는데, 당시 여름이라서 그랬겠지만 고등학교 시절에 쭈쭈바병(모든 이야기에 제목을 지어 명하시는 경향이 있으셨다 그러고 보니)에 걸리셨었다고. 말씀하셨던 게 기억난다. 더운 여름 냉방이랄 게 전혀 없다 시피했던 가난한 시절이라 늘 옆구리에 뿌뿌바를 끼고 사셨다고.

그러고 보니, 아드님 이름으로 된 출판사에서 이 에세이 집도 내셨다. 그 당시에는 두살이나 세살이었을 텐데 (ㅎㅎ 오해하지 말고 들으시기를요~ 아드님 이름이 겨레였어요! )

 

선생님을 더 가까이에서 뵐 수 있었던 것은 사실 그 한해 전인, 2학년 때였다. 그때 선생님도 우리 학교에 전근오신 첫 해였고.

그날은 학기 초였고, 오전에 클럽 활동 부서를 정해서 오후에 자기 부서로 가서 선생님과의 첫 대면을 하고 1년동안 계획을 다지는 날이었다. 그런데 그날 아침 공교롭게도 사건이 있었다.

우리집은 기차역이 있는 근처였고, 학교는 용봉산이란 산으로 가는 방향에 있었는데, 도보로 가면 꼬박  50분은 걸어야 했다. 지금처럼 동네마다 버스정류장이 있지 않던 시절이라, 학교에 가려면, 집과 학교 딱 그 중간 지점에 있는 시내버스 터미널에서 학교 가는 방향의 시내버스를 타고 간다. 아침마다 통학 전쟁이었던 게 학교 쪽으로 가는 버스라고 해서, 배차 간격이 짧고, 수용인원도 많다거나 한 게 아니었기 때문에, 간간히 오는 그 버스에 콩나물시루 낑기듯 구겨져 들어가 타고 갔다. 그나마도 드문드문 콩나물 버스를 사수하지 않으면 삼삼오오 일행을 즉석에서 만들어 학교까지 택시를 잡아타고 가야 하는데, 그것도 만만찮은 수고로움이 있었다. 그날도 여지없이 콩나물 버스라서 저 차를 타, 택시를 타 하면서 고민하고 있었는데, 용케도 앞문 맨 앞자리에 중학교 때 한 반이었던 친구가 앉아 있었다. 그래서 그 친구에게 가방을 맡기고, 나는 버스 뒷문으로 간신히 탔던 것이다. 결말부터 말하면, 버스에서 내릴 때 나 따로 가방 따로 내렸다는 건데, 맡겨 둔 가방을 찾아오려고 그 혼란한 와중에 친구를 찾았더니, 가방을 버스에 두고 내렸다고 했다. 버스는 가방을 싣고 홍북으로 용봉산 근처로 굽이굽이 돌고돌고...  일단 교실에 가서 수업을 들었지만, 좌불안석이었다. 공중 전화 박스로 가서 114로 물어 버스터미널 연결해서 여차저차 가방을 잃어버렸다고 했더니, 아직 그 버스가 돌아오지 않았다고. 또 한 시간 지나서 연락을 해 봤더니, 가방이 돌아와 있어서 보관중이라고 했다. 점심 시간 쯤되서 시내버스터미날로 가서 가방을 찾아 점심 시간이 지난 시간에 학교로 돌아왔는데, 아이들은 클럽 활동 부서를 다 정해서 각자 반으로 갔다고 한다. 담임 선생님께서는 정원이 아직 남아 있는 반이 문예반 하나라고 하셨다. 부랴부랴 반으로 찾아갔는데, 대략 삽십명 정도 되는 1,2학년 부서원들과 이정록 선생님이 이야기를 나두고 있는 교실에 지각생이 드르륵 교실문을 열었다. 

 

북콘서트 끝나고 저자 사인 받을 때. 선생님께 제자였다고 말씀드리니,

 

"아, 그래 ~ @@@ 생각난다. 어~ 그땐 얼굴이 까맸었는데.."

"네? 저는 얼굴이 까맣지 않았어요?"

"그땐 키가 작았었는데.."

"지금 신은 구두 굽이 높아요! ㅎ(그래도 작은 키는 아니었다고, 짓는 억울한 표정)"

"그땐 안경을 썼었는데.."

"눈을 수술했어요!ㅎ"

"그땐 귀여웠었는데.."

"지금도 귀여워요!(나이가 드니 두둑해지는 것은 넉살)"

"그때 너 아웃사이더였잖아."

"저 안 그랬는데요? 선생님 기억하시는 학생이 제가 아닌 것 같아요!"

 

"왜 아니야, 눈 깜빡이는 것도 똑같고... 너 맞는데!"

"...."

 

그 순간에도 나는 눈을 사정없이 깜빡이고 있었을 것이다. 긴장을 하면 엄청 깜박임. 

 


댓글(15)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기억의집 2012-05-10 2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선생님께서 이 리뷰 읽지 않을까요? 그래도 선생님과의 추억 한자락은 올려주시지.

icaru 2012-05-11 09:22   좋아요 0 | URL
ㅋㅋ 쓸까말까 막 고민했는데, 늘어놓다보면 되게 진부하고 퇴색해 보일 거 같더라고요. ㅎㅎ
그래도 말씀하시니, 리뷰 수정해서 끄트머리에다가 붙여볼까 해요 흑,, 기억 님이 주문하시는 거라면 제가 다 하지요 뭐 (,,) ('')

기억의집 2012-05-18 17:36   좋아요 0 | URL
네, 끝을 맺으셔야죠.
이카루님보다 멀지 않았지만, 저도 학교가 멀었어요. 정거장수로 한 7-8정거장 정도.
이 거릴 육년동안 걸어다녔어요. 비 오는 날애는 비 다 맞고.
저는 지금도 생각나는 게 비가 억수같이 퍼붓는 날 비 맞으며 오다가 비가 너무 내려 어느 집 대문에서 한참을 서 있다가 집에 간 기억이 나요. 집에 오니 엄마도 없고,,, 3,4시 사이였는데, 그 시간때가 호젓한 시간때라 외로움이 밀려오더라구요. 그 때의 느낌이 아직도 생생해요. 사실 저는 어린 시절 기억 거이 나지 않는데, 몇 몇 장면은 머리에 새겨져 있긴 해요.

이카루님도 그 때 문 드르륵 열고 들어갔던 그 멈춰진 시간을 기억하는 거죠.

hnine 2012-05-10 2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으셨군요! ^^

icaru 2012-05-11 08:53   좋아요 0 | URL
흐흐 넵,, 성격이 급해서 끝까지 정독하지 않은 상태에서 반가운 마음에 휘리릭 몇 자 적고 말았어요!! ㅎ

잉크냄새 2012-05-11 1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이분의 시 하나가 생각날듯말듯 합니다. 예전에 시집 한권 읽었던것 같은데.

음, 여고생 시절의 추억담이군요.

icaru 2012-05-18 14:37   좋아요 0 | URL
ㅎㅎ 네, 추억해보면, 여고생 시절은 .. 요즘의 여고생들도 그렇겠지만, 좀 결벽적인 데가 있고, 비전이나 대안도 없으면서 툴툴대고 비판을 잘 하는 에고... 이거 일반화의 오류가 되겠네요... 저 개인의 이야기인데 ^^

프레이야 2012-05-11 2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쓰셨네요. 다음 이야기 기대되는 걸요.^^

icaru 2012-05-14 16:52   좋아요 0 | URL
ㅋㅋㅋ 선생님이 지도하시는 클럽 활동을 하게 된 것에도 다 곡절이 있었다는 것을 쓰려다 보니, 참 너절해졌다 싶었는데, ㅋㅋ 이어지는 이야기도 준비할까요? ㅎ

책읽는나무 2012-05-19 2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고등학교때 한문선생님이 너무 좋아서 한문공부 되게 열심히 했었던 기억이 나요.
하지만 그때 외웠던 한자들은 기억이~~~ㅠ
스승님이 시인이시라니~ 참 멋지네요.^^
왠지 뿌듯하시겠어요.
추억담 2편 들려주세요.^^

icaru 2012-05-21 10:23   좋아요 0 | URL
ㅎㅎㅎ 한문공부 열심히셨군요 ㅋㅋ
책나무 님 학창 시절이 궁금해요! 그때도 유머러스한 여학생이셨쎄요? ㅋㅋ

순오기 2012-05-20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고시절 선생님과의 각별한 인연이 부럽습니다~~ 다음 편도 기대해요.^^
어제 토요 방과후에서 중학생들이 글쓰는 짬에 몇 쪽 읽었는데
오랫동안 내가 잊고 있었던 '새꼼맞게'라는 말이 어찌나 반갑던지요.^^
이젠 고향말인 충청도 말보다 전라도 말이 더 익숙해서...

icaru 2012-05-21 09:32   좋아요 0 | URL
새꼼맞다! ㅋㅋㅋ 저는 지금도 아주 익숙한 말인데요~
마치 표준어처럼요. 뜬금없이 ㅋㅋ 이게 표준말이던가요?

지난 주에 선생님의 북콘서트에 갔었거든요. 끝나고 가져 간 책에 사인 받느라고 줄서서 기다리다가 내 차례가 되어 받는데,
"선생님,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드렸더니 첨에는 못 알아 보시다가,
제자라고 말씀드리니까, "아!~" 하면서 너 그때 이러이러했었는데 걔 아니냐 하시는데, 혼동하시는 거 같더라고요.

설렘나라 2012-05-23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 혼동했다가, 네 눈을 보니까, 금세 알겠더라. 그 초롱초롱-호기심 많던 눈! 그 시절 난 시쓰는 일에 미쳤었지. 술과 퇴폐와 우쭐거림! -그때 제자들에게 이 자릴를 빌어서 사과하마. 이정록

icaru 2012-05-23 20:05   좋아요 0 | URL
으악 진짜~~~ 선생님이 제 서재에 오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