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 두기 - 세상의 모든 관계에서 나를 지키는 힘
임춘성 지음 / 쌤앤파커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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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 시인의 '간격'이란 시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불이 타버린 숲에 서 보니 나무와 나무 사이의 울창함이 적당한 간격때문이라는. 그렇다 우리의 삶에 간격이라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조건인지도 모른다. 지나치게 사랑하여 서로를 안으면 피를 흘리게 되는 고슴도치의 숙명정도는 아니더라도 김수영의 팽이처럼 서로의 간격을 지켜주는 '거리 두기'가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오랜만에 [쌤앤파커스]에 서평 신청을 했다. [거리두기]라는 제목도 마음에 들지만, 이 삶이라는 팽이를 돌리려니 홀로 도는 것이 너무 고루하고 지루할 때가 있다. 내가 홀로 도는 것보다는 누군가가 같이 돌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누구에게나 있다. 그리고 그 삶의 팽이를 잘 돌리게 해줄 채찍은 타인에게서 나온다. 그런데 이 타인이라는 존재가 참 묘하다. 사랑하는 사이처럼 좋아지내다가도 어느 한 순간에 실망을 하게 되면 모르던 사이보다 못한 관계가 되어버려 서로에게 생채기를 내느라 바쁘다. 그 생채기에 쓸리고 할퀴어 가슴 달래다가 다시 혼자만의 세계에 침잠하게 되기도 한다.  그 점에서 '휘둘리지 않고, 헤매지 않고, 혼자 속 끓이지 않고 스스로 중심 잡고 우아하게 살아가는 법'의 소제목은 어쩌면 인간관계에서 우리가 잡고 싶은 동앗줄이 아닐까.

 

총 8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속 모를 사람들이 모인 거대한 의문부호'로 만들어진 세상을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한 마디로 지피지기 백전백승이라는 말과 같은 것이다. 세상을 아는 것이 나를 아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 그 가운데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나'에게 미치는 영향, 이것이 인간관계의 기본적인 세팅이라 한다면, 이 관계에는 나무와 나무 사이의 간격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사이존재'라는 것이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에서부터 이 책은 출발한다.

 

나와 민낯의 세상을 보고 있지 않습니다. 세상은 또한 알몸의 나를 보고 있지 않습니다. 나와 세상 그 사이에는 분명히 무엇이 있습니다. 아니, 그 사이에는 무엇이 있어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나와 세상이 어울려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야 내가 세상에서 폼 나게 살 수 있고, 세상이 나를 품 안에 보듬어줄 수 있습니다. 민낯과 알몸의 나와 세상은 서로 이기적인 존재이며, 서로의 주장으로 상대를 생채기 내기 십상이기 때문입니다.

 

 

나와 세상 그 사이, 나와 세상의 관계 그 사이 공간에는 무언가가 있습니다.(중략)

그 사이, 사이의 존재를 선명하게 받아들이기로 하였습니다. 그것은 사이존재입니다.-p27

 

이 사이존재에 대한 이야기의 모험이 책을 펼쳐지며 시작된다 . 저자는 중간중간 질문을 던지며 '나'에 대한 생각의 페이지를 약간의 지면으로 할애하고 있다.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나는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고민을 절로 하게 된다. 살면서 나에 대한 응시를 이제까지 한 번도 하지 않았다는 자각이 들자 조금은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그래서 책과 함께 오랜만에 독서삼매경이라는 것에 빠져보기도 하였다. 옛사람들은  '나'를 알기 위해서 평생공부로 수신하였다. 사색이 부족한 현대의 시간들에서 나를 들여다보며 생각을 정립하고 삶을 고민하고 사람과의 관계에서 중심을 잡을 수 있도록 안내해주는 책을 만나보고 싶다면 최고의 책이 아닐까한다.

 

 

 

 

 

 

휘둘리지 않으려면 알고 있어야 합니다. 당신과 당신에게 소중한 상대 또는 가치 사이에는 분명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매개자의 존재를 의심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요? 당신은 합리적인가요? 나와 당신은 괜찮은 사람인가요? 나이와 경험, 그리고 학력과 학습, 이것만으로 나를 판단할 수 없습니다., 또한 외모, 성격검사, 호불호로 당신을 규정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어쩌겠습니까? 나는 나에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이 특별한 내가, 각별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나에 대해서 지금보다는 더 잘, 더욱 제대로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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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7-02-16 22: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만 드림모노로그 님을 그동안 못뵌건가요?
아님 스파이처럼 활동을 하셨던 건가요? 뜬금없는 반가움을 밑도 끝도 없이 놓고 가면서.. ^^

드림모노로그 2017-02-17 08:30   좋아요 2 | URL
ㅎㅎ 그동안 너무 바빴어요 ^^ 책은 그래도 꾸준히 읽었는데 쓰는 일이 시간이 많이 걸리다보니 ~ 블로그에 다시 돌아오는 게 녹녹치가 않았네요^^
오랜만에 들려도 반가이 맞아주시니 고맙습니다.^^
늦었지만 정유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장소] 2017-02-17 12:08   좋아요 0 | URL
ㅎㅎ네에~ 네에 안보이신게 사실였네요 . 저만 못보는 곳에서 살고 계셨동계 아니라니 ㅡ 퍽 이상한 안도 ...ㅎㅎㅎ 반가워요! 반갑고말고요!^^ 자주 뵈어요!^^
아, 새해 복많이 북많이~^^!!!

서니데이 2017-02-17 00: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뵙네요.
잘 지내셨지요??^^

드림모노로그 2017-02-17 08:31   좋아요 2 | URL
네 덕분에 건강히 잘 지냈습니다. 댓글에 감동이.....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좋은 일 많이많이 생기는 해 되세요~^^

AgalmA 2017-02-26 18: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궁금했는데 좋은 글로 다시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새해에는 더 여유로운 시간 많아지시길 기원드립니다. 좋은 글 쓰시는 분이 시간에 쫓겨 글을 제대로 못 쓰신다는 건 늘 마음 아픈 일입니다.

드림모노로그 2017-02-27 15:00   좋아요 0 | URL
좋은 말씀 감사드려요 ^^ 자주 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주식회사 대한민국 - 헬조선에서 민란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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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시에르의 자발적 복종에는 이런 말이 있다. '멍에를 지고 노예 상태에서 성장하고 교육받은 사람들도 전 세대가 어떤 삶을 누렸는지 알지 못하고 그들이 태어난 대로 사는 것에 만족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어떤 재산, 어떤 권리를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해선 더이상 생각도 하지 않고 출생 당시부터 주어진 삶의 조건을 자연스러운 상태로 여기게 된다.'

 

언젠가부터 대한민국이 '헬조선'으로 불리워지기 시작했다. 신조어가 시대상을 대변하여 탄생하는 언어라한다면 대한민국의 체감온도로서의 헬조선은 보편적 정서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헬조선에서 민란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러시아에서 귀화한 박노자 교수의 심층적인 분석이 담긴 책이 출간되었다. '주식회사 대한민국' ,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고유명사 앞에 주식회사라는 이익집단의 수식어가 첨언된 것은 그만큼 대한민국 사회가 계급화되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주식회사 대한민국'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저자가 꼽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자본의 탐욕을 견제하고 사회 약자를 보호하기는커녕 스스로 '기업국가'화되어 자본의 이익 보호에 집중하고 사회적 약자의 연대는 막아선다는 점이다.


대한민국을 하나의 주식회사에 견주어본다면 상황은 더욱 명확해진다. (주)대한민국의 주주는 누구인가? "경영 참여는 꿈도 못 꾸고, 하라는 대로 잔업과 특근을 하느라 일주일 실질노동시간이 50~60시간이나 되는, 40대 이상 되면 근골격계 질환이나 신경질환을 앓게 되는 대한민국의 '피곤한 노동자'들은 과연 '주주'인가?"(11쪽)


대기업의 대주주나 임원, 고급공무원, 혹은 땅부자 등 고액재산보유자들이야말로 (주)대한민국의 진짜 주주라 할 수 있을 터인데, 이들은 서로 겹치거나 혼맥 등 긴밀한 사회적 네트워크로 연결되기까지 해서 매우 공고하고 배타적인 집단이 되었다. 그러기에 (주)대한민국은 기업 중에서도 악질기업이 되기 쉽다. 오로지 주주들의 배당금 극대화만을 위해 분투할 뿐, 피고용자에 대해서는 그저 주주 배당금 극대화의 '재료'쯤으로 여기는 것이다.

 

특히 대기업-하도급중소기업으로, 정규직-비정규직으로 이원화되어 있는 경제구조를 보자. 재벌들은 아주 제한적으로만 직접 고용을 하며, 대부분은 각종 하도급, 영세업체에 고용되어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일하거나 비정규직 혹은 '알바' 신세를 면하지 못한다. 정규직-비정규직 사이의 차이는 단순히 고용 형태의 차이가 아니다. 의료, 교육 등 본인의 생존과 자녀의 성장에 가장 필요한 사회적 서비스부터 기업에 소속되어 있지 않으면 제대로 꾸려나가기 힘들다. 실업수당, 국민연금 등 각종 사회적 임금들은 그 지급 기간이 짧거나 조건이 까다롭거나 생활이 불가능한 작은 액수다. 결국 정규직 직장이 없는 이상 한국 사회에서 인간다운 삶이란 불가능에 가깝다. 이런 측면에서 비정규직 양산은 현대판 천민계급 만들기와 다름없다는 게 저자의 지적이다.

 

-출판사 서평중에서

 

일례로 교육부 고위 관직에 있던 관료의 "민중은 개돼지" 발언으로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하였던 사건을 기억해보자. 지금은 파면되었지만 교육부의 고위 관료는 거기에 한 술 더떠 신분제를 공고화 해야 한다고까지 하였다. 이러한 발언은 평소 본인이 가지고 있던 이데올로기를 잘 보여주는 것뿐만 아니라 공직자들이 대한민국을 계급제 사회라 인식하고 있음을 뜻한다. 연일 폭염으로 전기세 걱정에 누진세율이 직접적인 경제부담으로 공론화 되는 와중에 청와대는 고가의 송로버섯과 샥스핀요리로 오찬을 하여 빈축을 사고 있는 일들이 다시한번 공직자들의 마인드 자체를 의심하게 한다.

 

박노자 교수는 이런 우픈 대한민국의 현실에 메스를 들이대길 주저하지 않는다. 미국에 대한 종속적인 관계를 마다하지 않으며 헬조선에 살면서도 오히려  데모하는 사람들을 종북이라 핍박하는 나라,  노동자 탄압을 예사롭게 하는 나라, 촛불을 들기보다는 이민을 원하는 젊은이들, 종북 사냥에 묻혀있는 지배층의 속내인 분단의 영구화, 박정희 시대가 결국은 기적이라는 이름이 아니었다는 것과 친일청산이 이뤄지지 않는 한 대한민국의 기형적 세습화는 요지부동일 것이라는 것, 박근혜 정부에 들어서서 복지국가 최하위에 접어들었으며 노인들의 가난한 죽음은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것, 국민의 생존도 보장 못하는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지옥도나 다름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그동안 잊고 살아왔던 그 무엇,  랑시에르가 자발적 복종에서 말했듯이 헬조선에서 민란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어쩌면 이  노예의 삶에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것에 길들여져 사유의 불능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문득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이런 사회에 분노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정말 개돼지일지도 모르니까. 

 

-본문중에서-

국가와 개인이 일체화되면 늘 벌어지게 되는 가장 무서운 일이 개인이 국가가 하는 일에 대해서 어떠한 자율적·독립적·비판적 평가조차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국가로부터 정신적으로 독립해야 비판도 가능하다.

 

'헬조선'의 피해자들이 이 사회를 연대해서 바꾸지 않는 이상 살길이 없다는 점을 깨닫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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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 2016-08-16 16: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추천 꾸욱...!!!

드림모노로그 2016-08-16 1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내가 논어에서 얻은 것 - 삶이 흔들릴 때 나를 잡아주는 힘
사이토 다카시, 박성민 / 시공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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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자라면, 삶에 대해 고민하라!”

 

삶에 대한 고민은 무거운 돌덩이를 이고 산을 오르는 시지프스의 고뇌마냥 언제나 두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그럼에도 그런 고민을 쉬이 떨쳐버리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삶 자체가 정답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끊임없는 노동으로 그저 이 힘든 삶을 살아내야 한다는 것 이것은 공자의 철학의 기본이자 밑바탕에 깔려있는 정신이나 다름없다. 그렇기에 공자는 천하를 거지로 주유하면서도 자신의 기량을 펼칠 주군을 만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 살아내어야 한다는 삶의 힘겨운 주문을 조금은 더 가볍게 할 수는 없을까? 그 방법이 있다면 논어를 읽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논어는 공자의 살아내어야 하는 삶의 주문 앞에서 언제나 정면승부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주는 책이다. 삶의 가장 밑바닥에서 생생하게 겪었던 경험으로 엮어져 있기에 깨달음의 강도도 높을 수밖에 없다.

 

살아내기 위한 가장 좋은 처방을 공자는 이렇게 말한다. 하루하루를 더 나아지는 삶’, 즉 향상심에서 그 의미를 찾는 것이다. 논어의 제 1장은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에서 배움과 실천의 삶은 살아내어야 하는 삶을 기쁨으로 채우며 더 나아지는 삶을 살아가게 하는 동력이다. 그렇기에 현대에도 2500년전의 공자의 삶의 방식이 여전히 유효한 이유이다.

 

 

세상이 어지럽다 한들 들짐승이나 날짐승과 함께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세상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지 않으면 도대체 누구와 함께 살아간단 말이냐. 만약 지금 천하에 도리가 행해지고 있다면 나 역시 세상을 바꿀 마음은 없다.” -18편 미자

 

여기에 아름다운 보석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을 상자에 넣어 보관해두는 것이 좋을까요, 아니면 후한 값을 쳐주는 사람을 찾아가 파는 것이 좋을까요?”

그러자 공자가 이렇게 대답했다.

팔아야지, 팔아야지. 나는 제값을 쳐서 나를 사줄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9편 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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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한국현대사 - 1959-2014, 55년의 기록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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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1959년에 태어난 유시민이 2014년까지, 55년의 기록이다. 아마도 이 세대가 굴곡진 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으며 자란 세대가 아닐까 싶다. 책의 구성은 거시적인 현대사와 함께 미시적인 개인의 체험을 기록한 이중구조이다. 1959년생 유시민과는 10여년의 터울이 있는, 1970년생인 나는 이런 현대사의 격동을 느낄 새도 없었다. 산업화에 슬슬 시동이 걸릴 때였고, 정부의 산업화 정책에 발 맞추어 우리 부모님도 충청도 산골에서 무작정 상경하여 서울의 한 귀퉁이인 달동네에 자리를 잡으셨다. 콩나물 시루처럼 빽빽하게 들어찬 한 지붕 세가족의 풍경은 일상이었고, 연탄불에 라면을 끓여먹던 시절이었고, 연탄가스로 사망하는 사람들이 자살해서 죽는 사람보다 많았던 시대였다. 그로부터 46년이 흐른 지금의 한국은 괄목할 정도의 풍요를 자랑한다. 이런 풍요는 아아이러니하게도 보수와 진보의 극한 대립을 가져왔다. 그것은 우리나라의 사회경제적, 정치적,문화적 변화속도가 지나치게 빠른 탓에 일어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현대사는 현재와 이어져 있기 때문에 부담스러운 역사다. 점점 첨예해지는 좌우이 대립으로 부담은 더욱 배가 된다. 국정화 교과서로 인해 한 차례의 파란을 겪은 작년이후 이러한 현대사의 대립은 좌와 우의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곤 한다. 저자는 이런 현실이 '역사가도 각자 나름의 개성과 취향이 있고 서로 다른 욕망과 감정에 끌리며 저마다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지니고 있기에 자신이 주목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것을 선택해 자신의 시각으로 해석'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차피 역사는 사실의 선택과 선택한 사실의 해석, 역사 서술의 핵심인 두 가지가 모두 주관적인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렇기에 역사를 둘러싼 다툼은 당연한 것이다. 또 하나 이 민감한 현대사가 더욱 민감해 지는 것은 현대사의 중대한 사건들의 주역들이 여젓이 현실에 살아있다는 점이다.

 

역사적 사실 그 자체가 객관적인 진리를 이야기한다고 믿는 것은 순진한 착각일 뿐이다. 사실은 스스로 말하지 못한다. 역사가가 허락할 때만 말을 한다. 역사가는 제멋대로 사실을 만들거나 바꿀 수 없지만 사실의 노예인 것도 아니다. 사실과 역사가는 평등한 관계에서 서로를 필요로 한다. 자기의 사실을 가지지 않은 역사가는 뿌리 없는 풀과 같고 자기의 역사가가 없는 사실은 죽은 것이다. 역사는 역사가와 사실들의 지속적 상호작용이다. -p29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을 앞두고 '임을 위한 행진곡'이 최대의 정치적 쟁점에 서있다. 좌우의 첨예한 대립은 '임을 위한 행진곡'을 보는 시각차에서도 엄연히 드러난다. 광주민주화운동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노래로 보는 사람들은 노래의 정당성을 부여하며 기념식에서 제창하기를 바라지만 반대로 임을 위한 행진곡 노래가 반미민중혁명을 선동하고 있다하여 제창을 반대한다. 우리의 현대사는 이 사실만 보아도 다분히 감정적이고 정치적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시각으로, 얼마나 현대사를 이해하면서 현재를 해석할 것인가이다. 주관적 시각을 유지하되 얼마나 보편적인가를 떠올릴 줄 알아야 하고, 객관적이되 얼마나 합리적인 시각인지를 판단할 수 있다면 우리의 현대사는 바른 균형을 가진 역사로 쓰여질 것이다. 현재와 연결되어진 현대사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미래를 열어주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을 가장 좋아하는 시민들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대상은 사실 그의 인격과 행위가 아니라 그 시대를 통과하면서 시민들 자신이 쏟았던 열정과 이루었던 성취, 자기 자신의 인생일 것이라고 나는 추측한다.-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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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다운 정원 - 제7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심윤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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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슬픈 현대사는 아픈 가족사와 함께 한다. 적어도 내 기억에는 그러했다. 우리 집은 단칸방에서 여섯이 옹기종기 붙어 살았다. 건넌방에는 삼촌이 신혼방을 차려 한 지붕 두 가족이었다. 정확히 내가 여섯 살에 작은 엄마는 조카를 낳았다. 그것도 집에서. 문지방 너머로 몰래 본 애 낳는 장면은 지금도 잊히지 않은 채 뇌리에 남겨져 있. 돈이 없어 병원에 가지 못한 그 시절을 일컬어 유신시절이라고 어른들은 불렀다. 그 시절에는 누구나 가난했었고 누구나 아픈 시이었다우리 부모님들은 언제나 바빴다. 좋게 이야기하면 부지런한 것이었고 나쁘게 표현하면 죽도록 일해야 입에 풀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 시절의 이야기를 지면으로 만났다. 오랫동안 봉인 되어 온 기억을 스치기만 해도 툭 터져버리듯 그 시절들이 떠올랐다. 소설의 공간적 배경이 되는 인왕산 자락에 위치한 산동네가 꼭 우리가 살던 달동네와 닮아있었고 매일 같이 싸우는 엄마와 할머니의 싸움은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욕설이 난무하고 며느리만 보면 못 잡아먹어 환장하시는 할머니와 많이 배우지는 못했지만 살림하나는 똑 소리나게 했던 어머니 사이에서 늘 할머니 편만 드는 가부장적인 아버지. 그 시대의 아버지들은 모두 그랬다. 아내편 들어주면 큰일나는 줄 알고 주먹으로 자식을 다스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런 아버지.

 

그런 동구의 가슴에는 누구도 모르는 비밀이 하나 있었는데 , 어디에나 꼭 존재하는 부잣집의 정원을 비밀처럼 품고 있었다. 그 아름다운 정원은 잔디 하나 없지만 낙엽이 융단처럼 깔려 있고 사람의 손길이 전혀 닿지 않아 순수의 결정체 같은 비밀의 정원이었다.

 

 

도저히 화목이라고는 눈씻고 찾아 볼 수 없는 이 가족들이 영주의 탄생으로 인해 약간의 평화가 찾아오긴 했다. 며느리라면 쌍심지부터 켜는 할머니도 영주 앞에서는 순한 양이 되었고 아버지는 영주의 행동 하나하나에 울고 웃었다. 동구는 달덩이 같은 영주얼굴을 보기 위해 학교가 끝나자마자 쏜살같이 달려왔고 아버지의 폭력과 할머니의 욕설로부터 엄마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영주 뿐이라는 것을 알았다.

 

 

3학년이 된 동구는 한글을 여전히 못 깨우쳤다. 2학년 담임 선생님이 동구가 한글을 모른다고 하자, 아버지는 따귀를 때렸다. 동구는 그후 더욱 글을 읽는 것을 두려워했다. 3학년이 되자 동구는 특수 학교로 가야 할 정도로 심각한 난독증을 보이고 3학년 담임 박영은 선생은 동구의 상담을 자청한다. 선생님과의 대화 시간을 통해 동구는 부모들에게 받지 못한 애정으로 치유되는 듯 하였고 학년이 끝나갈 무렵 동구는 박영은 선생님에 대한 동경을 비밀 정원처럼 품는다.

 

 

사회의 격변기를 지나던 시절, 탱크 구경하러 간 곳에서 옆동네 주리 삼촌을 만나고, 처음으로 멍게와 소주를 맛본다. 소주의 맛처럼, 독하고 혼미한 시절의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은 주리 삼촌과 박선생, 박선생의 선배와 함께 한 자리에서였다. 대학시절 박영은 선생이 민주화 운동을 하는 이들과 함께 하지 못한 아픔에 눈물을 흘리며 시작된 고백은 이후 박영은 선생의 거취를 예고하는 복선이다.

 

 

나는 두 팔을 높이 쳐들어 아름다운 정원을 찬미하면서 능소화 꽃 사이에서 이 정원의 가장 아름다운 눈동자, 능소화의 찬란한 영혼, 붉은 자주빛 원피스를 나부끼며 떠나가신 박 선생님 같은 그 황금의 새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p244

 

 

박영은 선생이 실종 되고도 동구의 집은 여느 때와 같, 엄마와 아빠의 싸움을 피해 영주를 무등 태워 감 따러 간 날, 영주는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떠나고 이후 동구의 집에는 파란이 일어난다. 격으로 엄마는 정신이 나가고 할머니의 타령은 더욱 심해졌다. 아버지는 처음으로 눈물을 흘리고 할머니와 어머니는 죽을 듯이 싸운다. 결국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 엄마를 기다리기 위해 성숙의 계단을 오르는 동구는 오랜 비밀의 정원에 이별을 고한다.

 

아버지와 엄마는 돈을 많이 벌고 나를 잘 키우자는 희망이 있다. 나는 나중에 박 선생님을 다시 만나자는 희망이 있다.하지만 할머니의 몫으로 남은 희망은 무엇일까. 할머니에게 손을 내밀고,노래를 불러주고, 말벗이 되어주고, 나들이를 함께 나가던 영주가 떠난 후 할머니에게는 어떤 희망이 남았을까.

 

소설의 큰 틀은 글 한자 읽을 줄 모르던 동구가 할머니를 이해하기까지의 과정이다. 이 과정은 동구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것이기도 하지만 하나의 인격체로 완성되어 가는 과정이다. 동구는 데미안의 싱클레어처럼 힘겹게 한 세계를 깨뜨린 후에야 성장한다. 정원의 아름다움이 흔한 것과 귀한 것이 한데 어울려 만들어내는 것처럼 자신의 세계 역시 그러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으로 소설은 마무리 된다. 누구나 그런 시절을 지나왔다. 기차 밖에서 흘러가는 풍경처럼 역사가 흘러가는 동안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입에 풀칠하는 것만으로 바빴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가슴 속에는 동구의 비밀 정원처럼 아로 새겨진 민주화 운동을 기억한다. 유신 시절은 누구나 가난했고 누구나 아팠다. 동구의 아픈 가족사는 우리들의 이야기였고 슬픈 현대사를 품은 우리의 이야기이다.

 

-책속에서-

영주와 나와 박 선생님은 서로 다른 세계에 속해 있지만 지금 같은 새를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누구든 강력한 권위를 행사하는 독재자에게 자신의 정치적 의지를 의탁하고 싶어한단 말이야. 이런 사람들은 민주주의와 맞닥뜨리게 되면 무능하다느니, 권위가 없다느니, 산만하다느니 하며 불평을 늘어놓게 되지.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은 문제라고? 그들도 역사의 수레바퀴 앞에서 저항할 수는 없을 거라고? 아니야, 독재에 잘 길들여진 사람들은 또 다른 독재가 자라날 수 있는 가장 비옥한 밑거름이야. 이렇게 기름진 밭이 있는데 독재라는 질긴 덩굴이 왜 성장을 멈추겠어?

 

 

 

인간이 살아가는데 치사하게 답만 알고 과정을 모른다는 것은 뿌리가 없고 불완전한 것이라는 설명에 수긍했을 따름이었다. 그 원칙이 산수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인생사 전반에 그렇다는 훈계를 듣고는 앞으로 어른이 되더라도 내 인생이 뿌리가 없고 불완전한 것이 되리라는 생각에 몸을 떨었고, 인생을 완전한 것으로 해주는 그 '과정'을 찾기 위해 따로 노력도 해보았으나 야속하게도 내 머릿속에 과정은 떠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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