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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무기력이다 - 인지심리학자가 10년 이상의 체험 끝에 완성한 인생 독소 처방
박경숙 지음 / 와이즈베리 / 2013년 2월
평점 :
그러면 뭐하겠노? 좋다고 소고기 사묵겠지.
개콘에서 이 코너를 보았을 때 유행어가 될 줄은 몰랐었다. 이 말의 뜻을 잘 몰랐을 뿐아니라 평소 개그 이해력이 남들보다 한 템포 느린 탓이다. 하지만 ‘소고기 사묵겠지’라는 유행어를 사용할 때마다 우리의 삶을 이렇게 해학적이고도 심도 있게 표현한 개그맨에 감탄을 하곤 한다. 이 말에는 ‘인생무상’이라는 깊은 뜻이 함축되어 있다. 무슨 일을 하던지 인간은 기본적인 욕구에서 벗어날 수 없다. 생활에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요소 -의식주依食住-는 인간이라면 없어서는 안 되는 가장 기초적인 것들이다. 승진을 해도 좋다고 소고기를 사먹고 넓은 집을 이사 가도 좋다고 소고기 사먹는다는 것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행복한 상태를 표현한 말이다. 우리의 삶의 형태는 어찌보면 때론 무척이나 단순하다. 태백산맥에서는 담배 한 길이 밖에 되지 않는 것이 우리의 삶의 길이라고 하고 개그콘서트에서는 소고기 사먹다가 끝나는 인생이 바로 우리들의 삶의 모습인 것이다. 무기력을 말하면서 뜬금없이 소고기 이야기를 왜 꺼내냐고 하겠지만, 무기력은 이런 기본적인 요소를 영위할 수 없는 상태를 만든다. 초간단으로 무기력 상태를 표현하자면, 아무리 좋은 일이 있어도 소고기 사 먹기도 싫은 상태라면 당신은 이미 무기력 상태인 것이다. ‘하고 싶으나 에너지가 바닥나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태’,‘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든 스스로의 힘으로 처지를 바꿀 수 없는 상황’, 이를 심리학적 용어로 무기력이라 한다.《문제는 무기력이다》
대한민국을 강타하고 있는 우울증은 바로 이런 무기력에서 기인한다. 우울증으로 자살하는 사람들이 뉴스에 빠지지 않고 매일같이 등장한다. 이게 다 누구탓일까? 누구 말대로 나라탓? 경제탓? 사회탓? 어른들 세대의 잘못? 정치? 모두 틀렸다. 누구도 아닌 바로 내 탓이다.
자신에게 냉정하라. 그러나, 당신 자신의 힘을 믿고 스스로의 방식대로 걸어라. 오늘부터 당장 시작하라. 당장하지 않는다면 그곳에 오래 머물러야 할지 모른다.
중년에 접어들고 나니 ‘무기력’이 이제 남의 일 같지 않게 되었다. 시시때때로 무기력은 다양한 형태로 찾아온다. 무슨 일이라도 자신감이 넘치던 젊은 날과는 달리 우리 중년의 나이에는 책임과 의무라는 심리적인 압박감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저자 또한 중년에 무기력이라는 재앙을 만나 무려 10여년을 탕진한 뒤에야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책은 매일매일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근근히 버텨온 지난 날들을 떠올리며 무기력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깨달았다는 저자의 체험을 바탕으로 무기력에 대하여 객관적인 자료를 수집한 뒤 논리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과학적 보고서이다.
※무기력을 잘 일으키는 두 가지 성격의 신념과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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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존성 성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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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박성 성격 |
자신에 대한 신념 |
나는 무기력해 |
나의 인생은 통제 불능이 될 수 있어.
나는 실수하면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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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관 |
보잘것 없는, 약한, 무력한, 무능한 |
책임감 있는, 책임을 지는, 세심한, 유능한 |
타인에 대한 신념 |
다른 사람들이 나를 돌보아주어야만 해. |
다른 사람들은 책임을 져주지 않아. |
타인관 |
돌봐주는,지지적인,유능한 |
무책임한,조심성없는, 무능한, 스스로에게 관대한 |
가정 |
만일 내가 내 자신을 의지한다면 실패하고 말 거야.
만일 내가 다른 사람들을 의지한다면 살아갈 수 있을 거야 |
만일 내가 완벽하게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내 인생은 실패로 끝나고 말거야.
만일 내가 엄격한 규칙과 틀을 만들어놓으면 괜찮을거야. |
주요
믿음 |
내가 살아남으려면 그리고 행복해지려면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 나에게는 다른 사람의 꾸준한 지지와 격려가 필요하다. |
나는 무엇이 최상인지 잘 알고 있다.
세부 사항이 매우 중요하다.
사람이라면 더 잘해야 하고 더 열심히 해야 한다. |
행동 전략 |
의존적인 관계 형성 |
다른 사람들을 엄격하게 통제한다.
규칙 적용하기, 완벽주의, 평가하기, 통제하기
의무 부과하기, 비난하기, 처벌하기 |
저자는 첫 장 무기력의 여러 가지 모습에 대하여 설명한 뒤, 무기력해지는 원인과 사회 현상학적 원인으로 나누어 설명한 후 무기력을 탈출하기 위한 여러 가지 조언과 치료를 해 주고 있다. 저자는 인생을 사막 여행자에 비유하며 “인간의 정신 단계를 낙타·사자·어린아이의 세 단계로 설명한 니체”의 말을 인용해, 주인이 억지로 얹은 짐을 지고 대상 행렬을 따르는 무기력한 낙타에서 벗어나 “인생을 주도하고 스스로가 고용주가 되는 사자와 같은 인생”을 살 것을 권고한다. 사막에서 신기루를 보고 달려가다가 그것이 신기루임이 밝혀지면 또다시 우울하고 차가운 사막의 밤을 맞는 인생이 아닌 사막의 실체를 바로 보고 한발 한발 디뎌야 사막 횡단에 성공할 수 있다.
지도가 아닌 나침반을 따라가라.
오아시스를 만날 때마다 쉬어 가라.
모래에 갇히면 타이어에 바람을 빼라.
혼자 혹은 함께 여행하는 법을 익혀라.
캠프파이어에서 한걸음 떨어져라.
허상의 국경에서 멈추지 마라.
내 주위에도 무기력에 시달리며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는 분들이 많다. 나 역시도 때때로 찾아오는 무기력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 상태이다. 책을 읽으면서 무기력이라는 자체를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는 것을 여러 가지 사례를 통해 볼 수 있다. 앨빈 토플러는 《제 3의 물결》에서 사회가 지나치게 빠르게 변하고 이제까지와는 다른 사회가 형성되고 있다고 하며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혼란과 고통, 방향감각의 상실 등은 저물어가고 있는 제2의 물결 문명과 점차 영향력을 확대해가고 있는 제3의 물결 문명 사이에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하였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가장 큰 격변기를 맞이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자살율이라는 상징만 보더라도 사회의 혼란과 불안이 얼마나 극심한지를 피부로 느낄 수 있을 정도이다. 저자는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도 과학적인 설명과 함께 현사회를 정확히 분석하며 무기력을 치료하기 위한 회복법 또한 제안하고 있다. 무기력만이 아닌 사회에 대해 불안과 고통을 느끼고 있는 사람이라면 읽는 것만으로도 치료가 장담되는 힐링책이다. 사막이라는 끝도 없는 모래밭을 지나는 낙타의 짐을 벗고 사자처럼 포효하며 소고기 사먹는 인생을 위해서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