랑시에르의 자발적 복종에는 이런 말이 있다. '멍에를 지고 노예 상태에서 성장하고 교육받은 사람들도 전 세대가 어떤 삶을 누렸는지 알지
못하고 그들이 태어난 대로 사는 것에 만족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어떤 재산, 어떤 권리를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해선 더이상 생각도 하지 않고 출생
당시부터 주어진 삶의 조건을 자연스러운 상태로 여기게 된다.'
언젠가부터 대한민국이 '헬조선'으로 불리워지기 시작했다. 신조어가 시대상을 대변하여 탄생하는 언어라한다면 대한민국의 체감온도로서의 헬조선은
보편적 정서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헬조선에서 민란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러시아에서 귀화한 박노자 교수의
심층적인 분석이 담긴 책이 출간되었다. '주식회사 대한민국' ,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고유명사 앞에 주식회사라는 이익집단의 수식어가 첨언된
것은 그만큼 대한민국 사회가 계급화되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주식회사 대한민국'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저자가 꼽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자본의 탐욕을 견제하고 사회
약자를 보호하기는커녕 스스로 '기업국가'화되어 자본의 이익 보호에 집중하고 사회적 약자의 연대는 막아선다는 점이다.
대한민국을 하나의 주식회사에 견주어본다면 상황은 더욱 명확해진다. (주)대한민국의 주주는 누구인가? "경영 참여는 꿈도 못 꾸고,
하라는 대로 잔업과 특근을 하느라 일주일 실질노동시간이 50~60시간이나 되는, 40대 이상 되면 근골격계 질환이나 신경질환을 앓게 되는
대한민국의 '피곤한 노동자'들은 과연 '주주'인가?"(11쪽)
대기업의 대주주나 임원, 고급공무원, 혹은 땅부자 등 고액재산보유자들이야말로 (주)대한민국의 진짜 주주라 할 수 있을 터인데,
이들은 서로 겹치거나 혼맥 등 긴밀한 사회적 네트워크로 연결되기까지 해서 매우 공고하고 배타적인 집단이 되었다. 그러기에 (주)대한민국은 기업
중에서도 악질기업이 되기 쉽다. 오로지 주주들의 배당금 극대화만을 위해 분투할 뿐, 피고용자에 대해서는 그저 주주 배당금 극대화의 '재료'쯤으로
여기는 것이다.
특히 대기업-하도급중소기업으로, 정규직-비정규직으로 이원화되어 있는 경제구조를 보자. 재벌들은 아주 제한적으로만 직접 고용을 하며,
대부분은 각종 하도급, 영세업체에 고용되어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일하거나 비정규직 혹은 '알바' 신세를 면하지 못한다. 정규직-비정규직 사이의
차이는 단순히 고용 형태의 차이가 아니다. 의료, 교육 등 본인의 생존과 자녀의 성장에 가장 필요한 사회적 서비스부터 기업에 소속되어 있지
않으면 제대로 꾸려나가기 힘들다. 실업수당, 국민연금 등 각종 사회적 임금들은 그 지급 기간이 짧거나 조건이 까다롭거나 생활이 불가능한 작은
액수다. 결국 정규직 직장이 없는 이상 한국 사회에서 인간다운 삶이란 불가능에 가깝다. 이런 측면에서 비정규직 양산은 현대판 천민계급 만들기와
다름없다는 게 저자의 지적이다.
-출판사 서평중에서
일례로 교육부 고위 관직에 있던 관료의 "민중은 개돼지" 발언으로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하였던 사건을
기억해보자. 지금은 파면되었지만 교육부의 고위 관료는 거기에 한 술 더떠 신분제를 공고화 해야 한다고까지 하였다. 이러한 발언은 평소 본인이
가지고 있던 이데올로기를 잘 보여주는 것뿐만 아니라 공직자들이 대한민국을 계급제 사회라 인식하고 있음을 뜻한다. 연일 폭염으로 전기세 걱정에
누진세율이 직접적인 경제부담으로 공론화 되는 와중에 청와대는 고가의 송로버섯과 샥스핀요리로 오찬을 하여 빈축을 사고 있는 일들이 다시한번
공직자들의 마인드 자체를 의심하게 한다.
박노자 교수는 이런 우픈 대한민국의 현실에 메스를 들이대길 주저하지 않는다. 미국에 대한 종속적인 관계를 마다하지 않으며 헬조선에 살면서도
오히려 데모하는 사람들을 종북이라 핍박하는 나라, 노동자 탄압을 예사롭게 하는 나라, 촛불을 들기보다는 이민을 원하는 젊은이들, 종북
사냥에 묻혀있는 지배층의 속내인 분단의 영구화, 박정희 시대가 결국은 기적이라는 이름이 아니었다는 것과 친일청산이 이뤄지지 않는 한 대한민국의
기형적 세습화는 요지부동일 것이라는 것, 박근혜 정부에 들어서서 복지국가 최하위에 접어들었으며 노인들의 가난한 죽음은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것,
국민의 생존도 보장 못하는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지옥도나 다름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그동안 잊고 살아왔던 그 무엇, 랑시에르가 자발적 복종에서 말했듯이 헬조선에서 민란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어쩌면 이 노예의 삶에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것에 길들여져 사유의 불능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문득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이런 사회에 분노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정말 개돼지일지도 모르니까.
-본문중에서-
국가와 개인이 일체화되면 늘 벌어지게 되는 가장 무서운 일이 개인이 국가가 하는 일에 대해서 어떠한 자율적·독립적·비판적 평가조차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국가로부터 정신적으로 독립해야 비판도 가능하다.
'헬조선'의 피해자들이 이 사회를 연대해서 바꾸지 않는 이상 살길이 없다는 점을 깨닫게 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