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박준 지음 / 난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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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치열한 사유가 쏙 빠진...시인의 글은 그저 문자일뿐...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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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시

권태

보이지 않던 것들이
마음을 흔들어 놓을 때가 있다.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마음 가는 것만 신경쓰다보니

낡을 대로 낡아진 쇼파가
해질 대로 해진 이불이

눈에 들어와 마음을 아프게 한다.

너희들의 낡음으로 비로소 내 시간의 낡아짐을
너희들의 해짐으로 비로소 내 게으름을 깨닫는다.

하고 싶지 않아도
마음이 내키지 않아도

바라보았어야 했다.
나의 늙음에만 몰입하여

내 주변의 사물들도 늙어 가고 있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일찍 알았더라면
이토록 천천히 흐르는
시간들의 권태가 덜 지겨웠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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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_납치하다
#사라짐의기술
#인문

사라짐의 기술

사람들이 ˝우리 전에 만난 적 있죠?˝ 하고 말하면
아니라고 말하라

사람들이 파티에 초대하면
대답하기 전에
무슨 파티인지 잊지 말라
누군가는 너에게
자신이 한때 시를 썼다고 큰 소리로 말할 것이다
종이 접시에 기름투성이 소시지볼을 들고
그것을 기억한 다음에 대답하라

사람들이 ˝우리 만나야 한다˝고 말하면
˝왜?˝라고 말하라

그들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잊어버리기에는 너무 소중한
어떤 것을 기억하려는 것일 뿐이다
나무들, 황혼녘 사원의 종소리
그들에게 말하라, 새로운 계획이 있다고
그 일은 언제까지나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누군가 식료품 가게에서 너를 알아보면
간단히 고개를 끄덕이고 양배추가 되라
십 년 동안 소식 없던 누군가가
문 앞에 모습을 나타내면
그에게 너의 새 노래를 모두 불러주지 말라
결코 시간을 따라잡지 못할 것이다

한 장의 나뭇잎처럼 걸어다니라.
언제든 떨어질 수 있음을 기억하라.
자신의 시간을 갖고 무엇을 할 것인지 결정하라.

-나오미 쉬하브 나이

이 시를 처음 읽을 때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데 류시화의 해석을 읽고 다시 읽어보니 인문학적 성찰이 느껴지는 시이다.

류시화는 ‘당신은 전에는 이곳에 없었고, 언젠가는 이곳을 떠날 것이다. 그 사이가 당신이 여기 머무는 시간이다. 생명으로 넘치고 빛이 가득한 이 행성에.
이 시가 나에게 가슴 깊이 다가온 것은 많은 모임들과 만남 요청에 끌려다니다가 어느 가을 아침 서늘한 공기와 함께 나비가 더 이상 날아오지 않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이다. 버지니아 울프가 말했다. 자기 자신 외에는 아무도 될 필요가 없다고. 꽃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꽃에 물을 주지 않는다면 꽃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 라고 한다

살아가면서 진정으로 소중한 것을 놓치고 사는 것 가운데 가장 많은 시간을 탕진하는 부분이 ‘나‘를 위해 살지 않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만물은 나를 위해 존재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면 시간을 허투루 낭비하는 일따위는 없을 것이다. 오늘도 나를 위해 떠 있는 태양, 나를 위해 존재하는 나무와 풀들, 은빛으로 빛나며 깨어나는 실개천들은 모두 나를 위한 것이다. 그것을 소중하게 여길 줄 안다면, 복잡하고 무의미한 일상의 시간들을 모임이나 파티같은 것으로 흘려보내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 시를 자꾸 읽어보게 된다. 우린 ‘자기 자신‘ 외에는 아무 것도 될 필요가 없다. 이만큼 커다란 위로를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다.

한 장의 나뭇잎처럼 걸어다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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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_울다
#산이 깊은만큼 사랑도 깊다.

아무 정보없이 선택한 영화였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이고
여류작가 거쉬핑(Ge Shui-ping)의 2005년
노신문학상 수상작인 '함산' 이라는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나중에 정보를 찾아본 것은
생각했던 것보다 훌륭한 작품이었다고 해야겠죠 ㅎ~


시대적 배경은 1984년이고 공간적 배경은 중국의 타이항 산맥에 위치한 목가적인 마을인데 작품의 장소를 물색하기 위해 중국의 고립된 산골 마을,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마을에서 촬영했다고 합니다.
(워낙 고지대라 촬영하기 무척 힘들었다고 하네요)

 

어느 날 이 산골 마을에 벙어리 가족들이 이사를 와요.
시작장면에서 깜짝 놀란 게 .. 갓난 아이가 문밖에서 울고 있고 어린 여자아이가 갓난 애를 안고 울음을 그치려고 애쓰고 있거든요. 근데 아빠라는 사람이 애들이 우는데도 난폭하게 엄마로 보이는 사람을 강간하듯이 거칠게 성행위를 합니다. 근데 소리가 안나요 . (저는 이 장면에서 애들이 볼까봐 소리를 음소거 했습니다.. 근데 그럴 필요가 없었어요 ㅎ) 여자가 벙어리기 때문이죠. 이렇게 영화는 복선으로 시작해요.

벙어리이니까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차분하고 조용합니다. 여기서 시끄러운 건 옆집 사는 사냥꾼 총각 '한총'과 한총을 좋아하는 과부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비극적인 상황이 발생합니다. 이 과부에게 잘 보이려고 짐승의 덫을 놓았는데 그만 벙어리의 남편이 그 덫을 밟아 폭약이 터져 그 자리에서 즉사를 하죠.

한총의 덫에 사람이 죽자 마을에서 회의가 열립니다. 근데 알고보니 벙어리네 가족이 이사를 오면서 공안국에 신고를 안한거예요. 게다가 벙어리는 남편이 죽었는데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다며 보상을 거부하죠.

마을 사람들은 명망있던 한총의 아버지를 생각해서라도 한총을 살인자로 신고하길 원치 않았고 공안에 신고도 안되어 있고 부인이 보상을 바라지 않으니 한총에게 벙어리 과부와 두 딸의 끼니를 챙겨주라 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립니다.

한총의 보살핌을 받게 된 벙어리의 얼굴이 점점 생기가 돕니다. 공포에 숨이 막히는 그녀의 등을 두드려주고 악몽을 꾸는 그녀를 안아주는 한총으로 인해 그녀가 처음으로 웃습니다. 그런 그녀를 황홀하게 바라보는 한총...


처음으로 느끼는 사랑에 벙어리는 철대야를 가지고 절벽 위에 서서 철대야가 빵구나도록 두들깁니다. 그녀의 두드림.. 저는 그 장면을 보면서 사람이 몸으로도 노래를 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답니다.

둘의 사랑이 깊어가자, 둘을 바라보는 시선도 심상치 않습니다. 한총을 좋아했던 과부의 질투로 마을 사람들이 둘 사이에 흐르는 이상한 기류를 감지하게 된 거죠. 과부의 이간계로 마을 사람들은 한총을 결국 살인자로 공안국에 신고하게 됩니다.

공안경찰이 한총을 잡아가자, 벙어리는 종이에 미친듯이 글을 써내려 갑니다. 알고보니 남편은 인신매매범이었고 어린 나이에 납치되어 혀를 뽑힌 채 애 둘이나 낳고 산골 마을에 숨어 들어온 거 였어요. 그리고 실은 남편을 죽인 건 자기라고 하면서요.


벙어리 여자가 고백을 하는 동안 한총은 온몸으로 제발 하지 말라고 소리칩니다. 자기가 그냥 잡혀가겠다고요.

허나 공안경찰은 그녀를 잡아가죠. 산속 비탈진 길을 맨발로 뛰어오는 한총을 뒤로 하고 벙어리 여자는 덤덤히 떠납니다. 뒤 한 번 돌아보지 않은 채. 저는 여자가 한 번이라도 돌아보길 바라며 눈물이 흘러도 눈조차 깜박이지 못하고 그 장면을 봤는데 결국 돌아보지 않더라구요.

영화는 그저 그런 신파극으로 끝날 것 같지만 자연이 배경이 되는 순간은 벙어리 여인이 철대야를 두들기는 장면이 유일합니다. 물론 남편도 자연의 일부인 열매를 따다가 사냥꾼 덫에 걸려 죽었지만, 이 영화에서 자연이라는 의미는 벙어리 여인에게는 남편의 죽음과 반대되는 의미를 지니고 있어요.

여인에게 산은 자유를 의미하는 색다른 피사체 입니다. 자신의 불행한 삶에서 유일하게 터전이자 생명의 존재로서 산은 커다란 울타리가 되어 줍니다. 그곳에서 만난 한총은 더 큰 산이죠. 벙어리 여인은 자신에게 아낌없이 베풀어준 한총의 사랑에 보답하길 주저하질 않습니다. 물론 그녀가 정말 남편을 죽였는지 아니면 한총이 남편을 죽였는지는 관객들의 판단에 맡기고 있습니다만, 저는 그렇게 생각이 됩니다. 그녀가 한총에게 보답을 한 것이 아닐까하는....그렇게 생각이 되는 건 그녀가 산과 같은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모든 걸 포용하고 인신매매범인 남편을 용서하는 모습에 가능한 시나리오가 아닐까 나름대로 해석해 봅니다. 산이 깊은만큼 사랑도 깊은 흔적을 남겨주는 그런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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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시

너무나 외로워서

너무나 외로워서
한 시인은
사막에서 뒷걸음 쳐
걸었다고 한다.
자기 발자국을 보면
덜 외로워져서
그런데도 그 시인은
너무나 외로워져서
결국 정신병원에 갔다

너무나 외로워서
두 개의 술 잔에 술을 가득 채우고
한 개의 술 잔 보다
덜 외로워져서
홀로 대화를 한다
그런데도 너무 외로워져서
붉은 달빛 비취는
뜰앞에 서서
자기만 사랑한 나르키소스인양
나를 끌어안는다.

사막을 뒷걸음 쳐서라도
걷는 미친 시인마저 부러운 밤
뒷걸음 쳐도 새겨지지 않는
매서운 계절이 너무나 외로워서
시만 헤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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