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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천하의 경영자 - 상 - 진시황을 지배한 재상
차오성 지음, 강경이 옮김 / 바다출판사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코로나로 인해 생활전반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매번 무언가에 정신이 팔려 있다가 언젠가부터 혼자 견디는 시간에 충실해져야만 할 때가 온 것이었다. 집안에 밖에 나가지 않아도 혼자 해결할 수 있는 물건들이 하나 둘 생겨났다. 마시고 싶을 때 언제든 뽑아 마실 수 있는 커피 머신, 밖에 나가지 않아도 하고 싶을 때 언제든 뛸 수 있는 런닝머신, 스쿼트 기계, 영화관에 가지 않아도 즐길 수 있는 최신작들의 향연인 넷플릭스까지 혼자 즐길 수 있는 무한의 세계이다. 코로나가 가져다 준 변화이긴 하지만, 어쩌면 이 모든 변화들이 앞으로 인간이 살아가야할 생존법칙 같은 것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태하고 게을러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집에 들어가는 동시에 쇼파에 몸을 던진 채 핸드폰에 몰두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루가 저무는 그런 나날이 계속되었다. 어느 날 정신 차려 보니 냄비 속 개구리와 같은 모습의 나와 마주하고는 핸드폰을 던지고 책을 손에 들었다.
오랜 만에 서평을 쓰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든 『이사, 천하의 경영자』는 책권태기에 빠져 있는 내게 신선한 자극을 주었다. 매일 밤 crime 이라는 범죄 관련한 팟캐스트를 들으며 자극을 받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자극이다. 현대와 고대 간극 속에 범죄라는 공통분모로 내밀하게 들여다보는 인간군상들의 이야기가 무척이나 흥미롭게 다가왔다.
이사와 한비자는 성악설을 주장하던 순자의 문하생이다. 현대에 누구나 성공을 꿈꾸듯이 이사도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 명성과 부를 떨치고 싶은 마음이 강렬했다. 가난하고 미천한 신분이었지만 뒷간에 볼일을 보러 갔다가 우연히 쥐를 발견하였는데 자신을 무서워하는 쥐를 보고 바로 곳간엘 갔는데 곳간의 쥐는 자신을 무서워하기는커녕 떳떳하게 곡식을 먹는 모습을 본 후 바로 상경한다. 한 번을 살아도 곳간의 쥐처럼 살아야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갖고 찾아간 곳이 바로 여불위의 집이었다.
야망을 위해 자신의 아이를 밴 사랑하는 여인 조희를 이인(진나라 왕)에게 바친 여불위. 후에 조희와 여불위의 아이는 진시황이 된다. 진시황은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자 여불위를 제거하려 하고 이인이 죽자 다시 조희와 연인이 되지만 욕정을 채워주지 못하자 방대한 크기의 양물을 가진 노애를 선물로 준다. 보잘 것 없는 신분이었던 노애가 태후 조희라는 권력자의 품에 안기자 초고속 신분상승을 한다. 그런 와중에 아이도 둘이나 생기자 욕심은 더욱 커져 왕위찬탈까지 일으키게 된다. 이 과정에서 가장 입지전적 인물은 이사이다. 가난하고 낮은 신분에 있었지만 여불위의 눈에 들어 잘 나가는 듯싶었으나 노애의 문제로 인해 둘 사이에는 거리감이 생기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어린 왕이었던 영정을 보고는 자신의 전부를 걸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훗날 여불위와 노애 사이의 권력다툼에서 이사의 지혜로 영정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황제에 즉위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다. 이로서 이사의 위상은 더욱 높아져만 갔다. 1편의 이야기는 여기서 마무리 된다.
예전에는 성선설을 믿었지만, 요즘은 성악설이 더 인간본성에 가까운 것 같다. 복잡다단해지고 있는 지금의 범죄들이 성악설에 더 신빙성이 있어 보였다. 날 것의 본성은 고대에도 다르지 않다. 법이라는 규정이 생기기 이전 혼란함은 이사의 시대에도 마찬가지이다. 사람을 가장 잔혹하게 죽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자신의 야망이나 욕심을 위해서라면 가차 없이 제거하는 이야기들이 낯설지 않은 이유이다. 결국 범죄라는 것은 자본주의의 괴물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인간 본성의 악함에서 기인함을 증명한다. 소설보다 리얼한 인간 본성의 버라이어티였던 책이였다.
#미자하이야기
전국시대 때 위나라에 왕의 총애를 받는 미자하란 미소년이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전갈을 받고 다급한 김에 허락도 없이 임금만이 탈 수 있는 수레를 타고 집으로 달려갔다. 당시 위나라에는 임금의 수레를 허락 없이 타면 발꿈치가 잘리는 형벌을 받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자초지종 사정을 들은 왕은 오히려 효심이 극진하다며 그를 칭찬해 마지 않았다.
“실로 효성이 지극하도다. 어미를 위해 월형도 두려워하지 않다니 …….”
또 한 번은 미자하가 왕과 과수원을 거닐다가 탐스러운 복숭아를 발견했다. 따서 먼저 한 입 베어 문 그는 맛이 달고 상큼하여 먹다 남은 복숭아를 왕에게 건넸다. 그러자 왕은 싫은 기색없이 흔쾌히 받아먹었다.
“그대의 충성심이 대단하구나! 맛있는 복숭아를 다 먹지 않고 과인에게 남겨 주다니.”
그러나 세월이 흘러 미자하의 미색이 점점 빛을 잃자 왕의 마음도 그에게서 멀어졌다. 훗날 그가 왕에게 밉보여 처벌을 받게 되자 왕은 지난 일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저놈은 몰래 짐의 수레를 탄 적이 있고, 과인에게 먹다 남은 복숭아를 먹인 일도 있었다.”
같은 행위에 대한 평가가 이렇게 상반되는 것은 그에 대한 왕의 마음이 변했기 때문이다. 무정한 세월 앞에서는 애정도 얼마든지 증오로 바뀔 수 있다.
현재가 최선이 아닐 수도 있고 지금은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 사람의 마음과 주어진 환경이 늘 변한다. 빠르게 변화하는 흐름에 편승하려면 유연하게 깨어있는 사고를 해야한다. 꼰대들의 전형적 멘트 ‘라떼는 말이야’는 이제그만! 그때는 맞았을지라도 지금은 틀릴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