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일인자 1 - 1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1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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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나무새 저자 콜린 매킬로의 로마의 일인자방대한 서사의 첫 권을 시작하였다. 시오노 나나미나 몸젠의 로마사이후 다시 만난 로마사이다. 콜린의 가시나무새가 준 감동의 서사는 굉장한 여운을 품고 있어서 수십 년이 지난 지금에도 잊히지 않는 문학작품 중 하나이다. 문학과 역사서와의 글쓰기는 분명 다르다. 작가의 상상력이 결코 팩트가 될 수 없기에 철저한 사실고증이 필요한 것이 역사서이며 문학의 스펙트럼과는 전혀 다른 증명을 요구한다. 로마의 일인자이 책은 분명 역사서이다. 작가는 자료수집과 고증만 13년을 하였고 집필을 시작한 후 한쪽 시력까지 잃고 20년 후에야 이 책을 완성하였다. 작가의 고증은 부록으로 나온 가이드북에서 확인이 가능하다. 역사서이면서 문학적 감성이 풍부한 로마의 이야기라 할 수 있었다.

 

기원전 1세기의 로마를 만나는 여정으로 로마가 세계를 지배하게 전의 첫 발이다. 이탈리어계의 부족들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집정관이 보여주는 정치적 행보는 사뭇 지금의 정치와 다를 바가 없다. 기원전 1세기 겨우 문명이 생기기 시작하던 다른 나라와 비교되는 부분이다. 집정관이나 원로원에 들어가려면 지참금이 없으면 불가능하며 출신이 좋지 않아도 출세할 수 없었다. 외국인들에게는 관대하지만 돈이면 다 되는 세상은 그때와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출신은 비천하지만 모든 것이 완벽했던 마리우스가 카이사르와 손을 잡으며 집정관이 될 수 있었고, 출신은 귀족이었지만 가난해서 천민처럼 놀던 술라가 원로원에 들어가기 위해 벌여야 했던 살인과 모략은 현대사에서 벌어지는 잔인함과 많이 닮아있다. 카이사르의 아름다운 딸 율리아는 마리우스와 둘째 딸 율릴라는 술라와 결혼을 하면서 마리우스와 야심가 술라는 정치적으로 승승장구하지만, 그 뒷일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술라와 같은 캐릭터는 늘 끝이 안 좋은 법이니까.

 

오히려 매력적인 캐릭터 마리우스는 카이사르의 사위로서 믿음직하며 강직하고, 정치적인 식견이 뛰어나 카이사르의 오른팔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으며 그의 부인 율리아 역시 우아하고 현명하며 내조를 잘한 여인으로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반대로 술라와 율릴라는 시작은 아름다운 사랑이야기 같지만, 왠지 비극을 품고 있는 커플로 보여 진다. 술라는 방탕한 동시에 난잡했고 음모를 꾸미기 좋아했으며 잔인한 성품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술라에 비해 율릴라는 너무 어렸고 어리석었다. 율릴라는 역사에 존재하지 않지만, 술라의 부인으로 율리아로 기록되어 있는 부분에서 작가는 마리우스의 부인과 이름은 같지만 다른 사람이기에 차별을 두어야했고, 술라이게는 부인을 둘을 두었기에 카이사르와 마리우스의 연결부분을 고민하다 율리아와 동생 율릴라라는 캐릭터가 논리적 전개에 맞다 생각하여 탄생시킨 캐릭터라고 한다.

 

로마라는 문명은 대단한 것 같다. 계급제이면서도 자유롭고 사유재산을 보장해주면서도 법적으로 제한을 두고 있다. 정치에 참여하고자 하면 직급마다 지참금이 있었고 정치인은 투표로 뽑는다. 개방적인 문화이지만 고급문화라는 틀 안에서 엄숙하다. 동성애나 연애에서도 자유롭지만 상위문화라는 엄연한 절제된 문화도 존재했다. 그래서 흥미로왔다. 콜린의 로마사는 마치 그 세계를 통째로 현대로 옮겨온 것처럼 너무 생생했다. 역사서와 문학서라는 장르를 이렇게 완벽하게 구멍없이 쓸 수 있다는 데에 감탄이 나온다.

 

A great civilzation is not conqured from without until it has destroyed itself from within.    -W. Durant

위대한 문명은 외부로부터 몰락하는 것이 아니라 내부로부터 붕괴되었다.   -W. 듀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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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흑인이다, 나는 흑인으로 남을 것이다 에메 세제르 선집 4
에메 세제르.프랑수아즈 베르제 지음, 변광배.김용석 옮김 / 그린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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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는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틀 안에서 통일된 듯 보인다한국에서 마시는 스타벅스는 중국에서도 같은 분위기와 같은 맛의 커피를 마실 수 있다포르쉐와 볼보 같은 자동차는 한국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애플의 아이폰과 삼성의 갤럭시폰은 세계시장을 잠식하고 있고 최근 개봉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오징어 게임은 24개국에서 인기 1위를 달리고 있다이런 것들이 가능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물론 신자유주의라는 거대한 물결과 온라인이라는 커뮤니티 발달이 가장 큰 원인이겠지만 역사의 이면을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면 제국주의논리에 희생당한 시간들이 존재한다이처럼 세계가 빠르게 획일화 될 수 있었던 건 식민주의 시대를 지나면서 제국주의를 앞세워 지배자와 피지배자라는 터널을 지났기 때문이다우리나라도 일본이라는 제국주의자의 발에 걸려 넘어져 무려 35년이나 식민지로 살아야했다아직까지 과거청산은커녕 일본의 사과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채 살아가고 있는 중이며 보상 역시도 받지 못하였다가해자는 상처를 기억하지 못하고 잘 살아가는데 피해자들은 아픈 상처 어루만지며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는 것이 마치 우리나라와 일본을 말해주고 있는 것 같다그럼 다른 나라는 어떨까오랫동안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마르티니크에서 태어난 에메 세제르의 글을 보면서 아픈 손가락만 같았던 식민지 시대의 무거움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었다.



콜롬버스가 발견한 이래 원주민들은 대부분 학살당하였고 노예가 되었다프랑스에서 처음으로 노예무역과 노예제도를 겪었던 에메 세제르는 식민지 기숙학교를 다녔고 어린 나이에 프랑스에 유학을 갔다그는 프랑스에 유학을 간 걸 무척이나 기뻐했다고 한다반면 마르티니크 사람들과 함께 하는 걸 싫어했다해방과 가능성희망의 약속을 가슴에 품고 사는 젊은이들과는 달리 식민지 국민으로 살고 있다는 일종의 폐쇄된 감정과 협소함이 자신을 옥죄였던 시절프랑스 유학은 그야말로 자유와 성공의 길이 열려있는 기회였다반대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고민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그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답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했고 그 물음의 답은 프랑스의 공산당원이 되는 것이었다그러나프랑스 공무원들의 인종차별 앞에서 공산주의의 문제점을 알게 되고 흑인이라는 사실만을 확인시켜 줄 뿐이었다오히려 에메 세제르는 뼛속까지 프랑스인으로 살아가고 싶어 한다우리나라와는 반대로 프랑스의 문화 세례를 받으며 그는 마르티니크 사람보다는 프랑스인으로 살아가길 원하는 것 같았다게다가 마르티니크인들은 독립을 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그들은 독립을 위한 수단이나 재정을 보유하고 있지 못하기에 독립할 자격조차 없다고 했다식민지 국가들의 입장이 모두 다르듯이 에메 세제르처럼 식민지 국가가 모두 독립을 원하는 것은 아니었다이미 마르티니크는 워낙 원조에 익숙해져 있고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상태다결국 에메 세제르는 많은 비판을 받게 되지만 프랑스에 마르티니크인을 모든 면에서 프랑스인과 동등하게 해달라는 법안은 폭발적인 인기와 지지를 받는다. 2001년 노예무역과 노예제도가 폐지되면서 배상이 새로운 접점이 되는데 에메 세제르는 그 배상에 대하여 불가능한 일이라고 일축하기도 한다과거의 아픈 경험은 배상이라는 방식으로 해결되어서는 안 되며 역사이자 사실을 인정할 수 있을 뿐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이 그것에 대해 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한다그는 경제적 보상보다는 과거 희생에 대한 도덕적 접근이 필요하다 한다인권선언문이 모든 인간이 동일한 권리를 갖는다는 진보적 성과를 우리들에게 가져온 것처럼 우리 모두는 자신과 타인을 위해 권리를 요구해야 한다는 것이 에메 세제르의 주장이다우리가 역사에서 이해해야 할 것은 각 민족마다 고유한 문명·문화·역사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며 야만·전쟁·약자에 대한 강자의 억압을 주장하는 권리에 맞서 싸워야 한다근본적인 것은 휴머니즘과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존중과 발전에 대한 권리이다본질은 바로 거기에 있다.



마르티니크에서는 보호장비 없이 농약을 뿌리다 암으로 사망한 노동자가 넘쳐난다프랑스와 마르티니크의 만남은 원주민을 학살하고 아프리카 노예를 이주시켜 농장에서 강제로 일하게 하였다지금도 프랑스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마르티니크 섬의 사람들은 저임금으로 바나나농장에서 일하는데도 에메 세제르는 마르티니크 사람들의 인권이나 복지보다는 프랑스의 복지와 제도권 안에서의 평화를 주장하는 것이 상당히 센세이션하다어쩌면 같은 국가의 국민들을 위해서 인권과 권리를 위해 싸워야 하는 것이 아닌지 싶었다존중과 평화프랑스인이 되는 것이런 것들은 사실 피상적인 문제들이 아닌가그러나약간 시선을 틀어보면 프랑스의 문화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프랑스는 관용과 존중이 정신적 지주가 되는 나라이다어쩌면 그의 주장을 보면 매우 프랑스다운 똘레랑스의 나라다운 사고이다같은 식민지국가였던 일본과 한국과의 관계에서 누군가 일본을 이해해야만 하며 배상은 불가능하다라 주장한다면 아마 그는 우리나라에서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하지만 프랑스의 사상가의 자유로운 생각과 주장은 관용의 틀 안에서 식민지 시대가 남긴 것정신적인 유산부분을 더욱 크게 평가하는 것 같았다


관용이라는똘레랑스의 취지를 다시 떠올려보게 한다타인이 생각하고 행동하고 말하는 것에 대한 존중타인의 정치적 ·종교적 의견의 자유를 인정해주는 권리에 대해 관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우리 사회는 어떠한가자신의 생각과 성향이념이 다르면 이단으로 단정해 버리고 사이비로 몰아 공격한다이런 극단적인 편견을 심리학에서는 자폐 스펙트럼이라 하는데 작금의 한국사회는 집단자폐 스펙트럼 환자처럼 군다. “나는 흑인이다나는 흑인으로 남을 것이다.”라는 문장에는 수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프랑스령 식민지 국가이면서 흑인으로 살아남아야 했던 사람의 일생의 문장은 그렇게 많은 생각거리를 남긴다흑인 인종주의에 빠지지 않기 위해 프랑스 공산당원이 되었고 끊임없이 는 누구인가에 답을 해야만 했던 주인공일본의 식민국가로 살아왔지만 일본을 무척이나 싫어하며 일본제품불매운동을 하고 있는 중인 작금의 우리나라가 되새겨 봐야 할 문제들정말 필요한 건 존중받기 위해 존중하는 에메 세제르의 똘레랑스 정신이 무엇보다 필요한 시기라 생각한다우린 한국인이고 한국인으로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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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구들 - 여성은 왜 원하는가
캐럴라인 냅 지음, 정지인 옮김 / 북하우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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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쁘고 날씬하고 게다가 지적이고 싶은 욕구가 있다. 며칠 전 드라마 <미스티>를 정주행하면서 앵커 고혜란의 역을 한 김남주의 모습이 딱 현대에 어울리는 여성- 욕구와 욕망 모든 것을 다 아우르는- 캐릭터란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 여성들이 가장 추구하려자 하는 욕구는 아마도 날씬하고자 하는, 이뻐지고자 하는 욕망이 아닐까한다. 다이어트가 열풍이고 살이 찐 사람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빛에는 혐오감마저 느껴진다. 유명연예인들이 펼쳐친 다이어트 비법과 살빼는 방법과 다이어트 식품들은 과열양상을 띨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다. 매일 아침 저울에 올라설 때 키로수의 변화가 하루의 기분을 좌우하고 큰 엉덩이와 나온 배를 감추기 위해 무진장 노력하는 하루를 보면 외모에 나름의 스트레스를 받고 사는 것 같다.

 

『욕구들』의 책을 읽다보니 이상하게 밥이 먹히질 않았다. 캐럴라인 냅 저자는 오랫동안 거식증을 알았고 20년 가까이 알콜의존증에 시달렸다. 그래서일까. 먹는 것에 대한 거부반응과 살이 찐 사람들에 대한 공포에 가까운 혐오가 한없이 불편하게 여겨졌다. 게다가 페미니즘과 여성성에 대한 거부감으로 스스로를 옥죄는 느낌이 안타까우면서도 공감대 형성이 잘 되지 않았다. 사회적 영향과 문화적 간극을 결국에는 극복하지 못한 채 책을 덮어야만 했다. 성적인 욕구와 페미니즘과의 관계, 사회적 시선에서의 여성성이 가지는 성적인 집착들이 다소 공감하기가 어려운지라 마지막까지 읽어내진 못했다. 42살의 젊은 나이에 폐암으로 사망한 저자의 예민함과 날카로움, 생을 관통하였던 의존과 강박증에서 벗어날 방법을 결국은 찾지 못하였던 걸까. 한 가지 흥미로웠던 건 음식을 거부하는 걸 무척 객관화하고 싶어하고 즐긴다는 사실이었다. 뼈만 앙상하게 남은 자신의 몸을 보며 희열을 느낄 때, 정녕 스스로의 관습과 강요되고 학습된 억압된 것들을 풀어내는 자유를 작가는 무척이나 사랑했던 것 같다. 늘 지금보다 멋진 삶을 꿈꾸고 이쁘고 날씬하고 지적인 여성이 되고 싶지만, 먹는 즐거움을 포기하며 사는 삶은 생각해 본적이 없기에 저자와 나와의 거리가 멀 수밖에 없었던 책이라는 거.  

 

 

욕구는 세계에 참여하고자 하는, 삶에서 풍요의 감각과 가능성을 느끼고자 하는, 쾌락을 경험하고자 하는 더욱 싶은 수위의 소망에 관한 것이다.-p18 

자유는 권력과 같지 않다-p77

 '무엇을 먹을 것인가?‘라는 구체적 질문은 더욱 커다랗고 벅찬 질문들-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누구와 자고,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원할 것인가?-을 대신하는 것이었다. -p94

하나의 불안(체중)을 여러 불안(남자, 가족, 일, 허기 자체)을 맡아주는 장소로 삼고, 극도로 야위고 수척해지는 것을 고통스럽고 혼란스러운 감정들을 피해가는 일종의 지름길이자 우회로로 삼으며, 너무나 다양하고 광범위한 모든 허기들을 한데 모아 그 핵심을, 처리해야 할 한 가지 욕구를, 단 하나의 욕구를 추려내는 전략이었다.

정확히 그것이 굶기가 이뤄내는 일이며, 무엇이 되었든 강박이 이뤄내는 일이다. -p99 

영혼보다는 몸에 관해 걱정하는 것이 더 쉽고, 문화가 여자들에게 제시하는 좁은 정체성의 틈새에 자신을 끼워 맞추는 것이 처음부터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내는 것보다 쉬우며, 사회적으로 승인된 욕망의 제단에서 예배하는 것이 모든 열정의 표현과 모든 욕구의 만족까지 고려해 자신만의 제단을 건설하는 것보다 쉽다. 다시 말해서, 음식과 쇼핑과 외모 같은 것에 엄청나게 골몰하는 것은 허기에 관한 결정을 내리는 일-이라기보다는 허기로부터 주의를 분산시키려는 어마어마한 노력이다.-p109 

더 날씬해지고, 더 예뻐지고, 옷을 더 잘 입고자 하는, 그러니까 다른 존재가 되려는 이 충동은 무엇일까?-p109 

그것은 안정을 심히 뒤흔드는 일이자 정체성의 끈을 서서히 풀어버리는 일이었다. 정박지에 매어둔 어두운 바다로 둥둥 흘러가고 있는 걸 지켜보는 것 같달까. -p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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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행복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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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행복 #완행리뷰대회 #행복과불행의경계선


『28』이나 『7년의 밤』과 소설의 분위기가 비슷했다. 배경이 7년의 밤에 등장하던 외딴 시골집, 음침하며 고구마 수십 개는 먹은 것같은 답답함과 숨 죄어옴이. 읽다보니 어딘가 익숙한 스토리다. 아니 여전히 일어나고 있는 우리 일상의 사건일지도 모르는. 마치 현실이라는 세상을 데칼코마니로 찍어낸 것처럼, 리얼함의 행간이 잔인함을 뿜으며 앞으로 전진만 한다. 어디선가 보았던 언젠가는 들었던, 언제부터 이런 이야기들이 익숙해졌던 것일까?

 

『완전한 행복』의 주제는 단연코 ‘행복’이다. 행복이란 무엇일까? 행복은 최고의 선이며 궁극적인 목표라는 말에 동의하며 산다. 누구나 행복을 최고의 목표로 살아가고 있는 중이고 그렇게 찾아오는 행복에 고단한 삶을 애써 위로 받으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살아보니 흔히들 하던 말처럼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었고, 더군다나 행복은 외모순이 아니었으며, 또한 돈에서 오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또는 누구는 성적을 조작하고 성형에 목숨을 걸며, 돈을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하고 산다. 여기서 보듯 행복은 쟁취할 수 있는 무엇이 아니다. 행복이 목표가 아니라 수단이 될 때 불행은 시작된다. 더군다나 완전한 행복이란, 지극히 주관적이며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이라는 점에서 행복과 불행의 경계선은 어디쯤일까 하는 의문이 생기기도 한다. 우연히 보았던 만화삽화가 갑자기 떠올랐는데 사는 게 너무 고통스럽고 불행했던 10층 여자가 투신하면서 층층을 바라보며 자살을 후회하게 된다는 이야기였다. 완벽한 사랑을 받고 산다는 9층의 아내는 매일 맞고 살았고 공부를 잘한다는 8층의 아이는 일진이었고, 잘생긴 8층의 변호사 남자는 게이였다. 삶은 이처럼 어이없이 행복과 불행의 경계를 오가며 조롱한다. 타인의 삶은 멀리서 보면 행복해보이지만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면 하나같이 고만고만한 불행이 움트고 있다.

 

소설에도 완벽한 남자가 등장한다. 아니 완벽해 보이는 남자가 있다. 주인공 유나가 완전한 행복을 위해 간택했던 남자의 이름은 차은호. 직업과 성격 모든 것이 완벽할 것 같았던 남자. 그녀의 완전한 행복에 잘 어울리는 인물이었고 말도 잘 듣는 아이 같았다. 그녀에게 존재하는 완벽한 딸 지유와 함께 ‘완전한 행복’을 완성해 줄 것만 같은 남자. 차은호에게도 불완전한 면이 있긴 했다. 천식을 앓고 있던 아들 차노아. 노아는 완전한 행복에 어울리지 않았다. 그렇기에 삶에서 빼야만 했다. 행복은 뺄셈에서 완성되어 가는 것이라 믿는 여자이므로.

 

“행복한 순간을 하나씩 더해 가면,

그 인생은 결국 행복한 거 아닌가.”

“아니, 행복은 덧셈이 아니야.”

그녀는 베란다 유리문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마치 먼 지평선을 넘어다보는 듯 한 시선이었다. 실제로 보이는 건 유리문에 반사된 실내풍경뿐일 텐데.

“행복은 뺄셈이야. 완전해질 때까지, 불행의 가능성을 없애가는 거.”

 

아들 노아가 죽고 나서야 유나에게 의구심을 품게 되는 은호. 유나의 커피를 마신 후 운전하다 졸음운전으로 사망한 동거남, 유나를 회사에서 쫓아내려 했던 장인어른의 마지막 찾잔, 이혼소송 이후 실종 된 전남편, 노아의 죽음 전 마셨던 모과차까지 유나외 완벽한 왕국은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한다. 작은 균열은 서서히 깨어지더니 실체까지 다가가게 되자, 서서히 공포에 잠식되어가던 은호. 이제까지 자신의 행복을 위협하는 존재들이나 등을 돌린 이들은 가차 없이 제거해왔던 일들이 드러나면서 유나의 마지막 화살이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지만 미친이를 상대할 수 있는 정상인은 없었다.

 

아름다웠던 유나, 긴 생머리에 솜털 같은 웃음을 짓던 그녀. 그 왕국에서 지배당하며 살아갈 때 남자 은호는 행복했다고 했다. 한때 사랑했던 여자의 광기를 보면서 문득 투르게네프의 첫사랑 유언이 떠올랐다.

‘내 아들아, 여자의 사랑을 두려워해라. 그 행복, 그 독을 두려워해라…….’

 

행복과 불행의 그네를 아슬아슬하게 타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는 소설속의 그녀. 그녀는 우리 사회가 맹목적으로 추구하고 싶어 하는 행복의 집합체나 다름없었다. 러시아 유학파이며 외모 역시 완벽하고 부유하기까지 했다. 그 행복의 재단을 쌓아올리기 위한 타인은 언제나 희생양이다. 갑 과 을, 또는 교주와 신도라는 기울임의 관계가 곧 유나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다. 그녀의 세계에서 그녀는 곧 신이었고 하느님이었고 창조주였다. 그러나, 인간관계는 수직이 아니라 수평이다. 기울어진 관계가 자기자리를 찾아가는 관성의 법칙처럼 수평을 향해 갈 때문이 행복의 문이 열린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던 불행으로 그녀의 왕국은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한다.

 

우리는 누구나 행복을 추구한다. 그것은 인간의 본능이며 삶의 목적이 되기도 한다. 다만 늘 기억해야 한다. 우리에겐 행복할 권리와 타인의 행복에 대한 책임이 함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이 이야기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이렇게 기울어진 뒤틀린 관계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온다. 아내가 남편을, 자식이 부모를, 엄마가 딸을, 남편이 아내를. 이처럼 불행한 관계 속에서 행복하기가 더 힘들어지고 있다. 행복과 불행 그 경계선은 어디쯤일까. 기울어진 관계가 수평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일까 다시한번 돌아보게 된다. 나와 사랑하는 이들과의 관계는 안녕한가. 수직이 아닌 수평의 관계, 그것이 우리가 행복한 관계를 위한 최소한의 예의일런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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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천하의 경영자 - 상 - 진시황을 지배한 재상
차오성 지음, 강경이 옮김 / 바다출판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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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인해 생활전반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매번 무언가에 정신이 팔려 있다가 언젠가부터 혼자 견디는 시간에 충실해져야만 할 때가 온 것이었다. 집안에 밖에 나가지 않아도 혼자 해결할 수 있는 물건들이 하나 둘 생겨났다. 마시고 싶을 때 언제든 뽑아 마실 수 있는 커피 머신, 밖에 나가지 않아도 하고 싶을 때 언제든 뛸 수 있는 런닝머신, 스쿼트 기계, 영화관에 가지 않아도 즐길 수 있는 최신작들의 향연인 넷플릭스까지 혼자 즐길 수 있는 무한의 세계이다. 코로나가 가져다 준 변화이긴 하지만, 어쩌면 이 모든 변화들이 앞으로 인간이 살아가야할 생존법칙 같은 것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태하고 게을러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집에 들어가는 동시에 쇼파에 몸을 던진 채 핸드폰에 몰두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루가 저무는 그런 나날이 계속되었다. 어느 날 정신 차려 보니 냄비 속 개구리와 같은 모습의 나와 마주하고는 핸드폰을 던지고 책을 손에 들었다. 

 

오랜 만에 서평을 쓰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든 『이사, 천하의 경영자』는 책권태기에 빠져 있는 내게 신선한 자극을 주었다. 매일 밤 crime 이라는 범죄 관련한 팟캐스트를 들으며 자극을 받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자극이다. 현대와 고대 간극 속에 범죄라는 공통분모로 내밀하게 들여다보는 인간군상들의 이야기가 무척이나 흥미롭게 다가왔다.

 

이사와 한비자는 성악설을 주장하던 순자의 문하생이다. 현대에 누구나 성공을 꿈꾸듯이 이사도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 명성과 부를 떨치고 싶은 마음이 강렬했다. 가난하고 미천한 신분이었지만 뒷간에 볼일을 보러 갔다가 우연히 쥐를 발견하였는데 자신을 무서워하는 쥐를 보고 바로 곳간엘 갔는데 곳간의 쥐는 자신을 무서워하기는커녕 떳떳하게 곡식을 먹는 모습을 본 후 바로 상경한다. 한 번을 살아도 곳간의 쥐처럼 살아야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갖고 찾아간 곳이 바로 여불위의 집이었다.

 

야망을 위해 자신의 아이를 밴 사랑하는 여인 조희를 이인(진나라 왕)에게 바친 여불위. 후에 조희와 여불위의 아이는 진시황이 된다. 진시황은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자 여불위를 제거하려 하고 이인이 죽자 다시 조희와 연인이 되지만 욕정을 채워주지 못하자 방대한 크기의 양물을 가진 노애를 선물로 준다. 보잘 것 없는 신분이었던 노애가 태후 조희라는 권력자의 품에 안기자 초고속 신분상승을 한다. 그런 와중에 아이도 둘이나 생기자 욕심은 더욱 커져 왕위찬탈까지 일으키게 된다. 이 과정에서 가장 입지전적 인물은 이사이다. 가난하고 낮은 신분에 있었지만 여불위의 눈에 들어 잘 나가는 듯싶었으나 노애의 문제로 인해 둘 사이에는 거리감이 생기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어린 왕이었던 영정을 보고는 자신의 전부를 걸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훗날 여불위와 노애 사이의 권력다툼에서 이사의 지혜로 영정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황제에 즉위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다. 이로서 이사의 위상은 더욱 높아져만 갔다. 1편의 이야기는 여기서 마무리 된다. 

예전에는 성선설을 믿었지만, 요즘은 성악설이 더 인간본성에 가까운 것 같다. 복잡다단해지고 있는 지금의 범죄들이 성악설에 더 신빙성이 있어 보였다. 날 것의 본성은 고대에도 다르지 않다. 법이라는 규정이 생기기 이전 혼란함은 이사의 시대에도 마찬가지이다. 사람을 가장 잔혹하게 죽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자신의 야망이나 욕심을 위해서라면 가차 없이 제거하는 이야기들이 낯설지 않은 이유이다. 결국 범죄라는 것은 자본주의의 괴물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인간 본성의 악함에서 기인함을 증명한다. 소설보다 리얼한 인간 본성의 버라이어티였던 책이였다.

 

 

#미자하이야기

전국시대 때 위나라에 왕의 총애를 받는 미자하란 미소년이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전갈을 받고 다급한 김에 허락도 없이 임금만이 탈 수 있는 수레를 타고 집으로 달려갔다. 당시 위나라에는 임금의 수레를 허락 없이 타면 발꿈치가 잘리는 형벌을 받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자초지종 사정을 들은 왕은 오히려 효심이 극진하다며 그를 칭찬해 마지 않았다.  
 
“실로 효성이 지극하도다. 어미를 위해 월형도 두려워하지 않다니 …….” 
 
또 한 번은 미자하가 왕과 과수원을 거닐다가 탐스러운 복숭아를 발견했다. 따서 먼저 한 입 베어 문 그는 맛이 달고 상큼하여 먹다 남은 복숭아를 왕에게 건넸다. 그러자 왕은 싫은 기색없이 흔쾌히 받아먹었다. 
 
“그대의 충성심이 대단하구나! 맛있는 복숭아를 다 먹지 않고 과인에게 남겨 주다니.” 
 
그러나 세월이 흘러 미자하의 미색이 점점 빛을 잃자 왕의 마음도 그에게서 멀어졌다. 훗날 그가 왕에게 밉보여 처벌을 받게 되자 왕은 지난 일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저놈은 몰래 짐의 수레를 탄 적이 있고, 과인에게 먹다 남은 복숭아를 먹인 일도 있었다.”
같은 행위에 대한 평가가 이렇게 상반되는 것은 그에 대한 왕의 마음이 변했기 때문이다. 무정한 세월 앞에서는 애정도 얼마든지 증오로 바뀔 수 있다. 
 
현재가 최선이 아닐 수도 있고 지금은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 사람의 마음과 주어진 환경이 늘 변한다. 빠르게 변화하는 흐름에 편승하려면 유연하게 깨어있는 사고를 해야한다. 꼰대들의 전형적 멘트 ‘라떼는 말이야’는 이제그만! 그때는 맞았을지라도 지금은 틀릴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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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혜윰 2021-07-15 23: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명언이에요. 그런거 보면 홍상수 감독은 진짜 천재인듯 해요^^

드림모노로그 2021-08-24 12:21   좋아요 0 | URL
그렇지요 ㅎ 늘 공감하는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