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짐승
#인문
#사랑은 세계의 충돌이다.
대부분의 젊은 사람들이 그렇듯 나도 젊었을 때는 젊은 나이에 죽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모니카 마론의 [슬픈 짐승]은 위 첫 구절로 시작된다.
혼자 사는 백 살의 노인이 지구상에 아직 살아있다는 증거는 오로지 ‘사랑’을 기억한다는 행위에 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찾아온 통일 후, 자유로운 영혼이었던 서독 남자를 만난다. 동독 여자나 서독 남자 둘 다 모두
평범하고 행복한 보통의 가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사랑에 빠진 여자는 서독 남자를 위해 모든 것을 지운다.
가정도 아이들도 버린 채 서독 남자 주위를 맴돈다.
그녀는 오래 전에 떠났던 남자가 남겨 둔 안경이라는 이유로
그 남자와 같은 것을 본다는 착각을 하며 시력을 잃어가고
남자와 함께 뒹글었던 침대시트에 남아있는 체취를 기억하기 위해 수십년을 빨지 않고 시시때때로 냄새를 맡는다.
게다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것은 그 남자를 만나게 해주기 위한 것이라 한다. 사랑은 그렇게 여자의 인생에서 모든 것을 휩쓸어 갔다.
그럼에도 여자는 사랑으로 인한 자신의 불행을 공룡이 멸종하였기에 영원히 아름답게 기억될 것이며,
트리스탄이 사랑을 아름답게 하기 위해서 장애물을 하나씩 설치했던 것이라고 , 오르페우스가 사실은 에우리디케를 구할 마음이 전혀 없었기에 일부러 뒤를 돌아보는 것으로 , 로미오와 줄리엣은 파멸했기에 불멸의 사랑으로 남은 것이라며 자신의 사랑 또한 그러하리라 생각한다.
동독과 서독의 문화적 차이를 이 책에서 볼 수 있는데 동독이라는 폐쇄적 환경에서 자란 여성과 자유로운 환경에서 자유연애를 하였던 서독남자의 사랑법에는 분명 많은 차이가 있다. 전혀 다른 세계의 충돌이었던 그녀의 사랑은 슬프면서도 또 다른 세계를 열고 있던 것이다.
동독 남자가 떠난 후에도 그대로
그 세계를 간직하고 사는 것만이 살아가는 이유인 그녀.
누구라도 이런 사랑은 거부하고 싶을지도 모르겠지만
누군가 내게 전부였던 사랑이 있었다는 것 그 용기 하나만으로
그녀는 세상에서 진정한 승리자가 아닐까.
사랑은 떠나도 그의 세계는 남아
백세가 넘는 그녀의 세상을
풍요롭고 아름답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사랑의 슬픔으로 가슴 부여잡고
화장실 변기를 붙잡고 울어본 적이 없는 사람은
절대 모를 사랑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누가 그녀의 사랑을 불쌍하다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