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에 자발적으로 찾아가는 서구의 무슬림 청년들을 보자. 이들이 보기에 ‘보호’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타락시키는 것의 좋은 증거가 바로 자신들이다. 서구 사회에서 무슬림들은 최소 수준의 복지로 반란을 일으키지 않을 정도로 살아간다. 그들에게는 불법이든 합법이든 술과 마약, 섹스 그리고 서구의 문화상품들이 제공되어, 그들의 영혼을 타락시킨다. ‘자유’라는 이름하에 욕망의 노예가 되는 영혼의 타락이야말로 서구가 자신들을 통치하는 방식이다. 이 타락에서 벗어나는 것만이 그들이 구원될 유일한 방법이며, 이 구원을 거부하는 자들은 마땅히 정화의 불로 태워야 한다. 쾌락에 진 ‘나약한 이들’이기 때문이다.

똑같은 형태가 동성애자들을 향한 극우 개신교의 논리다. 그들은 동성애가 치유될 수 있다고 말한다. 동성애가 치유되지 않는 것은 섹스의 쾌락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지금 사회는 쾌락과 소비를 통해 이들을 타락시키고 있다. 충분히 치유할 수 있는데 ‘자유’와 ‘권리’라는 이름으로 이들의 타락을 방치하고 조장한다. 그렇기에 이들, 치유되기를 거부하는 자들은 ‘정화’되어야 하며 이들을 방치하는 이 ‘타락한 사회’는 리셋되어야 한다. 이들이 보기에 동성애자들은 죄 지은 자들인데 쾌락에 빠진 것보다 그 쾌락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즉 ‘나약한 이들’이기에 죄인이다.

물론 정반대편에서 문제가 되는 사람들도 있다. 바로 기득권층이다. 사회적 약자들이 ‘의존’으로 먹고 산다면 이들 기득권층은 부정과 부패로 먹고 산다. 이들 역시 제 능력과 노력으로 먹고사는 존재가 아니다. 사회 곳곳에 만연해 있는 그들만을 위한 특권을 통해 노력하는 자들의 피를 빨아먹으며 호의호식하는 존재다.


이들은 ‘나약한 이들’만큼이나 정화되어야 하는 반-도덕적 집단이다.

그렇기에 혁파되어야 하는 것은 한편에서는 나약한 이들을 나약한 상태로 내버려두고 다른 한편에서는 기득권층의 부정부패를 방관하고 제도화하는 이 사회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왜 전 지구적으로 자국의 기득권 세력에 대한 비토와 이주노동자나 소수인종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격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전자가 가진 진보적인 측면과 후자가 가진 반동적인 측면이 한 사람에게서 공존하는 것이다. 이것은 이들의 ‘분노’가 더 이상 전통적인 보수와 진보, 우파와 좌파의 논리로는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들의 분노는 ‘진보적/반동적’이다.

 

-알라딘 eBook (엄기호) 중에서

(ebook으로 공유하기가 이렇게 쉬울 줄은 몰랐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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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을 부탁해 - 온전한 자존감과 감정을 위한 일상의 심리학
박진영 지음 / 시공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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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면 사소한 감정으로 인해 나를 괴롭히는 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나이가 드니 가장 힘든게 감정 컨트롤이다. 그럴때마다 당혹감이 드는 이유는 무뎌질 것만 같았던 감정이 나이들수록 더욱 강렬하게 이성을 통째로 삼겨버릴 것 같은 두려움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그런 두려움이 깊어지다보면 다시 자괴감으로 이어져 '나'라는 늪에 빠져 헤어나오질 못하게 하는데 그럴 때 찾아오는 것이 바로 우울증이라는 손님이다. 우울증은 세상이라는 세계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사막과 같은 황량함에 덩그러니 놓여진 자신을 스스로 자해하며 살아가게 한다. 이렇게 끊임없는 자기 학대와 감정의 샘물로 삶을 겨우 지탱해 나가는 사람들이 내 주위에도 생각보다 많다.

삶이 유난히 피곤하다고 느껴진다면 당신이 사소한 것들에 일일이 감정을 소모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p21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 《눈치 보는 나, 착각하는 너》, 《심리학 일주일》에 이은 네 번째 심리학 책이다. 전작들도 좋았지만 이번 책 <내마음을 부탁해>는 읽으면서 더 많은 위로를 받은 책이다.

저자는 스스로를 괴롭히는 행위들에 대한 심리적 기제들을 상세하게 설명해주며 자신에게 그렇게 가혹하게 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방법들을 알려준다. 우선 사소하지만 짜증 나는 일이 많이 생길 때는 감정 전선을 끊어버리거나 스위치를 내리는 상상을 함으로써 멘탈 이미징을 하라고 조언한다.

삶에서 일어나는 실제로 엄청난 위협을 주는 모든 일들이 실제로는 아무 것도 아닌, 지나가는 먹구름이나 금방 잔잔해 질 얕은 파도이며, 흩어질 연기 따위라며 위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 감정이라는 높은 담장을 쌓고 현실을 확대해석하거나 극단적인 생각에 빠져 현실을 제대로 못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넓고 넓은 우주, 우주에 비하면 훨씬 작지만 여전히 큰 지구에서 나의 문제는 얼마나 클까? 이런 생각은 우리가 우리의 작은 우물을 벗어나 문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데 도움을 준다. -p27

행복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인생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당신의 마음이 앓는 소리를 제일 잘 알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당신 자신밖에 없다. -p157

관계의 어려움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힘겹다. 그런 관계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감정이다. 우리는 감정이라는 세계에 스스로를 가두어놓고 타인을 판단하여 관계를 스스로 틀어지게 만들기도 한다. 저자는 건강을 체크하듯이 감정을 수시로 체크하여 감정으로 인해 휩쓸리지 않도록 자신의 마음을 점검할 수 있도록 하였다. 마음이 복잡하거나 힘겨울때마나 한 챕터씩 읽곤 하였는데 우울하거나 자괴감에 빠질 때는 만병통치약마냥 금새 기분 전환이 되는 나 자신을 보며 책에게 고맙다라는 생각이 들게 한 책이다.

인생은 고통일까요? 인생이 전반적으로 어떠한 것인지 잘 알지는 못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때때로 인생엔 고통이 찾아온다는 사실입니다. 고통은 뜻밖의 나쁜 일이나 실패 등 외적 사건을 통해서도 찾아오지만 많은 경우 자기 자신 때문에 찾아옵니다. -p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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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화요란
오카베 에츠 지음, 최나연 옮김 / ㈜소미미디어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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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잔화요란 -결혼에 관한 세 가지 시선 


여성을 꽃에 비유한다면 어떤 시기를 의미하는 걸까. 잔화요란은 꽃이 떨어지기 전의 가장 아름답게 만개한 모습의 꽃을 말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여성에게는 어떤 시기가 가장 아름다운 시기 일까?  나의 삶에서도 꽃이 활짝 피던 시절이 있었던가를 떠올려보니 결혼하기 전이 그래도 가장 빛나던 날들이 아니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읽기 시작했는데 안그래도 책에는 결혼 전후의 여성 세명이 등장하여 결혼에 대한 세 가지 시선을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이 책은 세 명의  전혀 다른 결혼관을 통해서 현대여성들의 파편적이면서 혼란스러운 정체성을 그린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른바 '비혼의 시대' 결혼보다는 일을 선택하고 있는 여성이 많아지고 있는 추세에서 소설에 등장하는 세 여인에게도 결혼에 대한 행복의 환상이 느껴지기보다는 결혼이라는 제도가 주는 현실적인 문제들에 대한 고민이 내용의 주를 이룬다. 이제 막 결혼을 하는 예비신부 리카를 기준으로 하여 리카를 도와 결혼준비를 하는 두 여성 이즈미와 마키는 서예교실에서 만난 동료이다. 결혼과 동시에 회사를 그만두는 리카는 예비신부치고는 차분하고 조용하며 사랑해서 결혼한다기보다는 현실도피적인 느낌이 든다. 그것은 그녀에게는 말 못할 비밀이 있었는데 상사 카와사기와 내연관계라는 것이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카와사기의 아내 미츠코는 조카나 다름없는 케이치와 중신을 서고 리카와 케이치는 첫 만남이후 결혼까지 일사천리로 결혼을 진행하게 된 상태이다. 리카는 카와사기와의 불륜관계를 통해 관계의 불안을 느껴왔고 케이치를 만나면서  결혼이라는 안정된 피난처를 택하게 된 것이다. 주체적이지도 독립적이진 못하지만 사회에서 바라는 순종적인 여성상에 가장 가까운 여성이 바로 리카가 아닐까 한다. 그래서인지 리카는 케이치가 결혼전 서예교실 동료 마키와 섹스 파트너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도 문제삼지 않는다. 그녀에게는 결혼이라는 테두리가 하나의 보호막으로 필요했던 것이다. 반대로 마키는 전형적인 여성과는 반대편에 있는 개성적인 인물이다. 그녀는 결혼이라는 구속보다 섹스파트너로서의 상대를 선택하는 것을 스스로 자랑스러워 하며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여성의 모습이다. 시들지 않는 꽃이 되지 읺기위해 필사적으로 성형시술을 하며 피부관리를 하며 사회에 도태되지 않으려는 커리어우먼이다. 늘 당당한 모습을 보이지만 케이치가 결혼하고 나서 자신을 한 번도 찾지 않자 눈물을 보이고마는 어쩔 수 없이 고독하고 외로운 현대 여성이다. 두 명의 여성과는 달리 결혼한 여성인 이즈미는 결혼생활의 고단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가장 평범하고 가장 무난하게 연애결혼을 해서 만났지만, 불행한 결혼생활로 인해 이혼을 고민하고 있는 여성이다. 아주 작은 균열로 시작된 결혼생활은 이미 별거상태이지만 이혼을 결심하지 못하는 건 이혼으로 인한 현실문제를 감당할 정도로 마음이 모질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즈미 앞에 평소 금술이 좋았던 부모님들이 치매에 걸리면서 변하는 모습을 보며 망설이지 않고 이혼을 결심한다. 세 명의 세가지 시선의 결혼관, 자신의 아름다운 시절에 꽃피우는 모습은 자신에게 달려있다. 이제 곧 지려는 꽃은 자신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한다. 어쩌면 잔화요란이 의미하는 것은 자신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른채 져버린 꽃의 슬픔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세 여성은 그렇게 슬픈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 미츠코와 미우 

세 명의 여성 외에도 등장하는 두 명의 모녀, 리카와 불륜 관계에 있던 카와사기 상무의 아내 미츠코와 미우에게서 작가의 냉소적인 시각은 더욱 도드라진다. 배우처럼 잘생긴 아버지와 여배우보다 이쁘고 가정일에는 완벽함을 보이는 엄마 아래서 자란 미우에게 결혼은 아름답게만 여겨졌을 것이다. 하지만 완벽하다 못해 히스테릭한 엄마가 아버지의 불륜을 알아채고 흥신소에 부탁한 자료를 우연히 엄마의 명품백에서 발견하게 되자 충격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이후 리카의 이름으로 삼류영화에 출연하며 소심한 복수를 하지만 일을 하게 되면서 조금씩 남자와 여자와의 관계의 어긋남을 경험하게 된다. 그 관계의 어긋남이란 사랑과 결혼이라는 간극의 경험이라해도 무방할 것 같다. 그래서인지 리카의 임신을 축하하기 위한 파티에서 케이치만 빼고 다 아는 아버지 카와사기와 리카의 불륜 자료를 어머니 미츠코 앞에서 태워버리다 큰 사고를 당하고 만다. 

#류코

세 명의 여성과 두 모녀, 이외에 등장하는 또 한 여성이 있다. 류코는 세 명이 다니는 서예교실의 선생이지만, 가장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여성이며 스스로 비혼을 자칭한 여성이다. 사랑에 안주하지도 결혼에 안착하려 하지도 않았던 그녀는 사랑과 결혼보다는 일을 선택한 여성이다. 자신을 사랑했던 남자를 떠나 유학길에 오른 그녀를 부모님은 용서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녀는 자신의 선택에 후회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이 사랑하지 못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믿음이란 내 안의 의심을 뿌리치는 일일 거예요. 그런데 의심을 나를 지키는 갑옷이죠. 그러니 갑옷을 벗고 무엇을 믿는다는 건 대단히 무방비한 일이에요. 작은 일에도 극심한 상처를 입고 마니까요. 그래도 상대를 믿는 것, 피투성이가 되더라도 몸부림을 치면서도 그를 믿는 것, 그게 사랑이 아닐까 난 생각해요.'

타인에 대한 의심을 거두어 본적이 없기 때문에 믿음을 가져 본 적이 없다고. 자신에게 있어서 사랑과 결혼은 그래서 존재하지 않는다고.

사랑이 한 없이 가벼운 것으로 치부되어 살아가는 현대여성들의 결혼에 대한 시선은 안쓰럽다. 꽃은 그냥 피는 것이 아니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위해 소쩍새가 그렇게 몰래 울어야 하고 천둥이 치는 하늘에서 먹구름은 그렇게 또 울어야 꽃은 만개할 수 있는 것이다. 그만큼 인내와 정성이 깃들여져야 꽃은 아름답게 피어오를 수 있다.아름다운 벚꽃이 만개하기 전에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듯이 사랑 역시 그러하지 않을까. 51세 늦깍이 작가가 보여주는 잔화요란은 그래서 더 처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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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연습 - 김승옥 대표중단편선 문학동네 한국문학 전집 1
김승옥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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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옥은 ‘60년대 작가라는 수식어가 붙어있는 작가다. 1964,서울로 현대문학을 공부했던 나로서는 무척 익숙하기도 하면서 현대문학의 굵은 획을 그었던 거장의 소설을 읽는 감회는 감격 그 자체였다. 김승옥 전집이 출간되자마자 구매해 놓고는 시간의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고만 있다가 다시 꺼내보기 시작한 건 무진의 명물이라던  안개때문이었다. 매일 아침 내가 만나는 안개가 보여주던 관념의 세상, 그 관념의 색이 분명해질수록 김승옥이라는 작가의 소설들이 머릿속에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하였다. 그가 그리는 신산한 삶의 풍경속에는 내 유년기와 중첩되는 배경이 있다. 

 

 격동의 현대사가 온몸을 관통하던 시대의 배경이란, 늘 그렇듯 파편화되어 가는 서민들의 애닮은 삶이 주재료다. 사변 이후, 이데올로기가 휩쓸고 지나간 소도시의 살풍경을 그려낸 건()과 같은 소설은 어린소년이 바라보는 세상이다. 6.25가 끝나고 빨치산들의 공격으로 폭격을 맞은 소도시에  대비되는 천진난만한 소년의 시선에는  병원건물에 불이나고 빨치산의 시체를 발견하는 일이 그저 학교친구들과  재미있는 이야기꺼리가 많이 생겼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천연덕스러운 생의 농담인가. 또 거기에 등장하는 어느 동네나 다 있던 동네이쁜언니 윤희언니 등장은 시대를 관통하는 불안함과는 다른 아름다움이 있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은 소년의 형, 무리들이 강간을 모의하는 것으로 짓밟혀질 예정이다. 소년에게 일본으로 피난 간 짝사랑 미영이를 연상케하던 꽃처럼 이뻤던 동네누나는 그렇게 불행을 예고한다. 사회 전반의 우울함과 암울함이 곳곳에에서 숨을 쉬던 시대였던 것이다. 

편모슬하에 자란 세 남매이야기  생명연습은 여수까지 피난한 후, 생선장수를 시작한 어머니의 이야기가 이야기가 펼쳐진다. 일찍 여읜 아버지의 모습을  닮은 어머니의 애인들, 야간학교를 다니는 누나와 폐가 나빠 다락방에서 은거중인 형과 주인공은 어느 날, 어머니를 죽이기로 한다. 물론 누나와 주인공은 가담하지 않지만 다락방에서 점점 괴물이 되가던 형은 결국 자살을 선택한다.

월부책장사를 하던 남자가 아내가 죽고 나서 가난 때문에 시체를 병원에 팔고 자살을 시도하는 『서울,1964』,  바닷가 촌마을에서 도시로 돈 벌러 간 누이의 눈물『누이를 이해하기 위하여』 ,  검열에 걸려 직업을 잃게 된 만화가가 세들어 사는 다세대주택의 미싱소리와 함께 1970년이 병풍처럼 그려진다. 새벽시장에서 꽃을 팔다가 건강이 악화되어 병원에 누운 며느리대신 무허가로 염소탕을 팔던 시어머니는 경찰단속반에 걸린다. 처음 마주하게 된 경찰관의 서슬퍼른 눈동자는 누나에게 향하고, 그 날 이후 누나는 꽃대신 버스안내양이 된다. 소년과 할머니는 누나의 버스가 지날 때마다 환호성을 지른다. 『염소는 힘이세다』  제주도 비행기 안에서 첫눈에 반한 여인, 결혼까지 성공하지만 나중에야 그 예쁜 아내가 호스티스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서울의 달빛0章』은 1977년 이상문학상 수상 작품이다.  

현대사의 광풍속에서도 살아남으려 몸부림치던 서민들의 삶의 파편이 곳곳에 스며들어 시절의 배경들을 연상케 한다.  월남전 파병, 유신체제 발동으로 격변하던 시대와 경제성장이라는 미명하에 무너져가던 전통윤리를 그리며 자본주의의 급격한 흡수로 물질만능주의가 틈새를 파고드는 찰나의 순간들을 예리하게 파고든다. 비극적인 붕괴가 시작되던 시대의 피해자로서의 서민들의  단편들이 획기적이고도 충격적이며 기발하다. 한을 품은 여귀가 내뿜는 입김과 같은 안개, 그 안개 너머로 보는 세상은 현대화라는 기차를 타고 가족과 사회와 공동체를 빠르게 해체해 갔다. 무진기행이 담아내는 도시는 그래서 몽환적이다. 잡으려 하지만 잡히지 않고 보려고 하지만 보이지 않는 안개같은 세상, 그것이 바로 현대라는 이름의 세상인 것이다. 김승옥의 소설은 그 세상의 치밀한 엿보기다. 파편화된 사회를 조각조각 이어주며 치열한 생의 고민이 이 소설들 안에 담겨 있었다.

하나의 세계가 형성되는 과정이 한마디로 얼마나 기막히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 과정 속에는 번득이는 철편이 있고 눈뜰 수 없는 현기증이 있고 끈덕진 살의가 있고 그리고 마음을 쥐어짜는 회오悔悟와 사랑도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봄바람처럼 모호한 표현이 아니냐고 할 것이나 나로서는 그이상 자세히는 모르겠다. -<생명연습> 중에서

 

불륜이 비어홀처럼 만연해지며 신종 오락처럼 그 유행을 시작한 1970년대는 마치 낚시꾼이 찌를 노려보듯 사회현상의 변화를 주목하고 있는 소설가에게는 소설 소재의 황금어장이었다. 전통윤리 또는 절대가치가 붕괴되는 시대에는 모럴리스트들이 할말이 많아지는 법이다.-작가의 말 중에서

 

미안해요, 어머니, 라고 누이는 말하고 싶었던 거다. 하루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무서운 사건이 세계의 은밀한 곳에서 벌어지고 그리고 다음날은 희생자들이 작은 조각에 몸을 기대고 자기들의 괴로움을 울며 부유하는 것이다.

 

인간이란 뭐냐, 인간이라? 저 도시가 침범해오지 않는 한, 우리는 한 고장을 지키기에 충분한 만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영원의 토대를 만든다는 것, 의지의 신화들을 배운다는 것, 우는 법을 배운다는 것, 침묵을 배운다는 것, 그것만이 인간인 것이냐? 인간의 허영이 아닌가, 라고 나는 누이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누이를 이해하기 위하여

 

무진에 명산물이 없는 게 아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것은 안개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면, 밤사이에 질주해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삥 둘러싸고 있는 것이었다. 무진을 둘러싸고 있던 산들도 안개에 의하여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유배당해버리고 없었다. 안개는 마치 이승에 한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가 뿜어내놓은 입김과 같았다. 해가 떠오르고, 바람이 바다 쪽에서 방향을 바꾸어 불어오기 전에는 사람들의 힘으로써는 그것을 헤쳐버릴 수가 없었다. 손을 잡을 수 없으면서도 그것은 뚜렷이 존재했고 사람들을 둘러쌌고 먼 곳에 있는 것으로부터 사람들을 떼어놓았다. 안개, 무진의 안개, 무진의 아침에 사람들이 만나는 안개, 사람들로 하여금 해를, 바람을 간절히 부르게 하는 무진의 안개, 그것이 무진의 명산물이 아닐 수 있을까?-무진기행

 

오래 전에 읽었던 무진기행을 다시 손에 들었다. 새벽에 산에 가려고 집을 나서면 나를 먼저 반겨주는 건 산이 아니라 자욱한 안개였다. 그때마다 무진기행이 떠올렸다. ‘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가 뿜어내놓은 입김이라던 그 안개가 나를 감싸고 나는 그 여귀가 삼켜지도록 보내온 먹잇감처럼 빨려 들어가곤 했다. 안개를 통과하여 걸어가던 그 몽환의 새벽길에는 그리움의 계단이 하늘까지 닿아있다. 나는 늘 그 계단을 올랐다. 무진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주인공이 관념 속에서 그리고 있는 어느 아늑한 장소로 무진을 떠올르듯이 그 새벽의 안개는 내게도 추억을 소환하는 마술을 보여주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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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빈곤세대입니다 - 평생 가난할 운명에 놓인 청년들
후지타 다카노리 지음, 박성민 옮김 / 시공사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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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글로벌 컨설팅 회사 매킨지는 지난해 발간한 보고서에서 25개 선진국의 2005년과 2014년 가계소득을 분석하였다. 그 결과 인플레이션 효과를 감안한 실질 가계소득이 증가하지 않은 가구가 65~70%에 달했다.(참고:김창환의통계인사이트)  10년간 경제가 성장하였지만 가계소득에는 전혀 영향을 주지 않았다는 것, 이것은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할 문제이다. 이런 그래프로 가다보면 청년 세대에는 더 빈곤해질 것임은 자명하기 때문이다.

 

#10.7%
2017년 2월 한국의 청년실업률이다. 이 가운데 청년주거 빈곤율은 36퍼센트에 이른다. 미국보다 더 악화한 수치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13년부터 3년 연속 청년실업률이 상승한 나라는 한국 오스트리아 스위스 핀란드 프랑스 터키 등 6개국뿐이다. 한국의 공식 청년실업률이 미국을 추월한 것은 우리나라의 청년 일자리 형편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의미이다. 미국은 고용과 해고가 유연한 데다 취업과 연계한 직업훈련, 4차 산업혁명을 위한 인프라 투자와 창업 지원 등의 정책으로 2010년 18%대까지 치솟았던 청년실업률을 6년 만에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수준으로 낮췄다. 정규직 해고 요건을 완화하면서 비정규직 보호망을 강화해야 한다는 OECD 권고가 작년 5월에 나왔지만 노동개혁법안의 국회 처리만 기다리며 과감한 구조개혁에 나서지 못한 정부 책임이 무겁다.

 

우리나라가 유난히 청년실업률에 대해 안일하게 대처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옛말에 이런 말이 있다. ‘젊은이 망령은 몽둥이로 고치고 늙은이 망령은 고기로 고친다.’ 이런 속담을 봐도 알겠지만 유독 젊은이들에 대해 박하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는 말 역시도 그렇다. 신조어를 보면 젊은이들에 대한 평은 더욱 가혹해진다. 일 시켜줬으니 열정이 곧 페이다라며 적당한 보상을 해주지 않아 떠돌던 ‘열정페이’라든지, 졸업생 90%가 논다는 뜻의 '인구론‘, 20대에 다시 백수가 되었다 해서 ’돌취생‘ , 이와 같은 신조어들은 젊은 세대들의 사회적 조건이 얼마나 가혹하고 불안한 것인지를 대변해주는 듯하다.

『우리는 빈곤세대입니다』 이 책은 희망을 잃은 일본 청년들에 대한 보고서다.
이 책의 저자는 사회복지사로서 빈곤의 리얼미터라 하여도 지나치지 않은 표현이다. 그는 비정규직 고용의 확대, 블랙 아르바이트나 블랙기업(청년들을 혹사시키는 기업), 학자금 상환 연체, 국민연금 보험료나 국민건강 보험료의 체납, 부모와의 동거, 높은 청년 자살률, 저출산까지 청년들의 삶이 악화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조사하며 대안까지 책에 소개하고 있다. 지금의 청년들의 빈곤은 일시적인 취업난이나 해결할 수 있는 빈곤이 아니라 급격히 변해버린 고용환경으로 인해 ‘평생 빈곤’이라는 굴레가 되었다는 것이 문제이다. 따라서 어떤 식으로든 정책이나 지원환경이 바뀌지 않는다면, 워킹푸어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골자이다.

 

그런 이유에서 나는 이 청년세대를 일컬어 ‘빈곤세대’라고 부르기로 했다.(-p11)

하지만 비단 일본이 아니라 한국의 청년들을 빈곤세대라해도 누가 잘못된 표현이라 하겠는가. 이미 청년들의 실업을 사상 최대를 기록하고 있고 그 빈곤을 탈출할 비상구는 한국사회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1장
방치되어 상처 입은 빈곤세대를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지곤 한다. 학교를 다니기 위해서 유흥업소를 다니는 여대생, 생활보호대상자로 근근히 생계를 연명하는 스무 살의 청년들, 아르바이트를 하지만 빚이 점점 불어나 파산신청을 한 청년,어디서가 본 듯한 , 현대를 사는 우리 젊은이들의 초상과 다르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다. 어른들의 가혹한 기대와 능력지상주의가 만연한 이 사회에서 청년들 뿐만아니라 우리들은 노력이 아닌 자신의 힘을 쥐어짜여 초과시켜여만 하는 ‘노오력’이라는 말에 모두 지쳐있는 상태다. 또한 우리 사회가 이렇게 노오력의 사회가 된 것은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에 있다는 것 또한 우리는 모르지 않다. 그 가운데 우리를 더욱 분노케 하는 것은 금수저와 흙수저의 빈부격차에서 오는 갈등이다.

 

청년 빈곤을 해결하기 위해서 저자는 가장 먼저 청소년을 향한 잘못된 인식을 꼽는다. 실제로 청년들이 정신질환이나 우울증을 앓고 있는 경우가 많고 자살률 또한 일본이나 우리나라는 OECD국가 중에서 1,2위를 다투고 있다. 대부분의 청년들이 졸업과 동시에 빚쟁이에 내몰리고 있고, 가난 때문에 부모로부터 독립과 결혼은 꿈도  못 꾸는 일이고, 이로 인해 자연히 저출산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저자는 청년들을 사회복지정책에서 제외시키는 것자체가 잘못된 인식에서 출발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청년지원의 부실함이 저출산이 인구감소를 적극적으로 감소시켰으며 사회전반의 쇠퇴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타성에 젖은 전통적인 사회 시스템이나 교육 시스템이 급속히 변화한 노동시장과 어긋나게 되면서 청년 실업자들을 배출하는 원인이 되었다.’-p127

 

#결론
지금의 청년들이 매우 불행하다는 것은 기성세대 모두 공감하는 부분이다. 허나 이제 6.25 세대이후 가장 가난한 세대를 맞이하게 될 아이들의 미래는 기성세대인 바로 우리들의 탓이다. 미래의 아이들에게 물려줄 유산이 적어도 빈곤이어서는 안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장지상주의에 매몰되어 있던 가치를 세금과 부의 재분배에 관해 머리를 싸매고 같이 고민해야 한다. 빈곤이 발생하는 본질적인 원인과 계층과 계층간의 이해관계를 돌이켜보며 청년들은 자기와의 전쟁을 선포해야 한다.

 

마지막은 저자의 말로 대신한다.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가만히 있기만 하면 예산도 지금까지 해오던 대로 빈곤세대를 위해 분배되지 않을 것이다. 큰소리로 변화를 요구하는 힘이 강해지면 정치도 결코 그들을 무시할 수 없다. 안타깝지만 정치에서 본격적으로 빈곤세대를 향해 움직이려는 징조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시종일관 자기책임론을 내세우고 있는 상황에서 정책 역시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청년들이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가만히 있으니, 무슨 정책을 내세워도 아무 저항이 없다는 것을 핑계 삼는다. 결국 힘든 상황은 더더욱 가속화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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