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산 휴양림에 가벼운 나들이 다녀오며 담아온 사진들이다.

집에서 그리 멀지도 않은 곳인데, 산 정상까지 올라가자고 한것도 아닌데, 차라리 공을 차고 싶어하는 아이와 움직이는 것 좋아하지 않는 남편을 일으켜 세우기가 쉽지 않았다.

 

요즘 읽은 책들의 분위기가 아직 가시지 않아서인지 나는 마냥 좋았다. 초록의 우거짐도 내 마음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는 것 같은데, 꽃까지 방점을 군데군데 찍고 있으니 얼마나 좋던지.

 

 

 

오동나무 꽃 (이라고 생각됨 ^^)

 

 

나도 꽃이랍니다. 호두나무꽃 (이라고 생각됨).

 

 

 

 

불두화. 이꽃은 볼때마다 내 방에 등 대신 달아놓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하나 아니라 둘을 나란히 달아놓으면 더 좋겠다. 영국 사람들이 자동차 유리 앞에 스펀지 주사위 걸어놓듯이.

 

 

이 사진 찍은 것이 5월인데 지금은 보니까 대부분 솜털로 여기 저기 다 날아가고 보라색 머리털(^^)이 다 빠져버렸더라.

 

 

함박꽃은 활짝 핀 것도 예쁘고 이렇게 봉오리 그 자체로도 보는 사람을 두근거리며 궁금하게 한다.

 

 

 

열심히 위로 위로 올라가고 있는 중.

 

 

이 사진의 주인공은 꽃이 아니라 짝짓기 하고 있는 저 곤충. 아이가 말해줘서 알았다.

 

 

쭉쭉빵빵이란 단어가 정말 어울리는 나무.

 

 

아, 원산지가 중국이었구나. 그러고 보니 학명의 명명자도 중국 이름이다.

 

 

화면이 꽉 찼다. 예전에 집에 있던 달력 사진 같았다.

 

저런 수련장이 있어서 가까이 가보았더니 야외 책꽂이가 있다.

 

 

 

 

 

책꽂이의 책들은 누렇게 바랜 오래 된 책들이 대부분이었는데, 내가 중고등학교 때 읽었던 책들을 여러 권 발견했다. 오래 된 친구를 만난 기분이랄까.

 

 

날이 벌써 꽤 더워졌다. 이렇게 또 한번 집을 나서려면 이젠 식구들을 더 졸라야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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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라 2012-06-09 1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싱그러움 그 자체예요!!!
호두나무꽃 처음 봐요. 맨날 먹을 줄만 알았지.. ㅋ
사진을 감상하면서 온갖 참, 온갖 진실로 가득한 숲이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잘 보고 갑니다.

hnine 2012-06-09 18:45   좋아요 0 | URL
저는요, 지금까지 저기 오동나무 꽃이 호두나무 꽃인줄 알고 있었답니다 ㅋㅋ
메리포핀스님, 가까운데 숲이 있으면 자주 가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워낙 관심도 많으시니.
몇주일 차이로 다른 모습이더라고요.

순오기 2012-06-09 2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분이 환~~~~~해 집니다.^^
나무나 숲은 사진만 봐도 스트레스 지수가 내려가는 실험결과가 있더라고요.
세번째 사진은 산귀래-망개, 명감, 맹감-라고 불리는 거고,
불두화 아래 사진은 지칭개라고 부르더군요.^^

야외서재 근사한데요, 저기 가서 빛바랜 책 하나 빼들고 싶은...

hnine 2012-06-09 22:25   좋아요 0 | URL
와~~ 순오기님 이제부터 인간 나무 도감 하세요 ^^
궁금했던 이름을 다 알려주시니 감사합니다. 정가는 이름인걸요? 산귀래, 망개, 지칭개...
순오기님 이미지 사진인 자귀나무는 좀 더 있어야 피지요? 예전 동네 아파트 주변에 많이 피었었는데.

순오기 2012-06-10 21:04   좋아요 0 | URL
어제 중학교 수업하고 걸어오는 길에 이웃 학교 담장에 햇빛 잘받는 곳에 선 자귀나무가 꽃을 피웠더군요. 조금 더 걸어오니 길 옆 공원에 선 자귀나무는 아직 꽃피우기 전이고요. 그런데 디카를 안가져가 사진은 못 찍었어요.^^
이번주말에 숲해설가 심화과정까지 끝내면 우리집 가까이에 있는 대학교로 자귀나무 꽃 보러 갈거에요. 정문 진입로 양쪽으로 자귀나무가 좌악~~~~ ^^

hnine 2012-06-11 04:58   좋아요 0 | URL
대학교 진입로 양쪽에 자귀나무가 좌악~ 심어져있다니 재미있네요 ^^
자귀나무는 어떻게 찍어야 예쁘게 나올까 잠시 생각해봐요.
자귀나무의 그 부채살 모양 하나하나에 꽃씨가 달려 각기 바람을 타고 날라가던가? 들은 풍월 맞는지 확인해보러 갑니다~ 사진 기대할께요~
그나저나 벌써 심화과정까지 끝내신다니 박수 쳐드려요. 시작하면 끝장본다는 정신!

파란놀 2012-06-09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깥 서재가 좋기는 한데, 늘 저렇게 열어 놓으면 햇볕에 닳고, 먼지 잔뜩 먹을 듯하네요
@.@

살짝 덮개나 뚜껑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봅니다. 또는 건물 바깥에 해가림과 바람가림할 것이 위쪽에 살짝 아래로 늘어뜨리면 어떨까 싶기도 하고요.

숲마실은 언제나 즐거워요

hnine 2012-06-09 22:29   좋아요 0 | URL
안그래도 빛바램은 물론이고 젖었다가 마른 흔적이 책마다 있더군요. 비올때는 무엇인가로 덮어놓지 않을까 싶어요.
숲마실 좋은데, 가족 중에 제가 제일 좋아하는 것 같아요 ㅠㅠ 하긴 저도 어릴 땐 좋은 줄 몰랐지요 사람 만나고 다니는 것이 더 재미있었으니까요.

프레이야 2012-06-09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초록 사진만 봐도 피톤치드 훅 코로 들어오는 것 같아요.
눈이 다 시원해지네요. ^^
나인님 사진도 날이 갈수록 더더 좋아지구요.

hnine 2012-06-10 12:01   좋아요 0 | URL
사진에 담아온 초록으로도 상쾌해지는데 직접 가서 그 속을 돌아다니다보면 찌든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제가 자꾸 숲으로 마음과 발걸음이 가는 게 저도 모르게 그런 정화 과정이 필요해서였을까요?
프레이야님 이미지 사진이요, 어떤 때 보면 매우 환상적으로 보이고요, 어떤 때는 아주 슬프게 보이고, 어떤 때는 저를 가만히 응시하는 듯 보이고...참 오묘해요...

책읽는나무 2012-06-10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덕분에 제눈이 다 호사를 했습니다.^^
휴양림을 금방 갔다온 기운을 얻어 오늘 아침이 맑고 좋으네요.
안그래도 순오기님도 그러시고,님도 숲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주시니 아웅~
숲에 마구 달려가고 싶네요.^^
사진중 수국이 아니고 불두화라는 것을 첨 알았네요.전 수국이 색이 좀 다르네? 하고 지나쳤었거든요. 방에 등으로 달았음 하신 생각 저도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불빛이 향기를 담아 참 멋질 것같다는~~

야외책꽂이도 멀리서 보기엔 멋진데...관리하시는 분들은 곤혹이겠죠?^^
그래도 저의자에 앉아 커피 한 잔 하면서 책 읽고 싶어지네요.
때론 좋아하는 이들과 도란도란 차 마시면서 수다 떨고 싶기도 하구요.
이상하게 전 북카페 같은 조용한 곳에서 수다 떨고 싶더라구요.ㅋ
아마도 나와 상대방의 얘기가 더 잘 들려서 그런지도?ㅎㅎ

hnine 2012-06-10 12:00   좋아요 0 | URL
불두화, 수국과 참 비슷하게 생겼지요. 요즘 한창이더군요.
서울을 떠나오니 (저, 대전에 삽니다 ^^) 멀지않은 곳에 이런 휴양림이 많더라구요. 맘만 먹으면 나설 수 있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고 있네요.
좋아하는 이들과 도란도란 수다 떨고 싶을 때도 있지만 입도 쉬고 머리도 쉬고 마음도 쉬게 두며 그냥 혼자 가만히 걷다 쉬다, 그러고 싶을 때도 있어요. 나이가 들어간다는 증거인가봐요.

파란놀 2012-06-10 19:48   좋아요 0 | URL
가까이에서 눈여겨보면
수국이랑 둘이 많이 다른 줄 느끼실 수 있어요~

달사르 2012-06-10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불두화는 절에서 많이 본 것 같애요. 최근에 저희 모친이 저 나무를 어디서 얻어서 집 마당에 불두화가 잔뜩 달려 있었더랬죠. 근데 저런 꽃들은 역시 넓은 자연 속이나 트인 절에서가 더 이쁜 것 같애요. 인근에 멋진 휴양림이 있어서 좋겠어요, hnine님. ^^

hnine 2012-06-10 17:54   좋아요 0 | URL
예, 맞아요. 부처님 머리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불두화라더군요.
집 마당에 불두화가 있으면 자연 속이 아니더라도 그게 어디예요~~ 달빛 받고 있으면 시상이 마구 떠오르지 않을까요? ^^
달사르님 계신 곳에는 요즘 어떤 나무, 꽃이 많은지...여기 대전엔 여름 하면 배롱나무 (목백일홍)랍니다. 아직은 안 폈지만 곧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요즘 날씨를 보니.

상미 2012-06-11 0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초록색을 보고 나니 눈이 시원하다~~
숲속 공기도 참 좋았겠다.
잘 지내지?

hnine 2012-06-11 13:11   좋아요 0 | URL
어렸을때 엄마보고 무슨 색이 제일 좋으냐고 물으면 엄마가 항상 초록색이라고 하셨고 나는 그게 이해가 안되었지. 그보다 예쁜 색깔이 얼마나 많은데, 분홍색도 있고 노랑색도 있고, 초록색이 제일로 좋다는 말씀이...
이제 나도 초록이 좋아지는 이유를 생각해보니 '생명'의 색이기 때문이 아닐까 해.
다린이 방학해서 하루 세끼 차려내느나, 그리고 해주세요, 안돼...반복하느라 바쁘지 ^^
 
귀가도
윤영수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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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갈 집이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십 오륙년 전 낯선 남의 나라에 머물 때,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동네를 한바퀴 돌라치면 불빛이 은은하게 스며나오는 다른 집 창으로 나도 모르게 눈길이 가곤 했다. 갖은 갈등 속에 부대끼다가 떠나온 집이었으면서, 저런 따뜻하고 은은한 불빛같은 가정을 나도 꾸려볼 수 있을까, 꾸려보고 싶다, 그런 날이 과연 올까, 온다면 얼마나 많은 산과 물을 넘어서 올 것인가...그런 여러 가지 상황을 그려보곤 했다. 지금, 따뜻하고 은은한 불빛같지는 않지만 나만의 가정을 꾸리기는 했다. 그때의 간절함과 애뜻함은 어디다 줘버리고, 불평, 불만, 혼자만의 시간이 아쉽다 어쩌구 하는 푸념이나 해대며 살고 있음이여. 모자라는 인간이여.

 

'귀가도'라는 제목을 보는 순간부터 벌써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르면서 가슴 한켠이 알싸해졌다. 작년 초에 나왔고 저자의 이름이 낯설음에도 불구하고 꼭 읽어봐야겠다고 마음먹었던 책이다. 마흔이 다되어, 단편을 딱 두편 써보고 등단했다는 작가. 하지만 그녀의 글에서 느껴지는 삶의 맛은 쓰고 깊었다. 감히 언급해보자면 오정희 작가의 글과 박완서 작가의 글 분위기가 조금씩 느껴졌다고 해야할까. 희망적, 낙천적, 뭐 이런 것은 절대 아니면서, 힘겹게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버티며 살아가는 인물들에서 오정희 작가의 분위기가, 사회와 인간 심리에 대한 예리한 시선과 풍자에서는 박완서 소설이 떠올려졌다.

모두 여섯 개의 독립적인 이야기들이 이 책 한권으로 묶여 있는데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귀가도 1-철학잉어가 그 첫번째. 참신하고 독창적이다. 귀가도2-도시철도 999가 두번째 글. 저자는 이 작품을 위해 지하철에서 몇 시간을 보내며 듣고 관찰했을까. 귀가도3-아직은 밤 세번째 글. 여기서 '밤'은 물론 해가 지고난 후의 밤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여자의 대사 한마디 한마디에서 말라 붙은 눈물 자국이 떠올랐다. 이 작가가 보는 세상을 이때부터 나도 함께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기본적으로 애정 또는 미움 그런 것이 아니라 연민, 애처로움. 그래도 한번 살아볼 세상이라기 보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질게 살아내는 세상. 살아갈수록 두 손에 쥐어지는 것이 점차 생겨가는 것이 아니라, 뭘 준게 있다고 가진 것 조차 하나하나 앗아가느냐 따져 묻고 싶은 세상, 그런 것 말이다. 그런 점에 있어서는 김이설의 소설 주인공들을 떠올릴 수도 있겠으나 분위기는 다르다. 매우 다르다. 독자로 하여금 끌어내는 정서가 다르다.  이 작가의 경우 좀 더 절제되어 있고 간접적 묘사라고 할까. 네번째 이야기 문단속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제목만큼 특이한 내용이다. 어떻게 이런 스토리를 생각해내었을까 감탄했다. 다섯번째 이야기 떠나지 말아요 오동나무 마무리 문장을 보면 작가를 또한번 보게 된다. 이렇게 마무리하는 작가의 시선을 다시 헤아려 보게 한다. 알아들을 사람만 알아들으라는 배짱이 느껴질망정, 한문장, 한구절 더 보태어 독자에게 설명하려고 하지 않는다. 다작의 작가가 아니지만 눈여겨 봐야할 작가임을 확인하게 한다. 마지막 이야기 바닷속의 거대한 산맥 여주인공의 자존감, 꼿꼿함에서 우리는 그동안 잊고 살던 우리의 자존감을 조우할 기회를 맞는다.

주인공이 아닌 주변인물들의 질펀한 대화에서 느껴지는 '포기 반, 유머 반'의 정서. 거기다가 내가 좋아하는 사투리 억양까지.

"반백년 살아보고도 몰러? 눈먼 돈이 굴러다니남?"

"가을 소나기가 오지기도 허다, 주차장 입구는 시방 헤엄치게 생겼어."
"비 오면 누님은 좋지 뭐, 하루 일 젖히고."

"젖히기는? 올라믄 아침 일찍 일하기 전버텀 와야지, 일 다 끝내고 뒷북치는게 좋아? 내일 일만 두 배여." (235쪽)

"사주 얘긴 끄내덜 말어. 나는 정경부인 팔자라고 혔어. 정경부인이 새벽부터 차 닦어." (243쪽)

제목에서처럼, 산이 산맥이 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서로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다만 곁에 있어주기. 그 덕에 산은 산맥이 되어 세월을 버틴다. (243쪽)

 

나는 왜 이렇게 사투리가 정겹고 좋을까.

매일 돌아가는 집이 있고, 태어나서 한 평생 누리다가 돌아가는 집도 있다. 누구나 집으로 돌아간다. 집으로 돌아가며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비슷하다. '바닷속의 거대한 산맥'에 나오는 인물, 은주의 대사에서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결혼하면 저녁은 꼭 남편하고 먹을 거야. 저녁뿐 아니야. 하루 세 끼 내내 같이 먹을 거야. 남편한테 딱 붙어서 절대 안 떨어질 거야. 커피에 물 한 컵도 나 혼자서 절대 안 마실 거야.(245쪽)

철도기관사였던 아빠는 이 여자가 일곱살때 트럭에 받혀 죽었고, 원래 두 번 시집갈 팔자라고 공공연하게 말하고 다녔던 엄마는 그 후 두 딸과 함께 쫓겨나다시피 하여 무작정 상경. 열 다섯 살 많은 영감과 살림을 꾸리며 두 딸을 독립시켰는데 그때 여자의 나이 초등학교 4학년이었다. 그래도 엄마를 미워하지 않고 늘 엄마 얘기를 하는 이 여자. 우리 엄마는 항상 신나게 웃어서 좋다며, 나보고도 슬퍼도 웃으면 복을 받게 되어 있다고 엄마가 그랬다는 여자. 그러니까 이 여자의 웃음은 모두 눈물이고 외로움이었다.

 

첫페이지 첫문장을 베껴 써보고 싶은 작품이 있는가 하면 이 책 속의 작품들처럼 마지막 문장을 옮겨 적어보고 싶은 경우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가게 안은 밥 냄새에 찌개 냄새로 가득 찼지만, 게다가 덩치 큰 그녀가 뛰는 바람에 눈에 보이지 않는 먼지가 장난이 아니지만 나는 그대로 꼼짝 않고 온돌 위에서 몸을 옹크린다. 그녀의 겅중거리느 모습을 조금 더 지켜보아도 될 것이다. 사람의 체온이 없는 문밖은 어둡고 춥고 쓸쓸하다. (248쪽)

 

마지막 작품, 마지막 구절이다. 겉멋의 흔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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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2-06-08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뜻하게 지낼 보금자리는
참 좋은 사랑이 감도는 쉼터라고 느껴요

hnine 2012-06-08 17:40   좋아요 0 | URL
따뜻한 보금자리로서의 쉼터가 저절로 생기지 않더라고요. 가족 구성원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겠지요. 요즘 그런 가정이 몇이나 될까 싶기도 하고요. 그래서 갈수록 여기 저기 건물마다 카페가 성업중인가 싶기도 하고...그렇습니다.
 
과학자의 서재 - 최재천 교수와 함께 떠나는 꿈과 지식의 탐험 우리 시대 아이콘의 서재 1
최재천 지음 / 명진출판사 / 2011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책 많이 읽고 많이 쓰는 과학자로 잘 알려져 있는 최재천 교수. 그가 읽은 책들, 그리고 그중 권할 만한 책이 어디 한두권이랴마는 이런 저런 이유로 뽑아서 소개한 책인줄 알았다. 그런데 이 책은 그런 내용이 아니라 본인이 걸어온 길에 대한 일종의 자서전 같은 책이었다. 그래서 더 가벼운 마음으로 금방 읽을 수 있었다.

생물학은 자연과학의 다른 분야에 비해 문과적 특성이 좀 더 들어간 분야라고 생각한다. 저자 역시 아니나 다를까 어릴 때부터 고등학생이 되어서까지 그의 꿈은 시인이 되는 것이었다고 한다. 미술 선생님에게 지목되어 미술 공부를 계속 하라는 권유를 받기도 했으며, 고등학교 때 이과를 택한 것도 지금 생각하면 얼토당토 않은 우연에 의한 것이었고 문과로 되돌리는데 실패하여 그냥 걷게 된 길이었다니. 읽으면서 공감 백배. 그렇게 들어선 과학자로서의 길. 난관에 부딪혀 극복을 못했다면 아마 지금의 자리에 서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저자는 특유의 낙천성과 끈기, 조급해하지 않는 태도로 일관된 길을 걸어왔다. 과학도 그의 적성과 전혀 다른 길은 아니었던 것이다.

솔직하고 자세하게 자신이 걸어온 길, 무엇이 어려웠었는지, 어떤 순간에 과학에 대해 신비함과 흥미를 느끼게 되었는지, 어떤 사람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는지, 생명이라는 것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고등학교에서 대학교, 대학원, 유학, 그리고 교수직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결정하고 진행시켰는지, 마치 후배에게 들려주듯이, 편하게 털어놓고 있다. 아마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이 읽으면 더욱 눈과 귀에 쏙쏙 들어올 것이라 생각된다.

다른 사람도 그리 느꼈을지 모르겠지만 부가적으로 이 책을 읽으며 또한번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역시 학교 타이틀은 무시 못하는구나 하는 것이다. 저자 역시 그렇게 인정을 하고 있다. 자기가 지도 교수로 모시고 싶던 해밀턴 교수가 있는 미시건 대학으로 박사 과정을 가기로 되어 있었으나 그 교수가 갑자기 영국의 옥스포드로 가게 되었고, 따라 가자니 미국에서 자기를 기다려온 부인에게 미안해서 안되겠고, 그래서 차선책으로 택하게 된 하버드였데 그곳에서 박사 학위를 한것이 나중에 얼마나 큰 보상이 되어 돌아왔는지 모른다고.

해밀턴 교수는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의 아이디어를 낸 사람이다. 리처드 도킨스가 일반인이 알아들을 수 있게 책으로 펴내어 유명해진 것.

또 한가지는, 학문의 길에서도 누구를 스승으로 두었느냐, 누구 밑에서 공부를 했느냐 하는 것은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가 에드워드 윌슨의 계보를 이었다는 것, 그래서 그의 저서를 번역하면서 국내에 '통섭'이라는 단어를 소개하는데 한 역할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는 것은 지금의 그가 있게 한 또하나의 큰 징검돌이 되었으니 말이다. 물론 저자가 그런 결과를 바라고 계산하여 택한 길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그렇다는 얘기이다.

이 책을 읽으며 문득 생각나서 검색을 해본 인물이 있다. 전 서울대 교수 최 기 철. 2002년에 아흔의 나이로 이미 작고하셨음을 알게 되었다. 중학교때였나 고등학교때였나, 교육방송에서 손주뻘 되는 내 또래 남학생을 옆에 앉혀 놓고 생물의 분류에 대해 설명을 하시는데, 옛날 얘기도 그렇게 구수한 옛날 얘기가 없었다. 그야말로 폭 빠져들어 시간 가는줄 모르고 보았던 기억이 있다. 학교에서 주입식으로 가르쳐 주는, 이것도 외워야 하고 저것도 외워야 하는 '생물'이 아니었다. 내가 그 방송을 보면서 귀가 번쩍, 눈이 번쩍 했듯이, 지금 과학에 관심있는 누군가가 이 책을 읽으며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얼마전에 읽은 <탐구한다는 것>이란 책도 참 좋았는데 최재천 교수의 이 책은 그 책보다 더 대중적으로 가깝게 접근했다는 생각이다.

저자의 살아온 행로 자체가 '통섭'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하니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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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2-06-05 1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기철 님은 생물 교과서와 생물도감을 쓰기도 했어요. '대중성'이라는 잣대는 사람마다 달리 느낄 텐데, 최기철 님 같은 분들이 밑틀을 다졌기에, 최재천 교수 같은 사람들은 '일반 대중책'을 마음껏 쓸 수 있으리라 느껴요.

아마 구경하기는 쉽지 않을 텐데, 최기철 님이 1950~60년대에 쓴 '일반 대중 생물 이야기'를 읽어 보시면 무척 놀라시리라 생각해요. 게다가, 최기철 님은 생물 이야기뿐 아니라 '한국 문화재' 이야기도 낱권책으로 펴낸 적 있답니다.

그러고 보니, 1960~80년대에는 어린이와 청소년 과학책을 되게 많이 쓰기도 했고, 번역도 꽤 했구나 싶군요.

hnine 2012-06-05 22:06   좋아요 0 | URL
1950~60년대라면 우리 나라 대학에 생물학과가 처음 생겨날 무렵인데 그때 벌써 생물에 대한 책을 쓰셨군요. 전공은 어류쪽인데 문화재 책까지 펴내셨다니 그건 저도 처음 알았습니다.

2012-06-07 10: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6-08 07: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숲에서 온 편지
김용규 지음 / 그책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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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이런 책들이 하나 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런 책들'이란, 처음부터 도시와 떨어져 살던 것이 아닌, 도시의 모든 이(利)와 해(害)를 겪으며 지친 심신을 안고 자연으로 돌아가서의 느낌을 담은 책을 말한다. 며칠 전에 읽은 고독의 권유라는 책도 그러했고, 김용규님의 이 책도 그러하다. 한편에선 계속 자기개발서를 비롯한 실용서가 쏟아지는 가운데 또 한편에선 비워내라, 혼자의 시간을 누리라는 책이 점차 권수를 더해가고 있다는 것이 말하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실로 이 세상은 한 방향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순환을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 시기를 살고 나면 다음의 시기를 겪게 되고, 하나의 경험은 그 결과로 다른 어떤 경험을 불러내고. 태어나면 죽는 날이 있듯이, 매운 것을 먹고 나면 시원한 것를 찾게 되듯이, 사람과 일 속에 부대끼며 바쁘게 살아내어 나름 그 생활의 단맛을 다 보고 나면, 이젠 한때 지루하고 심심하다고 할 만한 시간을 찾게 되는.

이 책의 저자 소개를 본다. 서울에서 벤처기업의 대표로 7년을 일했다. 무슨 이유인지 자세히 나와있지는 않지만 큰 충격과 상처를 입는 일이 있고 나서 충북 괴산의 산골로 혼자 내려온다. 가족과도 물론 떨어진 생활을 택한 것이다. 그러기를 오년째. 그는 과연 숲에서 스스로를 달래고 치유할 수 있었을까? '숲에게 길을 묻다'라는 이전 저서의 제목처럼 숲에서 길을 찾았을까? 이책 '숲에서 온 편지'는 후속작이라고 할수 있는데 숲에서 지내면서 그가 불특정 대상에게 편지 형식으로 쓴 짧은 글 50편을 모아서 만든 책이다. 고만고만한, 소소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숲은 말이 없다. 어느 날 문득 찾아든 사람에게 이래라 저래라 함부로 조언을 던지지 않는다. 자기를 내려놓고, 털어놓고, 물음을 던지고 답은 던지는 것은 모두 사람 스스로 하는 일일뿐. 왜 그것이 도시 한복판에서는 가능하지 않는 것일까. 우리가 외로움을 무릅쓰고 사람의 흔적 드문 숲으로 들어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그들 역시 우리 사람처럼 하나의 생명체이다. 이 한 세상 살다가는 생명체라는 점에서는 같으나 살아가는 모습은 너무나 다르다. 묵묵히, 하지만 주어진 조건에 최대한 적응하느라 분투하면서 본분을 다해 살아가는 것이 말 없는 저 풀 한포기, 나무 한 그루라면, 온갖 소음을 일으키며 길지 않은 인생, 최대한의 효율을 추구하며 행복을 누리기 위해 분투하는 것이 사람의 사는 모습이다. 같은 생을, 너무나 다르게 살아가는 모습에서 충격이라면 충격을, 깨달음이라면 깨달음을 얻는 순간이 오게 된다.

꽃보다 사람이 아름답다지만, 꽃보다 더 아름다울수 있는 사람의 본성에 때가 끼고 얼룩이 진다.

그 때와 얼룩이 나이를 먹어가며 더 늘어가는 사람이 있고, 조금씩이나마 겆혀가는 사람이 있다.

달빛 아래 푸른 빛 머금은 은빛 숲의 나목이란 도대체 어떤 모습일까.

꽃이 필때는 많은 사람들이 주목을 하지만 꽃이 지는 순간은 아무도 유심히 보지 않는다. 꽃은 그냥 지지 않는다는데. 온힘을 다해 열매를 맺은 뒤에야, 그제야 안심하고 땅으로 떨어진다는데.

 

저자만의 어조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앞에서 워낙 글솜씨가 뛰어난 사람의 책을 읽고난 후라서 그런지 조금 어설퍼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자기가 말하고 싶은 핵심을 돌려말하기 보다는 정확하게 전달하는 힘도 좀 약한 것 같고. 나는 별 세개로 마감하지만 아마도 저자는 별 따위와 상관없는 귀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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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2-06-03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인님 이 책 읽으셨군요.^^
저도 이런 책이 눈이 들어요 자꾸.
저는 속으로 별 넷을 줬거든요. 참 좋더군요. 그런데 정작 그분의 아내는
모든 걸 이해하실까, 그런 생각도 뜬금없이 들었더랬어요.

hnine 2012-06-03 16:43   좋아요 0 | URL
예, 제가 이 저자의 책 배송 기다리고 있다고 댓글에 말씀드렸었지요.
이런 책이 눈에 들어오는 시기를 우리가 지금 통과하고 있는 모양이어요.
앞에 읽은 '고독의 권유'를 읽으면서도 저도 저자의 가족들, 특히 아내의 입장을 생각해보았답니다. 그리고 아내들도 그런 결단을 내릴 수 있을까 하는 것도요. 음...생각이 복잡해지더군요 ^^

파란놀 2012-06-03 15: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이 부르는 대로 책을 찾아 읽기 마련이에요.
가슴속에 언제나 푸른 숲 돌보시기를 빌어요.

hnine 2012-06-03 16:30   좋아요 0 | URL
그렇지요. 제가 손에 골라드는 책의 종류를 보고 제가 요즘 어디에 마음이 가고 있구나를 새삼 알게 되는 때가 많아요.
언제나 가슴 속에 푸른 숲이라...상상만 해도 푸르러지는 느낌입니다 ^^

순오기 2012-06-03 1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궁금해요, 숲공부를 하다보니 주1회나 2회는 꼭 숲에 가는 게 건강에 좋답니다. 자주가면 더 좋고요.^^
토양에 대한 문제 답과 교수님 보충설명 달았어요.
혹시 제가 잘못 적은 게 있으면 알려주세요.^^

hnine 2012-06-04 05:19   좋아요 0 | URL
답 달아놓으신 것 보고 왔습니다.
덕분에 모르던 것들을 알게 되었어요.
예전엔 숲, 나무, 이런 것에 관심도 안 기울였는데 나이를 들어가면서 그런건지 결국 사람이 기대고 배우고 의지할 곳은 풀이고 나무고 숲이고, 이런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뭐든 열심히 하시는 모습이 참 좋습니다.

하늘바람 2012-06-04 1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참 예쁜 책이네요
저도 이런 책에 관심좀 가져야겠어요
요즘 뭐하고 사는지
점점 한심해만 지는 거 같아요

hnine 2012-06-05 00:06   좋아요 0 | URL
전 제목보고 심오하고 더 심각한 내용을 기대했는데 생각보다 그렇지는 않았어요. 페이지가 금방 넘어가더라고요.

책읽는나무 2012-06-06 0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책 많이 봤던 것같은데..한 번 읽어보고 싶네요.
리뷰도 맘에 들어요.^^

hnine 2012-06-08 05:53   좋아요 0 | URL
표지색깔도 그렇고 저는 좀 무겁고 진지한 글들일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그렇지는 않았어요. 금방 읽혀지는 책입니다. 지루하지 않게 읽어보실만 해요.
 
고독의 권유 - 시골에서 예술가로 산다는 것
장석주 지음 / 다산책방 / 2012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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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에 실존의 의미가 더해질 때 우리는 그 상태를 고독이라고 말한다.'
125쪽에 나오는 말이다.

일체 장식 없는 표지에 흐르는 듯한 제목 글씨체만 돋보인다. 이 책에 자주 등장하는 말, 느림, 정신적 공복, 비움, 고독 등과 일맥상통.

삼수, 사수 끝에 이루어진 일이지만 비교적 젊은 나이에 등단을 하여 문단의 주목을 받게 되었을 때 그는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다고 한다. 그리고 출판사를 일터로 수년간 뼈가 굵어지면서 다다른 곳은 나는 무엇인가, 이렇게 계속 살아갈 것인가, 이게 진정 내가 하고 싶은, 내가 살고 싶은 삶인가 하는 것이었다고. 잘은 모르지만 출판사 일이라는게 마감이 있는 일이고 때로는 다그치고 몰아쳐야 하는 일이기에 더 그렇지 않았을까? 책읽기에 거의 달인이라 할 경지에 이른 저자인데 막상 출판사에서 일하면서 여유있게 책 읽을 짬을 내기가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책 없이 못사는 사람에게 책 한권 맘 편히 읽지 못하는 나날이란 오래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다.

번잡한 서울 거리를 끈에 묶여 끌려가던 검은 염소가
문득 뒤돌아서서 공룡 형상의 한 낯선 도시를 바라보듯......

그 슬픔이 칼이 되어 가슴을 버히듯......

 

- '자화상'- (222쪽)

그래도 식솔을 책임지고 있는 가장으로서 버틸때까지 버티다가 겨우 한시름 놓게 되자 미련없이 안성 어느 곳에 집을 짓고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내려간다. 그의 방식대로 말하자면 선택한 고독인 셈이다.

이 책의 서문만 읽어도 저자의 글솜씨를 가늠할 수 있는 것은, 어느 새 그의 글 속으로 빨려들어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는 것이다.

사람들과 북적이면 혼자 있고 싶다 하고, 혼자 떨어져 있으면 또 외롭다고 징징대는 우리들 일상이지만 결국 무슨 일이 이루어지는 것은 혼자만의 고순도, 고집중의 시간을 거쳐서 아닌가.

나는 침묵, 견고한 책상, 펜과 백지, 나만의 시간, 무서운 집중력 들을 꿈꾼다. 인류에게 유익한 그 무언가 경이로운 것은 거의 모두 정금과도 같은 순도 높은 자기만의 시간에서 탄생한다. (23쪽)

이 책에서 밑줄 그은 말 또 하나,

삶에는 길이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삶의 길을 찾아 이곳저곳을 기웃거린다. 아무리 애써 찾아 헤맨다고 해도 없는 길이 찾아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없는 길을 찾아 헤매던 그 부질없는 정열이 이제 그를 찌르는 정열이 된다. (225쪽)

하지만 나는 그렇게 길을 찾는데 시간과 노력을 소모하고 있는 사람들을 말리지 않겠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찾게 되는 것은 답이 아닐테니까. 자기의 시간과 노력을 소모해서 얻을 수 있는 답은 소중한 것이다. 그것은 벌이면서 상이다. 저자가 숨돌릴 새 없이 바쁘고 정신없이 살아온 후 발견한 답이고 결단이듯이 모든 사람들은 자기 몫의 고민과 풀어야 할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결코 남이 대신 해줄 수 없는. 다른 사람의 조언은 조언일 뿐이다. 행복은 목적 달성, 성취에서 온다고 믿어 의심치 않던 때가 나에게도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것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바로 내 마음 속에 떠오르는 행복이란 저자가 말한 다음과 같은 것이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잠자리에서 발가락을 꼼지락거려보자. 그것이 밤새 굳어버리지 않고 움직일 때 우리는 행복의 한 이유를 갖는 것이다. (240쪽)

오늘 새벽 동트기 전에 일어나 책상에 앉았는데 오늘따라 뻐꾹 뻐꾹 하는 새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꿩인지 푸드덕 나는 소리도 바로 옆에 있는 것처럼 생생히 들렸다. (실제로 우리 아파트 거실 창으로 보면 앞을 가로막고 있는 언덕 기슭에 꿩이 돌아다니는 것이 보인다.) 그리고 나는 무작정, 잠시나마 행복했다. 비록 어제 밤 잠들기전까지 난 왜 이모양이야, 사는게 왜 이모양이야, 속을 끓였을지언정 다 잊고 지금 한순간이나마 현재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것에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라는 것이 그토록 소중할 수가 없었다.

지금도 가끔 이런 저런 볼일로 서울 걸음을 하고 있다지만 그 외의 모든 시간은 책 읽고 글 쓰는데 보내고 있다는 저자의 일상. 처음부터 그냥 주어진 것이었다면 그가 이토록 그 가치를 소중하게 생각할 수 있었을까? 아마 무료하고 지루하다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시를 쓰고 나면 집에서 키우는 개에게 읽어준다니, 그건 아마 쓰고 다시 읽어보고 하는 일에 옆의 개가 동참해주었다는 뜻이겠지만 그의 시간이 어떻게 메꾸어져 나가는지 짐작하게 한다. 산을 따라 걷고 때로는 달리고, 생각을 비우고, 시간을 비워서 정신적 공복을 추구한다는 그의 글에서 어딘가 하루키를 연상한다. 아니, 그가 하루키의 그 혼자이면서 자유스럽고 매이기 싫어하는 경향에 자기 동일시 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잠깐 들었다.

지난 번 신간평가단 하면서 읽고 싶은 신간으로 점찍어 놓았던 책이다. 비록 채택되지는 않았지만 내가 직접 구입해서 꼭 읽어보리라 했었다.
새벽별 같고, 혼자 끓여마시는 차 한잔 같은 글들이 한권에 꽉 차있다. 만족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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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쟁이 2012-05-27 15: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뭔 책을 이리 많이 읽으세요? (놀람)

hnine 2012-05-28 07:39   좋아요 0 | URL
밀린 리뷰를 몰아쓰니 그리 보이나봅니다.
요즘 읽은 책들이 저와 코드가 맞는지 특히 더 빨리 읽히긴 했어요.

파란놀 2012-05-27 2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쓴이가 나이 들어 시골에 가지 말고,
젊은 날 시골에서 흙하고 살아가며
시를 쓰고 책을 만들었으면
어떠했을까 싶기도 해요

hnine 2012-05-29 14:12   좋아요 0 | URL
저자는 젊은 날의 휘몰아치는 듯한 바쁜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시골로 들어앉아야겠다는 생각을 할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젊은 날, 시골에서 흙과 살아가자는 생각을 하기가 쉽지 않지요.

마녀고양이 2012-05-29 0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아...........
언니, 저 무지하게 답답해요. 왜 이리 조급하죠? 왜 이리 한숨 나오죠?
우리집 식구는 세 명 모두 비실비실거려요. 요즘 어떤 무게에 다들 짓눌리나봐요.

페이퍼를 읽으며 천천히 숨을 가누어보네요.

hnine 2012-05-29 00:44   좋아요 0 | URL
마녀고양이님 가족을 짓누르는 것의 정체가 무얼까요.
저도 꽤나 조급해하는 성격인데, 제 남편은 또 저와 정반대로 아주 느긋해요. 십년 넘게 함께 살며 보니까 조급해서 더 좋을 것 하나 없더라고요. 더 많이 이루는 것도 아니고요.
마녀고양이님이 중심을 딱~ 잡고 느긋하게, slow down down...을 외쳐주시면 어떨까요.
이 책, 괜찮아요. 아마 책 어딘가에 마녀고양이님도 공감할 부분이 있을 것 같네요.
요즘 읽고 있는 '쉼'이라는 책도 도움이 많이 되더군요. 읽은대로 다 몸이 말을 듣는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

순오기 2012-05-29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마지막 문장이 절창이네요.^^
"새벽별 같고, 혼자 끓여마시는 차 한잔 같은 글들이 한권에 꽉 차있다. 만족스럽다."

hnine 2012-05-31 12:52   좋아요 0 | URL
위에도 제가 썼지만 정반대의 생활을 해본 경험이 있기에 굳이 '고독'을 선택하여 단순한 생활을 해나갈 수 있지 않나 생각되어요. 지루하고 심심한 일상과 단순하고 꽉찬 시간은 받아들이기 나름이더군요.

프레이야 2012-05-30 1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지에서부터 하얀 고독이 배어나오는 느낌이네요.
인용해주신 문장도 참 좋아요. 물론 나인님의 리뷰는 더 좋구요.^^
아침에 눈을 떴을 때도 꼼지락 움직이는 새끼발가락에 고마워할래요.^^

hnine 2012-05-31 12:57   좋아요 0 | URL
제 느낌을 온전히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실제로 저는 느닷없이 그런 생각이 머리 속에 팍! 하고 꽂힐 때가 있어요. 내가 지금 두발로 걷고, 입이 열려 말을 하고, 손을 움직여 노동할 수 있다는 것이, 감사까지는 아니어도 얼마나 다행인가 하는 것이요.
책을 읽다보니 저자가 하루키를 많이 흠모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외모에서 풍기는 것도 좀 비슷하지 않나요? ^^

프레이야 2012-05-30 1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그리고 서재 지붕이 넘넘 이뻐요.
하얀 바탕에 연회색 지붕의 빨간 꽃송이들^^ 왠지 마음까지 깔끔하게 정돈되는 느낌.

hnine 2012-05-31 12:57   좋아요 0 | URL
알라딘에서 제공하는 이미지 갖다 썼는데 계절과 잘 어울리는 것 같지요? 꽃이 있는 풍경은 예쁘지 않을 수가 없다니까요~ ^^

2012-06-02 02: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6-03 05: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읽는나무 2012-06-06 0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책도 괜찮아보여요.
리뷰가 더 맘에 들기도 하지만요.
좋은책들 그리고 좋은리뷰들 감상 많이 하고 갑니다.^^

hnine 2012-06-08 06:09   좋아요 0 | URL
글 내용도 좋고, 작가의 글솜씨도 좋고, 읽는 동안의 차분해지는 마음을 느끼는 것도 좋고. 꼭 한번 읽어보세요.